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초좀 잘못먹고 쫴매 헤롱거렸더니
낼 미친놈 비슷무리하게 보시다니요.
내도 좀 튀어볼끼라고 닉좀 바꿔볼려고 했는데
모심술장이님때매 포기해야 할것 같습니다.
비난의 여론이 너무 강하여 원상회복합니다 -_-;
밑에 글은 지리산 산신령으로 알려진 마고할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냥 재미삼아 올립니다. 무속신앙이며 샤머니즘적
내용이니 기타종교와 거론하지는 마십시요...
-----------------지리산 산신령에 대한 이야기-----------
지리산은 수천년의 세월을 두고 우리민중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아 오면서 무속신앙의 발원지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설이 옛날 천신의 딸 성모마고가 지리산에 내려와 딸 여덟명을 낳았는데 모두 무당으로 길러 팔도에 보내 다스리게 했다는 무조설이 그것이다.
이 설에 따르면 천신의 딸이자 조선팔도의 무당 어머니인 성모 마고가 바로 천왕봉 성모사에 모셔져 내려왔던 성모상이 그 주인고잉라는 얘기다.
이 성모상의 주인공에 대한 견해는 불교계에서는 석가여래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산신령으로 모신 것이라고 주장하는등 여러가지로 제시되고 있으나 우리 민중사회에서는 어떻든지 천왕봉의 성모상(지금은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을 지리산신령으로 인식, 대자연의 성모로 받들어 추앙한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성모상이 우리 민중의 정신적인 절대자로 추앙받아온 사실은 옛 사료에서도 명백히 입증되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천왕봉 정상의 성모사에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을 "풍기문란"과 "실농위기"를 맞을 만큼 극성스러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택리지에 의하면 남도의 농민들이 늦봄부터 추가을까지 6∼7개월동안 천왕봉 성모사에 모여 기도를 하는등 치성을 드리고 있는데 고산의 기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남녀가 바위틈에서 부둥켜 안고 있을 정도로 풍기문제가 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보다 더 큰 일은 농사철에 농사는 돌보지 않고 치성 드리는데만 정신이 팔려 실농을 면치 못해 조정에서는 관찰사의 보고를 받고 이를 금지 시키기까지 했으나 별다른 효력이 없었다 한다.
성모석상을 찾는 행렬이 오죽 많았으면 이같은 문제가 기록으로까지 전해져 오고 있을까하는 마음도 드는데 진양지에는 천연이란 스님이 무당의 무리들이 백성을 유혹해 복을 구하는 꼴을 못보겠다며 성모상을 구타한 이유를 적고 있기도해 이 나라 민중의 샤머니즘 상황을 짐작케 해주고 있다.
민중사이에서 지리산신령으로 무속신앙의 대모로 여겨져 왔던 성모상을 여러 엇갈린 주장과 수난을 겪어오면서 한때는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기도 했으나 천왕사 혜범스님에 의해 찾아져 지금은 천왕봉이 아닌 천왕봉 발아래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 지금도 수많은 불자들과 치성객들이 성모상을 찾아 치성을 드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석가여래의 어머니상이건 팔도 무당의 어머니상이건 우리네 민중의 이를 신성한 절대자임에 틀림없다고 믿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리산에서 무속신앙은 비단 성모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큰 산과 강 그리고 땅 나무등에도 신이 붙어 있다고 믿어 이름 난 명산과 풍광이 수려하고 특이한 어느 곳에서나 치성을 드리고 굿판을 벌였다. 이러한 치성의 행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지리산은 큰 바위나 물줄기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기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성계곡 상류의 영신대를 비롯, 천왕봉이 우러러 보이는 신선너덜, 백무동의 굴바위당, 칠선계곡과 용류담, 서산대사가 도를 깨우쳤다는 피아골 산장 뒤편, 중산리 계곡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즐비하다. 이들 모두가 지리산 최고의 기도처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득도 희망자와 무속신앙의 신봉자, 기도객등이 몰려들고 있다.
대성계곡 상류의 영신대는 깨끗한 반석 사이로 맑디 맑은 물이 흐르면서 흡사 수중궁궐 같은데다 거대한 대성폭포를 끼고 있어 신비로운 자연 경관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이제 이 일대는 비밀스런 기도처는 아니다. 등산객을 위장해 들어오는 지성객들은 그래도 나은편이다. 아예 북이나 징, 꽹과리에다 돼지머리 과일 떡 할것없이 모든 장비를 꾸려 이 곳으로 들어와 굿판을 벌이기가 다반사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영신대 일원 바윗덩어리에 온갖 글귀들이 새겨지고 계곡에는 음식물들이 널리기도해 공단관계자들의 끈질긴 제재를 받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다.
자연학습원을 조금 지나 1km지점에 위치한 신선너덜의 경우도 치성드리는 곳으로 안성맞춤이다. 신선이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유혹이 될 수 있는데다 충분한 유혹이 될 수 있는데다 신비한 바위들이 널따랗게 펼펴진 너덜 위로 빤히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기도처인 셈이다.
누구라도 이 곳에 서서 천왕봉을 쳐다보면 기도하고픈 마음이 일 정도이니 굳이 말할 나위가 더없는 곳이다.
지금은 중산리 매표소에서 치성객들의 출입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어 기도객들이 잘 보이지 않고 있으나 얼마전 까지만해도 연일 굿판이 벌어지던 곳이다. 더욱이 신선너덜 지대 오른편에는 반반한 바위가 벽처럼 기대고 있는 곳이 있는데 제단으로는 으뜸으로 여겨져 산청군에서는 이곳에 지리산제단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매년 평화제를 시작하면서 이 제단에서 먼저 제를 올리고 있다. 물론 지역 문화축제 차원이나 그 저변에 잠재된 그것은 우리 민중의 정서와 맞아 떨어지는 샤머니즘이 아닐까 한다.
신선너덜의 진입 어려움 탓인지 요즈음은 천왕봉이 바로 보이는 중산리 계곡이 치성객들의 기도처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집단시설지구가 한창 조성되고 있는 중산리 계곡 5백여m 위쯤부터 시작되는 중산리 계곡의 기도처에는 바위 마다 글귀가 새겨져 있지 않은 곳이 드물다.
5년여전 이 계곡에서는 귀성객들이 밤새 기도를 올리다 계곡 물이 불어난 것을 뒤는게 알고 건너오다 급류에 휩싸여 참사를 빚은 일도 생겨 가급적 삼갈 것을 무탁하고 있으나 그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을 정도다. 백무동과 한신계곡의 물줄기와 바위굴등지도 마찬가지로 토속신앙의 산실이다. 백무동 굴바위당은 예전부터 있다할 정도로 효험이 있다해 지금도 아들 못낳는 여인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가네소의 경우는 기우제 장소로 유명하다. 깎아지른 절벽위의 원시림 사이로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서 기우제를 지내면 신통하게도 비가 내렸다해 가내소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정해져 있다하니 우리의 토속신앙도 나름대로 체계화된 그 어떤 규범내지는 논리를 갖고 있지 않았나 추측해 봄직하다.
우리나라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칠선계곡과 용류담중 역시 최고의 기도처로 손색이 없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향해 기도하고픈 마음은 누구나 공통된 심리일 것은 분명해 계곡 초입부터 기도처로 이용하고 있다.
칠선계곡과 백무동, 뱀사골의 물줄기를 하나로 묶어 흐르는 엄천강변의 용류담은 우선 산속의 호수와 같은 경관만으로도 치성객을 끌 수 있는 곳이다. 비교적 교통편이 좋아 최근에 더욱 이용되고 있는데 아예 굿당이 지어져 있고 언제 가더라도 굿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곳이 용류담이다.
이밖에 이름난 봉우리의 계곡 어느곳 할 것없이 지리산에는 샤머니즘의 흔적이 남아 오늘날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같은 토속신앙은 지리산을 배경으로 수천년 세월을 두고 계속되면서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아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사상이 단순한 개인 차원의 치성에서 부터 국태민안을 비는 차원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토속신앙은 근대에 이르러서는 주로 극성스런 무속신앙 신봉자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있으나 그 바탕은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에 동화돼 평화제(산청), 약수제(구례), 천령제(함양)등 각 지방자치 단체별로 주관하는 지역 축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어 화합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간은 신을 영묘한 존재로 경의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지리산의 토속신앙은 계속될 것으로 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