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없는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여유롭습니다. 봄비가 불침번을
서고 있는 가로등을 샤워시키는지, 가로등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지
진행형이고 닭 홰치는 소리 대신 낮은 빗소리가 커피를 부르고 있습니다.
노가다도 쉬고 유 관순 누나도 쉴 것 같은 3.1절인데 광화문 집회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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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 강행을 할 모양입니다. 인조를 다룬 사극 ‘꽃들의 전쟁(50회)‘을 3일
동안 몰 빵 했습니다. 장소(민속촌)와 오브제들까지 다 눈에 들어오더이다.
이러다 저 영화 감독하는 건 아닐까요? 하면 좋지 제발 하시라. 누가
말릴까봐 그러시나.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는 1623년 서인의 반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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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군을 폐위하고 즉위합니다. 중립 외교 대신 ‘친명배금정책을 펼쳐
후금(훗날 청)의 침입을 받습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
호란을 겪은 끝에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군신의 예를
올리고 아들(소현세자)을 볼모로 내줍니다. 이 와중에 서인과 남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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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대립, 인조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려고 일으킨' 이괄 의
난'과 '심기원의 모반 사건' 등 나라 안팎으로 계속된 위기에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았습니다. 소용 조씨(김 현주), 세자 빈(송 선미), 한옥
(정 선경), 장렬왕후(고 원희)설 죽(서 이숙), 소용의 라인(이 설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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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조선으로 고 원희가 가장 눈부셨다고 봅니다. F6모두 연기력 긋입니다.
흠이라면 주연인 조 씨는 설정자체가 ‘천박한 요부’인데 그냥 천박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얼굴자체가 코믹스러워 섹시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오스카상에 노미네이트된 ‘미나리‘의 한 예리(한예종,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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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 섹시하더이다. 인조 역(이 덕화)은 방송분량 만으로도 이 덕화가
원탑이고, 침쟁이 이 형익(손 병호)은 국민 감초 역 임 현식이 환생한 줄
알았습니다. 잘합디다. 앞으로 사극에서 이 양반은 시온의 대로가 열렸어요.
장담하는데 손 병호는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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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분량으로만 본다면 이 덕화, 현주, 손 병호가 빅 쓰리일 것입니다.
저는 3일 동안 드라마 보면서 15살 중전인 고 원희를 응원했어요. 물론
고원희를 신인 발굴 명단에 올려놓았으니 다음 사극 ‘황진이’ 캐스팅을
기대해봅니다. 영화 보면서 악의 디테일에 대해 한 수 배웠어요. 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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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비열해야 하고, 인간성은 금물이며 한번 악동을 했으면 끝까지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역사 반영을 얼마만큼 했는지 모르지만 조씨,
인조, 이 자점 중 조 씨 얌네가 가장 악인다워 보였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을 인조 소현세자, 봉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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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의 갈등을 보면서 확실히 믿게 해줬고 내 무조건적인 자식 사랑은
자기애의 표출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역성혁명을 하다 보니 장장
27년의 통치 내내 불안에 떨었을 인조에게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더이다.
효종의 ‘북벌 강화’의 배경이 삼전 도에 있었다는 것도 수확입니다.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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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송 시열은 이 인조 때 인물일 것입니다. 저는 여시가 여우인줄만
알았는데 왕족들을 가까이 모시어 시중들던 여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작전 명 '플라이 투 더 문(Fly to the moon)'을 아시나요? 불법 반출된
문정황후 어보가 조국으로 다시 돌아온데 이어(2017) 이번엔 장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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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가 6·25 전쟁 때 미국으로 도난당했다가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되찾아왔다고 해서 이미 제가 발품을 팔아 확인하고 왔습니다.
실로 감개무량하더이다. 옥새와 어보는 같은 뜻이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단 하나라는 차원에서 옥새는 교지에만 찍는 국새입니다. 옥새의 재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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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과 황금으로 만들기 때문에 옥새라고 하고 황금으로 만들어서 황금
어보라고 명명하는 것으로 압니다. 효의 나라인 조선시대는 왕을 임명
하는 결정을 대비가 했기 때문에 인수대비나 문정황후 같은 권력자가
생겨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대비가 쓰는 결재 용 도장입니다. 왕의 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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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문서를 '교지'라하고 대비의 명을 찍는 관인을 '의지'라고 하더이다.
제가 보니까 미국 놈들이 가져간 어보가 황금어보로 가져가기 딱 좋아요.
고품 중에서 골통품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어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혜 왕후 어보 낙찰가가 10억이었다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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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란 그 나라에 있을 때 가장 가치가 있을 터 뺏으면 강도고 훔치면
도둑입니다. 그래도 족바리들처럼 안 우기고 돌려줬으니 다행입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인조 16년, 장렬왕후 조 씨가 계비로 간택 됐을 때
가례를 올릴 당시 인조는 44세, 장렬왕후는 15세였는데 친정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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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은 어린 막내딸을 시집보내면서 후궁 조 씨와 권력 대립이 걱정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딸(장렬왕후)에게 재차 당부합니다. "국모는 삼가고 또
삼가야 하는 자리다. 이미 소현세자가 있으니 네가 왕자를 낳지 않으면
좋겠구나(부원군)." 저절로 눈물이 나더이다. 이렇게 장렬왕후는 하루아침에
내명부 수장에 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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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0대였던 장렬왕후는 30대의 후궁 조 씨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어요. 후궁 조 씨가 궐의 안주인처럼 행세했고 인조도 후궁 조 씨를
더 아껴 좀처럼 장렬왕후 침전에 들르지 않았습니다. 장렬왕후는 매일
용모를 단정히 한 채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볼 뿐입니다. 후궁 조 씨가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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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중전이 중풍이 들었다'는 모함을 하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 또한
인내합니다. 결국, 장렬왕후는 화병이 들었고 승하하기 전까지 슬하에
자녀도 없이 죽었습니다. 청나라에 간, 조선 사신들의 모습을 그린 작자
미상의 '연행도'와 ‘심양에서 온 편지가 ’창 비’에 실렸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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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표류한 하멜(1653)보다 이전에 소현세자가 야소교(천주학)를 통해
복음을 들었고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는 것도 ,꽃 전쟁‘에서 언급됩니다.
(계속).
2021.3.1.mon. 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