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 초립동 -
초면에 혹은 낯설 때
누가 무슨 말을 할시 후배든 제자든 친구든 그대로 접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같이 공감하거나 경험을 나누거나 익숙해지거나 사람됨을 확신할 때 믿을 것이다.
그런데 손발이 맞는다는 말도 있다.
상대가 굳이 말안해도 서로의 마음에 들게 보조하거나 수발 부축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심전심? 비슷한 표현으로 마음이 맞는다는 혹은 눈이 맞는다는 수사도 있다.
헌데 동성일 경우는 문제가 없으나 이성간이라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 경험이나 공감. 익숙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반하여 매료되는 상황이라서
누구의 충고도 안들리고 상대의 결점이나 흉도 못보는 맹목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사랑이란 고약한 불치병에 걸려들었을 수 있다.
연인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요기준이기도 할 것인데 주는 거 없이 무조건 밉고 받는 것도 없는데
무조건 고맙고 기꺼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근거도 증거도 전혀 없어놓으니 운명의 장난인지 팔자소관일지도...
왕년의 우리 시골에선 초등은 물론 중등까지 남녀공학이 많았는데 동창끼리 맺어진 커플이 많았다.
다섯쌍 이상으로 기억되는데 대개 미모의 여학생과 좀 드셀지 내공있는 남학생이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학교가 갈라지고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서겠지만 한번도 청문회나 진상조사를 해본 일이 없는 게 아쉬웠었다.
동창회등 모임에도 거의 동반이 없었던듯 하다.
아마 동네에서 학교에서 오다가다 서로 눈이 맞아 그리 되었을 건데...뻔한 스토리일 거라는 지레짐작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얼마전 희자와 태석이의 사연을 듣고는 은근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아 소개하기로 한다(가명).
벌써 3.40년도 넘었으니 공소시효가 만료되기도 했지만 어떤 사랑은 세월을 넘어 감동을 주고 위로를 주는 법이잖은가.
또 희자는 당시에도 매력덩어리라서 학창 때 무이도 반쯤 짝사랑하기도 한 전과가 있었다.
반쯤 짝사랑이란 게 문법이 맞나?..ㅠ
근래 시골에 내려갔다가 역전의 허름한 시장통을 지나다 왠지 익숙한 털보가 보여 갸웃하는데 태석이가 먼저 나를 알아봤다.
반가이 술을 나누며 친구들 근황을 주마간산 나누다가 희자와의 사랑야그를 농담삼아 물어봤더니 의외로 스스럼없이 토해내는 게 아닌가.
집 근동에 살기도 했지만 어느 여름날, 희자네 집 근방을 지나다가 노래소리를 듣고 멈췄단다.
[초립동]이란 노래였다.
본래 1941년 이화자가 부른 노래라는데..추후 황금심, 김세레나등 여러 버전이 있는 것 같다.
밀방아도 찧었소 길삼도 하였소
무명주 수건을 적시면서 울어도 보았소
아리아리 살짝 흥~ 쓰리쓰리 살짝 흥~
고초당초 맵다 한들 시집보다 더 매울손가
떠나간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서방님 따라간다
시누이도 섬겼소 콩밭도 매었소
모본단 저고리 걸어놓고 보기만 하였소
담장안에서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초립동을 희자가 부르는지 희자언니인지 동생인지 헷갈리다가
노래가 끝나고 잠시 엿듣고는 희자라는 걸 알아챘단다.
어린 학생이 구석기시대 때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신기했지만 정말 잘 부르더란다.
가요책도 샀지만 방송국에 엽서로 신청해서 제대로 들어보니 가사도 죽였지만 그 정서란 충격이었단다.
하여 그 즉시로 희자에게 꽂혀버려 몰두하여 구애에 성공했다는 것인데...
태석이는 초립동이란 노래를 저 정도로 부를 정도면 멋이나 매력은 당연이고 교양은 물론 토속적인 소양이
보통은 넘을 것이고..어떤 고약한 시부모나 심한 고생도 이겨낼 것이리란 턱없는 믿음이 생긴 것 같다.
그후로 희자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그리 매력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하여간 초립동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태석이의 여성 평가의 바로미터였던 셈이었는데.....
유난했던듯...
모든 인간관계가 상대적이라서 자기를 누가 좋아하든 미워하든 저절로 기파가 전해지기 마련이라서
희자쪽의 반대심문은 못해봤지만 누가 그토록 반해서 들이대는데 어느 누가 거부할 수 있으리오.
사실 그 부부의 특별한 사연만도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특별한 노래는 물론이고 즐기는 명작, 혹은 명시, 예술, 글에 공감하여 꽂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 같다.
사실은 내가 태석이였어도 똑같은 상황에서는 희자에게 꽂혔을 법 하다.
과연 희자는 풍파 많은 태석이형제 건부터 대강...대충..무난히 견뎌내어 태석이를 구원해준 것 같다.
오늘도 문득 희자 생각이 나서 대낮부터 술집을 찾게 할 정도로......
.....실은..희자는 벌써 8년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단다....
결국 나로서는 희자의 노래 한번 못들어보고 얼굴도 아리송해진 지금에 이르르니
그저 무량한 만감에 가슴만 시려올 뿐...ㅜ
.........아아~ 산다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2020.4 잠파노
첫댓글 무척 품격 있는 로맨스,
그리고 서글픈 사랑의 종말 . . .
소설 같이 이야기에 머물다 갑니다
좋은 주말 되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