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중국에 간 이유를 아십니까?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표적 화가인 김홍도가 중국 당시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사실을 아시나요? 왜 김홍도는 청나라에 갔을까요? 가서 무엇을 보고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종래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 사실에서 우리는 당대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청과 또 그에 버금가게 문명을 일구던 조선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김홍도는 한 명만이 갈 수 있었던 동지사행(冬至使行)의 화원에 정조의 특명으로 추가로 더해져서 갔던 3명의 화원 가운데 하나였다. 김홍도는 수없이 많이 그려졌던 연행도(燕行圖) 가운데 백미에 해당하는 연행도를 그렸을 뿐만 아니라 정조가 구상한 신도시 화성(華城)의 건설에 도움이 될 만한 많은 그림 자료를 확보해 왔던 것이다. 조선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는 조선의 국정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그리고 정조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청나라를 다녀온 것이다. 그가 다녀온 흔적은 수원 용주사 대웅전의 후불탱화에 서양화법으로 반영되어 조선에 서양화법을 전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 저자 소개
정재훈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조선 전기에 유교정치사상이 어떻게 이해, 수용되고 자기화하였는지를 검토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선의 사상과 문화의 정체성과 특성,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현재 경북대학교 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은 『조선전기 유교정치사상연구』(태학사),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신구문화사), 『조선의 국왕과 의례』(지식산업사), 『조선 국왕의 상징』(현암사) 등과 다수의 공저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동호문답』(아카넷), 『동사』(소명출판, 공역), 『대학연의(상)』(서울대 출판문화원), 『대학연의보』(세창출판사) 등이 있다. 이 밖에 「18세기 연행과 정조(正祖)」 등 다수의 논문도 있다.
📜 목차
책을 내면서 5
1. 연행을 통해 세계와 만난 조선 15
1) 18세기 연행록(燕行錄)의 규모와 특징 18
2) 연행록 형식의 변화 24
3) 연행을 통한 변화 30
4) 연행의 영향 35
2. 조선과 청의 세 경계 47
1) 압록강(鴨綠江) 47
(1) 관련 연행록·47/ (2) 자연적·지리적 경계·79
2) 책문(柵門) 90
(1) 관련 연행록·90/ (2) 국경검문소·118
3) 산해관 134
(1) 관련 연행록·134/ (2) 문화적 경계·178
3. 명·청 전쟁의 현장과 재인식 195
1) 요양과 심양 195
(1) 관련 연행록·195/ (2) 요양·229/ (3) 심양·238
2) 광녕성과 영원성 247
(1) 관련 연행록·247/ (2) 광녕성과 영원성·272
4. 조선과 중국의 구분 285
1) 청국인의 대조선관(對朝鮮觀) 285
(1) 관련 연행록·285/ (2) 청국인의 조선관(朝鮮觀)·293
2) 조선인의 대청관(大淸觀) 302
(1) 관련 연행록·302/ (2) 조선인의 대청관·320
3) 화이관(華夷觀) 329
(1) 관련 연행록·329/ (2) 화이관(華夷觀)·356
5. 북경을 새로 보다 373
1) 북경의 명소 373
(1) 관련 연행록·373/ (2) 태화전·태학·오룡정·서산·400
2) 새로운 문물의 창구 414
(1) 관련 연행록·414/ (2) 유리창·흠천감·관상대·천주당·449
참고문헌 459
찾아보기 465
🖋 출판사 서평
연행록(燕行錄)을 연행록으로 해설한 최초의 책!
18세기 조선은 연행록의 황금시대다. 이전까지 주로 시로 기록되던 연행(燕行)이 산문(散文)으로 상세하게 변화한 청을 설명하고 있다. 반복되는 연행의 장소를 연행록과 연행록으로 비교하고 연행록으로 연행록을 해설하였다. 연행록 사이의 오류를 설명하고, 또 비교함으로써 시기에 따른 조선인들의 달라지는 중국에 대한 시각과 문명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이라는 문명이 중국 청 문명을 마주한 대화!!
18세기의 조선은 하나의 문명국으로서 성리학에 입각한 자존의 문명을 만들었다. 세계 최강의 문명을 자랑하는 청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면서, 북벌(北伐)이 아닌 북학(北學)으로의 긴 여정을 만들어 나간 조선의 길을 되돌아본다.
문학작품으로서의 연행록이 아니라 조선 사회를 새롭게 바꾸어 간 연행을 기록한 연행록!!!
조선에서 파견된 연행사들은 청나라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청의 장점을 수용하고, 청에 들어와 있던 서양의 문물까지 수용한다. 국왕 정조는 이를 위해 김홍도와 이명기 등 최고화원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실학의 도시 수원 화성에 반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