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젯밤 11시 30분에 파키스탄 카라치 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잔 후 오전 6시 20분에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방콕에서 생방송을 두 번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공항을 나와 곧장 방송을 하기 위해 마련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황소연 보살님이 공항에서 맞이해 주었고, 준비해 준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원고 교정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방콕 시간으로 오전 8시,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에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태국의 방콕에서 방을 하나 빌려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3일 전에 서울을 출발해서 태국을 거쳐 중동의 카타르 도하를 지나 파키스탄 카라치에 도착했습니다. 꼬박 34시간이 걸렸습니다. 할인 비행기를 타고 두 곳을 경유하다 보니까 긴 여행이었습니다.
첫째 날은 파키스탄에서 홍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샘플로 지은 집을 점검하는 일을 했고요. 둘째 날은 수재민들 1,000 가구에 식량을 나눠준 후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서 200개의 핸드펌프를 설치했는데 그 현장을 점검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밤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도착했고, 오늘 저녁에 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계속 비행기에서만 잠을 자는 일정이었습니다. 방콕은 중간 경유지인데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에 공항에서 나와 불교대학생 여러분들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웃음)
불교대학 학생들은 지난 4월에 입학한 후 실천적 불교사상 과목에 대한 공부를 마쳤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부처님의 일생 과목을 공부하게 되는데요. 스님은 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부터 2,600년 전에 인도 대륙의 히말라야 산기슭에 ‘카필라바스투’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가하여 ‘왜 사람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가?’ 하고 탐구해서 괴로움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 이르도록 안내했습니다. 그 가르침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불교 경전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가르침을 따르면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삶에 대해서 공부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왕자로 태어났지만 왕위를 버리고 ‘왜 사람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가?’ 하는 주제에 대해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분은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된 뒤에도 부와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빔비시라 왕이 본인에게 더 큰 나라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을 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입 안에 있는 가래를 뱉았습니다. 남이 뱉은 가래가 내가 뱉은 가래보다 더 크다고 해서 그것을 주워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나라도 필요 없다고 버렸는데, 왜 남의 나라를 받아서 통치를 하겠습니까?’
이렇게 입장이 아주 분명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처럼 선진사회라고 말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옛날 왕의 생활에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뇌가 많습니다. 한국 사회는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고 출산율이 제일 낮습니다. 자살률이 제일 높다는 것은 현재가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이고, 출산율이 제일 낮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지나친 소비를 하지 않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
이것은 이미 붓다가 2,600년 전에 경험한 겁니다. 왕자로 태어나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늘 고뇌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뜻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신에게 원하는 바를 이뤄달라고 빕니다. 그러나 고타마 싯다르타는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조건에 있었는데도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신에게 원하는 바를 빌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는 ‘왜 인간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깊이 탐구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믿음이 중심이 아니라 탐구가 중심입니다.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2600년 전에 살았던 한 젊은이였지만 인류문화사적 관점에서 접근을 하면 ‘오늘날 한 젊은이가 어떻게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세상의 불평등을 해소해 나갈 것인가?’ 하는 지금의 문제로 우리가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 과목은 행복과 자유로 가는 길을 처음 발견하고, 스스로 그 길을 가고, 많은 사람을 그 길로 안내한 구체적인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지금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왜 한국 사람도 아니고 인도 사람을 공부하느냐?’, ‘왜 요즘 사람도 아니고 옛날 사람을 공부하느냐?’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는데, 공부를 한번 해보시면 정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쓰는 게 잘 사는 것이다’ 하는 생각을 갖고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5백여 년 동안 줄달음쳐 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기후 변화에 직면해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소비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지표로 잘 산다는 것을 결정하는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지금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발행하는 기후 위기라면 우리가 적응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기후 위기는 우리가 스스로 초래한 일이기 때문에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 또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나친 소비를 하지 않고도 인간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라고 하는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가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이지 불교 신자를 많이 만들기 위해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오계를 지키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흥청망청 소비하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오계를 지키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행은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내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으니 집에서 매일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든 말든 나 홀로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것에 대해 말하면 가족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애초에 아이에게 잘못된 습관이 형성되지 않도록 하는 것조차 제 욕심일까요? 남편이 흥청망청 소비하는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저의 사로잡힘일까요?”
“네, 그것도 사로잡힘입니다. ‘아끼는 것은 옳고, 펑펑 쓰자는 것은 틀렸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아끼자는 사람도 있고, 펑펑 쓰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이렇게 인정해야 됩니다. ‘혼자 살아야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스님처럼 혼자 살면 되고, ‘둘이 살아도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혼해서 살면 됩니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게 아니고 서로 다를 뿐입니다. 다만 나는 그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나는 스님이 되었으니 잘 사는 것이고, 여러분들은 결혼을 했으니까 못 사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절대로 안 하잖아요.
어떤 인생의 길을 선택하든 그건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내 자유가 남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이익이 남의 이익을 침해해서도 안 됩니다. 자제하지 못하고 남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면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계율인 오계가 나온 것입니다.
첫째, 내가 어떻게 살든 그건 내 자유지만 남의 생존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즉, 남을 죽이거나 때려서는 안 됩니다.
둘째, 내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남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즉,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쳐서는 안 됩니다.
셋째, 내가 어떤 즐거움을 누리든 그건 내 자유이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즉,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내 자유이지만 말로 남을 괴롭히거나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즉, 욕설을 하거나 사기를 쳐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내가 무엇을 먹든 그건 내 자유이지만 먹고 취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즉, 술이나 마약 등 중독성 물질을 섭취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라면 최소한 이 다섯 가지는 지켜야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지키면 좋지만 그 외에는 선택사항입니다. 조금 더 내가 할 수 있다면 세 가지를 더 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즉, 소비를 늘이지 말아야 해요.
둘째, 내가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겸손해야 합니다. 즉,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해요.
셋째, 쾌락을 너무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더라도 쾌락에 빠지게 되면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기가 쉽습니다.
오계를 지킬 뿐 아니라 이 세 가지 덕목을 실천하면 머리를 길러도 법사라고 불리거나 훌륭한 사람이라고 존경받게 됩니다. 오계에 이 세 가지를 더 해서 여덟 가지 계율인 ‘팔계’라고 합니다.
오계와 팔계는 2600년 전에 생긴 겁니다. 현대에는 계율의 의미를 조금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다섯 가지 계율을 18가지로 세분화했고, 여덟 가지 계율은 40가지로 세분화해서 지키도록 하고 있어요. 그중에는 가능하면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생활하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나오면 반드시 분리수거를 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불교대학을 다니고 있으니까 그런 계율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남편은 불교대학을 안 다니잖아요. 그러니 자신의 관점에서 ‘당신들이 잘못했다’ 하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남에게 요구하지 말고 나만 잘하면 돼요. 그들은 펑펑 쓰더라도 나는 검소하게 생활하면 됩니다. ‘실컷 아껴놓으니 쟤네들이 다 쓰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같이 펑펑 쓰는 것보다는 나만이라도 덜 쓰는 것이 낫죠. 같이 쓰레기를 많이 내놓는 것보다는 나만이라도 덜 내놓는 것이 낫습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모습을 배우게 되지 않느냐고 걱정할 수가 있는데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내가 불교대학 안 다니고 이런 공부를 안 했으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아빠를 따라 하는 것 같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엄마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제일 많이 줍니다. 그러니 우선 나부터 계율을 잘 실천해 나가면 돼요. 짜증 내고 싸우기보다는 나부터 실천을 해보는 겁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가끔 남편에게도 ‘이러면 어떻겠어요?’ 하고 부드럽게 의견을 한번 개진해 보면 돼요. 남편이 오케이 하면 다행이고, ‘안 돼’ 하면 ‘알았어’ 하고 내버려 두세요. 또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 하고 제안을 해보세요. 그때 오케이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그래, 알았어요’ 하면 됩니다. 이렇게 꾸준히 시도를 해보면 되지 그것 때문에 화내거나 짜증내거나 틀렸다고 말하면 안 돼요.
그들은 범죄인이 아니고 그냥 보통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잖아요. 스님의 즉문즉설 내용 중에 재미있는 걸 메시지로 보내주면서 그들의 시각을 조금씩 호의적으로 바꾸어 나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남편부터 먼저 질문자를 따라 할 수도 있겠죠. 안 그런다고 화내고 짜증내면 절대로 안 따라 합니다. 왜냐하면 따라 하면 질문자한테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 지려고 끝까지 일부러 어깃장을 놓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시간을 두고 나부터 실천해서 모범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부드럽게 권유하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것은 저한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서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지키지 않은 오계가 저한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한테 욕을 한다거나, 저를 때린다거나, 성추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때리면 고소를 해야지요. 폭력은 오계를 넘어서서 법률적으로 범죄에 해당합니다. 성추행도 범죄에 해당합니다. 욕설도 지나치면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범죄가 됩니다. 그런 경우에는 한 번 자제할 것을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고소를 해야지요. 그런 행위는 법에 저촉됩니다. 예전에는 자기 아들이라고 마음대로 때리고, 자기 아내라고 마음대로 때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가정폭력 범죄에 들어갑니다.
폭력을 행사한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라고 하더라도 신고를 해야 해요. 그러나 죄를 지어도 내 남편이니까 구치소에 면회는 가줘야겠지요. 하지만 절대로 고소를 취하하면 안 됩니다. 내 남편이라도 범죄행위는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범죄도 막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냥 맞고 살라는 것이 아니에요.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받지 말고 자신의 권리는 지키라는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오전에 못다 한 원고 교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방송까지 점심을 먹고 한국과 소통하며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방콕 시간 12시,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에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청춘톡톡’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파키스탄에 구호활동을 다녀온 소식을 자세하게 전해준 후 청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