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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그 사이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라면,
나는 그 작가 되는 걸 이상으로 품은 독자이다.
그러니 나는 독자도, 작가도 아니며 독자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한 그저 한 명의 학생으로서 오늘의 글을 시작하도록 한다.
2024년 6월 29일, 삼무곡에서는 윤민혁 이재혁의 존재의 선언식이 있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삼무곡으로 모여들었고, 우리 삼무곡 재학생들 역시 형들의 성인식에 앞서 축하 무대를 준비해 왔다.
우리가 형들의 성인식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성인식 한 달도 전부터의 일이었다. 축사, 선물, 이름, 축가, 영상. 총 다섯 가지의 무대 순서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미리 처리해야 할 과제들을 맞닥트렸다. 참고로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말하자면, 나는 현직 학생회장이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내가 주도하여 이번 성인식을 준비해야 했던 셈이었다.
사실 맨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과연 우리 애들이 의기투합하여 주어진 공동의 과제를 잘 풀어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마음 한 구석에 둔 채로 시작했던 성인식 준비 과정은,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먼저 성인식에 대한 경험이 많은 동혁이나 이내누님이 앞장서서 일 처리를 도왔고, 아이들도 전체적으로 잘 따라주었다. 아마 내가 생각하기에 일이 이렇게 순종적으로 잘 굴러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이 삼무곡에서 지니고 있던 입지가 결코 작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각자 가지고 있는 마음의 형태는 서로 다를지라도, 어쨌든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나름의 방향성을 잡아 잘 이어져 나갔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심지어 수계식 전날 밤에는, 총 9명의 재학생이 7시 30분에 모두 본관으로 모여 약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성인식 준비 과정에 착수하는 진풍경을 자아냈다.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 또한 마음이 뿌듯해질 정도로, 사실상 학교의 큰 줄기였던 두 사람이 떠나가는 것을 배웅하기 위해, 남아있던 학생들이 처음으로 마음을 몹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성인식 축하 공연 무대 준비는 생각 외로 재미난 시간이었다. 동혁이와 금조, 주환이랑 같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에게 줄 이름을 짓기 위해 다 함께 머리 맞대고, 또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골랐다가 여공 쌤의 말씀을 듣고서 반품하고 다시 고르고, 그리고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에게 전달할 축사를 써 나가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시각 또한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정말 여러모로 즐거운 나날이었다.
물론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성인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 마음에는 점차 초조함이 번져 나갔고, 리허설을 해 나가면서 겉으로 들어나는 사사로운 요소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형들에게 전달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인데, 작고 사소한 행동거지나, 추상적인 예의범절 같은 것에 마음 빼앗겼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의미를 중요시 하던 마음가짐 역시 고리타분한 형식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는 듯했다. 반복되는 리허설에 무대 내용은 점차 진부해져 갔고, 리허설을 반복해도 위와 같은 사사로운 것들만 눈에 들어올 뿐, 그 안의 의미는 점차 흐려져 갔다.
이번에 우리는 총 9명의 재학생 모두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에게 축사를 전달하기로 했는데, 그 첫 번째 순서가 나였다. 그랬기에 리허설을 시작하면 나는 항상 첫 번째로 축사를 읽었고,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며 그 안의 의미도 희석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억지로 감정을 쏟아 넣어 점짓 그럴듯 하게 말하려 해도, 그 생기는 쉽게 살아나는 법 없다. 그렇게 우리는 성인식 당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제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의 성인식 날이 막 잡히고, 드디어 거대한 두 축이 떠나간다는 이야기가 학생들 사이에 돌 때 즈음에,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이 했었던 말이 있다.
“우리 나가고 나면 너네 어떡하냐.”
뭔가 일상의 한 장면처럼 그저 당연하게 지나가는 순간이었는데도, 나는 왜인지 이 말이 자꾸만 기억에 남았다. 언뜻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 말이 번뜩번뜩 떠오를 때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삶의 다른 지점에서 각기 다른 시각으로 이 문장을 맞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말을 듣는 남겨진 재학생의 입장에서 들었고, 다음에는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어느새 이 말을 하는 민혁이 형과 재혁의 형의 입장에서 말을 마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일까. 어느새 문장의 깊은 의미나, 말에 뒤따른 재학생들의 반응, 만약 말을 변형시켜 본다면 어떠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이 이르자, 공교롭게도 마침 나는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이 존재의 선언식을 치르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제 와 살펴보면 한껏 긴장감이 고조되는 마음과, 그 때문에 잘 들려오지 않는 현곡의 이야기, 알 수 없는 표정의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 주변의 유난히 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들 속으로 점차 녹아들어 가면서, 나는 어느새 형들의 성인식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전의 문장은 몸이 있는 자리를 나타냈더라면, 이번에는 마음이 있는 자리를 나타내는 문장이다.
나는 어느새 스스로가 긴장했다는 사실도 잊어가는 영역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성인식 과정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긴장으로 들리지 않던 현곡의 음성이 또렷해지고, 전체적인 성인식의 진행 과정이 마음에 새겨졌다. 나는 몸과 마음이 그 자리에 온전히 있는 상태로, 오감의 범위가 평소 놓치던 것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확장되어진 상태를 언뜻 낯선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인식 순서가 하나, 둘 스쳐 지나가며 나는 때로 감명 깊어 하고, 힘차게 박수를 쳐대고, 사람들에 따라 웃고, 그러면서 점점 스스로를 잊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군중과 내가 하나 되는 듯한 기분. 그때 마침 옆에 있던 동혁이가 다음 순서가 재학생들의 축하 순서임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잊고 있던 긴장감이 다시 가슴 깊은 곳에서 출발해 온몸을 감싸왔다. 그러나 전과는 다른 유형의 긴장감이었다. 말하자면 전의 긴장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었다면, 이번에는 너무나 그 정체가 명확한 긴장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순서가 다가오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종의 수순과도 같은 긴장감인 셈이다. 그러니 정체가 뚜렷한 감각인 만큼, 내가 다스리는데도 한결 수월한 감이 있었다. 이윽고 현곡이 학생회장이 나와 재학생들의 순서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시자, 나는 한껏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었다.
“저희는 다 같이 나가겠습니다.”
언뜻 미숙해 보이는 말이지만, 그래도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본래 스스로가 무언가를 잘하고 못하고를 가르는 기준을 섯불리 타인의 반응에 적용하는 경우가 다분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떠한 행동거지를 취했을 경우,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내 스스로의 행동의 옳고 그름이 나뉘어지는 셈이랄까나. 이는 지극히 내가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 성격에 굉장히 오랜 시간 지배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경우, 이러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니 저 “저희는 다 같이 나가겠습니다.”라는 당당한 말은 나에게 있어서 제법 당돌함이 감도는 대답이었던 셈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내가 내뱉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내뱉은 나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이 남에게 어떻게 와닿을지를 먼저 살피는 나이기 때문이다. 미움받을 용기. 내가 제 딴엔 당돌하게 웃음 지으며 이렇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왜냐하면 지금 현재 동질 되어 느끼고 있는 군중의 모습이, 너무나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재학생들의 축하 공연 이전에 앞서 무대에 나선,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나의 선배들의 모습이 언뜻 어색하고 쑥쓰러운 모습을 내비치고 있더라고, 그 안에는 한없이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들 입장에서는 이걸 자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내게는 그 모습이 마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는, 결국 당사자의 내면에 굳이 거리낄 것 없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을 보며, 나는 그들을 나의 선배로 삼고 나 역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니 내 차례가 도래했을 때, 한껏 가볍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온전한 나의 형태로 누군가 앞에 들어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허설 때는 계속 신경쓰였던 말투, 자잘한 행동거지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 역시 이를 느꼈으며, 그랬기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내비칠 수 있었다. 몹시 어색하고 진부하게 느껴지던 축사 역시도, 분명 이게 내가 쓴 글임에도 이게 이런 글이었구나 싶은 심정으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관객들, 군중의 반응이 비어있는 문장들을 진솔한 반응으로 채워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나 역시 웃음 지으며, 그리고 솔직한 독자의 마음가짐으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이 글을 썼던 3일 전이나 지금이나, 그 마음만은 한껏 진지했다.
이후 내 축사가 끝이 나고 나자, 나는 다음 친구들의 축사를 넘겨주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아 ppt를 넘겼다. 새삼 나는 낯선 감상에 젖어있었는데, 어찌 리허설 할 때와 별반 내용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리도 풍부하게 느껴지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분명하게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이 성인식이라는 행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자각할 수 있었다. 독자들의 심정이, 작가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또 다른 독자로서 공감이 되었다. 그러니 나 뿐만 아니라 다음 순서로 축사를 읽는 친구들의 축사도, 나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이미 내가 수 차례 봤다는 이유로, 스스로 안다고 생각했던 그 생각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번 재학생들의 축사에 어느 정도 개입을 많이 했다. 물론 콕콕 짚어서 고치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어떠한 형식으로 어떻게 쓰기를 바라며, 이렇게 썼을 때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 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내 심정을 아이들이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분히 이야기 했었다. 그러니 내 예상보다 더 좋은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내면에서 끄집어 나와 글로서 쓰여졌고, 이는 나조차 감탄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순서를 마치고 난 후 무대로 돌아와 아이들의 축사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설명했던 관객의 입장에 내가 자리 잡고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듣고 있었다. 정말 인생의 오묘함이랄까. 참 신묘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또한 끝없이 감명 깊은 순간들의 반복이었던 성인식 과정의 한 순간을 비추는 감명 깊은 장면이었고, 이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저 마음 깊이 느끼며, 말이 끝나면 두 손 부딪혀 박수 쳐가며, 그렇게 한 순간에 어울리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새삼 나는 내가 이러한 독자의 입장이 되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행동거지에 신경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 스스로의 가치 기준을 자신에게 두라는 무언의 메세지인 것 같기도 하고. 하하. 퍽 인상적인 경험이었었다.
다음 순서로는 동혁이가 형들에게 선물을 증정했다. 선물은 둘 모두 폴라로이드 카메라. 이유는 매 순간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준비한 것이었다. 사실 선물을 준비하기 위한 금액을 몹는 과정에서, 이 돈이 얼마나 모이느냐 만큼 단순하게 마음이 모이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다. 몹시 무식한 방식이고, 논란의 요소가 많은 부분이나, 어쨌든 결과만 말하고 보자면 모인 금액은 제법 많았다. 나 역시 놀랐을 정도. 어쨌든 이러한 마음이 담긴 선물 증정식이 끝나고, 다음으로는 내가 형들에게 이름을 수여할 차례였다. 사실 이 부분에는 원래 이름을 보여주고, 한자를 읽어주고, 그 다음에 뜻을 말해주려 했는데, 이전 성인식을 겪었던 여러 선배들이 이름을 지은 이유, 모은 한자, 마지막으로 이름을 보여주는 순서로 이름을 선보이는 것이 가장 임팩트가 크다고 말해서 본래 하려 했던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동혁이와 말을 맞추지 못해서, 결국 이 부분에서는 좀 꼬였다. 사실 내가 계속 긴장하고 남 눈치를 보는 상태로 무대에 올랐더라면, 아마 이 대목에서 굉장히 허둥대고 무엇보다 마음이 몹시 요동쳤을 거였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상황을 맞닥트리고 보니, 그리 감흥이 크지 않았다. 이러한 일에 동요할 필요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쨌든 다음 순서로는 드디어 축가를 부를 때가 되었다.
먼저 한희와 윤하가 첫 번째로 ‘동우가 이재혁에게’라는 곡을 선보였다. 굉장히 훌륭하게 마쳤고, 다음으로는 드디어 우리 순서였다. 동혁, 금조, 주환, 내가 만든 노래, 민혁의 배움집. 노래 시작 전, 내가 간단하게 노래 소개를 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사실 이 노래의 마지막에는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굉장히 느끼하게 대사를 하는 장면이 첨부 되어있다. 그러니 이 부분이 노래에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속된 말로 짜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나, 처음 노래를 선보였을 때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금방 나는 이러한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짜치는 일이 노래에 잘 어울린다는 걸 관객들 반응을 보고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야지.
그렇게 다시 마음가짐을 편히 가지며, 나는 노래에 집중했다.
매일 해 뜨는 하루
당연한 거 하나 없지
스스로 만든 틀을
발판 삼아 뛰어오르자
언젠가 내게 보물을
실어다 줄 널 기다리며
이 다음 순서가 금조의 연주가 있는 부분이었는데, 문제는 동혁이가 통으로 연주를 절어버렸다. 덕분에 몹시 어색해진 노래 현황 속, 되려 나는 마음을 몹시 차분히 가라앉히며 내 자리에서 노래를 계속했다. 다시 2절로 넘어가자, 대뜸 웃음이 나왔다. 이 역시 본래는 웃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닐진데, 그냥 웃음이 나왔다. 뭐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엄청난 변화를 겪어서 내가 달라진 것도 아님에도 그냥 삶을 대하는 태도를 살짝 바꾼 것 만으로도 나는 무척이나 훌륭하게 성인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후 노래 마지막에 홀로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한껏 느끼한 말투와 재스쳐로 주어진 대사를 치고 나자, 마침내 우리의 축사 공연까지 마무리 되었다.
“학생회장 최고다!”
부모님들 사이에서 이러한 말이 새어 나왔다. 몹시 뿌듯한 마음이 들었으나, 이미 감격스러움이 한껏 젖어있었기 때문에 뿌듯한 마음이 들어도 동요가 크게 있지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웃음 지으며, 주어진 순서를 마친 나는 학생회에서 준비한 마지막 순서로 영상을 감상하며 자꾸만 이어지는 즐거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분명 여러번 본 영상임에도 관객들이 웃고,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치니 자꾸만 나도 그 감정에 젖어 웃음 짓게 되었다. 이제는 그냥 이 공간 안에 내가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다음 순서로, 드디어 형들의 부모님들께서 나와서 형들에게 소감을 전달하셨다. 먼저 민혁이 형의 부모님이 나와 편지를 읽으셨다. 듣다 보니 말투가 정말 고풍스럽고, 격식이 느껴지는 어휘였다. 마치 사극 공연을 펼치는 이야기꾼이 편지를 읽는 것처럼 느껴지는 말투셨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소라쌤이 나와서 재혁이 형에게 말을 전하셨다. 제법 당황스러웠던 것이, 재혁이 형이 어렸을 적에 좋아했었다는 이야기 책을 꺼내셔서 대뜸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언뜻 당돌하게도 느껴지는 상황에, 나는 여태껏 이어오던 감상을 마저 이어가는 심정으로 생각했다. 마치 자신이 하는 행위에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다고. 나였다면 남 눈치 보랴, 말 더듬고 어리버리 했을 만한 일이었음에도 소라쌤은 너무나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그리고 이미 나는 그러한 자신감에 스며들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저러한 태도를 나 역시 배우고 싶었다. 만약 스스로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한에서 떳떳하게 나타낼 수 있는 자세야말로 내가 부족한 부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광경이 소라쌤에게는 매우 중요한 한 순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성인식 전 과정 중에 계속해서 느끼던 부분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와닿았다. 내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온전히 알아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으나,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알 수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존중하는 마음가짐 정도는 저절로 가지게 되었다.
나는 성인식이 끝이 난 이후, 민혁이 형과 재혁이 형, 그리고 민혁이 형의 부모님과 소라쌤하고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내가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을지라도, 분명 연이 닿아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나의 인연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존중을 표한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살림 교실로 올라가서 여공하고, 현곡하고 포옹을 나누었다. 이번 포옹의 의미는 나의 일상을 채워주고 있는 인연들에게,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평소에 하지 못한 감사를 표하는 마음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본관으로 돌아와서, 마침 의자에 앉아있던 민혁이 형 옆에 앉아 잠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때 참 공교롭게도, 민혁이 형은 이런 얘기를 했다.
“그래도 너희들 끼리 해도 뭐가 되네.”
나는 이 말을 듣자 마자, 지난 나날에 내가 종종 떠올리던 민혁이 형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 나가면 너네 어떡하냐.’ 나는 이때 민혁이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애초에 그 말 자체가 잘못됐어요. 우리 나가면 너네 어떡하냐가 아니라, 그래도 우리 함께 있어서 좋았지? 하고 물어야 했지.”
결국 이게 나의 대답이었다. 이번 이야기의 대답. 성인식 전 과정과,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물음. 사실 재학생 축하 공연 무대가 원활하게 잘 이루어지고, 사람들도 잘 했다고 말을 하니, 자꾸만 셈솟는 어깨는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잊지 않았던 것은, 이게 나 혼자서 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와 함께해준 재학생 친구들과, 관객들, 성인식의 주인공인 형들 모두. 이들 모두가 있었기에 이번 성인식에서 우리가, 내가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실 내가 있든 없든, 그게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이 세상은 결국 잘 돌아가게 되어있다. ‘도대체 당신에게 나는 뭐였던 건데.’ 사실 내가 뭐였든 간,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라도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그리고 이는 잔인한 진실이 아니다. 그저 덤덤한 사실일 뿐이다. 그러나 이를 잔인하게 받아들인다면, 이는 나에게 있어 잔인한 진실이 되게 되어있다. 나는 지난 날, 항상 남들에게 나의 가치 기준을 두고 살았다. 남이 나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순간 나의 행동은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갈렸고, 내 마음 역시 그에 따랐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더라도, 이 세상이 잘만 굴러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형들이 ‘우리 나가면 너네 어떡하냐.’라고 말했을 때 나는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왜냐면 나 또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형들과 내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게 아니라, 나를 그 문장을 말하는 자리에 놓고 보았을 때,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는 의미이다. 나는 항상 남에게 기준을 두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만약 저렇게 물었을 때, 만약 물음을 받은 대상이 별로 상관 없다고 말했다면 나는 상처받았을 수 있다는 거다. 결국 저 물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물음이 향한 곳에서 돌아오는 답변이 중요했단 셈.
그러니 내가 민혁이 형에게 ‘그래도 우리 함께해서 좋았지?’하고 묻는 게 맞지 않겠냐 했던 건, 그게 나름대로 내놓은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물음이 나오기 위해서는, 결국 내 마음에 의미를 스스로에게 두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뭐가 어찌 되었든, 세상 사가 어찌 되었든 간. 우리 함께 했던 그 순간들, 스쳐 지나온 일상 속 나날들이, 그래도 좋지 않았느냐. 나는 지금 그렇게 묻는 것이다. 이 말이 문제가 아니라, 문장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봤을 때 말이다. 정말 뭐가 어찌 되었든 간, 내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자체로 훌륭한 학생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해서 좋았을지 어땠을지 비록 타인에게 묻고 있을 지라도, 그 물음의 대답은 어찌 되더라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 마음가짐일 테니까 말이다.
이야기의 결론에서. 결국 마음 깊이 바라는 이상이나, 외면하려 해도 다가오는 현실 그 사이에서 언뜻 불명확한 거 같으면서도 때로는 선명하게 다가오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뭐가 어찌 되었거나 나는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사실상 행복하기 위해 내가 이런 글도 쓰고, 멀리 돌다가도 다시 중도를 찾아 엉금엉금 되돌아 오는 셈이니까. 결국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은, 내가 세상을 포기하기에는 이 세상이 워낙 아름답다는 데 있다. 아까 말했듯이, 언뜻 불명확한 거 같으면서도 때로는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오는 세상의 모습에 힘입어,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그저 한 번 더 웃음 짓고, 조금 더 밝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 안에는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더 나아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상, 정우와 동우의 성인식 후기 글을 마친다.
민혁이 형 재혁이 형, 다시 한번 성인식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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