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주방으로 최 건 차
나는 어머니를 따라 부엌을 들랑거리며 자란 탓에 음식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
탐진강 상류에서 살 때는 자맥질을 잘하는 형을 따라 물고기를 잡으러 자주 다녔다. 여름이면 형은 작살 총을 가지고 쏘가리, 메기, 붕어, 모래무지와 빠가사리을 많이 잡았다. 어머니는 풋 호박을 따다가 썰어 넣고 양념을 진하게 해 우리 입맛에 맞는 찌개를 끓여주었다. 겨울에는 언 물속에 잠긴 돌을 쇠망치로 내리쳐 점박이 붕어나 피라미를 잡아 오면 뒤뜰에 묻어두었던 무를 꺼내 조림을 해주었다.
1980년대 북수원 외딴곳에 있는 별장 같은 산간주택을 매입하여 전원목회을 하게 되었다. 넓은 정원 한쪽에 있는 연못에는 맑은 지하수를 퍼 올려 기른 향어를 가지고 회를 떠먹고 찌개를 맛깔나게 해 먹었다. 우리 집 소유로 산자락 딸린 밭에는 인분과 개똥을 밑거름으로 하여 재래종 호박을 많이 심었다. 생전에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대로 호박 요리를 시도해 봤다. 여름에는 풋 호박에 육질이 좋은 향어로 조림을 하고, 가을 이후에는 잘 익은 호박으로 죽과 고지로 떡을 해 먹었다.
아내가 호스피스교육을 받고 봉사를 다닌 지 수년째가 됐다. 은퇴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한창때인 양 매일 출근을 하듯이 더 열심히 나아 다닌다. 조반을 빵과 우유로 간단하게 먹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꼭 밥을 챙겨 먹는다. 집에 있는 날이면 직접 밥을 짓고 생선찌개도 끓여 먹는다. 아내의 호스피스 봉사가 한 주간에 두어 번이던 것이 십여 년이 지나면서 서너 번으로 느는 바람에 주방에서 밥 짓는 날이 더 많게 되어 어머니의 부엌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엊그제처럼 그려진다.
가끔은 돼지고기에 감자와 풋 호박으로 찌개를 끓이고, 주메뉴로는 고등어나 조기에 무나 감자를 넣고 양파와 마늘을 다져 찌개를 끓여 먹는다. 저녁때 아내가 돌아와 내 요리를 맛보고서 "여보, 당신 요리 솜씨가 대단하네요”라는 말이 어머니의 칭찬처럼 들린다. 요즘 들어 점점 많아지는 소외된 말기 암 환자들의 마지막을 믿음과 사랑으로 보살피는 나이가 든 호스피스, 아내의 나들이가 자랑스럽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부엌이 거실과 함께 있는 주방으로 바뀐 시대에 살고 있다. 전기나 가스를 사용하는 편리함 때문에 남자들도 밥을 짓고 조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쉬어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부엌에서 사고를 치며 뭉개고 자란 때문에 그때부터 생긴 습관이 주방을 가까이하면서 전원田園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한때 청소년 시절을 터프하게 보냈지만, 장로교 목사가 되어 정년을 맞아 은퇴했다.
어머니의 치마를 붙자고 부엌에서 놀던 시절, 아궁이 밑불에 구워내는 고구마와 팥 넣은 찰밥 누룽지의 고소한 맛을 잊을 수 없다. 형, 누나와 누이동생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내 몫을 잃지 않고 챙겨 먹으려고 부엌을 기웃거리며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부엌의 땔감 나무 뒤에는 누룽지와 군고구마를 숨겨두는 내 보물창고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모른척하셨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머니께서 내가 3살 때에 저지른 짓이라며 부엌에 들어가 벌린 끔찍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느 날 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생선을 다듬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내가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처럼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을 다듬는다고 식칼을 들었다. 무거운 식칼을 오른손에 들고 생선 대가리를 자른다는 것이 왼손의 엄지를 내리쳐버렸다. 악 하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달려와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나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손가락을 가로로 내리치진 않고 다행히 엄지 끝에서 세로로 사분의 일가량이 잘려버린 상태였다.
어렸을 적이라 여전히 부엌을 맴돌았다. 갓 태어날 때 유행성 독감이 돌아 또래의 아기들이 다 죽어 나가는 판국에 나는 5개월 동안 죽은 것 같은 상태에 있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그 후에도 죽을 고비를 수차 넘기며 살아났기에 어머니의 보살핌이 각별했던 것 같다. 두 살 아래 누이동생에게 어머니를 뺏기지 않으려고 억세게 쫓아다녔다. 일본에서 귀국한 여섯 살 때의 여름이었다. 장난감을 만들려고 어머니 모르게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꺼내왔다. 장독대 뒤에 숨어서 시누대를 자르다가 이번에는 왼손 검지의 한쪽을 베는 사고를 쳤다. 병원이 없는 시골이라 된장을 바르고 헝겊으로 싸매고 지내다 아물어 새살이 돋았지만, 흉터는 남아 있다.
아내가 호스피스 봉사를 나가면서 “냉장고 조기로 찌개를 끓이고 점심은 새로 지어 드세요”라고 한다. 잡곡 섞인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감자와 양파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도마 위에 놓인 생선을 손질하려고 식칼을 잡는 순간 천국에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얘야, 너 지금 뭐 하느냐며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시는 것 같아 움찔했다가 이제는 조심해서 잘하고 있어요.라며 생선을 다듬었다. 2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