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갈치포가 있더이다
깊은 산중 ‘자연인’이 아님에도 이제는 혼자 사는데 익숙해졌다. 수 년 전 아내가 입원 수술과 통원 치료를 받으면서 주저 없이 부엌데기가 되었다. 교직 말년에 거제로 떠밀려 와 주중은 연사 와실 머무니 아침과 저녁 식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점심은 학교 급식소에서 해결해 한 끼는 잘 때운다. 퇴근 시각이 다가오면 저녁 식사는 어떻게 차려 먹느냐를 머릿속에 그린다.
지난해 봄 거제로 임지를 옮겨오니 생활에 변화가 왔다. 근무지 인근 원룸을 정해 주중 머물다 주말에 창원으로 복귀한다. 때로는 주중 공휴일을 물론 한 주 걸러 격주로 창원으로 가기도 한다. 그 덕에 주말 여유 시간은 물론 주중에도 퇴근 후 연초 인근을 비롯해 거제 곳곳을 답사 순례하고 있다. 어쩌면 거제를 연고로 둔 이들보다 내가 지역 사정을 더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근래 지역사회에서 코로나 감염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행동반경을 움츠려 지낸다.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하려니 매주 창원으로 복귀 않는 경우도 생긴다. 퇴근 후 바다를 조망하는 산책을 나서려면 시내버스를 타야 하는데 마스크를 써도 코로나 감염이 걱정되어 머뭇거린다. 내륙 산촌과 같은 연초 관내만 뱅뱅 도니 갑갑하기도 하다. 산책을 줄이고 와실에 머물면 무료한 시간이다.
교재연구와 수업인 근무 중 일과보다 퇴근 이후 어디로 나다니며 시간을 보내느냐로 마음과 몸이 바쁜 편이다. 연사 와실에서부터 걸어서 가능한 산책이나 산행은 자주 다녀 주변 지형지물에 익숙하다. 시내버스를 타고 얼마간 이동하면 진동 진해만이나 대한해협의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산책을 나가가기도 일쑤였다. 이럴 경우 퇴근 후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 저녁때가 한참 늦다.
고현으로 나가면 수협마트가 있고 연초삼거리는 농협마트가 있다. 주중 퇴근 후 그곳으로 나가 시장을 봐 온다. 쌀이나 풋고추나 애호박을 사고 세제와 휴지 같은 생필품도 구해야 한다. 내가 즐겨 드는 곡차도 한두 병이 아닌 여러 병을 챙겨 냉장고에 채워둔다. 한꺼번에 보는 시장 품목이 제법 되는지라 분리수거용 쓰레기봉투로는 감당이 안 되어 등산 배낭에 채워 짊어지고 온다.
설거지를 하면서 1인분 쌀을 씻어 냉장고에 두었다가 새벽이나 저녁 산책을 다녀와 전원을 끼운다. 창원에서 챙겨온 찬으로 아침저녁 끼니를 해결한다. 밥은 햇반이 아닌 매 끼니 새로운 밥을 짓는다. 아내가 마련해준 몇 가지 찬이 있긴 하지만 찌개는 손수 끓여 먹는다. 집에서 가져온 된장을 기본 재료로 삼아 몇 가지 유형 찌개를 끓인다. 감자와 두부와 양파와 풋고추가 들어간다.
김치를 넣은 참치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감자를 썰어 넣어 된장국을 끓인다. 애호박이 든 된장국도 끓여 먹는다. 한 번 끓인 찌개는 양이 제법 되어 그 이튿날까지 두세 끼 연이어 먹는다. 이러한 찌개를 끓이려면 보조재로 맛국물을 내는 멸치가 꼭 들게 마련이다. 맛국물을 낸 멸치를 건져내 음식쓰레기로 버리려니 귀찮기도 해 작은 멸치를 통째로 넣어 찌개를 끓여 먹어 보기도 했다.
언젠가 수협마트에서 시장을 보면서 멸치를 고르다가 생김새가 특이한 건어물 봉지를 봤다. 실뱀처럼 가는 갈치를 말린 것이었다. 정식 이름은 ‘실갈치포’였다. 아기갈치를 말려 멸치처럼 포장해 진열해두었다. 찌개 끓일 때 맛국물을 내는 멸치 대용으로 삼으려고 한 봉지 샀다. 맛국물만 내고 건져내던 멸치와 달리 애호박이나 감자와 같은 재료와 섞은 채 찌개를 끓여 먹기에 좋았다.
마트에서 구한 실갈치포로 가끔 애호박 된장국을 끓여 먹으면서 어린 갈치를 남획해 멸치처럼 먹음은 어족 자원 보존차원 문제가 있을 듯했다. 인터넷 검색에서 살피니 실갈치포는 거제 특산이었다. 일부러 덜 자란 새끼 갈치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멸치잡이 선단에서 잡은 생멸치를 쪄 말리면 거기 섞인 부산물로 실갈치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거제 해역은 멸치를 많이 잡는 듯했다. 20.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