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6월 3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 우리 인생에게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시 90:3).
우리의 실존은 과연 티끌이요 먼지입니다.
뭐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을 높이지만 우리가 돌아갈 자리는 없음이요 nothing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흙으로 지었는데 그 흙은 곧 먼지요 티끌입니다.
그것은 거창한 흙이 아니라 죽은 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내가 돌아가야 할 자리임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더 낮아지고 겸손하여 죽은 흙의 자리로까지 내려가게 하소서.
나를 드러내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자기주장의지 또한 못 박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 주님 앞에서 납작 엎드리는 자 되게 하옵소서.
이런 날 주님은 당신의 보혈로 나를 씻어 세워주셨으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주의 은혜로만 일어서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벧전 1:22-2:10
제목 : 너희가 거듭난 것은...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 나의 묵상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하게 된 자들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거짓 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성도들은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거듭난 것 다시 말하면 위로부터 난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썩어질 씨 곧 육체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씨인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이는 이사야 40:6-8절의 내용처럼 모든 육체와 육체의 영광은 풀과 풀의 꽃처럼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하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란 곧 성도들이 전해 들은 복음이다.
거듭난 성도의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거듭났기에 모든 악의 기만 외식 시기 각종 비방 등을 그쳐야 한다.
그리고 갓난 아기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할 것이다.
그래야만 성도는 온전한 구언에 이르기까지 자라갈 수 있다.
진정으로 주의 자비하심을 맛본 성도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 돌 곧 살아 있는 돌이시다.
세상 사람은 이 돌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돌을 선택하신 머릿돌이시다.
그러니 산 돌이신 예수께로 나아가라.
또한 성도들 역시 산 돌로서 신령한 집을 짓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
이사야 28:16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이 택하셔서 시온데 두신 보배로운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시편 118:22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는 믿지 않는 자에게는 마치 건축자들이 버린 돌과 같지만 믿는 자에게는 보배로운 모퉁잇돌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과 같다.
하지만 성도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성도들을 부르신 것은 어둠으로부터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당신의 덕을 알리게 하기 위함이다.
신약의 성도들은 전에는 백성이 아닌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이며,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들이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삶이 바뀌어야 한다.
전에는 악과 거짓을 일삼던 사람이 이제는 그 악과 거짓을 버린다.
전에는 외식하며 위선을 행하고 시기와 질투에 사로 잡혀 남을 비방하던 사람이 이제는 남들 보기에 바보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 보이는 자가 바로 거듭난 자, 즉 위로부터 태어난 생명을 가진 자의 모습이다.
어린 아이들은 돌발적인 일이 일어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그렇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은 일이 생기면 엄마의 품으로 뛰어 들어 자신을 그 속에 파묻어 자신이 없어져 버린다.
엄마 품이 자신의 가장 안전한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도 아버지의 품이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바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산 돌, 즉 살아있는 돌이시다.
세상 사람들은 이 돌을 쓸모없다고 버렸으나 하나님은 이 돌을 가장 존귀하게 여기시며 보배로운 돌로 선택하셨다.
따라서 우리도 이 산 돌과 같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또한 거룩한 성전에서 거룩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으실 것이다.
산 돌이신 주님으로 인하여 어떤 이는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그 돌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세위지기도 한다.
그것은 이미 이사야 28:16절에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택하신 족속과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어두운 흑암의 세력에 속하였던 우리를 건져내셔서 우리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빛 가운데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던 빛은 다름 아닌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심으로써 세상으로 하여금 놀랍게 하셨다.
이전에는 흑암의 권세 아래 놓여서 종 되었던 자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고, 이전에는 주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던 자를 은혜와 긍휼을 입어 주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다.
나는 거듭남, 곧 창세전 또는 만물 위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을 전혀 알지 못했던 자이다.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였다.
오늘 본문의 9절 말씀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좋아서 자주보고 암송도 했지만, 그 의미를 잘 알지는 못하였다.
그저 그 언어가 주는 매력에 빠졌을 뿐이다.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 신령한 집 곧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 택한 족속이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빛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나는 땅의 것, 만물 안의 것에만 치심하며 살던 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당연한 것은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는 것인데 나는 그 거듭남이 무슨 방언을 하고 성령의 특별한 체험을 해야만 거듭나는 것인 줄 오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크게 오해했던 말씀이 바로 6절 말씀이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지극히 현세적으로 이해하여 예수 잘 믿으면 이 땅에서 남들 보기에 보란 듯하게 살아 결코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예수 믿고 이 땅 위에서 잘 되고 잘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 내가 가려고 하는 길마다 어찌 그렇게 안 되고 막히기만 하던지.....
대학에 떨어지고, 취업을 했는데 적응을 잘 하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않은 데서 사고를 당하여 수술을 하고 휴학을 하는 등 남 보기에 부끄러운 일만 계속해서 일어났다.
그런 일은 신학을 하기 전, 그야말로 세상 일에 빠져 살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신학을 하고 목사의 길로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다.
교회에 여러 가지 위기가 닥쳐서 깨어질 것만 같은 상황이나, 암에 걸려 고통 가운데 빠진 일, 교회 개척을 해서 잘 나가다가도 한 번씩 성도들이 쑥 빠져나가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그런 일을 수습하느라 또 기진맥진하다가 탈진하기를 반복하였다.
예수 잘 믿으면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말씀대로 되어 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6절 말씀을 완전히 오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를 복음을 듣고 나서야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처럼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세상적이며 이 땅, 즉 만물 안에 갇혀서 사는 자였다.
그야말로 흑암에 갇혀서 그것에 종노릇하는 자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나를 주님은 복음을 통하여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기이한 빛이 다름 아닌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인 것을 말이다.
게다가 예수 잘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세상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처럼 나의 생각의 중심이 항상 만물 안 곧 세상이었다.
세상에서 잘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란 듯한 삶을 사는 것, 곧 3A(Appearance, Achivement, Affluence)의 삶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최고의 삶이었다.
남들 보기에 보란 듯하고, 하는 일마다 성공하여, 부요와 윤택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 나의 꿈이요 소망이었다.
그것은 신학을 하기 이전이나 이후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목사가 되어서도 목회를 잘해서 유명한 목사, 남들에게 인기 있는 목사, 큰 교회 목사, 좋은 차를 굴리면서 어깨에 힘주는 그런 목사가 되는 것이 바로 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 계기가 바로 복음이었다.
하는 일이나 꾸던 꿈마다 다 수포로 돌아가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자존감도 다 무너지고 아무런 소망도 없어 정말 다 내려놓고 아프리카로 선교나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선교는 아무나 하나?
나는 그렇게 선교를 하러 가겠다는 것이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도피처로 찾은 것이었다.
물론 나이도 있고 선교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기 때문에 내가 주도적으로 선교를 하는 것은 아니고 선교사들을 돕는 서브 역할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야말로 선교사들께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정말 죄송스럽고 미안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후로 이런 생각을 접게 되었고 오직 복음을 통하여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는 것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창세전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크게 오해하면서 살았던 것을 인정한다.
창세전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고 그런 나는 예수를 잘 믿으면서 이 땅에서 호가호위하며 살 수 있고 죽어서는 당연히 천국에 가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오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성경을 보는 눈이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남이라는 말이 어떤 형이상학적이고 먼 나라의 말이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운 말씀을 통하여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그동안 성경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한심하고 무식하기 그지없는 나를 돌아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인가?
복음, 생명, 영생, 창세전, 만물 위, 거듭남, 성령, 말씀과 같은 언어들이 이전에는 나에게 관념적으로만 들렸지만 이제는 가장 사실적으로 들릴 뿐 아니라 그 말씀이 바로 진리임을 알기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날 향하신 주님의 구원 계획과 은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며 그저 회개와 함께 입을 가릴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날 향하신 주님의 구원 계획은 창세전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창세전의 세계를 내게서 먼 나라로만 생각하여 관념적으로만 알고 나와는 상관없는 하나의 지식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무식하고 한심한 죄인에게도 주님은 복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하나하나 깨닫게 하셨고 이제는 내가 마치 인공위성을 실은 로켓이 땅을 박차고 우주를 향하여 날아 올라가듯 나의 믿음의 수준이 만물 안에서 만물 위로 쏘아 올려졌음을 압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애벌레처럼 땅 위의 것에만 치심하지 않고 공중에 날아올라 날마다 말씀의 꿀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날마다 여기서부터 그 말씀의 꿀과 함께 누리는 삶이 바로 영생임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동안 나의 삶의 여러 갈랫길들을 다 막으시면서 결국 막다른 골목에서 깨닫게 하심이 바로 영생이요,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훨훨 그 나라를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과 그 나라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요, 그 나라가 나의 소유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땅에서 사는 나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기 위하여 예수 잘 믿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날 죄에서 건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