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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정신나간 여자
그의 치하에서 70만에서 150만에 이르는 우간디인이 살해됬다
한때 헤비급 복서였던 우간다의 살인자 이디아민
반대세력의 모가지를 잘라 피를 빨아마시고 그 모가지의 피를 신선하도록 냉장고에 보관했다.
전 우간다 대통령이었던 이디 아민은 70년대, 80년대 내내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그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의 대통령 취임중, 그 잔학한 고문과 처형 방법으로 이름을 떨치고, 모두 75만명의 우간다의 목숨을 앗아간, 엽기적이고도, 괴이한 인물이었다.
북서부 우간다에 있는 소부족인 카크와 출신인 아민은 공식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고, 1943년 영국 식민지 군대인 왕립 아프리카 소총부대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연합군으로 미얀마 전투에 참전했고, 1952~56년에는 케냐의 마우 마우 반란에 대한 영국의 진압작전에 참여했다.
아민은 1962년 우간다가 독립되기 전까지 장교계급으로 승진한 몇 안 되는 우간다 군인 중 한 사람이었으며, 신생 우간다의 총리 겸 대통령인 밀톤 오보테와 친밀하게 교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보테와의 갈등이 표면화되자 1971년 1월 25일 오보테가 영국연방 수뇌회의 참석차 외유중에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자리에 앉았다. 1971년에 대통령과 군사령관, 1975년에는 육군 원수, 1976년에는 종신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하고 나서 곧바로, 전대통령을 지지 하고 있던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처형했다. 전 대통령의 참모장이었던 무하마드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하복부와 성기를 난타당한 뒤에 목이 절단 되었다. 이 무렵, 아민의 자택 냉장고에는, 몇몇의 처형한 인물의 목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아민 부인의 전애인의 목, 자기 자신의 전애인의 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끔 냉장고를 열고, 그러한 목을 보고 즐기고 있었다고 한다.
또, 목이 잘라진 동체를 강에 처넣어서 악어에게 먹이로 주기도 했다. 그 때문에 우간다에선 악어들에게 먹이를 줄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이디 아민의 집권기간 동안 하루에만 4, 50구의 시체가 강물을 떠다녔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수력발전소가 멈추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아민 자신도 인육을 먹었던 것 같다. "인간의 고기는 몇번인가 먹었지만, 짠 맛이었다." 라는 발언까지 남기고 있다.
아민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그중의 3명은 곧바로 싫증이 나서 버렸다. 이혼하고 혼자가 된 케이 부인은, 이혼할 당시, 아민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이혼한 후에 중절 해 버렸다. 그것을 알게 된 아민은 불같이 화를 내고, 케이 부인은 물론이고 중절수술을 한 의사까지 처형해 버렸다. 그리고 케이 부인의 시체 양손 양 다리를 절단 해, 좌우 거꾸로 바꾸어서 봉합하여, 헤어진 아내들에게 보였다고 한다.
아민은 권력의 위임 없이 직접 통치했다. 그는 분위기를 익살에서 날카로움으로, 부드러움에서 폭정으로 돌변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민족주의는 극단적이었다. 1972년 우간다에서 모든 아시아인들을 추방했는데 이로 인해 우간다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고 그는 공개적으로 영국과 미국을 모독했다. 이슬람교도인 그는 이스라엘과 우간다의 우호적인 관계를 뒤엎고 리비아와 팔레스타인과 우호관계를 맺었으며, 1976년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이 프랑스 여객기를 엔테베로 납치하는 데 관여했다. 또한 우간다의 오랜 문제였던 종족주의를 극단적으로 내세워 아콜리·랑고 등 다른 종족들을 박해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민은 자신의 정권을 탓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었다. 인간백정이 별명인 그가 죽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적어도 30만명은 될 것 같고, 어떤 외지에서는 5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한 적도 있었다. 그의 학살에 치가 떨린 성공회의 대주교는 군대의 무기를 시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곳에 사용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가 다른 2명의 원로목사들과 함께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의 냉장고에는 인육이 들어있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각료회의 중에 마음에 안드는 장관이 있으면 즉석에서 철썩 뺨을 후려갈기는가 하면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다리 밑으로 기어가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그 많은 국민들을 이유도 없이, 재판도 없이 죽이고 그 인육을 요리해 먹어치워 우간다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또 우간다에 있는 맥킨디애 형무소에서는, 아민 스스로가 고안 한 고문 방법에 의해, 많은 죄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형무소 안에서는, 죄수들을 빽빽이 못이 박힌 마루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독방에 쳐넣었다. 하지만, 빈번하게 갑작스런 집합명령이 떨어진다. 전원, 어느 방에 집합하라고 하는 것이다. 죄수들이 불려간 방에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통나무에 거꾸로 칭칭 묶여진 거의 다 죽어가는 다른 죄수의 모습이 있었다. 성기 부분까지 철사로 감아 놓은 것이었다. 간수가 다른 죄수에게, "이 녀석의 머리를 해머로 때려 죽여라!" 하고 명한다. 싫다고 하면 자기 자신이 죽임을 당할테니까, 그 죄수는 명령받은 대로, 고문받고 있던 죄수의 머리를 해머로 부순다. 그러한 처형이 끝나면, 죄수들은 별실에 옮겨져 몇일이나 음식을주지않고 기아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다음에, 약간의 고기 덩어리들이 방안에 던져진다. 그러면 죄수들은, 그 고기를 손에 넣으려고 아귀같이 다투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기를 허겁지겁 목으로 넘기면, 그 광경을 구경하던 간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고기는 며칠전 너희들이 죽인 동료의 고기야." 라고.
아민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약 10만~30만 명의 우간다인들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잔학의 극치를 다한 아민이었지만, 1979년에 탄자니아와의 국경 분쟁 처리와 내분의 진압에 실패하면서 우간다로부터 도망쳤다.
우간다의 민족주의자와 탄자니아 군대가 1979년 4월 13일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들어갔을 때 아민은 그 도시에서 도망쳤다. 처음에는 리비아로 피신했다가 끝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정주했다.
그의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우간다로 귀환하는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세베니 대통령이 "그는 범죄자이다. 돌아오면 루지라(우간다에서 가장 큰 감옥이 있는 곳)로 보낼 수 밖에 없다"고 못을 박아 돌아올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악독한 독재자 밑에서도 혜택을 누린 사람은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회교도들이 함께 모여 아디 아민 기념관을 세우는 것을 의논하였다
아랍 신문들은 그를 일제히 검은 히틀러라고 불럿다.
대통령 선서 중인 이디아민 새끼.
뒤에 실제인물 & 영화배우 글 보다가 이디 아민이라는 인간이 학살자라길래 검색....
엄청난 멘붕을 겪음ㅋㅋㅋㅋㅋ 20세기에 어떻게 이런 자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게다가 75살까지 잘 살다가 곱게 뒤짐ㅠㅠㅠ
내가 다 분통이 터져.
첫댓글 으.....끔찍해
헐 진짜 끔찍한 놈이네 지금 지옥가서 벌받고 있길 바란다 ㅡㅡ
아 미친새끼 ㅡㅡ 아오 병신새끼 아오 ㅡㅡ
와 ... 저런 사람도 있구나.....
와.....진짜...장난아니다...지금이무슨시댄지내가헷갈릴정도네...
아 분통터져 지옥에떨어져라 개씨발아
레벨이 히틀러급인데 왜 안유명한거지 ㅡㅡ 이새끼 더하다 진짜
헐 완잔개또라이자나;;
곱게 뒤졌다는게 제일 분통터져;;;;우리나라 누구도 곱게 뒤질거같아서;;;;
헐... 저사람 잡아와서 고문시키거나 사형시켜야되는거아니야?
헐 처벌을못했다니..
곱게뒤지다니 짜증나네...지옥에서 몇천배는 더 고통받아lie새끼야
헐.......
미드에서 우간다 정치랑 인권이 최악이라고 가끔 언질하더니 이사람때문이었나보네
나 어릴적에 비디오가게에서 이새끼 다큐로 나와있는 비디오 있는거 봤는데... 그때 비디오곽에 써있는 내용이랑 사진보고 개충격이었던 기억이....
신이시여 이런새끼들 좀 데려가세요 지옥으로 ㅡㅡ
이거 그 뭐지.........제임스 맥어보이 나오는 영화에 그 사람이네......영화 제목이 뭐더라.........
라스트킹이네..
헐시발새끼네
라스트킹 봤는데 팔다리잘라서 거꾸로 붙여논거 존나혐오..시발
쿠테타일으킨무뇌새끼들은하는짓이참똑같아
아속메스꺼워...ㅜㅜ헐.....
어지럽다............속터진다....
그때 죽은사람들 좋은곳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