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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六韜)
중국 주(周)나라 태공망이 지은 병법서(兵法書)이다.
六 : 여섯 육(八/2)
韜 : 감출 도(韋/10)
주나라 건국의 공신 여상(呂尙; 태공망)이 전한 병법서라는 육도(六韜)는 문도(文韜), 무도(武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표도(豹韜), 견도(犬韜)의 6편으로 되어 있다.
도(韜)란 비결을 뜻한다. 편의 명칭은 하나의 형식으로, 별다른 뜻은 없다. 무도와 용도에 나오는 대표적인 3절을 소개하기로 한다.
🔘 문벌법(文伐法)
무력을 쓰지 않고 이기는 법이다. 문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상대를 방심하게 만든 다음 그 빈틈을 친다.
둘째, 보물과 미녀를 보내 적의 군주의 얼을 빼놓는다.
셋째, 적의 군주가 신뢰하는 신하에게 접근하거나 그를 매수해 군주와 대립하게 만든다.
넷째, 적의 중신에게 물건을 보낼 때, 군주에게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물건을 보내거나, 사자로 온 적의 중신을 오래 붙들어 두어 군주가 그를 의심하게 만드는 등의 모략으로 적의 군신 간에 갈등을 조장한다.
다섯째, 적의 군주에게 어떤 정보도 들어가지 않게 한다.
여섯째, 상대에게 일부러 협상을 제기하고, 그 결과가 상대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여 신용을 얻은 다음 그것을 이용한다. (무도편)
🔘 팔징법(八徵法)
인물의 본성을 꿰뚫어 보려면, 8가지 징후를 살펴야 한다.
첫째, 질문을 던져 이해력을 관찰한다.
둘째, 말을 계속해 임기응변의 능력을 관찰한다.
셋째, 첩자를 보내 내통을 꾀하여 성실한지 관찰한다.
넷째, 비밀을 드러내게 하여 그 인덕을 관찰한다.
다섯째, 재정을 다루게 하여 정직한지 관찰한다.
여섯째, 여자를 접근시켜 인물의 견실함을 관찰한다.
일곱째, 곤란한 임무를 주어 용기가 있는지 관찰한다.
여덟째, 술에 취하게 하여 그 태도를 관찰한다. (용도편)
🔘 싸움에서 이기는 장수
승리하는 장수에는 3가지 타입이 있다. 예장(禮將), 역장(力將), 지욕장(止欲將)이 그것이다.
예장(禮將)이란 예를 아는 장수로, 겨울이 와도 자기만 두꺼운 옷을 입지 않고 병사들과 추위를 함께하고, 비가 내려도 병사와 함께 그 비를 맞는 인물이다.
역장(力將)이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아 험한 길에 들어서면 먼저 마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인물이다.
지욕장(止欲將)이란 병사의 숙사가 정해진 다음에야 자신의 숙사로 들어가고, 병사의 식사가 마련된 뒤에야 자신도 식사를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장수라야 부하들이 스스로 나가 최선을 다해 싸운다. (용도편)
전국시대 오(吳)와 월(越)은 경쟁자였다. 장강(長江) 하류를 다퉜다. 월왕 구천(句踐)이 오왕 합려(閤閭)를 먼저 쓰러뜨렸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臥薪) 복수를 별렀다. 2년 뒤 부차가 이겼다. 패한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嘗膽) 훗날을 도모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오·월은 명검의 땅이었다. 1965년 ‘월왕 구천이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새겨진 동검(銅劍)이 출토됐다. 합려가 칼로 돌을 가른 시검석(試劍石)이 쑤저우(蘇州) 호구(虎丘)에 전한다. 합려가 묘에 명검 3000자루를 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칼의 노래는 김용(金鏞)의 신조협려(神鳥俠侶)가 으뜸이다. 상대가 없었다는 검마(劍魔) 독고구패(獨孤求敗)는 칼무덤(劍塚)을 남겼다.
첫째 이름 없는 날카로운 칼 : 예리해 베지 못함이 없었다. 스무 살 전에 황하 이북의 군웅과 다퉜다.
둘째 자미연검(紫薇軟劍) : 서른 전에 썼다. 불길하게 의로운 무사를 실수로 해쳤다. 후회하며 골짜기에 버렸다.
셋째 현철중검(玄鐵重劍) : 무거운 칼의 날이 무디듯 뛰어난 기교는 솜씨가 없어 보이는 법이다.
마흔 전에 이 칼로 천하를 주름잡았다. 마흔을 넘기자 무엇도 휴대하지 않았다. 풀과 나무, 대나무와 돌을 모두 검으로 삼았다.
마지막 경계가 압권이다. “여기서 수양을 정진하면 점차 칼 없이도(無劍) 칼을 쥔 자(有劍)를 이기는 경지에 들어섰다.” 칼 없이 칼을 이기는 무검승유검(無劍勝有劍)의 단계다.
신조어 샤프 파워(Sharp power)는 중국의 수치다. 전투 없이 이기는 경지를 꿈꿔 왔던 중국이어서다. 무검과 유검의 경계에 칼주머니 도(韜)의 병법을 만들었다.
한자 ‘감출 도’는 칼의 옷(劍衣)이요, 감출 장(藏)이라고 옛 자전이 풀이했다. 칼집은 초(鞘)라는 한자가 따로 있다. 도는 칼집을 싸서 감추는 칼주머니다.
도의 철학은 육도(六韜)에 전한다. 주(周)나라 개국공신 강태공과 문(文王)과 무왕(武王)의 대화를 엮었다. 문(文), 무(武), 용(龍), 호(虎), 표(豹), 견(犬) 여섯 장으로 나눴다.
온전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며, 큰 군대는 상처를 입지도 입히지도 않는다(全勝不鬪, 大兵無創)며, 전투 없이 이기는 비결을 전한다. 성인이 행동에 나설 때는 반드시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다(聖人將動, 必有愚色)고 했다.
우색(愚色)은 유비가 조조를 상대했던 의뭉스러운 도회지계(韜晦之計)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다.
곧 미국과 중국 무역 전쟁 90일 시한이다. 중국에선 도광양회 회귀론과 칼주머니에 숨기에는 늦었다는 불가피론이 맞선다.
강태공은 “참호를 파고 벽을 높이고 식량을 비축함은 지구전 준비(深溝高壘糧多者所以持久也)”라고 했다. 지구전은 마오쩌둥의 병법이었다. 시진핑(習近平)은 새로운 지구전을 막 시작했다.
⏹ 유방의 군대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완성을 함락했다
영천(潁川) 성부(城父) 출신의 장량(張良)의 자는 자방(子房)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韓)나라의 귀족 가문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장개지(張開地)와 아버지 장평(張平) 모두 한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아버지가 죽고 기원전 230년 한나라가 진(秦)나라에 멸망하면서 장량의 집안도 몰락했는데, 그때까지 장량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상태였다.
장량은 복수를 결심하고, 전 재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복수를 위한 굳은 의지 때문에 동생이 죽었을 때도 장례 비용을 대주지 않았다고 한다.
복수를 함께할 동지를 찾으려 동쪽으로 떠난 그는 창해군(滄海君)이라는 인물을 찾아가 함께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기원전 218년, 진시황(秦始皇)이 동쪽을 순시하는 경로를 알게 된 장량은 힘이 센 자를 고용해서 박랑사(博浪沙)를 지나던 시황제의 행차에 무게가 120근(약 30kg)이나 되는 철퇴를 던졌다.
당시 지나가던 네 개의 수레 중 가장 호화로운 중간의 수레를 선택한 것인데 철퇴는 시황제의 수레가 아닌 다른 빈 수레에 맞아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복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장량 일행은 도망쳤고, 진시황이 전국적으로 수배령을 내렸다. 장량은 신분을 감추고 하비(下邳)에 숨었으며 이름까지 바꾸었다.
장량이 하비에 은거하고 있을 때, 장량은 황석공(黃石公)이라는 사람에게 병법을 배웠다. 황석공이 다리 위에서 신발을 일부러 강물에 떨어뜨린 뒤 장량에게 주워오도록 하고 그에게 병법서 태공병법(太公兵法; 黃石公三略)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황석공 이야기는 물론 전설이지만, 장량이 누군가 스승을 두고 병법을 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때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소위 태공병법이라는 것이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도와 백성들에게 어진 정치를 베푼 강태공(姜太公; 姜尙)이 지은 육도(六韜; 6권)라는 설이 있다.
이때 만난 사람 중에 초나라 하상(下相) 사람 항백(項伯)도 있었는데, 항백은 항우(項羽)의 숙부로 살인죄를 저지르고 도망치고 있었다. 둘은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기원전 210년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죽고 막내아들 호해(胡亥)가 진나라의 이세황제(二世皇帝)로 즉위했는데, 대규모 토목사업과 환관 조고(趙高)의 전횡(專橫)으로 백성들은 더욱 도탄에 빠졌다.
기원전 209년, 이세황제는 과역(課役)이 면제되었던 빈민(貧民)까지 징발했고, 이런 와중에 고농(雇農) 출신의 진승(陳勝)과 빈농(貧農) 출신의 오광(吳廣)의 난(亂)이 일어나 천하가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유방(劉邦)은 장량의 책략을 받아들이는 한편 가장 중요한 고문으로 우대했다. 유방은 계책과 간언을 잘 받아들이는 총명한 군주였으므로 장량의 잠재력이 잘 발휘될 수 있었다.
기원전 208년, 이세황제 2년 항량은 초나라를 부활시켜 위왕(威王)의 아들 회왕(懐王)을 군주로 옹립했다.
기원전 208년 말, 회왕은 유방과 항우에게 군대를 나누어 진나라를 공격하라고 명했다. 누구든지 함양(咸陽)에 먼저 진입하는 자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유방은 무관(武關)을 기점으로 영천(颍川)과 남양(南阳)을 경유하여 관중 지방으로 진입할 계획을 세웠다.
기원전 207년, 유방의 군대는 영천을 공격했다. 한왕과 장량은 유방에 합류했다. 유방은 한왕에게는 남아서 양책을 지키라고 명했고, 장랑에게는 군대를 끌고 남하하도록 명했다.
군대가 남양에 도달했을 때, 남양군수가 완성(宛城)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유방은 완성을 공격하기 어렵게 되자 우회하여 계속 서쪽으로 진출했다.
장량은 이것이 옳지 못하다고 여기고, 유방에게 충고했다. “서쪽 진출이 긴급한 것은 알지만 이 경로에 진나라 군대가 너무 많으며 험준한 곳을 이미 점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완성을 점령하지 못하면, 완성의 진군들이 뒤에서 공격해 올 것이니 그렇게 되면 앞뒤로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유방은 장량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계획을 바꾸어 군대를 이끌고 은밀하게 되돌아 갔다. 동이 틀 무렵, 유방의 군대는 이미 완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유방은 적의 전의를 상실시켜 남양태수를 투항하게 했다.
그리고 도시 전체의 백성들을 놓아주었다. 그의 군대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완성을 함락했다. 이후 유방의 군대의 위세가 온 도시에 자자했고, 다른 도시들도 하나씩 항복해 왔다.
⏹ 육도(六韜)
1. 개요
육도(六韜)는 주 문왕(周文王)을 도와 주(周)왕조를 창건한 태공망(太公望)이 문왕(文王), 무왕(武王)과 군사에 대해 문답한 형식으로 정리한 6권 60편의 병서이다.
2. 저자
강상(姜尙, B.C. 1212?~B.C. 1073)
성은 강(姜), 자는 자아(子牙)이다. 문왕에게서 상보(尙父)의 호칭을 받았고, 망(望)이라는 칭호를 덧붙였으므로 강태공(姜太公),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여망(呂望), 여아(呂牙) 등으로 불렸다.
태공망은 동해인(東海人)으로 선조가 사악(四嶽)을 맡아 우임금의 치수를 도왔다는 것으로 보아 높은 가문 출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위료자(尉繚子)에 따르면 그는 70세에 은(殷)나라의 수도인 조가(朝歌)에서 소 잡는 백정 노릇을 하였고 맹진(孟津)에서 밥장수를 하였다.
70세가 넘도록 그의 재주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를 하다가 사냥을 나온 문왕을 만나 천하의 일을 논하면서 초빙되었다고 한다.
그는 주 문왕의 스승으로 초빙되어 약소국이었던 주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고 문왕의 사후에는 무왕을 보필하여 전군을 이끌고 목야(牧野)의 들판에서 일전을 치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였다고 한다.
후일 중국에서는 태공망을 병학의 원조로 받들어 당(唐)나라 시대에는 문묘(文廟)에 공자(孔子)를 모시고 무묘(武廟)에는 그를 모시기도 하였다
3. 서지사항
육도는 언제 편찬되었고 현존하는 지금의 체재가 갖추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존하는 육도의 내용 중에는 태공망의 저술로 보기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은데 예를 들어 후대에 만들어진 무기나 장비에 대한 내용 등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시대 말기에 이미 육도라는 책의 명칭이 보이고 1972년 은작산(銀雀山)에서 발굴된 서한(西漢) 초기의 고분에서 육도 중 14편의 죽간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주나라 초기 태공망과 문왕, 무왕과의 대화의 내용이 기록된 이후 전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에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가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태공병법 237편이 기록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육도는 이 중 주요한 내용만 간추려 편찬한 것이었다. 북송(北宋) 시대인 1080년 송 신종(宋神宗)은 이 책과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삼략(三略), 위료자(尉繚子),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등을 교정하여 한 책으로 간행하도록 하였다.
이에 추밀원 검상관 왕진(王震) 등이 그 책임을 맡아 편찬하고 이를 무경칠서(武經七書)라고 하였다.
4. 내용
이 책은 3권 6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분량은 약 16,800여 자로 상당하다. 각 편명은 해당 편의 주제로서 각 편에 나오는 구절을 딴 것이다.
제1권 문도(文韜)는 문사(文師), 영허(盈虛), 국무(國務), 명전(明傳), 육수(六守), 수토(守土), 수국(守國), 상현(上賢), 거현(擧賢), 상벌(賞罰), 병도(兵道) 등 1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편에서는 문왕이 태공망을 처음 만나서 스승으로 삼게 된 경위와 정치와 작전의 큰 원칙을 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민심을 수습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법, 상벌을 분명히 하고 군의 올바른 지휘체계 등을 정립하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11편까지는 문왕과의 문답이고 마지막 12편만이 무왕과의 문답인 점이 특이하다.
제2권 무도(武韜)는 발계(發啓), 문계(文啓), 문벌(文伐), 순계(順啓), 삼의(三疑) 등 5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 내용은 천하를 다스리는 요체와 책략을 써서 전쟁하지 않고 승리하는 12가지의 방법과 3가지 계책 등을 언급하고 있다. 앞의 4편까지는 문왕과의 문답이다.
제3권 용도(龍韜)는 왕익(王翼), 논장(論將), 선장(善將), 입장(立將), 장위(將威), 여군(勵軍), 음부(陰符), 음서(陰書), 군세(軍勢), 기병(奇兵), 오음(五音), 병징(兵徵), 농기(農器) 등 13편으로 되어 있는데 앞 권과 달리 모두 무왕과의 문답이다.
이 권에서는 주로 군대의 편성과 운용, 장수의 자질과 요건, 장수의 임명과 군내의 자질, 군내의 상벌,비밀 통신, 승패의 징조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으로 지형에 따라 어떠한 전술을 사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 정리된 것을 통해 고대 중국의 전투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제4권 호도(虎韜)에서는 주로 군대의 무기와 장비, 진법과 전술 등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각 편은 군용(軍用), 삼진(三陳), 질전(疾戰), 필출(必出), 군략(軍略), 임경(臨境), 동정(動靜), 금고(金鼓), 절도(絶道), 약지(略地), 화전(火戰), 누허(壘虛) 등이다.
구체적으로 군용은 무기를, 삼진은 군대의 전투 배치를, 질전과 필출은 포위된 상황에서의 돌파를, 동정은 매복전, 누허는 추격전 등을 논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구체적인 전투 양상과 전술을 엿볼 수 있는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5권 표도(豹韜)는 특수한 지형에서의 전투를 논하고 있는데, 임전(林戰), 돌전(突戰), 적강(敵强), 적무(敵武), 조운산병(鳥雲山兵), 조운택병(鳥雲澤兵), 소중(少衆), 분험(分險) 등 8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도에서는 삼림 지역이나 늪지대에서 기동하고 싸우는 전술과 적지에 깊숙이 들어가 불리한 여건에서 이를 돌파하는 방법, 산악전과 도하전, 험난한 지형에서의 전투 방식 등을 논하고 있다.
제6권 견도(犬韜)는 군대의 분산과 집결, 교육과 훈련, 보병과 기병, 전차병의 편성과 운용 전술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아울러 여러 병종별로 지휘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6권에는 분합(分合), 무봉(武鋒), 연사(練士), 교전(敎戰), 균병(均兵), 무거사(武車士), 무기사(武騎士), 전차(戰車), 전기(戰騎),전보(戰步) 등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육도는 실제 저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중국 병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춘추시대 초기 태공망의 병학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이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사람의 병학이 반영되면서 후한(後漢)이나 위진시대(魏晉時代)에 정리된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특히 손자 등 다른 병서와 달리 이 책에서는 공격과 방어, 군사의 운용 등 구체적인 내용이 풍부히 담겨 있어 장수들의 병학 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북송대(北宋代) 무경칠서의 한 종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무과 시험의 한 과목인 강경(講經)의 주요 대상이 되었고, 조선(朝鮮)의 진법서에도 관련 내용이 수록되는 등 조선의 무관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6. 참고사항 (명언)
君不肖, 則國危而民亂,
君賢聖, 則國安而民治,
禍福在君, 不在天時.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들은 혼란하며, 군주가 현명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들은 다스려지니, 화복(禍福)은 군주에게 달려 있지 천시(天時)에 달려 있지 않다. / 문도(文韜) 영허(盈虛)
吾外若亂而內實整, 示以飢以實飽, 內實精而外若鈍, 使士卒, 一合而一離, 如無節制, 一聚而一散, 如無統紀, 陰秘其攻戰之謀, 深密其發動之機, 高其壁壘 使不得而入, 隱伏其精銳之士, 寂若無聲, 使不得而測. 敵旣不知我所備, 彼欲其西, 吾則襲其東.
우리 군대가 겉으로는 혼란하면서도 안으로는 정돈되어 있고, 굶주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배가 부르고, 안으로는 정예로우면서도 겉으로는 무딘 듯하며, 병사들로 하여금 한 번 모이고 한 번 떠나가서 통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한 번 집합하고 한 번 흩어져서 기강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그 공격할 계책을 숨기고 그 발동하는 기미를 은밀히 하며, 진지를 높이 쌓고 정예병을 숨겨서 조용하여 소리가 없는 것처럼 하여, 적으로 헤아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적은 우리가 대비하는 줄을 알지 못할 것이니,적이 서쪽에서 오고자 하면 우리는 그 동쪽을 습격하는 것이다. / 문도(文韜) 병도(兵道)
利天下者, 天下啓之;
害天下者, 天下閉之;
生天下者, 天下德之;
殺天下者, 天下賊之;
徹天下者, 天下通之;
窮天下者, 天下仇之;
安天下者, 天下恃之;
危天下者, 天下災之.
天下者, 非一人之天下, 惟有道者處之.
천하를 이롭게 하는 자는 천하가 열어주고, 천하를 해롭게 하는 자는 천하가 막으며, 천하를 살려주는 자는 천하가 은덕으로 여기고, 천하를 죽이는 자는 천하가 해치며, 천하를 형통하게 하는 자는 천하가 형통하게 하고, 천하를 곤궁하게 하는 자는 천하가 원수로 여기며,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자는 천하가 믿고, 천하를 위태롭게 하는 자는 천하가 재앙을 내립니다. 천하라는 것은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니, 오직 도(道)가 있는 자가 처할 수 있는 것입니다. / 무도(武韜) 발계(發啓)
▶️ 六(여섯 육/륙)은 ❶지사문자로 두 손의 세 손가락을 아래로 편 모양을 나타내어 '여섯'을 뜻한다. 五(오) 이상의 수를 나타내는 한자의 기원은 과히 뚜렷하지 않으나 다만 (四-六-八)은 닮은 글자이며 (五-七-九)도 같은 자형(字形)으로 되어 있다. ❷상형문자로 六자는 '여섯'이나 '여섯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六자는 八(여덟 팔)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숫자 '여덟'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六자의 기원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설은 없다. 다만 六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지붕 아래로 기둥이 세워져 있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본래는 작고 허름한 집을 뜻했던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六자는 이러한 해석과는 관계없이 일찍이 숫자 '여섯'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六(육/륙)은 (1)여섯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여섯 ②여섯 번 ③죽이다(=戮)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의 여섯째 달을 유월(六月), 60일 또는 60살을 일컫는 말을 육순(六旬), 열의 여섯 배가 되는 수를 육십(六十), 여섯 치 또는 재종 간의 형제나 자매의 서로 일컬음을 육촌(六寸), 한시에서 여섯 자로서 한 구를 이루는 형식을 육언(六言), 무엇을 직접으로 느끼어서 깨닫는 신비한 심리 작용을 육감(六感), 점괘의 여러 가지 획수를 육효(六爻), 사람의 여섯 가지 성정으로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를 이르는 말을 육정(六情), 여섯 가지의 곡물로 벼 기장 피 보리 조 콩을 이르는 말을 육곡(六穀), 예순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쉰 한 살을 일컫는 말을 망륙(望六), 언론계에서 뉴스 보도에 반드시 담겨져야 할 여섯 가지 기본 요소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를 일컫는 말을 육하원칙(六何原則), 온갖 법령을 다 모아서 수록한 종합 법전을 이르는 말을 육법전서(六法全書), 14~15세의 고아 또는 나이가 젊은 후계자를 일컫는 말을 육척지고(六尺之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오뉴월의 더운 날씨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을 유월비상(六月飛霜), 내장의 총칭으로 오장과 육부를 분노 따위의 심리 상태가 일어나는 몸 안의 곳으로서 이르는 말을 오장육부(五臟六腑), 서른여섯 가지의 계략 또는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여덟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이라는 뜻으로 뛰어난 능력으로 다방면에 걸쳐 눈부신 수완을 발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팔면육비(八面六臂), 두 팔과 두 다리와 머리와 몸통을 이르는 말로써 온몸을 이르는 말을 사대육신(四大六身),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등에 쓰인다.
▶️ 韜(감출 도/활집 도)는 형성문자로 韬(도)는 간자(簡字), 弢(도)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가죽 위(韋; 가죽)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舀(요, 도)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韜(도)는 ①감추다 ②느슨하다 ③바르다 ④칼전대(칼을 넣어 두는 길쭉한 주머니) ⑤활팔찌(활을 쏠 때에 활 쥔 팔의 소매를 걷어 매어 두는 띠) ⑥활집(부린 활을 넣어 두는 자루) ⑦비결(祕訣)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자기의 재능이나 지위 같은 것을 숨기어 감춤을 도회(韜晦),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음을 도설(韜舌), 재능이나 장점을 숨기어 드러내지 않음을 도휘(韜輝), 빛을 감춘다는 뜻으로 학식이나 재능을 감추고 남에게 알리지 않음을 도광(韜光), 비단으로 겉을 싸서 만든 활집이나 칼집을 나도(羅韜), 쟁기를 넣어 두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물건을 뇌도(耒韜),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말을 도광양회(韜光養晦)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