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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왕궁을 폭격하겠어요"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1919년. #3.1운동 전날 밤.
18살 소녀 #권기옥 은 치마 속에 무언가를 감추고 친구들과 함께 평양 #숭덕학교 지하실로 들어갔습니다.
#태극기 였습니다.
권기옥이 친구들과 함께 몰래 만들고 비밀리에 운반한 이 태극기는 다음 날, 평양에서 벌어진 #3.1만세운동 에 사용됐습니다.
며칠 뒤, 권기옥은 이 사건에 가담한 사실이 발각돼 경찰에 체포돼 유치장 신세를 졌습니다.
그러나 어린 권기옥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독립운동 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소녀 권기옥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습니다.
16살이던 1917년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목격한 미국인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
1923년 권기옥은 #상해임시정부 의 추천을 받아 중국인이 세운 운남육군항공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년 동안 비행 공부를 하는 동안 일본 영사관이 권기옥을 암살하려고 시도했지만, 권기옥은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이때부터 권기옥은 한국인 최초의 #여성비행사 로 불리게 됩니다.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 입대해 #일본군 과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활약해 대령까지 진급했습니다.
나중엔 #대한독립군 대령이 됐습니다.
1935년 #장제스 총통의 부인인 #쑹메이링 여사가 권기옥에게 중국 청년들의 공군 입대를 독려하기 위한 선전비행을 제안했습니다.
#장개석 #송미령
권기옥은 비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일본왕궁 을 포함한
일본 본토를 폭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선전비행 출발 당일 정국이 불안해지면서 비행이 취소됐습니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됐습니다.
권기옥은 1949년 #대한민국 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이 되어서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권기옥은 이후 낡은 건물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국가보훈처는 2003년 8월 권기옥을 8월의 #독립운동가 로 선정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가르며 자신의 시대를 가장 뜨겁게 누빈 권기옥.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이자, 자랑스러운 한국 여성입니다.
기획/구성: 임찬종 그래픽: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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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