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재인폭포(才人瀑布)
소재지 : 경기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 489 번지
54만 년 전에 북한 평강지역에서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연천의 용암지층이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깎이고 깎여 생긴 폭포.
재인폭포는 오래전부터 명승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재인폭포는 북쪽에 있는 지장봉에서 흘러 내려온 작은 하천이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현무암 주상절리 절벽으로 쏟아지는 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재인폭포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멸종위기종인 분홍장구채 등의 서식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폭포의 이름과 관련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재인폭포에서는 다양한 현무암의 특징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주상절리를 비롯하여 하식동굴과 포트홀, 가스튜브 등을 볼 수 있다. 높이 약 18m에 달하는 폭포는 계속해서 폭포 아래를 침식시켜서 수심 5m에 달하는 포트홀을 만들었다. 포트홀이란 하천에서 암석의 오목한 곳이나 깨진 곳에 와류(물이 회오리 치는 현상)가 발생하여 깊은 구멍이 생겨난 것을 말한다.
54만 년 전에 북한 평강지역에서 용암이 분출하였다. 규산질 성분이 적어 매우 매끄럽고 잘 흐르는 현무암질 용암이 오늘날 한탄강 일대를 총 3번 휩쓸고 난 후 시간이 지나 식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 풍화와 침식 작용으로 깎이고 깎여 지금의 환경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곳에 한탄강을 향해 흐르는 폭포가 형성되었으니 이것이 재인폭포이다.
재인폭포 인근의 암석지대를 보면 과거 용암이 흘렀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암석지대 최하단에는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하식동굴이 존재한다. 그 위에는 용암이 굳어져서 생성되는 주상절리와수 평절리가 존재한다.
주상절리란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 형성되는 지질구조이다. 용암이 식게 되면 겉부분부터 단단해지며 열을 잃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을 잃고 외부에서 내부로 단단하게 굳어지는데, 그렇게 용암의 굳어진 내부에는 부피의 변화 및 열의 이동 등의 이유로 인해서 여러 방향으로 금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여러 위치에서 여러 방향으로 형성된 금은 육각형 형태로 점차 일정한 형태를 띠게 되는 구조가 바로 주상절리이다. 즉, 한탄강의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르고 식었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상절리 위에는 땅과 수평으로 놓인 수평절리가 보이는 현무암층이 주상절리와 경계를 두고 존재하고 있다. 이는 주상절리 형성이후에 용암이 한번 더 흘러서 새로운 층을 형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인폭포의 주상절리에는 특별한 점이 보인다. 무등산이나 제주도에서 보이는 주상절리는 보통 똑바르게 서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재인폭포의 주상절리는여러 방향으로 휘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용암이 여러 번 흘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상절리가 되는 용암이 완전히 굳기 전에 위에서 새로운 용암이 흐르고 굳어져서 주상절리가 되는 용암을 위에서 누르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용암이 여러 방향으로 휘어지게 된 것이다. 용암이 휘어졌으니 주상절리 역시 휘어진 형태를 하는 것이다.
재인폭포에 이러한 경계가 총 2곳에 있다는 것은 용암이 3번 휩쓸었다는 것을 뜻한다. 맨 하부에는 용암이 기존에 흘렀던 한탄강 물에 닿아서 급격히 식어서 주상절리를 이루었고 그 상태로 그 위를 다른 용암이 두 번 덮쳐서 지금의 구조가 생긴 것이다. 이는 암석과 암석 사이에 경계가 있다는 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줄 잘 타는 재인이 줄이 끊어져 죽은 연천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古文里)와 재인폭포(才人瀑布)에는 줄을 잘 타는 재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재인의 아내가 자신을 탐내는 사또의 코를 깨물어 코문리라 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고문리로 변했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반대로 예쁜 아내를 둔 마을 사람이 재인과 내기를 했다가 마음이 다급해져 줄을 끊은 이야기이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古文里)와 재인폭포(才人瀑布)는 줄을 잘 타는 재인의 죽음과 관련된 지명이다. 보개산과 한탄강이 어우러지는 빼어난 경관으로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재인폭포는 높이 18.5m, 폭 30m의 폭포로, 연천군의 대표적인 명승지로 이름나 있다. 재인과 관련한 이야기는 두 가지가 전해진다.
사또가 재인의 아내를 뺏으려다 코를 물리다
옛날 이곳에 줄타기를 잘하는 재인(才人)이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재인의 아내를 탐한 고을 사또가 계략을 꾸몄다. 폭포 아래에서 잔치를 베풀고, 폭포 양옆으로 줄을 매고 재인으로 하여금 줄을 타게 한 후 재인이 줄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사또가 미리 숨겨놓은 부하가 줄을 끊도록 하였다. 사또의 계략대로 재인은 줄을 타다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뒤 사또는 재인의 아내를 불러 수청을 들도록 하였다. 재인의 아내는 사또가 남편을 죽게 만들고 자신을 탐하는 것을 알고, 수청을 드는 척하다가 사또의 코를 힘껏 꽉 깨물었다. 그 후부터 재인이 줄을 탔던 폭포를 재인폭포라 하고, 그의 아내가 사또의 코를 문 마을이라 해서 코문리라 했다. 코문리는 세월이 지나면서 고문리로 변하였다.
반대로 아내를 뺏기게 된 마을 사람이 줄을 끊다
조선조 영조 때에 편찬된 『차지도서』(1765)의 연천현 산천조에 전하는 내용이다. 재인폭포는 연천 관아에서 동쪽으로 20리 거리인 원적사(圓寂寺)에 있다. 양쪽으로 벽이 우뚝 서 있고 수십 길 높이에서 물이 흘러 떨어진다. 옛날에 줄을 잘 타는 재인이 있었다. 하루는 마을 사람과 재인이 폭포 아래에서 즐겁게 놀았다. 마을사람 중 아내가 몹시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재인은 폭포 양쪽에 줄을 매고 건너갈 수 있다고 장담을 했다. 그것을 믿지 못한 마을사람은 자기 아내를 걸고 내기를 했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줄을 매고 외줄을 타기 시작했다. 춤과 기교를 부려가며 줄을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평지를 지나가는 듯했다. 이에 아내를 뺏기게 된 마을 사람은 마음이 다급해서 줄을 끊었다. 재인은 줄에서 떨어져 수십 길 아래 구렁에 부딪혀 죽었다. 이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부르게 되었다.
재인폭포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