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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바람 쐬러 나갔지요.
삼십 대의 청년이 윗통을 벗다시피한 옷을 입고는 손짓으로 중국고전 무예를 흉내내대요. 팔 등에 온통 문신을 하고...
내 입에서는 '저런 병신새끼...'
평일이기에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생활전선에 정신없이 일하고, 돈 벌어서 더 나은 미래를 나아가려고 하는데 사지 멀쩡해 보이는 젊은이가 몸에 무시무시한 문신을 하고는 손으로 격투하는 꼬라지를 연습하대요.
총기 관련기관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내 눈에는 '총 한 방이면 너같은 것들은...' 하는 말이 나올 것 같대요.'
어떤 글에 몸에 문신한 내용이 조금 언급되었기에 나는 위처럼 댓글 달려다가 그만 두었다.
글 쓴 이가 말하고 하는 뜻과는 빗나갈 수도 있는 내용이기에.
요즘 내 심기가 무척이나 꼬챙이 같다.
시골에 다녀와야 하는데도 거의 한 달째 시골에 내려가지 못했기에 은근히 화가 내재되었다는 증거다.
대구 처가에 내려갔던 큰아들 내외는 자동차가 고장났다며 서울로 올라와서는 아비인 내 차를 가져갔다. 벌써 20일도 더 넘고. 차 없이는 나는 서해안 시골집에 다녀오기가 무척이나 그랬다.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다시 버스를 탄 뒤에서 산골마을에 들어설 수 있기에.
예전처럼 다리가 성성하다면야 까짓것 걸어서라도 가겠지만 지금은 나이가 일흔한 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다니는 게 힘이 들 터. 더군다나 당뇨병환자라서 아내는 늘 내 곁에 있어서 함께 행동하려고 하는데...
아뭇말도 못한 채 끙끙 앓고 있었는데 어제는 대구 사돈 내외가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오늘 오후에 도로 대구로 내려가신다고 한다. 대구 영남대학교 교수직을 퇴임한 사둔이기에 조금은 시간이 날 터. 사둔끼리 점심 한 끼 같이 했으면 좋으련만...
영남대가 무엇을 의미할까? 경주 최부자는 300년간이나 재산을 유지했으며 사방 백리에 덕을 베풀었으나 12대부자인 최준은 영남대 전신인 대학을 설립하다가 실패하여 대학을 넘겨주었다. 박정희... 그 딸이 박근혜이기에.
나는 대학시절에 경주 계림에서 마지막 부자인 최준을 뵈었고, 서울종친회에서 뵌 적이 있다. 이런 나이기에 영남대학교에 대한 이미지는 남과는 다르게 해석하겠지. 내 내가 우려할 만도 하고...
아내는 둘째딸 해산일이 아주 가까워졌다면서 산부인과 병원으로 갔다. 언제 출산할 지 모른다며 대기상태 중.
재작년 추석날에 유산한 아픔이 있는 작은딸. 이번에는 임신상태가 건강하다니 마음은 다소 놓이나 은근히 걱정이다. 딸은 직장녀. 요즘 출산휴가로 집에서 쉰다지만 나이가 많아서 은근히 걱정이다. 둘째사위는 외동아들이기에 첫아이를 무척이나 기다릴 터.
남의 집에 출가했으면 자손을 낳아서 끈을 이어주어야 할 터.
나는 자식이 넷이다. 딸 둘, 아들 둘. 모두 건강하기에 아내한테 늘 고마워 하며, 무탈하게 커 준 자식들이 대견하다. 나는 큰누나, 형의 얼굴을 모르고 나와 쌍둥이었던 동생을 잃었다. 즉 내 어머니는 젊은날 급작스런 사고로 자식 셋을 가슴에 묻고 폭폭하게 살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기에 나는 출산하고 키우는 게 무척이나 힘이 든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다.
내 큰며느리는 몸이 가냘픈데도 손녀와 손자를 낳아서 키운다. 아이들이 무척이나 건강하며 똘방하다. 기저귀를 찬 손자가 구사하는 말을 들으면 나도 놀란만큼 언어감각이 뛰어나다.
오늘 산부인과로 간 아내. 배가 동산만큼이나 부푼 작은딸.
무던운 여름철인 7월에도 무사히 해산하기만 기다린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내와 함께 서해안 고향에 다녀와야 하는 일이 또 뒤로 밀리지 않을까 싶다.
차가 없어서 시골 다녀오지 못하고는 오늘도 나는 이렇게 아파트 안에서만 머문다.
대구로 내려갈 사둔내외한테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 한다. 내가 서울에서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나는 오늘도 아파트 안에 머물면서 컴퓨터 사이버 세상에 들어와서는 '삶의 이야기'방에 오른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읽는다. 무척이나 가치 있고, 재미있고, 때로는 이게 아니다 싶은 내용도 오른다. 그거야 어쩌다가 하나둘씩이고 대체로는 보통사람들의 이렇고 저런 이야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주로 한다.
산골마을에서 태어났고, 중도시인 대전으로 전학 가 11년 살았고, 서울에서 수십 년 동안 살다가 퇴직한 뒤로는 시골로 주소지를 옮겼다.
신문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TV는 고작 일기예보나 5분 정도 보기에 나는 세상과는 단절한 것처럼 살았다.
둘이서 살던 늙은 어머니를 먼 여행 떠난 뒤로는 도로 서울로 올라와 대부분을 서울에서만 머무는 요즘이다.
서울에서는 내 역할이 아무 것도 없기에 컴퓨터 사이버세계에 들어오고 남의 글과 사진을 읽고 보고, 나도 댓글 달다가 이따금 잡글을 올리는 게 요즘의 내 일상이다.
요즘 '삶의 이야기'방이 다소 어수선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장년의 불륜 이야기가 당연한 듯이 올랐고, 이에 동조하는 댓글도 무척이나 많이 올랐다. 삶방이 후끈하게 달았다. 동조하지 않는 회원에 대하여 거침없이 비난을 퍼부었던 그 회원의 돌출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었을까? 간밤에 사라졌다. 그가 남긴 글은 남아 있다. '삼...', '뜨...'라는 닉네임을 치면 그가 올린 글들을 볼 수 있다.
어디 이 사람뿐이랴?
삶의 이야기방이 신변잡기나 써서는 안 된다며 '거대담론'으로 글 올려야 한다는 글도 보았다.
나는 '거대담론'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인터넷 국어사전으로 검색했더니만 '정치, 경제, 군사 등 사회주요 문제에 대하여 서로 논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눈이 똥그랗졌다.
우리나라는 정치지리학상으로는 남북으로, 남한에서는 동서지역으로 정치성향이 뚜렷하게 갈라져서 늘 반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인데도 정치 이야기를 주제로 삼자고?
이것은 아니다 싶다. 정치, 외교, 군사 이야기 등이라면?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아내는 대구사돈과의 만남을 조금은 조심했다. TK지역의 영남대 교수를 역임한 바깥사돈과 서해안 출신이며 정치가 무엇인지를 조금 아는 남편이 자칫 의견충돌이 생길까 봐 늘 나를 단속했다. '제발 정치이야기는 일체 하지 마세요. 입 벙긋도 하지 마세요.'
그런데 재작년이던가? 촛불집회로 서울이 시끌벅적거릴 때 대구사돈네는 서울 올라오셨고. 호텔 한 방을 빌려서 손자 돌잔치를 했다. 내 아내의 우려와는 달리 대구사둔과 나는 거침없이 현정치 상황에서 의견을 나눴다. 통하는 바가 있기에.
모든 사물에는 균형과 조화가 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생각차이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시각에서 보면 된다.
예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근무할 때다. 어떤 직장과 옆 사무실 실장(군인)과 의견이 반대였다.
그분은 나보고 '이야기하세요. 나를 설득시키세요'라고 합리적으로 제안했다. 서로 상충되는 업무인데도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생각차이를 조율했다. 나는 그 분을 존경한다.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의견을 조율했기에.
정치협상이 나는 무엇인지를 짐작한다. 타협이 무엇인지도 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안다.
이런 것들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내가 합리적으로 설득당해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민주주의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2016년 말, 촛불집회로 전국이 어수선하고, 서울 광화문에 100만 명, 180만 명이 운집해서 집회가 열릴 때다. 카페의 어떤 분이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해서 군대가 일어나서 총기로 제압해야 한다고 했다. 기관총 운운하며...
세상에다. 기관총으로 자기네 국민한테 갈겨? 기관총이 무엇을 의미하는데?
무기장사꾼을 6년 넘게 수행하고 30년 넘게 근무한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나 이런 사람이 대접받는 중장년, 어른세대라고?
그게 문제가 되었는지 그 글은 이내 사라졌다. 그 회원도 떠난 것 같고...
나는 나이가 일흔한 살이다. 전쟁 전에 태어났기에.
어려서 전쟁의 참혹함은 모르지만 간접적으로는 그 피해를 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두꺼비교실에서 공부했고, 포탄으로 강속이 파여서 그곳만 시퍼렇게 깊은 웅덩이도 보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장터로 얻어먹으러 갔다가 굶어죽었다는 이웃도 알고, 온 산이 헐벗어서 땔감이 없던 산들을 보아왔으며...
내가 대전으로 전학갔을 때(1960년)의 대전역과 목척교 일대의 상황도 눈에 훤하다. 루핑집(종이에 기름을 친한 것)이 수두룩했고, 도시거지떼들이 정말로 많이 아침밥 먹으러 다녔고, 피난민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2017년 작년에 대전직할시에 가 보고는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세상은 정말로 많이도 변했기에. 원도심지(선화동, 은행동, 원동, 인동, 대흥동...)은 기억하나 외각지대인 가수원, 산내 등지에는 너무나도 많이 변했기에...
한없이 이어지겠다.
줄이자. 길면 글 안 읽어주는 세상에...
나는 '삶의 이야기'방이 정말로 좋고, 존경한다.
이 카페 140개 쯤의 그 많은 방 가운데 '삶방'이 가장 활성화되었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서 서로한테 공감을 준다. 생활의 경험과 지혜를 얻고, 즐거움과 서러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에.
삶방에 오른 글 가운데는 글맛 좋게 쓰는 회원이 무척이나 많다.
그 가운데 강원도 태백산 통리마을의 아홉 살 종지기가 이제는 계란 두 판 나이가 되어서 참신한 내용으로 글 쓰는 '베리꽃'.
논산에서 개털 깎으면서 사는 이야기가 서럽게 펼쳐지는데도 때로는 목이 터져라 노래부른다는 '늘 숲'. 스물여섯 살에 남편 빼았기고 두 어린 남매를 데리고 힘겹게 살았는데도 이런 아픔을 글로 정화해서 수필집을 낸 '운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서툰 한국말로 한국글로도 삶방을 꾸미는 가시장미' 등의 닉네임이 떠온다.
삶방에서는 특정인의 닉네임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내려던 삶방 운영자님한테 오늘도 나는 혼나게 생겼다.
나는 그냥 칭찬하고 싶다. 삶방에서 활동하는 숱한 회원들 가운데 글맛 멋지게, 삶방에 어울리는 글을 누가 잘 올리는지를 나도 확인하고 싶기에. 얼굴을 뵌 적이 없는 분들이고, 장미님은 한 번 뵈었다.
서민들의 애환과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이야기들이 삶방에 올라야겠지.
어제 나는 인터넷에 오른 용어를 검색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의견들이 사뭇 분분한데 아직도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를 들고서 데모/시위하는 노인네들에 대한 용어이다. '미친 틀딱, 미친 노친네, 수구꼴통노인네, 호로들, 광신도자들, 정신병자 새끼들,... 등이 숱하게 이어진다. 아마 모우기 시작한다면 500개 이상일 게다.
나는 일흔한 살이니 나이 많은 노인이다. 위와 같은 용어를 보면 답답해진다.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 어른이라는 게 무엇일까?
우리 카페에서는 위와 같은 용어로 외계인 대접을 받는 분은 없을 게다.
일전 어떤 분이 쓴 글에서 '개털, 범털'이라는 용어를 보았다. 새로운 시사성 용어에 둔감한 나는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개털 : 아무런 힘이나 돈이 없는 상태, 또 그런 죄수를 일컫는다.
범털 : 돈이 많고 지식수준이 높은 죄수를 말한다. 사회지도층, 고위공직자, 재벌 등 돈이 많은 죄수를 말한다.
이런 용어를 새롭게 배우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시시하고, 오죽잖은 삶을 하는 나는 영락없는 개털이다. 다행히도 나는 죄를 짓고 감빵에 들어간 죄수는 아니기에 숨을 크게 내쉰다. 아직은 개털이 아니라고.
나는 빈민출신이다. 조선조에 몰락한 경주최씨네 후손이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사람. 학교 교문이 어디에 붙은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터득해서 국문을 읽고 썼으며, 아버지는 한자도 제법 많이 알았다. 장사꾼이기에 한자를 알아야 했기에. 나는 내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이해 못한다. 내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외할아버지는 선박사업하는 사람한테 보증섰다가 재산을 날리는 바람에 가난해서 어머니를 소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산골마을.
젊은날 내가 들었던 시골사람들의 심성을...
어떤 양반 가문은 구한말 동학교도를 때려잡는데 앞장을 섰고, 일제시대에는 친일파, 한국전쟁에는 인민군편에, 이승만 자유정권시절에는 이승만 편에, 박정희 시대에는 박정희 편에.... 정말로 화려한 변신이었다. 그들은 늘 살아남아서 지방토속 계급에서 절대우위를 차지했다. 화려한 변신을 거듭해서. 강자에 빌붙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일흔한 살인 지금도.
어제도 친일파 이완용 가계도를 살폈다. 이완용 가계도에 연결한 정치계정치계와 마구 뒤섞였다. 현재의 정치계, 재계, 학계의 인맥이 서로 거미줄처럼 엮었다. 누가 누구를 탓할까? 조중동 신문계, 김성수 가계도, 고려대학교, 윤치호 가계도/윤보선 대통령, 윤치영 내부무장관, 이완용의 손자인 이병철 삼성 가계도... 친일파의 가계도가 줄줄이 이어지는데...
얼마 전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 1961. 5. 16군사구테타 주역 2인자인 김종필 씨는 죽어서 묻혔다.
내가 사는 곳에서 30km 쯤 떨어진 곳. 이 분을 생각하면... 좀 그렇다.
박정희의 조카사위. 그의 장인인 박상희는 좌익계... 전력과 생몰시간, 생사지가 아직도 비밀에...
3.
조만간 시골에 다녀와야겠다.
그저께 대전 사는 누나는 친구와 함께 서해안 친정집에 들렀다고 한다. 들려보았자 대문을 빗장 질러서 울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텃밭 세 자리만 바라보았을 터. 매실이 다 떨어졌고, 땅에 떨어진 매실을 골라서 설탕가루 부어서 매실주를 담으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고향 다녀온지가 또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텅 비어가는 산골마을.. 이제는 노인네들이나 남아서 이따금 마을어귀를 어기적 거릴 게다. 삶의 진기는 다 빠지고...
해풍을 가로막았던 앞산을 깡그리 무너뜨려서 일반산업단지로 조성 중이고, 일반산업단지로 들어서는 도로를 낸다며 구석진 곳에 있는 논이 또 토지수용된다고 한다. 내려가서 도장 찍으면 푼돈 조금 받으려나. 사그라지는 촌마을 따라 나도 자꾸만 기력이 쇠진한다.
이런 잡스러운 글은 남한테 보여주려고 쓴 것이 아니다.
그냥 나를 위해서 다다닥한 이야기이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나를 들여다 보려고 한 것일 뿐.
정치, 종교, 성, 조직체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으면 한다.
첫댓글 우리 서민의 살아가는 일상이 하도 비슷하고
너남없이 그리 살아가니 그걸 글로 옮겨보면 비슷하지요
마치 초등학교 아이들 일기 같이 밥먹었다 잤다 해 떴다 비왔다 하듯이 ...
그렇지만
우리가 곤궁하던 시절에 이런 일상의 조용한 삶을 얼마나
갈망했을까요? 늘 먹을 거 찾아 헤매고 싸우고 다치고
살아가는 평온한 글이 잡문이라고 겸손과 함께 내 놓으셔도
다 값진 인생의 열매같은 글입니다
이마저도 표현을 못해서
속에 쌓아두고만 살다간 사람도 많습니다
더위가 몰려오겠지요 이제...
섣달그믐이 생일인 촌계집애는 열여섯 살에 동네결혼하고 스물여섯 살에 남편 빼았겼지요.
폭폭한 세월을 산 내 엄니는 아흔일곱 살까지 살았지요. 내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옛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네요.
나는 일흔한 살이 되어 또 노인네로 행세하고...
저는 운선님만큼은 아니어도 어머니의 삶을 이따금 어떤 문학지에 내지요. 그냥 세상 사는 이야기이지요.
아~하 ! 총기계통이라 함은 알만하네요~고 지식 나리님!
날 세운 내마음일때 내 건강도 같이 망가지는 듯 ~내 눈시야로 전부 가 맞혀지지않쵸
좀 이해에 한계를 나중심보담 상대편에 서면 편해 진다는 사실을 저도 부족했었습니다~ㅎ
오늘도 곰내님 편한 날 좋은 날 되십시요~
예... 그런 곳에서 근무했지요.
1979. 12. 12.사태시 북층창문이 총알로 박살나고... 총알이 무서워서 설설 기었지요.
요즘 어떤 글을 보니까 특전사 어쩌구 저쩌구... 하대요. 그날을 생각하면?
1980년 5월 항쟁을 생각하면... 철없는 얘들이나 특전사, 해병대 운운하겠지요.
내 눈에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손오공수준?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지금쯤 텃밭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네요.
텃밭 농사꾼이 서울 올라와서는... 오늘도 서해안고속도로로 나가는 길목방향으로 고개를 틉니다.
그 너머로는 서해안 갯바다가.. 무창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서천군 춘장대가 눈에 그려지네요.
촌사람이 서울 아파트에 갇혀 있자니...
댓글 거듭 고맙습니다.
거대담론이라~!!!
내만 모른줄 알구ㅠ
내같은 촌뇨는 입 다물란걸까???
잠깐 고민했는디~~~
@별다방
자칭타칭 촌뇨 맞는디유ㅎ
치라믄 몬 치는 바부탱도 아니구
촌사람인 저는 거대담론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지요.
일반서민들이 보통사람들한테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대요. 그런데 왜 어줍잖게 정치, 외교, 군대, 사회 등 무거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지...
저는 그냥 들꽃 들풀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제 시골 텃밭에는 아마도 식물이 150종도 더 넘을 것 같습니다. 재배하는 식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잡목과 잡초가...
이들도 소중한 자원이지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잡초는 없습니다. 단지 그 식물을 재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이 문제이지요.
들풀 산꽃으로도 삶을 즐겁게 하는 님의 댓글에 빙그레 웃습니다.
요즘 나비 많이 날아오고, 또 날아가지요? 님의 텃밭에는...
@들꽃이야기 아. 별다방님 괜찮겠어요?
ㅋㅋㅋ.
사람이 다 자기 자리가 있다하지요.
곰내님은 자연과 함께 할때 힘이 나는 분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시골에 다녀오셔서 더욱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길 바래요.
또한 둘째 따님 순산하기를 바랍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2016년 추석날... 친정으로 오던 중... 잘못되어서... 끝내는 유산했던 딸이 다시 임신했고...
오늘 한양대병원에서 재검진... 아이가 제자리를 잡아서 순산할 것 같다네요.
둘째사위도 나이 많고, 제 딸도 나이 많고, 시댁어른은 감사원 공직자였는데 너무나 청렴결백해서 그게 오히려 미움받았기에...
외아들한테서 첫손주를 무척이나 기다리겠지요.
저.. 사실은 흙에 있을 때, 일하면 신이 나는 촌태생이지요. 지금도요... 그냥 서민층이기에...
서해안 텃밭에 못 가신 한을 글로 길게도 풀어내셨네요.
빨리 차가 해결되어
오매불망 그리시던
자연의 품으로 고고싱하셔야할텐데요.
제가 다 마음동동거려지네요.
이렇게 글써내려가시다가
저처럼 자작나무가 되시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동물은 배반할 수도 있지만 식물은 정성을 쏟으면 보답하대요.
지나치게 과잉만 하지 않으면... 저는 귀가 어둬서 식물이 말하는 소리는 알아듣지 못해도 식물도 생각이 있고, 또 느낌도 있어서
은혜에 보답할 줄 안다고 봅니다.
그저께 누나가 친정인 텃밭에 갔더니만 작물이 엉망진창이라고 하대요.
주인없는 텃밭이 오죽하겠어요? 아쉽네요. 어머니가 떠난 뒤 고향에는 허무만 남네요...
한때 알아주던 시골집, 한때 시골부잣집이라던 제 집은 이제는 낡고 삵았고, 저는 무기력한 가난뱅이로 전락하고 있고...아파트 베란다에 올려놓은 화분에나 정을 둡니다. 식물이 무어라고 나한테 말을 할까요?
생각이 깊으십니다.
작은것 하나라도 이해가 안되면 검색하시고..
현대인 이십니다.
마지막 단원의 다다닥한 이야기에서
웃었습니다.ㅋ
댓글 고맙습니다.
저도 무엇을 썼나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이지요. 긴 항해에서 배는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갸우뚱 가우뚱하면서 나아가겠지요.
어느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우린 채 가지는 않겠지요. 조금씩 조율하면서, 조정하면서 앞으로 가야겠지요.
삶방도 그랬으면 합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보다 나아지려고, 보다 더 잘 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겠지요.
우선 나부터 반성하고요.
예, 단어를 검색하면 배우려고 하지요. 나이가 드니까 생각도 굳어지대요.
나이 많은 게 큰 벼슬은 아니지요.
그냥 다다닥한 글이라서 빈 수레이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진지함은 아껴 두었다 정색할때 해야하지
아무때나 정색하고 진지하면 촌스러운 일이라고
어떤이가 오늘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직도 여러모로 어렵네요,
이 조그마한 삷방에서도 그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