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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믿음으로 열매를 맺는 달☜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순종하면 축복*
마 6:19-24절) 하늘에 쌓는 보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생관이 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約束)과 복(福)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Ⅰ.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둘 것인가?
국가(國家)도 없는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힘은 역시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6:19절)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예수님은*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땅에 보물을 쌓아두면, 좀이 생기거나, 녹이 슬거나, 아니면, 도둑이 훔쳐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도둑질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안전한 곳에 돈을 맡겨두거나, 투자(投資)를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대신에*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6:20절)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왜*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실까? 거기는 아무도 도둑질하지 못하고, 변질되지도 않는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도 돈이나 재물(財物)을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간은 죽으면서 모든 것을 다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것은*영원히 너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보물(寶物)*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보물(寶物)은 그 사람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고, 추구(追求)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학문(學問)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추구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학문이 보물(寶物)이 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권력(權力)을 목표로 해서 한평생 달려왔다면, 그 사람에게는 권력이 보물(寶物)입니다.
물론 부자(富者)도 되기 위해 한평생 돈을 모아왔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보물이 돈일 것입니다. 즉 땅에 보물(寶物)을 쌓아두지 말라는 말씀은 결코 땅에 있는 것들을 평생의 목표(目標)로 삼고 추구(追求)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땅에 있는 것들은 좀이 생기거나, 동록이 슬거나, 도둑이 구멍을 뚫어 도둑질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이 땅에 있는 것들은 그 자체의 가치(價値)가 변질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옷 같은 것이 아주 귀했는데, 좋은 옷을 입지 않고, 오래 아껴두면, 어느새 좀(세우)가 생겨 입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또 칼이나 장신구 같은 것도 오래 쓰지 않고 그냥 두면, 녹(綠)이 슬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자동차도 사용하지 않고 오래 세워두면,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녹이 슬지 않는 금(金)이나 은(銀)이나 보석(寶石)같은 것은 도둑들이 홈쳐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아무리 튼튼한 비밀 창고에 넣어두어도 결국은 도둑이 구멍을 뚫어서 훔쳐가고 만다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핵심(核心)은 결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우리가 절대적인 가치(價値)를 두고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살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보배(保陪)처럼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한순간에 변질되어 어느새 낡은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새로운 학문(學問)이라도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옛 이론(理論)이 되고 맙니다.
옛날에는 컴퓨터가 비싸고 매우 컸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느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컴퓨터는 어떻습니까?
한 전직(前職) 대통령은 당선 후, 자신의 부친(父親)에게 대통령이 되는데 한평생이 걸렸다면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목적은 오직 대권(大權)을 잡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있지 않으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하며, 그리고 실제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거기서 어떻게 그 직무(職務)를 잘 수행하느냐? 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직무(職務)기간에 일어난 경제 위기 때문에 두고두고 비난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核心)이 무엇입니까?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무리 가치(價値)가 없다거나, 혹 미래를 위한 저축(貯蓄)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이 세상의 것을 보물(寶物)로 생각하고, 그것만을 위해 산다면, 그의 인생은 결국 좀이 먹고, 녹이 슬고, 나중에는 인생 자체를 도둑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오로지 옷이나, 돈이나, 권력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녹슬고, 도둑맞았을 때, 그의 인생도 녹슬고, 허무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영구적(永久的)으로 개인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마치 놀이터의 놀이기구와 같습니다. 모두 일시적으로 사용할 뿐이지, 때가 되면, 모두 내놓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나의 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살 때는 자기 것처럼 누리고 살지만, 죽을 때가 되면, 모두 두고 본향(本鄕)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아니 많은 경우는 살아 있을 때도 그 자리만 떠나면, 이미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즉 대통령이나, 장군(將軍)을 지낸 사람은 그런 후유증을 많이 겪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동안 수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權力)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어떻게 될까? 그냥 평범한 노인(老人)이 되어 회고록(回顧錄)이나 쓰면서 늙어갑니다. 그러면 그 절대적인 권력(權力)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하나님께서 국가(國家)를 지키라고 임시로 빌려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빌려주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 다 잠시 빌려 쓴 다음에는 제자리에 놓고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기를 원하십니까?
6:20절)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많은 경우에 이 말씀을 *헌금을 많이 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이해하는데, 사실은 그런 뜻만이 아닙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에 영원한 가치(價値)를 두고 추구(追求)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늘에*이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몸(肉體)의 사용입니다. 왜 사람들은 재물(財物)을 많이 쌓아두려고 할까? 결국 육체(몸)가 나중까지 편하게 잘 지내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몸(肉體)을 주신 것은 이 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단순히 이 세상에 있는 권력(權力)이나 재물(財物)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目的)이 되어서는 안 되고, 결국 이것들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안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셔서, 가만히 있고 싶고, 대접만 받고 싶은 우리의 몸(肉體)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온전히 회복(回復)시키는 일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다*해서 헌금(獻金)을 많이 하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되찾고, 삶을 회복하게 하는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보물을 쌓아둔다*는 말로서 미래에 영원한 복(福)과 상급(賞給)이 있을 것을 약속(約束)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몸(肉體)으로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고, 권력(權力)을 바르게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몸(肉體)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보물(寶物)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며, 이것은 결코 도둑질 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도둑도 성령을 훔칠 수는 없을뿐더러, 남을 섬기는 종의 자리는 홈치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지식(知識)이나, 권력(權力)이나, 재물(財物)은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빌려주신 수단(手段)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유익하게 쓰면, 얼마든지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쁘게 쓰면, 얼마든지 나쁠 수도 있습니다. 즉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수단(手段)이지, 이것 자체를 많이 모은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즉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인정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욕심쟁이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책을 얼마나 모았느냐? 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고 얼마나 남에게 도움이 되었느냐? 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하버드대 출신이라고 하면 알아주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하버드대 나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많이 봉사를 했느냐? 는 점이 중요합니다.
즉 이 세상의 것들은 모아둔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써야 가치(價値)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을 많이 모으면,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권력(權力)이나, 돈이나, 지식(知識)을 많이 모으면, 이 세상에서는 힘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힘은 사람에서 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쓰는 것이 하나님 앞에 보물(寶物)을 쌓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품게 될 것입니다.
아무 밑천도 없는데 어떻게 장사를 합니까?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으로 남을 위해 살겠습니까?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전력 추구하지 않는 자에게 보물이 그냥 주어지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대학입시만 해도 사력(死力)을 다해서 공부를 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전력(全力)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이 몸부림을 쳐야 합니까?
또 고위(高位)공무원이 되거나 선거에 당선되려면, 저의 삶 전체를 바쳐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가만히 있는데, 공짜로 권력(權力)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학문(學問)이나, 권력(權力)을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영원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권력(權力)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일시로 빌리는 것이요, 나중에는 이자를 쳐서 갚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더 많이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빚이 많은 것이며, 더 많은 권력(權力)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많은 책임이 따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무식(無識)한 자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학벌이 더 높은 사람이 더 큰 심판(審判)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원금(元金)과 이자를 갚을 자신이 없으면, 더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더 높은 권력(權力)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경제가 어렵고 망하는 이유는 국토부와 토공처럼 *도둑심보*때문입니다. 즉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그것을 자신의 권리(權利)로 생각하고, 권력(權力)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신(神)이 내린 자신의 특권(特權)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봉사의 정신이 없으니까 부정(不淨)과 부패(腐敗)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 절에 우리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6:21절)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나의 보물(寶物)이 어디에 있느냐? 즉, 내가 무엇을 최고의 가치(價値)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느냐? 는 것은 내가 요즘 무엇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 보물(寶物)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고, 거기에 내 몸이 따라가며, 결국 그것을 위해 돈이나 시간을 쓰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간이나 돈을 어디에 가장 많이 쓰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의 소속(所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증권(證券)투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증권 투자라는 것은 증권을 사 둔다고 해서 돈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계속 증권을 사고팔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과 생각과 시간을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즉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증권(證券)이요, 내가 산 증권 시세가 오르면, 기분이 좋고, 내려가면 기분도 따라서 내려갑니다. 결국 증권(證券)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멀어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스포츠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고 사는 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야구 선수들의 개인 타율이나, 신상(身上)에 대해 모두 다 외우고, 어느 팀의 승률이 어떻다는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외우고 있다면, 그는 지금 소속(所屬)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 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소포츠를 즐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가 되려면, 마음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데,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냥 이런 팀이 있고, 이런 선수가 있다는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관심은 영혼(靈魂)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으로 사람들이 변화되는데, 최고의 가치(價値)를 둡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최고의 관심은 사람의 변화(變化)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곧 이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존귀(尊貴)하게 만들어졌으며, 우리의 존귀함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죄(罪)스런 습관이나, 직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결국 그것을 위해 나의 관심과 시간과 돈이 가장 많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백성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예배만 한 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은 아직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자 정도로 보아야 합니다.
그는 천국에 관심을 갖는 정도이지, 아직 하나님 나라 소속(所屬)은 아닙니다. 자기의 관심이나 물질의 사용을 살펴보시고, 내가 지금 어디에 속(屬)해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을 세상에서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양적(量的)인 시간이 아니라, 질적(質的)인 시간이 중요합니다. 즉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어디에 쓰기를 원하느냐? 가 더욱 중요합니다.
Ⅱ.몸과 눈의 비유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는 눈의 비유입니다.
6:22-23절)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에 많은 감각(感覺)기관이 있지만, 빛을 받아들이는 기관은 오직 눈뿐입니다. 눈은 빛으로 물체를 지각(知覺)해서 온 몸에 그것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사람은 귀로 듣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지만, 그것들로는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지, 정확한 실체(實體)를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게 하는 것은 역시 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이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앞에서 차가 돌진해 오고 있다면, 눈은 가장 먼저 그것을 보고, 온 몸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면 다리는 옆으로 움직일 것이고, 허리도 돌릴 것이고, 손은 땅을 짚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몸에 있는 기관들 중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우리 몸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수 없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손톱만 빠져도 물건을 잡기가 어려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기관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몸을 가장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우리 자신의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되고, 밖에서 빛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뇌(腦)가 중요합니다. 심장(心臟)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몸이 빠르고 자유롭고 정확하게 움직이려면, 밖에서 우리 안으로 빛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 빛을 받아들이는 기관이 곧 눈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두운 굴속을 아무 빛도 없이 걸어가고 있다면, 우리는 뛰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계속 손으로 더듬으면서 한 걸음 씩, 한 걸음 씩 조심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모든 삶이 의미를 가지려면, 빛을 받아들이는 눈이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눈 이라고 하는 것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능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곧 이 기능이 죽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눈앞에 아무리 빛을 비추어도 전혀 감지하지 못합니다. 눈앞에 천 길 낭떠러지가 있는데도,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실수해서 그 지팡이를 떨어뜨렸다고 한다면, 그는 지팡이를 도로 찾기 위하여 더듬으면서 절벽 끝을 향하여 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서 보고 있는 것이 곧 이런 모습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일수록 자기 고집이 강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남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학벌(學閥)을 지팡이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권력(權力)을 앞을 인도해 주는 인도 견(犬)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 지팡이나, 개(犬)가 절대적으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없는 것보다는 지팡이나, 개(犬)가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눈(靈眼)이 열리면, 우리는 지팡이나, 인도 견(犬)없이도 훨씬 더 민첩하면서도 정확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 일뿐만 아니라, 영혼(靈魂)의 시각(視覺)을 회복하게 하는 능력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만 우리의 모든 기관들이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만 돈이나, 학식이나, 권력이나, 다른 모든 것들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눈이 어두우면, 이 모든 것들이 소경의 지팡이일 뿐입니다.
6:23절)...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여기서 예수님은 눈에서 빛으로 바꾸어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빛이 없으면, 인생 전체가 얼마나 답답하고, 무의미하겠습니까? 자살(自殺)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살(自殺)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학생은 늘 일등 하다가 2등 했다고 자살(自殺)합니다. 사실 2등만 해도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어떤 사람은 부도(不渡)가 났다고 자살(自殺)을 합니다. 그러나 아직 당장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어떤 여자는 사귀는 남자가 그만 만나자고 한다고 죽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마음속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소망(所望)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눈(靈眼)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어느 것보다도 영혼(靈魂)이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눈(靈眼)이 회복되어야만 삶의 의미가 생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힘써 간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눈(靈眼)이 열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죄(罪)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사탄이 나를 넘어지게 하기 위하여 살살기어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없는 인생은 완전히 캄캄할 수밖에 없습니다.
Ⅲ.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이제 예수님은 보다 구체적으로 결단 내릴 것을 이렇게 촉구하십니다.
6:24절)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종이 두 주인(主人)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두 주인(主人)모두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할 것입니다. 종은 오직 한 주인(主人)을 섬길 뿐입니다. 주인이 바뀌어서 다른 주인(主人)을 섬기게 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두 주인(主人)을 섬긴다는 것은을 불가능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한 종이 자기는 능력이 있다면서 두 주인(主人)을 모시기로 했다고 한다면, 한 주인(主人)이 그 종에게 일을 하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동안에 다른 주인(主人)이 또 다른 일을 시킵니다. 그래서 그 종은 이 일을 하다가 금방 또 다른 일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두 가지 일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한다면, 결국 그는 어느 주인(主人)의 요구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매만 맞고 쫓겨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6:24절)......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돈이라는 말 대신에 재물(財物)이라는 단어를 쓰십니다. 이 재물(財物)은 *맘몬(Mammon)*이라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재물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재물의 신(神)*곧 *돈 신(神)*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는 돈 신(神)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은 악(惡)하지도 않고, 선(善)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위험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냥“재물”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나를 움직이고 있는 원리(原理)가 무엇이냐? 고 질문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지, 아니면 돈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만약 돈이 나를 움직이고 있으며, 돈 때문에 내가 살고 있다면,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돈 때문에 직장을 옮기고, 돈 때문에 투쟁하고, 돈 때문에 옳은 일이 아닌줄 알면서도 해야 한다면, 과연 내가 그리스도의 종인지?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또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重)히 여기고 저를 경(輕)히 여김이라...(24절)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미워한다.*는 것은 무조건 혐오하거나 배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의 가치(價値)를 원상태로 회복시키라는 뜻입니다. 또 *이를 경(輕)히 여긴다.*는 것은 그것의 잘못된 요구를 분명히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분명히 결단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절대로 돈이 나를 움직일 수는 없다. 오직 나는 내 양심이 옳다고 확신이 서야만 움직일 것이다*그렇지 않고 인정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 결코 주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은 이 말씀은 직장을 선택할 때, 보수나 대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즉 열심히 일했는데도 정당한 보수를 주지 않아 좀 나은 보수를 주는 회사로 옮겼다면, 그는 *맘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까? 물론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력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즉 일을 시켜놓고, 너무 임금을 조금 주는 사용자도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돈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人)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해서, 직장에서 자신의 영적(靈的)인 필요까지 채우려고 하다가 어느 직장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직장은 내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기회의 장(場)입니다. 그리고 노력에 따른 정당한 보수는 내일의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열심히 수고해서 돈을 번 것은 하나님이 주신 열매입니다. 그것은 “맘몬”도 아니요, 돈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불로소득(不勞所得)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부해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뇌물(賂物)이라든지, 혹은 투기(投機)로 돈을 번 것이나, 경품권(景品券)이 당첨되는 것 등은 멀리해야 합니다.
혹시 어려울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복권(福券)을 사서 당첨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것이 사회법으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금(禁)해야 할 것입니다. 또 경마(競馬)라든지, 빠찡고(ぱちん) 라든지, 부동산(不動産)투기 같은 것은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결코*맘몬*을 숭배(崇拜)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리스도인들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유산(遺産)도 할 수 있으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공짜는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우리가 미래의 어려움에 대비하여 저축(貯蓄)을 하는 것은 보물(寶物)을 땅에 쌓아 두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 부분에 혼동(混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저축(貯蓄)을 하는 것은 미래의 보다 적절한 기회를 위해 지출을 연기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돈을 그때그때 다 쓴다고 해서“믿음이 좋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 돈을 다 쓸 필요가 없을 때는 저축을 해서 보다 적절한 기회에 쓰는 것은 지혜라고 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저축하면서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가 땅에 재물(財物)을 쌓아두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고민은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전혀 고민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고민하고,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膳物)들을 하나님을 대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肉體)를 사용하여 얼마나 다른 사람을 섬기며, 그들의 영혼(靈魂)을 회복시키느냐? 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보물(寶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영원한 천국의 보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만을 위하여 많은 것을 옴켜쥐고, 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알거지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찬송가 94장*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매일 새벽 4-5시 말씀 묵상과 도움의 기도를* *저녁엔 반성과 감사기도하는 습관을...*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알림 보물을 하늘에 쌓을 創立member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19-21)
우리와 다음 세대를 위하여 가치있고 보람된 투자. 하늘에 상급받을 믿음의 헌신 동참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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