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9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16,1-15.60.63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예루살렘에게 자기가 저지른 역겨운 짓들을 알려 주어라.
3 너는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예루살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혈통과 태생으로 말하자면, 너는 가나안 땅 출신이다.
너의 아버지는 아모리 남자고 너의 어머니는 히타이트 여자다.
4 네가 태어난 일을 말하자면, 네가 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고, 물로 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고 포대기로 싸 주지 않았다.
5 너를 애처롭게 보아서, 동정심으로 이런 일을 하나라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네가 나던 날, 너를 싫어하여 들판에 던져 버렸다.
6 그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살아남아라!′ 하고 말하였다.
7 그러고 나서 너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서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젖가슴은 또렷이 드러나고 털도 다 자랐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벌거벗은 알몸뚱이였다.
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9 나는 너를 물로 씻어 주고 네 몸에 묻은 피를 닦고 기름을 발라 주었다.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돌고래 가죽신을 신겨 주었고,
아마포 띠를 매어 주고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었으며,
11 장신구로 치장해 주었다.
두 팔에는 팔찌를, 목에는 목걸이를 걸어 주고,
12 코에는 코걸이를, 두 귀에는 귀걸이를 달아 주었으며,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주었다.
13 이렇게 너는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아마포 옷과 비단옷과 수놓은 옷을 입고서,
고운 곡식 가루 음식과 꿀과 기름을 먹었다.
너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왕비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14 네 아름다움 때문에 너의 명성이 민족들에게 퍼져 나갔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던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5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
60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63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의미 치료’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그곳에서 아내와 가족을 잃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라고도 불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지요.
굶주림, 혹독한 추위, 그리고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핍박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 극복의 비결을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이렇게 담담하게 말합니다.
“어떤 처참한 상황에서도 그보다 더 처참한 상황을 상상하면 견딜 수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보다 더 처참한 상황을 상상하면
우리가 겪는 고통이 훨씬 더 가볍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불평불만의 이유만을 찾고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에 그냥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이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죽음까지도 맞이하셨지요. 이 죽음이 과연 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너머에 부활의 기쁨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만 해서 부활의 영광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십자가로 상징되는 지금의 고통과 시련을 이겨냈을 때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피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그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어떻습니까?
자기 십자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가족도 있고,
직장 안에서의 삶도 있고,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찾아오는 십자가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떠올리며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 너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순교자들도 모두 하느님을 위하여 육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고, 지금도 우리의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습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의 목숨만을 유지하려고 비굴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비록 육신의 생명을 지키겠지만, 우리 마음에서 잊히거나 죽은 이들로 남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십자가의 무게를 바라보지 말고,
오히려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면서 더 큰 영광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것이다(반 고흐).
사진설명: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