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샘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조규정
고향 승주 오신마을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맑은 샘터가 하나 있다. 샘터는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한 우리 집 부엌 담장 너머 아래편에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가슴속까지 맑게 깨우는 서늘하고 정갈한 물맛에서 시작된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솟구치던 그 물은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한 식수를 넘어 세월을 이어주는 생명수 生命水였다.
나는 그 샘터가 그저 우리 마을의 자랑인 줄로만 알았다. 여름이면 등줄기를 서늘하게 적셔주고, 겨울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따스하게 나를 맞아주던 곳. 그 샘터 앞에서 어른들은 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아주 먼 옛날, 보조국사 지눌知訥 이라는 스님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지팡이로 땅을 똑똑 두드리며 이곳을 파보라 하셨고, 그 자리를 파니 이렇게 맑은 물이 솟아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때의 내게 '지눌'은 경전 속 인물도, 역사책 속 고승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집 밑에 물이 나오게 해준 샘터 할아버지쯤으로 여겼다. 나로선 그 이름의 무게를 알 턱이 없었고, 다만 그 물로 목을 축이며 자라났다. 당시 부모님은 순천 시내에 나가 사셨고, 나는 마을 본가에서 할머니와 고모와 함께 지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해서 서운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할머니의 넉넉한 품과 고모의 살뜰한 정성이었다
샘터에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까지는 약 5리 길이었다. 책가방을 메고 날마다 오가된 그 길은 내 유년의 주된 무대였다 하지만 그 익숙한 무대는 봄가을 소풍날이 되면 조계산 너머 깊은 곳까지 연결되었다. 당시 우리들의 소풍지는 바로 송광사였다. 학교에서 다시 산길을 따라 30리쯤 더 깊숙이 들어가야 비로소 조계산 깊은 품에 안긴 그곳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집에서부터 따지면 편도 35리쯤, 왕복 70리에 가까운 고된 길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 먼 산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풍 날 아침이면 고모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셨다. 부모 곁을 떠나 사는 조카가 흑여 기가 죽을까 염려되어 정성을 듬북 담아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다. 지금도 눈에 선한 것은 고모가 빛어주시던 찹쌀 김 주먹밥이다. 입에 넣으면 찰기가 돌아 착 달라붙던 그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참기름 내음. 서른 리 산길을 걸어 올라 송광사에 도착해 한바탕 뛰어놓다가 마당에 앉아 보자기를 풀면 식었어도 여전히 든든하고 맛이 좋았다. 그 주먹밥 한 알 한 알에는 조카를 향한 고모의 마음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송광사 법당의 고요함과 계곡을 흐르던 물소리, 그리고 주먹밥. 그 모든 것은 내게 편안함으로 남아 있었다. 무엇이 좋은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가라앉았다 세월이 흘러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그 샘터와 절의 모습은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한 스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책을 읽던 중 나는 '보조국사 지눌' 이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순간 오래 잠겨 있던 기억의 문이 조용히 열리며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는 내가 알던 '샘터 할아버지' 만이 아니었다. 혼탁한 시대에 마음의 길을 밝히고자 했던 큰 스승이었고, 오랜 시간 조계사 자락에서 수행을 이어 간 인물이었다.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내가 어린 시절 오르내리던 그 길 끝. 송광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풍경이 달라 보였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마시던 그 샘물 한 모금, 그 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발걸음, 고모님의 손길이 스며 있던 주먹밥까지도, 모두가 한 줄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나는 문득 샘터를 떠올렸다.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던 그 물은 언제나 맑았고, 고요했으며, 쉬지 않고 흘렀다. 아무 소리 없이 솟아나지만, 사람들의 목을 축였고 누구를 가리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깊은 곳에서는 가만히 머물러 있는 듯하면서도, 밖으로는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물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러했다.
이제는 정갈하게 단장된 우물 깊숙이 몸을 숨긴, 그날의 정경을 어림짐작 해 본다. 지눌의 지팡이가 지표면의 정적을 깨뜨렸을 때, 억겁의 어둠을 뚫고 드러난 암반은 태초의 냉기를 머금은 채 얼마나 서늘하게 엎드려 있었을까. 그것은 완강한 거부의 몸짓이 아니었다. 비워내야 할 내 안의 소란 스러운 집착들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준 묵직한 인고忍苦의 시간이었으리라.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단단한 바탕을 타고, 비로소 맑은 샘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의 단단한 결을 타고 흐르는 물은 스스로를 깎아 길을 내는 유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것은 고여 있던 과거도, 가야 할 미래도 아니었다. 길을 지나는 나그네가 그 물에 목을 축일 때 갈증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것은 비단 입술에 닿은 냉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진 그 투명한 진실이, 비로소 보는 이의 타는 갈증과 본래 하나였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송광사에는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나무가 되어 자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혹시 우리 마을 샘터를 두드렸던 그 지팡이가, 다시 산길을 따라 올라가 그곳에 꽂힌 것은 아닐까. 물길을 찾던 그 지팡이가 사람의 마음 길 또한 함께 열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잠시 송광사에 들렸다. 산속의 공기는 여전히 맑고 고요했다. 다리를 건너는 순간 떠오른 것은 보조국사의 엄숙한 모습이 아니라, 친구들과 웃으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나였다. 돌아보면, 중요한 것들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쳤을 뿐이다. 내가 자란 마을, 어린 날 마셨던 그 물맛, 그리고 그 길 위의 시간이 모두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