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3:1-3 / 감독(장로)의 조건 (1)
(디모데전서 3장)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묵상/딤전 3:1-3)
◆ 감독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감독이란, 장로를 다른 말로 부른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모아놓고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행 20:17, 28)라고 했다.
즉 그들의 위치가 장로라면, 그들의 역할이 감독이다.
감독은 어떤 역할일지 어려워하는 분이 많은데, 교회 감독과 축구 감독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각 사람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내어서 잘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고,
차이점은 축구 감독은 승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교회 감독은 각 사람이 제대로 믿음에 서고,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축구 감독은 한 명이지만, 교회 감독은 여러 명이다.
오늘날에는 교회마다 목사라는 직분이 있어서, 그가 홀로 감독의 역할을 하지만,
사실은 장로들이 모두 감독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감독은 임명직이 아니라, 선출직이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감독의 기준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에는 교회 형제들이 검증하고 추천한 자를
기존의 감독들(여기서는 디모데)이 확인한 후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딛 1:5).
'교회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독은 남을 지배하는 위치가 아니라 섬기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감독이 되면 교회를 바라보는 눈과 형제들을 대하는 마음이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된다.
감독직을 성실하게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간주하시고, 큰 복을 주신다.
따라서 감독(장로)직이 주어질 때는 사양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다. 큰 은혜이며, 충성을 다할 기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감독(장로)의 직분을 맡은 자들이 마치 높은 자리에 오른 것처럼 착각하여 기뻐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는 것이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탐욕의 연장일 것이다.
◆ 감독의 자격 (1)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교회 감독의 조건을,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보라.
여기에 '신학교 졸업장'이라는 조건이 있는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회 감독이 되려면 신학교 졸업장이 필수 조건이 되었다. 물론 '가르치기를 잘하며'를 충족하려면,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하니 신학교 교육이 꽤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교육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면 왜 안 되겠는가? 오늘날처럼 신학교 졸업장 자체가 감독의 면허증으로 취급되는 것은 오히려 반성경적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장로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열거하고 있다. 이 조건들을 두 번에 걸쳐서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크게 책잡힐 만한 허물이 없어야 한다. 축구 감독은 전략만 잘 짜면 되겠지만, 교회 감독은 행정 능력만 가지면 안 되고, 생활 자체도 모범적이어야 한다.
또한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이 말은 결혼한 남자만이 감독이 될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독신이었다(고전 7:7). 여기에서의 초점은 '한 아내'라는 말에 맞추어야 한다. 당시에는 여러 아내를 거느린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사도는 그런 사람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장로는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나그네가 별로 없지만, 당시에는 적절한 숙박시설이 없어서 사람들은 나그네들은 그들을 받아줄 집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일이 번거롭고, 손해가 되는 일이었다. 특히 성도들이 여행할 때는 형제들의 추천을 받은 성도의 집에 묵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을 따뜻하게 접대할 줄 아는 것은 성도의 매우 귀중한 덕목이었다.
오늘날에 적용하자면, 감독은 성도들에게 자꾸 베풀어야 한다. 식당에 가면 솔선수범으로 돈을 내려고 해야 하며, 형제들을 접대하기를 힘써야 한다. 주의 종이랍시고 늘 대접받으려고만 하는 자는 감독 자격이 없다. 내가 가난하여 남을 대접하기 어렵다면, 그런 대접받는 자리에 가는 것을 삼가라.
'가르치기를 잘하며...'(2)
유창한 언변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아볼로나 바나바보다 언변이 좋지 않았다(고후 10:10). 그러나 누가 바울에게 잘 가르치지를 못한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 유창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름지기 감독은 복음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올바른 진리를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감독이 무지하면, 각종 미혹에서 교회가 보호될 수 없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3)
오늘날 교회 중에는 그가 술고래이고, 성격이 험악함에도, 단지 돈이 많거나 세상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이유로 장로로 세우는 곳이 있다. 이런 교회는 타락한 집단이며, 교회가 아니라 종교집단일 뿐이다. 장로는 헌금이나 잘 하면 된다는 사고 자체가 장로를 목사의 시녀 정도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오, 목사도 장로 중의 하나이며, 장로는 감독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라.
고집이 세서 자기 권위나 내세우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감독의 자격이 없다.
감독은 관용하며, 쉽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감독이 되면 안 된다. 만일 당신의 교회 감독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중요히 여긴다면, 더 볼 것도 없이 당장 그 교회를 떠나라. 그런 교회에 있는 것은 사이비 이단 교회에 있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목사 보고 다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보고 다닌다는 말은 매우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감독이 형편없으면 그 팀 전체가 몰락하는 것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예레미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를 따른 사람들은 모조리 함께 망했다.
감독의 조건은 모든 성도들이 새겨야할 덕목이다.
나는 감독이 아니니 그런 조건을 충족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가? 아니다. 감독은 성도들의 앞에서 솔선수범하여 본을 보이는 사람이다. 그 말은 곧 모든 성도들에게 감독의 조건은 바로 자신이 살아야 할 기준점임을 의미한다.
종종 사람들은 실천할 생각은 뒷전인 채, 어떡하면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는지로 토론을 벌인다. 본인은 전혀 실천할 생각 없이 토론용으로만 사용하는 이론은 정말 쓸모없다. 정말 옳다면 스스로 실천하여 증명하라.
주님,
저를 교회의 일원과 감독으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감독의 기준에 어긋남이 없도록 제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저의 연약함을 도우소서!
절제하며 관용하며,
특히 돈을 사랑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출처] 딤전 3:1-3 / 감독의 조건 (1)|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