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지대로 살아지지 않아 번뇌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나 나처럼 다양하게 관심사가 퍼져 있는 사람에게는
집중 몰입하는 훈련이 되지 않고는 진득하게 자리잡고 앉아 있기도 어려운 성향을 가졌다.
그러나 하느님은 나를 억수로 사랑하시는지 나의 성향과 정반대의 직업을 가지게 이끄신 다음 나를 조련하셨다.
의류디자이너의 길을 가려다가 틀어서 편집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면서부터다.
한 컷당 길게는 3,4시간씩 걸리는데 팔목의 힘을 조율하여 흔들림 없이고른 선을 뽑으려면
움직이고 흔들리고 나면 선의 균형이 깨진다.
궁둥이가 들썩거려도 마냥 앉아서 끝을 내야 한다.
이 때 나의 왼팔 쓰기가 자라서 양팔 쓰기자 처럼 성향도 두루 원먄해졌다.
회사의 2세 사장이 편집부에 투입 되면서 나는 더 편했다.
비교적 성실한 사람은 바꿀 게 없어서 무리와 합류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 사장이 자꾸 말을 걸고 나 따라 책을 읽고 결재를 받으러 가면 그 책 이야기만 하곤 했다.
애인이 있냐고 묻기에 미국에 있다고 둘러댔다.
회사에서는 일만 해야 마음이 편해서 잘라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결혼한다는소식을 접했다.
그의 아내가 천주교 신자인데 개신교 집안으로 들어간다기에 나는 그냥 영성체를 못한다는 게 아쉬울 것같아서
내가 성체를 영하면서 그 여인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청했다.
얼마나 했을까 생각나면 하고 아니면 안하고 하다가 그쳤지만 훗날 아주 특별한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의 얼굴이 까매진데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샤갈의 그림처럼 공중에 떠 나를 쳐다보는 거다.
꿈을 깨어 생각하니 괴기스럽기도 하여 가까이 지내는 전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얼굴이 까맣고 자기가 만들어 입은 웨딩드레스를 입혀달라고 하여 그 옷을 입고 갔다는 이야기다.
내막을 모르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책에선가 영혼은 꿈에 방문하기도 한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진정한 기도가 그녀에게 가 닿았을까?
가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온 것일까.
아무튼 영혼의 실재를 믿는 계기가 확실해졌고 그 날 이후 나는 진심이 아니면 헛 사는 것이란 판단이 섰다.
차라리 침묵이 낫고 그 침묵도 걸러셔 저장할 내용이 아니면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그것이 천주교에서 말하는 고백성사의 효과로 인식되었다.
그렇게 살도록 길을 들이니까 때로는 외롭기도 한데 참 평안하다.
전국구 시며방에 산 세월을 투명하게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열어본다.
립서비스 빈말 헛칭찬 그런 것 다 소용없다. 날아가는 검불이다.
죄성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듣기 좋은 말로 어장관리 하지 말고 장점이 진심으로 보이거든
그 말 아끼지 않고 피드백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한 말은 영혼에 무늬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