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순간 행복하다. 언젠가부터 이 감정의 뿌리는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를 생각하다가 찾았다. 한 겨울에 수도꼭지 손잡이만 올리면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것과 갈라져 피가 나던 내 손바닥이 나아서 물이 닿아도 따갑고 쓰리지 않다는 것에 닿았다. 언감생심 고무장갑만 해도 고마운데 상시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설거지도, 부엌 일도 싫지 않다. 사라진 흑 역사가 이후의 삶을 감사로 도배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네 역사 자체가 흑 역사를 바탕에 깔고 있는데, 버린 건가 잊은 건가 모르겠지만 감사가 적고 당연한 듯 살아서 못내 아쉽다.
언제나 찬물에 손 넣는 것은 어머니 몫이었는데 결혼 후 어느 해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하면서 수돗가에서 겪은 손시림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어머니의 아직도 가시지 않은 아리고 시린 산 역사이지 않은가.
주택에 길게 늘어진 빨랫줄에는 8식구 빨래가 얼었다 녹으면서 마르곤 했지. 아직 아파트에 살아계신 어머니의 베란다에 빨랫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도 더 이상 흑 역사는 아니다. 한 두 가지 손 빨래한 속 옷가지가 종종 널려 있다.
시인의 어머니가 틀어놓은 연속극 한 장면에 공감하여 올해로 98세가 되신 어머니를 만나 올 때까지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때는 왜그리도 추었던고" 하시는 어머니의 산 음성도 아득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