“참된 스승은 제자를 통해 다시 배운다. 고전의 가르침을 통해 제자와 스승은 함께 자란다.”<다산> 늘 제자를 통해, 고전을 통해,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겸손히 배우는 자가 참 스승임을 깨닫습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삶의 스승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배움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참스승의 자세는 삶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새것을 알게 되니 스승은 할 만하다.”<논어>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에서 새것을 깨달아 알아가는 일에 힘쓰는 이가 또한 참된 스승입니다. 오늘은 세종대왕(1397.5.15.-1450.3.30)의 627째 탄일이자 스승의 날입니다. 민족의 위대한 스승인 세종대왕 탄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입니다. (이수철 신부님 강론중에서)
(업장 소멸하는 법) 나보다 잘난 사람 보면 질투심이 올라 온다거나, 나보다 못난 사람 보면 나 잘났다는 우월감이 올라올 때 이게 바로 업장이구나하고 얼른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잘 지켜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 마음에 대고 염불하고 그래도 안 되면딱 버티고 앉아 마음 다해 독경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마음 지켜보고 잘 닦아내는 일이 업장소멸하는 일입니다. 업장소멸 업장소멸 말로만 백날 해야 내 안에서 경계따라 문득문득 올라오는 이 생생한 생활 속의 업장을 닦아내지 않으면 절에 백날 다녀도 별 소득이 없어요.
매일 매일 마음 닦고 정진하다보면 자신 스스로는 느끼지 못 할지라도 내 안에서는 업장이란 놈이 얼마나 닦아지고 있는 건지 모른단 말입니다. 가만히 올라오는 마음 지켜보세요. 경계에 닦쳐 마음이 얼마나 여여해지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생생하게 순간순간 경계따라 올라오는 마음을 잘 관리하고 잘 닦아내어 휘둘리지 않을 수 있고 여여할 수 있어야 살아있는 생활 속의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친구 잘 되는 꼴 못 보는 마음인가, 친구 잘 될 때 진정으로 함께 기뻐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마음인가, 또 사람들 만날 때, 혹은 나보다 못난 사람 만날 때 나 잘난 마음, 상대를 깔보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 잘난 사람은 공부 절대 못합니다. 물론 나 못난데 집착하는 사람도 공부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렇더라도 나 잘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나 못 난줄 아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설령 남 잘 되는 꼴 보고 속이 좀 메스껍더라도 자꾸 기뻐해주고 격려해 주는 마음 연습을 해야 하고, 못난 사람 만나더라도 절대 부처님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마음이 중심을 딱 잡게 됩니다. 마음이 잘나고 못난 경계를 허물게 되요. 그래야 여여해지고, 내 안에 있는 잘 나고 못난 업장이 소멸될 수 있는 겁니다. 일단 남들 보고좋고 싫은 마음이 일어날 때는 무조건 하고 깜짝 놀라지켜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그런 마음 닦는, 업장 소멸하는 첫 번째 길이예요. 보지도 못하는데 닦는 일은 얼마나 먼 길이겠어요. 그러나 일단 알아차릴 수 있다면 반 이상은 벌써 끝났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알아 차리면서 난 아 직도 이것밖에 안돼 하고 그걸 가지고 또다시 분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딱 알아 차렸으면 그 놈이 어디서 왔나(생) 어떻게 머물다가(주) 어떻게 변하고(이) 또 어떻게 소멸되는가(멸)를 물셀 틈 없이 지켜보세요.지켜 봄이 깊어지면 그냥 녹아 없어지고 소멸됩니다. 그런데도 안 된다 싶으면 그 마음을 관하면서 염불하시고, 또 모자라고 석연치 않은 찌꺼기 마음이 남아 있다면 딱 버티고 앉아 마음을 다해 독경을 하면 그 어떤 업장이라도 분명 소멸시키고 녹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생활 속의 정진이예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생활수행자인 것입니다. 경계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경계 앞에서 당당해지고, 떳떳하게 마주하여 정진으로 닦아내시기 바랍니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