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단(試士壇)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 556
문화재 지정 일시 : 1973년 8월 31일, 2021년 11월 19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의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방 과거 시험장.
건립경위
시사단은 본래 1792년(정조 16) 3월에 정조가 이조판서 이만수(李晩秀)에게 명하여 퇴계 이황(李滉)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는 뜻에서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신설하여 안동 지역의 인재를 선발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도산별과는 문과 2인, 진사 2인, 초시 7인, 상격(賞格) 14인을 선발하는 별시(別試)로서 그 과시(科試)가 시사단(試士壇)에서 거행되었다. 창덕궁 후원 마당에서 치르던 과거시험을 지방의 벽지, 그것도 일개 민간서원에 위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시험 참가자가 7,228명이나 되어 도산서원에서 시험을 보지 못하고 시험장을 낙동강변으로 옮겼다. 이 시험에서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이 3,620명이었으며 여기서 시험 본 것은 한양으로 보내어 임금이 친히 급제, 진사, 초시 생원을 11명을 뽑아 시상하였다. 시사단의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 체제공이 지었다. 시사단(試士壇)은 서원에서 실시되었던 특별 과거를 기념하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이다. 도산별과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도산서원에서 도산별시라는 백일장을 열고 있다.
형태
시사단은 나직하고 널찍한 2단의 자연석 돌림상단 위에 세워져 있다. 원래 설단(設壇)만 있었으며 석비는 후에 세운 것이다. 석비는 1796년(정조 20)에 세워졌으나, 지금의 비는 1824년(순조 24)에 비각(碑閣)의 개축과 더불어 고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영의정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다.
비각은 화반(花盤)과 초공(草工)의 새김이 매우 화려한 4면 단칸 팔작집이며, 중방(中枋) 아래는 모두 판벽(板璧)으로 돌려 막아 비바람의 침해를 예방하였다. 겹처마의 사면 추녀 아래에는 팔각 활주(滑柱)를 세워 구성이 견실하다. 내부는 도리 위에 아치 모양으로 장식된 보를 걸었고 그 사이 천장은 장방구(長方區) 소란반자로 치장되었다.
현황
시사단은 강변에 세워져 있었으며, 주변에는 송백림(松栢林)이 무성하였으나, 안동댐 건설로 분천강이 침수되어 수위가 상승하자 원래 위치에서 10m 높이의 석축을 쌓아올려 원형대로 개건하였다. 이 때문에 주위의 송백림은 유지될 수 없었다.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시사단은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별과 시험을 치른 곳이라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서, 정조 때에도 이황의 학문적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말해 준다.
시사단(試士壇)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