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경 노 현
황금빛으로 물들여진 감(甘)은 자연의 향기를 내뿜는다.
나무마다 꽃송이처럼 풍성한 모습에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다 가을 언덕의 정취(情趣)에 흐뭇하도록 사색(思索)하며 오래 두다 보면
파란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마다 물감을 풀은 듯한 감의 풍년에 진풍
경을 자랑하는 듯싶다.
마침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먼 곳에서 왔다. 사랑의 정담
을 나누며 나는 나무 위에 올라가 감을 따서 그의 손에 쥐어주면 상처가
날까보아 조심스레 그릇에 담는 모습이다.
감들도 서로 저 먼저 따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성급한 녀석은 혼자서
툭 하고 떨어진다. 우리들이 어디로 가지? 하고 수런수런 하는 모습들이
다. 탐스런 감이 바구니마다 가득한 모습에 심고 가꾼 보람을 느꼈다. 마
음속에는 어느새 내년 봄에 더 많이 심어 길러서 수확을 해야지…. 사랑하
는 아동들도 더 많이 나누어주고 여기저기 여러 곳으로 보내야 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한다. 나무마다 한두 개 새들의 먹이를 두고 오는 발걸음
에는 자연과 감나무에 고마움 땅은 정직하다 는 진리(眞理)가 넘쳐흐른
다. 석양의 붉은 노을이 맑은 공기와 함께 우리를 스쳐간다.
농장에서 밤하늘의 찬란한 별들에 쌓여 친구와 세상사 이야기에 하루 밤
이 흐른다.
다음날 함께 나가 내년에 또 올께, 건강해! 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고속버
스에 감을 들고 오르는 석별(惜別)의 정(情)이 아쉽기만 했다. 흐뭇한 표
정 밝은 미소에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 특유의 마음씨 고운 천성이 내 가
슴을 적시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함께 손을 흔들며 버스가 보이지 않- 16
을 때까지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과 안방에 따온 감을 분산하여 따듯한 햇볕이 들어오는 곳에 놓으니
감들의 속삭임 속에 온 집안에는 자연의 향이 짓게 베어들었다. 이 삼층의
어린이 집에도 교실마다 몇 개씩 매달린 감을 달아주었다. 아동들과 학부
형과 교사들이 함성을 자아냈다. 시간이 나면 때로는 뎃생을 즐기던 리젤
을 돌려놓고 빨갛게 익어 가는 정물화를 그려본다. 어느새 잘 익어 말캉한
홍시로 변하고 있었다. 마치 창밖에 밤새 소복이 쌓인 백설(白雪) 같은 설
탕에 찍듯 달콤한 꿀맛이다.
첫 순서의 선물은 아무래도 내 사랑하는 아동들이다. 우와! 하며 또 한번
에 함성이 울려 퍼진다. 나는 순식간에 산타크로스가 된 기분이다. 봄부터
농장에서 자연 속에 무공해로 수확하는 복숭아 앵두부터 시작되면 여름에
는 방울토마토와 참외 수박 살구 사과 배로 이어지며, 늦가을 밤과 감이
일년을 마감해준다. 때로는 올해같이 겨울에도 자연의 향을 듬뿍 끌어들
여 다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라 생각하며 항상 감사의 기도를
한다.
아동들의 어린 가슴에 자연을 심어주는 학습은 더욱 보람을 느꼈다. 천직
(天職)으로 알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십수년 운영하여 왔으나, 사정으로
육영사업을 직접은 못하지만 설립자의 긍지와 아동들에 끝이 없는 사랑은
변함이 없다 투병중인 외숙모께 잘 익은 홍시를 골라 선사하고, 스승님과
학우들이 함께 나누려고 학교를 가지고 갔다 만학으로 동문수학하는 친
구들이 톡 터질 것만 같은 말간 홍시에 반하여 모두가 밝은 웃음 속에, 서
로 먼저 집는 모습이 우리 아동들의 동심을 보는 듯 즐거웠다. 두세 개가
남아 교수님께는 송구한 마음이었는데, 마침 학우가 단감을 가지고 와서
다행이었다.
2003/ 15집
첫댓글 황금빛으로 물들여진 감(甘)은 자연의 향기를 내뿜는다.
나무마다 꽃송이처럼 풍성한 모습에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다 가을 언덕의 정취(情趣)에 흐뭇하도록 사색(思索)하며 오래 두다 보면
파란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마다 물감을 풀은 듯한 감의 풍년에 진풍
경을 자랑하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