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20년간 관객 160만 명 창작 뮤지컬의 대명사
- 오랜 세월 스타 배출해 온 뮤지컬 배우 사관학교
- 英·美 공연 쓴맛도 봤지만, 창작극 해외진출 활로 개척
- 시대에 맞게 변화·실험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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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후 20년 만에 관객 160만 명을 돌파했다. 재공연될 때마다 완성도를 높이며 인기를 누려온 ‘명성황후’ 이야기다.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창작 뮤지컬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한 셈이다.
‘명성황후’의 원작은 이문열의 소설 ‘여우 사냥’이다. 소설의 제목은 이야기 속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궁에 난입한 일본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붙인 작전명으로 등장한다. 원작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한국인이라면 울컥해지고 울분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뮤지컬에 붙여진 ‘명성황후’라는 제목은 원작보다 상당히 순화된 느낌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 불리는 노래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듣다 보면 원작자나 뮤지컬 제작진이 전하고자 했던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반복 공연되다 보니 작품을 거쳐 간 뮤지컬 관계자나 배우들만 해도 상당하다. 김민수·조승우·홍경인·이희정·조승룡 등 메인 캐릭터를 맡았던 주연급 배우들은 지금은 한국 뮤지컬계에서 인기 스타로 통한다. 앙상블을 거쳐 간 신인급 배우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덕분에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명성황후’는 한때 뮤지컬 배우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했다.
주인공인 명성황후를 맡았던 배우는 초연 무대를 장식했던 윤석화를 포함해 모두 6명에 이른다. 모두 나름대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해내 인기 스타가 됐지만 제일 오래 명성을 누린 사람은 아무래도 ‘이태원’이다. 탁월한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인기를 누려온 대표급 명성황후로 손꼽힌다. 촉망 받는 성악가였던 이태원이 대한민국의 국모로 탈바꿈하게 된 데는 제작자인 윤호진 에이콤 대표의 혜안이 있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그녀에게 ‘명성황후’의 메인 롤을 의뢰한 것이 오늘날의 그녀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이태원은 런던 뮤지컬계에서도 스타급 배우로 통한다. 1990년대 말 무대에 올려진 웨스트엔드 뮤지컬 ‘왕과 나’에서 티앵 왕후로 등장해 99년 영국 공연가 최고의 영예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덕분에 ‘명성황후’의 런던 공연 당시, 그녀가 나오는 한국 뮤지컬이라는 것 자체가 런던 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작사 에이콤이 나름대로 치열하게 수행한 ‘명성황후’ 서구 시장 진출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올해 올려지는 무대에서는 요즘 안방극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탁월한 가창력으로 주목받는 여배우 신영숙이 가세해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벌써 애호가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다.
‘명성황후’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모두 공연된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해외에서의 평가가 모두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불모지에 가까웠던 당시 국내 뮤지컬계의 시장 환경과 상황 등을 감안한다면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던 도전정신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때의 도전과 경험이 노하우가 돼 요즘 우리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바람직한 방향성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명성황후’가 이뤄낸 의미 있는 성과 중 하나다. 160만 관객 돌파를 계기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라는 소식도 있다.
‘명성황후’의 인기는 비단 무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뮤지컬로 얻은 명성은 여타 문화산업 장르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영역을 넓혀왔다. 최근에는 영화화 작업도 조심스레 타진되고 있다.
‘명성황후’는 창작 뮤지컬이 하루아침에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2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수정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는 더 이상 내용을 수정할 것이 없다는 의미의 마스터 버전이라는 용어가 쓰인 적도 있지만, 여전히 막을 올리며 시대에 맞는 변화와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뮤지컬 티켓 가격은 다른 문화산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관객들의 소비 형태도 기존의 영화나 영상문화 시장과 같을 수 없다. 그만큼 창작 뮤지컬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작품의 내용을 업그레이 시키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뮤지컬 시장이나 산업 환경이 이런 ‘명작’의 출현을 보장하기에는 너무 조급하다는 점이다. 당장 어느 정도 안정적인 공연 기간을 통해 작품을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 전문 공연장 시설이 없고, 작품을 단계별로 성장시킬 수 있는 시장 기능이나 투자환경도 미비하다. 결과는 과정의 산물인데 그 과정에 대한 투자나 시스템의 보완이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제2, 제3의 ‘명성황후’ 탄생은 영원히 ‘희망사항’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명성황후’에 보내는 박수만큼이나 이 작품이 우리 뮤지컬계에 던져주는 의미 있는 화두일지도 모른다. 좋은 창작 뮤지컬의 등장과 흥행을 원한다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우리 문화계의 숙제인 셈이다.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명성황후’ 감상 Tips>
1. 짝사랑 캐릭터도 매력적!
명성황후를 흠모해 늘 주변에서 보호하는 인물이 바로 홍계훈이다. 결국 낭인들에 의해 죽음을 맞으며 부르는 그의 슬픈 연가는 애틋한 비장미를 담아내 사랑받는 뮤지컬 넘버다.
2. 전통과 현대가 만나다
시대적 배경 탓에 이 뮤지컬에는 우리나라 전통 가무극의 재미도 잘 버무려져 있다. 화려한 무대 의상으로 재현되는 우리 가락과 춤사위의 매력을 만끽해보자.
3. 명성황후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
인기 뮤지컬은 엇비슷하거나 정반대의 음모론으로 재구성한 작품들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잃어버린 얼굴’이 대표적이다. 비교하며 감상해보면 더욱 쏠쏠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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