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100개에 가까워지면 코칭스태프들 교체 고심 예전엔 120개 이상 흔해 분업화로 투구 크게 줄어
지난 7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한화의 경기. 프로야구 최초로 4경기 연속 완봉승에 도전하던 송승준(롯데)은 1―5로 뒤진 7회초 2아웃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3회 2점을 내줬기 때문에 기록 작성은 일찌감치 물 건너간 상황이기도 했지만, 결정적 교체 이유는 송승준의 투구 수였다. 이날 송승준은 102개의 공을 던졌다.
'100'은 선발투수에게 '마법의 숫자'다. 투구수가 100개에 가까워지면 코칭스태프들은 '투수의 체력이나 공의 위력이 괜찮을까'하는 걱정에 부산을 떨기 시작한다. 투수 본인은 '더 던지다가 괜히 부상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심지어 관중도 '이젠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몸을 푸는 구원투수들을 살핀다. 미국 스포츠전문 채널 ESPN도 최근 "선발 투수가 경기를 끝내던 시절은 끝났다. 지금은 '투구수 100'의 시대"라고 보도했다.
■선수도 감독도 100개면 OK
20년 전 국내 프로야구나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120개 이상 공을 던지는 '강철 어깨'를 흔히 볼 수 있었다. '강속구의 대명사' 놀란 라이언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던 1989년 42세의 나이에도 32경기에 선발로 나와 평균 127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해태 선동열은 1987년 5월 16일 롯데전에서 무려 232개의 공을 던진 적도 있다.
그러나 요즘 '에이스급' 투수들은 한 경기에 100개를 크게 넘는 숫자의 공을 던지는 경우가 드물다. 올 시즌 다승 선두(12승)인 SK 김광현의 평균 투구수는 107개이고, 11승을 거둔 이현승(히어로즈)이나 송승준(롯데)은 경기당 95개의 공을 던지고 있다.
올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중 가장 투구수가 많은 저스틴 벌렌더(디트로이트 타이거스)도 평균 109개. 1988년 메이저리그는 120개가 넘는 공을 던진 선발투수가 전체 12~13%에 달했지만 2008년엔 1.5%, 2009년엔 1.9%로 급감했다. 대신 투구수 96~105개 사이에서 교체되는 경우는 18.5%(1988년)에서 32%(2008년)로 크게 늘었다.
■선수보호, 투수 분업화의 영향
선발투수의 투구수가 줄어든 것은 선수 보호의 이유가 가장 크다. 두산 윤석환 투수코치는 "120개 이상 연투하다가는 선수 어깨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코치는 "과거엔 당장 1승에 급급해 에이스 투수를 혹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선수 생명을 단축시켜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고 설명했다. LG 봉중근은 "요즘 선수들은 투구수 100개가 넘으면 부상 위험만 커질 뿐, 자신에게 이득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도 투구수 '100개'는 의미 있는 '가이드라인'이다. 은승표 코리아정형외과 원장은 "투구수가 많아지면 어깨와 팔꿈치 조직이 미세하게 손상되는데, 100개가 넘어가면 부상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고 말했다. 은 원장은 "선발투수들이 5일 간격으로 등판하는 것도 근육의 피로가 풀리고 손상 부분이 회복되는데 3일 정도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수 분업화'도 선발투수의 투구수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간계투와 마무리투수의 역할이 정확하게 구분되고 중요해지면서 선발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한 것이다. 타자들의 파워와 타격기술이 발전한 것도 투구수 감소에 기여했다. 투수들이 과거보다 더 신중하게 더 힘껏 공을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