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보리밥 속의 계란
한옥자
초등학생 시절 경찰서 유치장을 내 집 드나들 듯이 들락거렸던 적이 있
다. 방학 때는 하루 두 번 이상이었고 보통은 하루 한 차례였다.
그 때 유치장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앞서 가는 경찰관이 어른 주먹
만한 자물통을 열쇠로 따고 두 개의 쇠창살문을 통과하면 빛이라고는 들
지 않는 유치장안이 나온다. 촉 낮은 전등 몇 개가 켜져 있는 실내를 들어
서면 잠시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음
습한 어둠을 받아 드릴 수 있고 비로소 안의 습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
왔다.
다락방에 숨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의 잘못을 은폐시키고 싶어 찾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찾아오니 잘못에 대한 질책보다는 고립되
어 있다는 사실이 더욱 무서웠다.
세상과의 단절이란 무엇보다 큰 벌이 아닌가 그 때 어둠 속에서 흐느끼는
나의 울음을 들어준 어머니는 빛이었다.
벽 한쪽을 굵은 쇠창살로 촘촘히 막고 중간에 칸막이를 설치해 아마 일곱
여덟 개의 방이 있었던 것 같다 유치장 한가운데는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경찰관이 허리에 총을 차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유치인들의 일
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왼쪽 끝에 있는 화장실과 세면장을 겸한
곳에서는 언제나 원초적인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욱 냄새가 고약해 코를 움켜쥐던 생각이 난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심판 받기 전 긴급 체포 사유가 인정돼 임시
로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죄인으로 치부되어 세상과 단절
된 환경을 감내해야만 했다 사람의 기본 욕구인 식욕과 배설 욕을 해소하
는 것조차 통제된 생활이었다 어둠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엇인가 할퀴
려는 사람들 같았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가 중하면 중할수록 더욱 이글거
리는 눈빛을 발하였고 어떤 구실만 있으면 소란을 피워댔다.
거의 매일을 드나들면서도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등 뒤에 숨어서 지시대
로 따르기만 할 뿐 두려워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했다. 각 방에 있는 사람
수를 어머니가 헤아리면 나는 바구니에 들어 있는 양은 도시락을 챙겨 쇠
창살 안으로 밀어 놓는 역할을 했다. 도시락을 안으로 넣을 때도 손은 앞
을 향했지만 눈길은 어머니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봉
변을 염두에 두고 도시락에서 손을 떼기가 무섭게 어머니 옆에 붙어 섰다.
보통 죄를 짓고 복역 중인 죄인들이 콩밥을 먹는다고 하나 그곳은 검찰에
송치되기 전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라서 인지 새카만 꽁보리밥과 소금에
절인 무김치가 그들의 식사였다.
때로 '이걸 사람 먹으라고 주는 것이냐!’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쇠창
살을 통해 다시 내발 밑으로 꽁보리밥과 짠 무김치가 여지없이 내 동댕이
치면 나는 공포심에 어머니의 치마 뒤로 더욱 꼭꼭 숨어 앞으로 벌어질 광
경을 숨죽여 보았다.
경찰관의 '뭐 하는 짓이냐'라는 호통도 잠시 곧이어 '먹기 싫으면 그만
둬라’는 비아냥거림이 이어진다. 그러나 늘 상 있는 일이어서 인지 어머
니는 담담히 흩어진 음식을 주워 담으셨다.
하루에 세 번 매끼니 마다 집에서 그 곳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날랐다. 아
버지의 박봉에만 의지 할 수 없어 시작 하셨던 어머니의 이 일은 수년간
이어졌다. 굵직한 사건이 생기면 유치장 안은 더욱 시끄럽고 자연 어머니
의 손길은 바빠 나도 어머니를 거들어야만 했다.
어린 나에게는 갇혀 있는 그들은 무섭기만 한 존재였다. 선과 악의 기준
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든 지라 왜 그들이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지 나는 어려운 숙제를 안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어느 날 젖먹이 어린애와 함께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어느 아주머니의 모
습을 보았다 아기는 몹시 보챘다 하긴 깡 보리밥에 짠 무김치를 먹고야
어린아이에게 충분히 젖을 줄 수 있었겠는가 어린 마음에도 아이가 너무
딱해 다음 끼니에 갈 때 아기에게 줄 사탕을 샀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니
규칙상 안 된다고 하시며 경찰관 몰래 주라고 하셨다. 죄는 아이엄마가 지
었는데 왜 아기가 그곳에서 영문도 모르고 칭얼거려야 하는지 눈물이 나가
슴이 찡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아이의 젖은 눈이 내 눈에 선하다. 보채
다가 지쳐 잠이 들던 그 아이는 지금쯤 아마 삼십대 중반의 여인이 됐을
것이다. 아장거리던 때라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행여라도 그때
의 생활을 모른 채 살아가길 두 손 모아 빌고 싶다. 만약 안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참한 기억이 아니겠는가.
죄가 들통 나 궁지에 몰려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그들은 수시로 돌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나는 너무나 무서워
유치장 입구까지만 도시락 광주리를 어머니와 함께 나르고 안에는 들어가
지 않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악에 바친 그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발버둥을 쳐보는 것이었겠지만 자기들에게 먹을 것
을 주는 사람에게조차 횡포를 피우는 그들이 너무 미웠다.
어느 날인가 나는 반찬 통에 무김치를 담고 어머니는 밥을 담는데 그 시
절에는 귀하던 계란부침 두 개를 도시락 바닥에 깔고 어머니는 누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보리밥을 꼭꼭 눌러 담았다. 그리고는 광주리의 다른 도시
락과 구분하여 챙기셨다..
별도의 도시락은 어떤 아저씨에게 어머니가 직접 건네셨다. 며칠간 도시
락을 밖으로 집어 던지다가 그 다음엔 도시락에 손도 대지 않고 굶던 사람
이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울컥하는
마음에 사람을 상하게 한 사람이었다. 그 때는 그의 마음을 짐작조차 못하
는 어린애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세상 살고 싶지 않았을 그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어머니가 철창 한구석으로 불러 무엇인가 소곤거리며 다독이면 어느 날
은 흑흑 흐느끼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했다. 그러더니
어머니의 특별한 도시락을 받고나서 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고 대신 그 후
로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생판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작은 호의가 그의 마음을 움직여서인지 아니면 자
식이 죽어도 잠은 오지만 배가 고프면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배고픔
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였는지 그것은 알 길 없다. 그러나 형량을 다 마
친 그 사람이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와 몹시 반갑게 해후했고 여러 해 우리
집을 드나들었다.
어린 나이에 보았던 죄에 대한 대가 치름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피치 못하게 죄를 짓게 되고 법의 심판을 받기도 하지만 나
는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암울한 분위기가 떠오르면 법에 저촉 될만한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으로 무수히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어디 눈에 보
이게 짓는 죄만 죄인가 아무 사심 없이 내뱉은 말이 타인에게 비수가 되
기도 하고 무심코 한 나의 행동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되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말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혹시 내 아집에
빠져 모든 사람들을 내 시야로만 보는 독선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자 선생의 열 가지 후회에 대한 가르침보다 훨씬 더 많은 일로 후회하고
돌이키며 번민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그럴 때
내 마음에 나를 가두어 어둠과 침묵 속에 자신을 유치시켜보는 일은 나에
게 필요한 일이다. 누군들 자신 있게 남의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진정으로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에서 가책을 받는 것은 이미 죄를 지은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꽁보리밥 속에 꼭꼭 숨어 있는 계란부침처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위안이 되는
인생의 길벗이 그립다.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자신이 없으니 의지라도 하고 싶다.
서로가 위로하며 더불어 살다보면 큰 아픔 없이 미완의 인생을 살아 낼 수 있으
련만 인심 후하고 정감 있는 다정한 만남을 그리며 희망을 접지 않는다.
2002. 14집
첫댓글 꽁보리밥 속에 꼭꼭 숨어 있는 계란부침처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위안이 되는
인생의 길벗이 그립다.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자신이 없으니 의지라도 하고 싶다.
서로가 위로하며 더불어 살다보면 큰 아픔 없이 미완의 인생을 살아 낼 수 있으
련만 인심 후하고 정감 있는 다정한 만남을 그리며 희망을 접지 않는다.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에서 가책을 받는 것은 이미 죄를 지은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꽁보리밥 속에 꼭꼭 숨어 있는 계란부침처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위안이 되는
인생의 길벗이 그립다. 죄를 범하지 않고 살 자신이 없으니 의지라도 하고 싶다.
서로가 위로하며 더불어 살다보면 큰 아픔 없이 미완의 인생을 살아 낼 수 있으련만 인심 후하고 정감 있는 다정한 만남을 그리며 희망을 접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