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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둘러싼 무수한 사물들에 보내는 솔직한 고백!
한 미술평론가가 듣는 사물들의 은밀한 음성『수집 미학』. 저자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삶에서 함께한 작은 사물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그에 대한 짧은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미술평론가이자 교수, 생활인으로서의 면모와 취향을 보여주는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귀이개, 찻주전자, 노트북, 카메라, 배낭, 핸드크림 등 매일매일 스치는 사물과 가위, 라디오, 연필깎이, 돋보기, 돌멩이 등 책상 위에 놓인 문구, 꼭두, 등잔, 티베트 종, 부적, 와불 등 오랜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 사물들, 심슨, 재떨이, 차통 등 저자의 취향이 오롯이 담긴 사물들, 운동화, 성냥, 잉크병, 다이어리 등 그 자체로 추억이 되는 사물들을 살펴보며 그것이 어떻게 자신과 인연을 맺었는지, 왜 그토록 그 사물을 좋아하는지 고백하고 있다.
저자 박영택
성균관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같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금호미술관에서 10년 가까이 큐레이터로 일했다. 현재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기대학교 미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면 여전히 인사동, 사간동, 광화문 일대를 거닐며 전시를 보고,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대 사회주의 미술 운동의 성과와 한계」「1930년대 경성의 도시 풍경과 미술」「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나혜석의 위치」「박생광의 그림을 통해 본 무속적 세계관」「권옥연의 회화 세계-인물화를 중심으로」「회화의 위기, 회화의 대안」「지역 미술과 권력」「박정희 시대의 문화와 미술」「원림의 미학: 옛 그림에 나타난 자연 공간과 인간의 삶」「한국 현대 미술과 사진 속의 제주도」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 『예술가로 산다는 것』『식물성의 사유』『미술전시장 가는 날』『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민병헌』『잃어버린 것에 대하여』(공저) 『우리 시대의 美를 논하다』(공저) 『가족의 빅뱅』(공저)이 있다.
일상 매일매일 스치는 사물
귀이개_고요를 채우는 시간
손톱깎이 세트_경이로운 일상의 도구
안경_콧등 위에 얹은 눈
우산_빗속을 동행해줄 누군가
명함 지갑_명함이 거주할 마땅한 공간
책갈피_책의 내음, 손의 온기
립 밤_입술의 물기, 말할 준비
핸드크림_나를 녹이는 물질
블루 오일_청색의 이완
찻주전자_삶을 우리는 무게감
컵받침_시간의 흔적을 받치다
노트북_13인치의 작업실
카메라_기억을 메우는 도구
허리띠_바지를 입는다는 의식
서류가방_본질을 채우고 나서는 길
배낭_든든한 길동무
문구 책상 위 나만의 세계
달력_부여받은 지금 이 순간
라디오_구원의 목소리
향꽂이_어두운 마음의 정화
국그릇과 몽당연필_추억을 담은 필통
지우개_틈을 만드는 존재
지우개 청소기_존재를 지우는 일
책상용 빗자루_책상에 필요한 여백의 시간
줄자_진실과 거짓 사이
가위_망실하지 않겠다는 다짐
필기구들_연장된 나의 신체들
필통과 샤프_함께 늙어갈 동반자
빨간색 마커 펜_마지막을 알리는 마음의 압력
연필깎이_무언가 다시 살아나는 소리
모필_마음의 자취
돋보기_세상의 경계를 들여다보다
돌멩이_돌 하나에 깃든 사연
마우스패드_단아한 선비의 정신
흔적 오랜 세월의 더께
꼭두_죽은 이의 벗
유기 수저 세트_순수함이 가득한 물성
컵_무한한 자연
물고기 문진_책상 위의 여백
부엉이 도예_깨어 있으라
가면_염원의 페르소나
남녀 합환상_타자와 하나 되는 순간
제주도 동자석_나와 함께 늙어갈 벗
등잔_자연을 불러들이다
작은 그릇_글자의 길
티베트 종_존재를 깨우치는 소리
부적_간절한 믿음의 도상화
와불_책상 위의 관찰자
취향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속내
심슨_다른 나
어린왕자_노랑머리 선비
스파이더맨_운전길 동반자
개 밥그릇 속의 인간_돌아보다
초콜릿 통_생의 근원
차 통_단호한 기품
도자기 화병_문인 정신
재떨이_나 자신을 의식하는 순간
레몬_어떤 행복
진주 문진_자중하겠다는 마음가짐
블로터_재현의 상처
미니 플래시_마음을 달래주는 빛줄기
탁상시계_추억을 켜는 스위치
수면 안대_외로운 잠, 따뜻한 친구
향수_시리게 파란 바다
기억 그 자체로 추억
망치_진한 노동의 내음
성냥_되살아나는 추억
잉크병_존재를 새기는 의식
시계_생의 궤적을 따르다
넥타이_강의할 준비
운동화_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함
만능 주머니칼_존재만으로 느껴지는 안정감
손수건_삶의 고단함을 닦다
미니카_추억의 청색
다이어리_일상 보관함
내가 사용하고 수집한 물건이 나를 말한다
―미술평론가의 사물에 대한 독특한 시선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다. 개인이 소유한 물건이란 자본주의의 표상이지만 단순히 소비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다. 대량생산된 획일적인 기성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의 물건에 자신을 투영해 개성을 드러내줄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수집 미학』의 저자 박영택은 일상적이지만 개성적인 물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다. 10년간의 큐레이터 생활을 거쳐 대학 강단에서, 미술평론가로 지내며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고 평가하며 살아왔다. 그에게 사물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은 미술평론가, 교수, 생활인으로서의 면모와 취향을 보여주는 물건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심슨 캐릭터 인형부터 일상에서 흔히 쓰는 귀이개와 손톱깎이, 와불이나 꼭두 같은 작품까지, 그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미술평론가의 심미안으로 고른 물건들을 엿보고 그에 깃든 이야기들을 전해 듣노라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어느새 독특한 무엇이 되고, 내 주변의 사물에 새삼스레 눈길을 주게 된다.
나는 매일 무언가 수집하고 바라보고 좋아하면서 은밀한 시간을 보낸다. 이 자폐적인 사물과의 독대는 그것들이 발화하는 음성을 듣는 일이자 그 생김새와 색채, 질감을 편애하는 일이다. 미술평론가로서 작품을 보러 다니고 마음에 드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 일과지만 실은 틈틈이 골동 가게와 서점, 문방구, 온갖 가게들을 들락거리면서 마음에 쏙 드는 그 무엇을 찾아 구입하는 것이 주된 일인 것도 같다.
-「프롤로그」에서
71개 사물과의 은밀한 독대
―심슨 인형에서 존재를 깨우치는 와불까지
저자 박영택은 고백한다. 물건이 말을 건다고. 미술관 숍이나 문구점, 인사동의 화랑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물건이 그에게 다가온다고. 온종일 그 물건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그것을 사지 못해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그 정도의 미감을 지닌 물건은 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경을 만났고, 지우개를 발견했고, 등잔과 인연이 닿았다. 교수, 미술평론가라는 직업 덕분에 선물 받은 물건도 많다. 청색을 좋아하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어느새 지인과 학생들에게 알려져, 인어공주 탁상시계와 스파이더맨 인형, 피노키오 줄자를 비롯해 많은 물건들을 선물로 받았다.
이러한 사물들과 나누는 교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못지않다. 유독 청색을 좋아하는 그는 청색 사물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제자가 쓰던 블루 오일의 청색에 반해 뺏다시피 얻은 이것으로 두통에 시달리는 자신의 몸을 이완하고, 파란 연필깎이에 사각사각 깎이는 연필을 보면서 “늘 뭉툭하고 한없이 닳는 자신을 매 순간” 긴장시킨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자그마한 와불과 함께 속악한 하루를 보내면서 부처의 미소에 마음을 내려놓고, “죽은 영혼 대신 산 영혼을 독대하면서” 자신을 지켜주는 동자석과 함께 고요히 늙어가고 있다. 또한 피노키오 줄자를 대하면서도 거짓을 일삼는 자신을 돌아보고, 조그만 플래시 불빛에 위안을 받는다.
빨간 스위치를 앞으로 밀면 하얀빛이 밝게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볼수록 아름답다. 그렇게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작은 몸체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훌륭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 밝고 하얀 빛에 의존해서 무엇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 빛만으로도 충만한 순간이 있다. 그저 조그마한 빛이라도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본문 284쪽 「미니 플래시」에서
추억과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물건 이야기
―대량생산된 기성품이 의미 있는 사물로
71개의 다양한 사물 중, 그에게 특별한 음성으로 말을 건넨 것은 심슨 인형과 이스트팩이다. 심슨은 그의 별명이기도 하다. 외모를 희화화하는 별명에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그는 “강의를 할 때마다 내 입을 보면서 학생들은 심슨을 떠올리겠지만 어쩌겠는가? 심슨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구경하는 것처럼 수업을 듣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심슨 인형을 비롯해 심슨 캐릭터가 들어간 사물들을 모으고는 책꽂이 사이나 서랍 속에 넣어두고 흐뭇하게 바라본다.
대학 교정에서 박영택 교수 하면 이스트팩 배낭을 동시에 떠올린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 쓰는 가방이 벌써 세 개째, 강의를 나갈 때가 아니면 대부분 이스트팩에 지갑과 필통, 립밤, 노트북 등을 넣어 다니며 전시를 보러 다니고 여행을 다닌다. 이스트팩을 들어 “나의 늘어난 육신으로 나와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언제나 이 배낭과 함께 길을 나선다.
뭐든지 다 받아주는 이 가방의 포용력은 더할 나위 없다. 그래서 여러 가방이 있지만 이스트팩만큼 편리하고 실용적인 가방은 없다. 며칠간 여행을 떠날 때도 그만이다. 이스트팩이 없는 여정은 상상하기 어렵다.
-본문 86쪽 「배낭」에서
25센티미터의 작은 망치를 바라보며 지난 큐레이터 생활을 떠올리고, 제자에게 받은 코끼리가 수놓아진 손수건과 인어공주 탁상시계, 청색의 미니카를 완상하며 그것을 준 제자와의 추억을 생각한다. 자연산 벌꿀을 주성분으로 하는 립밤을 바르면서는 궁핍했던 어린 시절 입안이 헐면 꿀을 발라주던 아버지를 추억한다. “사물은 그것을 건네준 이를 떠올리게 하고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게” 하며 기억을 일깨우는 것이다.
소소한 물건에 깃든 예술성과 미의식
―물건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그의 수집은 흔히 말하는 골동품을 사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날로그에 매료되어 과거에 매여 있지도 않다. 매일 스치는 일상의 사물들부터 책상 위에 자리 잡고 늘 그와 함께하는 문구들, 인사동 어느 화랑에서 구한 골동들, 혹자는 아동 취향이라고 흉볼지도 모를 귀여운 사물들, 오랜 추억이 깃든 물건들까지 종류도,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미술평론가로서의 심미안으로 하나씩 고르고 수집한 사물들은 희귀하다거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손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세월을 덧입는다. 그래서 더욱 의미 깊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일상적인 사물에서도 자신만의 눈으로 매력을 찾는 그의 행위는, 물건 하나에도 의미를 두고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싶어하는 미술 전문가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혹자의 눈에는 흔하디흔한 기성품이지만 그 안에 깃든 시간을 찾아가다 보면, 한 사람의 기억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읽힌다.
내게 이 지우개는 어떤 순간을 현재의 시간 위로 불러내고 추억하게 한다. 조금 다른 틈을 만든다. 지우개를 사용했던 어떤 순간들이, 어슴푸레하지만 떠오른다. 그리워진다. 동시에 지우개라는 존재가 의미 있는 사물이 되어 다가옴을 느낀다. 나는 주체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것과 교호(交好)한다. 그것은 놀라운 체험이다. 말 없는 것들과 소통하고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것들과 분리될 수 없는 삶을 사는 어떤 관계의 장을 연상해본다.
-본문 112쪽 「지우개」에서
나는 모든 도구들이 마냥 경이롭다. 책상 서랍에 들어 있다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와서 내 신체에 관여하는 이 도구, 연장은 당연히 비교적 먼 여행길을 떠날 때면 반드시 챙겨가는 우선적인 것이기도 하다. 비록 손톱을 깎고 다듬는 일이 귀찮고 싫지만 이 연장을 떠올리면 그만 그 일이 할 만해진다.
-본문 25쪽 「손톱깎이 세트」에서
언젠가 정말 마음에 드는 안경테를 또 찾을 때까지 나의 순례는 아마도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그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안경만 한 것이 없는 셈이다. 안경 없이는 그 무엇도 가능하지 않기에 말이다.
-본문 29쪽 「안경」에서
지금 책상에 놓인 이 책갈피는 수시로 어떤 책들의 내부로 들어가 잠시 머물다 또 다른 책의 살 내음을 맡으며 이동하는 삶을 산다. 나는 그것을 만지작거리면서 손의 온기와 기름기를 묻혀가며 책을 읽는다. 조금씩 더디게 움직이면서 한 권의 책이 끝나는 지점까지 그 책갈피와 행복한 동행을 하고 있다.
-본문 44쪽 「책갈피」에서
이처럼 나는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사물이 좋다. 그 순간 사물은 정서적인 삶의 동반자가 되고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 의미 있는 사물이 되는 것이다.
-본문 66쪽 「컵받침」에서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고 가까이 있는 것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짐을 느낀다. 머지않아 내 눈 위에 돋보기를 얹어야 할 것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무척 짧아졌다. 내가 사랑하는 이 돋보기에 의존해 작은 그림을 살펴볼 날도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본문 166쪽 「돋보기」에서
그가 창에 붙어서 전방을 주시하고 나는 운전대를 잡고 앞을 보며 같이 운전해 가는 풍경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창에 비스듬히 엎드려 붙어 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절박해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가여워 보이기도 한다. 마치 내 모습의 한 조각을 엿보는 것도 같다. 아마도 내가 운전을 하고 다니는 날까지 이 스파이더맨이 함께하지 않을까.
-본문 249쪽 「스파이더맨」에서
빨강머리의 인어공주가 초록색 꼬리를 흔들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적잖이 위안을 안겨준다. 나는 서랍에 빼곡한 귀여운 사물들을 가끔씩 꺼내놓고 바라본다. 시간과 나이를 잊고 그것들을 갈망했던 어린 시절의 한을 지금에서야 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동시에 나이 들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일련의 저항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영원히 보존하고 그 근원적인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간절한 제스처이기도 할 것이다.
-본문 291~292쪽 「탁상시계」에서
첫댓글 박영택 지음 / 출판사 마음산책 | 201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