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 대하여
정진주
하늘과 땅 가릴 것 없이 순식간에 잿빛물이 들어가고 있다.
생명의 축제에 물이 오르는 신이 준 선물이라는 5월. 그 선물을 제대로
받아 누리지 못하는 나는 화사한 제 빛을 감추고 손끝에 낮게 내려앉은 무
거운 봄 하늘에 가끔 작은 위로를 받곤 한다 황금 햇살이 수직으로 내 가
슴에 내려 꽂히는 날에도 때로 오월도 혼곤한 몸살을 앓는 오늘 같은 날
에도 나는 그 속으로 떠나고 싶다. 물꼬를 트러 나온 농부의 발에 스치는
논둑의 들풀이고도 싶고, 산야에 널려있는 무명의 야생화에 눈 맞춤을 하
며 만삭 여인 의 몸이 해산을 위해 가쁜 맥박과 호흡을 토해내며 조직과
뼈를 맞추어 가는 산고를 겪듯이 그렇게 다가왔을 이봄을 가슴 가득 안고
싶다.
나의 이 바람을 듣는다면 딸은 또 무어라고 할 것인지!
가끔씩 내 가슴에 큰 바다 너울이 일렁일 때마다 딸은 날더러 우리 엄마는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산다 말한다.
결혼 전 남편은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젊은날은 많은 희생과 절제를 할
것 이라고 했다.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걱정 없는 노후
를 위해서 무조건 지금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말에 절대 공감할 수 없었
다. 추억할 것 하나 없는 늙음이라는 시간 속에 갇힌 미래가 오늘로 다가
오면 그때 과연 행복할 것인가? 오늘은 10년 전, 일년 전 아니 바로 어제
의 미래가 아닌가?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이야말로 날마다 미래를 준비하
는 길이라는 역설을 담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건넸었다.
결혼 후에 남편은 꿋꿋이도 자신의 의지를 지켜 나갔다 모든 일의 우선
에서 마무리는 무조건 일이었고 그 외의 취미나 여유를 갖는 일에는 도통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의지라기보다는 성격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그
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기까지의 여정의 거친 후 더 이상은 함께 해줄 것을
요구하기 보다는 내 나름의 즐거움을 찾는 일로 선회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게에 매여 버린 후 나의 행동반경은 많은 제한을 받게 되고 때로 목소리
가 커지는 일도 있었는데 딸이 철들고 나서부터 자주 그런 모습을 봐왔으
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충동의 원인 제공을 하
는 엄마가 어쩌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들에
게도 누구나 가슴에 여전히 철들지 않은 아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딸이 알
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일 것이다.
어른이란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명확하다고 할까! 생일의 횟수가 말해주
는 나이, 일상의 의무를 지고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며 사회
의 규범을 지켜가야 하는 외형상 어른의 조건. 그러나 우리의 나이가 행동
성향을 정확히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시종일관 어린이로 사는 어른들의
행동이 종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파릇하니 촉촉한 시들지 않
는 감성이라는 아이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감은 가슴 벅찬 일이다.
예의 빠름과 건조로 대변되는 현대 생활 속에서 수시로 자신의 자화상을
거울에 비춰보며 인생의 이정표를 알뜰히 골라 세우는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으며, 자연을 벗하고, 육신의 단련을
위한 채찍을 높이 드는 일,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관심의 범위를 넓혀 가
는 일. 그것이 설령 호기심에 지나지 않을 기웃거림이 될지라도 자신을 확
대하며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
때로 부풀은 입을 삐죽이 내밀기도 하지만 책 읽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
며 엄마의 공백을 메워 주는 딸이야 말로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다. 곧 딸
도 이미 오래 전 촉을 틔우고 싹이 커가는 자신의 감성을 조금씩 발견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제한된 세계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을 향
해 나가려 할 것이다.
딸이 가야할 너른 바다로의 길잡이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먼 훗날
에 차근차근히 꺼내어 볼 빼곡한 마음 밭을 갈기 위하여 오늘도 성근 감성
의 싹을 고이 기르려 한다.
2002 14집
첫댓글 책 읽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며 엄마의 공백을 메워 주는 딸이야 말로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다. 곧 딸
도 이미 오래 전 촉을 틔우고 싹이 커가는 자신의 감성을 조금씩 발견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제한된 세계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을 향
해 나가려 할 것이다.
딸이 가야할 너른 바다로의 길잡이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먼 훗날
에 차근차근히 꺼내어 볼 빼곡한 마음 밭을 갈기 위하여 오늘도 성근 감성
의 싹을 고이 기르려 한다.
파릇하니 촉촉한 시들지 않
는 감성이라는 아이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성장해감은 가슴 벅찬 일이다.
예의 빠름과 건조로 대변되는 현대 생활 속에서 수시로 자신의 자화상을 거울에 비춰보며 인생의 이정표를 알뜰히 골라 세우는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으며, 자연을 벗하고, 육신의 단련을
위한 채찍을 높이 드는 일,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관심의 범위를 넓혀 가는 일. 그것이 설령 호기심에 지나지 않을 기웃거림이 될지라도 자신을 확대하며 사랑하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