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가능성에 대한 조금 더 확고한 믿음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3월부터 인디고 서원은 두 개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인디고 서원이 지난 9년간 발굴하고 창조해온
전 지구적 차원의 다양한 인문·문화·예술 교육 컨텐츠를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부산의 청소년, 청년과 앞으로 1년 동안 진행할 교육사업입니다.
청소년 인문학 멘토링 프로그램 ‘운명의 주인, 영혼의 선장’과
청년 인문역량 강화 프로그램 ‘부산 청년, 시대를 품다’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두 사업의 신청자를 모집하였는데,
보다 진정성 있고 밀도 있는 시간들을 위해
꽤나 오랜 시간 고민해야 할 질문을 담은 신청서 작성을 요청하였습니다.
홍보기간이 짧은 데 비해 조금은 까다로운 신청서인 만큼,
사실 저희는 행사 하루 전까지 모집인원이 다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
야심차게 기획한 행사이기에 물거품이 될까 조바심이 났었지요.
하지만 예상을 엎고 각각의 행사에는 모집정원보다 2배, 3배의 신청자가 지원했습니다.
모두 주어진 질문에 성실하고 진중히 답변한 신청서를 제출해 주셨습니다.
선발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 만큼 말이지요.
인문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인문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인문학 열풍이 분다고 하는데, 과연 정말 그러한가, 늘 의문이었습니다.
인디고 서원의 여러 정기 행사들에 대한 문의자나 참여자는 큰 변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달 평균 가구당
책 구입비용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탓에 크고 작은 출판사 할 것 없이 새로운 책을 기획하고 발행하기가 어려워졌으며,
실제로 작년과 대비해서 신간 발행종수는 약 10% 감소, 발행부수는 20%나 감소했습니다.
전자책의 등장이 이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고 진단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낙관적인 생각입니다.
전자책 사용자는 13%에 불과하고, 이 중 대부분이 성인물이거나 만화라는 점,
그리고 그 중 절반 이상이 판촉을 위한 무료 배포용 도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말입니다.
심각한 문제 상황입니다. 출판물이 적어진다는 것은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로 세상을 바라볼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며,
책 읽는 사람의 감소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빈곤을 야기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월에 일어났던 ‘알라딘 사건’를 떠올려 봅니다.
유명무실해진 도서정가제를 살리기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연초에 국회에서 발의되었고, 이는 지역서점의 부활,
양질의 출판문화 형성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대 온라인 서점 중 하나인 알라딘은
이에 적극 반대하는 성명과 반대 지지자 서명을 받는 코너를
홈페이지 전면에 게재하는 행동을 취했지요.
반대 성명의 논점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책을 더 사보고 싶어도 못사는”
소비자들을 위한다는 것이었고, 도서할인을 불가능하게 하면
책 판매율이 더욱 떨어질 것에 분노하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책 읽는 사람들이 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우려이며
그것을 막고자 함이지만, 결코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책을 단순히 판매할 물건으로밖에 보지 않는 이 시각은,
오역이 즐비한 번역서, 짜깁기 식의 유명 저자의 개정 단행본 등을
50%에 가까운 할인율로 파는 전략이 판을 치게 했고,
그러한 ‘저질 상품’이 대부분의 매대를 차지하는 바람에
오히려 양질의 책이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자리도 잡지 못하도록 해왔습니다.
책을 판매하는 기업이 좋은 책에 대한 고민은 못할망정,
앞장서서 좋은 책이 서 있을 자리를 없애고 있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향력 있는 출판관련자들의 거센 항의와
주요 출판사들을 필두로 한 다수 출판사의 거래정지라는 강한 대응에
알라딘은 결국 사과문을 게재하고 다시 협의를 도모하는 것으로
이 사태는 막을 내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알라딘이 실시한 도서정가제 반대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의 수가 그 반대보다 10배 가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노했습니다. 책을 저렴하게 구매할 권리가 있는 ‘소비자’로서 말입니다.
인문학 열풍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인문 서적이 많이 팔리고 인문학 강의가 연일 만석인 것이 인문학 열풍입니까?
저는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이 열풍을 단호히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 이유가 자본이 유일하게 우리 삶의 지표가 된 것에 대한 염증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 응당 염증을 느껴야 합니다.
돈을 내면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것, 그 순간만 즐기거나 잠시의 위안을 얻으며
소비하는 것으로 인문학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인문학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도록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하는 학문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우리 시대의 인문학을 다시 살피는 것입니다.
<인디고잉> 38호에서 함께 읽은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는
‘외상 후 성장’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신적 충격 이후 비슷한 현상에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외상 후 장애’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 외상 후 성장은 다소 생소한 개념입니다.
외상 후 성장이란 강력한 외부의 충격으로 상실을 경험한 이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전보다 나은 쪽으로 재건하려는 변화를 뜻합니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현상이며,
대체로 자신들의 능력과 힘을 새롭게 평가하여 올바르게 활용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혹시 외상 후 장애라는 말 속에 갇혀 산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비인간적인 입시제도, 지나친 경쟁구도, 무한 이기주의 속에서
우리가 겪는 정신적 외상은 분명 고통스럽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지금 젊은 세대들이 겪는 공허함과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대적 상처입니다.
하지만 그를 장애로 안고 살 것인가, 이를 딛고 더 나은 삶을 재건할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이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무자비한 학교 폭력으로,
각박한 입시제도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죽음을 택하는 가슴 아픈 고통이 더 이상 없기를,
가난하다는 이유로 천대받고 짓밟혀야 하는 절망적인 서러움이 없기를,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 때문에 수많은 생명들이
이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 위기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들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최선의 선택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봄입니다. 한 송이의 꽃으로 봄이 오는 것은 불가능하듯,
한 송이의 꽃이 꺾여도 봄은 반드시 옵니다.
<인디고잉> 38호가 여러분에게 한 송이의 꽃이기보다
여러분이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봄비이자 햇살이기를 꿈꿉니다.
인문학을 통해 공동체적 가치에 눈뜬 자로,
사랑을 베푸는 장발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인디고잉>이 앞으로도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더 성실히 글을 읽고 쓰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낼 수 있도록,
<인디고잉>의 독자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 꿈꾸지 않는 자는 청년이 아니다
청소년 칼럼 그리고, 봄은 온다 · 김유진
I'm Dreaming 별과 우주를 사색하는 밤 · 이창희, 정다은
시가, 내게로 왔다 우리는 새들보다 자유롭다 · 이한결
한 줄 사전 오늘날의 장발장은 누구인가요? · 장효진
여러분은 어떤 ‘피플’이 되고 싶으신가요? · 이혜진
★ 나를 만나다
나를 찾아가다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 · 윤수아, 성지민, 이다빈, 김상원
내가 만난 영원한 소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어느 시대의 어떤 사람 · 이한결
박용준의 아포리즘 불가능한 용서 · 박용준
★ 세계와 소통하다
R통신 눈먼 자들의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권영경, 하연재, 서대범, 정성엽, 이혜진
폐허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 박서영, 이다빈, 최진하, 김유진
윤리적 경제와 세계 평화의 구조 · 인디고 연구소 InK
s통신 공존, 새로운 삶의 방식 · 하연신, 이지수, 임수지
사서함 B612호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 2012년의 힘겨운 선물들 · 레베카 솔닛
★ 행복한 책읽기
인디고, 책을 말하다 인디고 아이들, 교육 재판을 열다 - 독특한 색깔을 가진 꿈을 위하여 · 고광민, 김은비, 윤수아, 이창희
키워드, 시대와 소통하다 <레 미제라블> 열풍으로 읽는 시대적 과제 · 김유진, 백예빈, 서대범, 이한결, 정성엽
제63회 주제와 변주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 · 김기환, 백예빈
큰 물음 작은 철학 민주주의는 삶의 양식이다 · 장은주
시詩, 말言의 사원寺에서 즐겁게 소통하기, 그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세상을 바꾸는 행동 · 유영종
PAPERS 특집 평화와 우호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길 · 윤미경
PAPERS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읽고
- ‘피리 부는 사나이’와 역사 · 유지연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를 읽고
-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 · 배희정
INDIGO+ing 38호 함께 읽은 책들
★ 더불어 실천하다
2013 정세청세 2013년, 청소년 인문 혁명의 장에 전국 20개 도시 청소년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월드체인징 식탁 밖 세계 상상하기 · 임수지, 하연재
에코토피아 뉴스 똑똑한 채식하기 · 김은비
십시百반 만주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세대의 희망 만들기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진실을 향해, 신화를 깨라 · 고광민, 김은비, 서대범
★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디고 시네마 파라디소 _ 더 헌트 진실을 볼 수 없는 ‘눈’ · 고민지
공감 능력 키우기 의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 · 최진하
우리들의 순간 Please Open Your Eyes · 안소현
쪽빛 글씨 가끔은 이런 날도 있겠지 · 박진철
인디고 러브레터 가능성에 대한 조금 더 확고한 믿음 · 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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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날이오면(서울대학교 앞), 길담서원(통인동), 더 북스(소격동), 이음아트(대학로)
대전 계룡문고, 진주 진주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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