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 질문하신 내용은 상좌불교의 논장에는 없습니다
< 질문 >
저는 수행을 하기보다는 현재 스님의 책을 읽고 또 읽고 합니다. 물론 너무 공감하는 내용인지라 시간 나는 대로 스님의 말씀을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2~3년 전부터 다른 여러 스님들의 법문과 책을 많이 읽어서 알음알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분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밝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책을 보고 난 뒤로는 조금 재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과정이라고 알아차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유식불교에서 논하는 제7식 말라식과 제8식 아뢰야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특히 아뢰야식은 업의 저장창고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 아무리 수행을 해도 아뢰야식에 깊이 저장되어 있는 업을 바꿀 수는 없다고 그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너무 서글프고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되는 데 맞는지요??
지금 글 쓰고 있는 중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의 부족한 믿음을 일깨워 주십시오. 아무튼 정말 멀리 돌고 돌아 왔던 것 같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실천할 수 있다는 행운이 저에게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 () ()
< 답변 >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붓다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경장, 율장, 논장에 전부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을 삼장이라고 합니다. 경장은 붓다께서 45년간 설하신 말씀입니다. 율장은 계율이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논장은 법에 대한 것으로 몸과 마음에 대한 분석입니다. 이러한 분석은 치유에 목적을 둔 것입니다. 논장은 붓다께서 대중들에게 설하지 않으시고 천인과 사리불존자께서 설한 내용이 대중에게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이 말은 수행자가 반드시 논장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붓다께서 말씀하신 논장에서 찾아야 하는데 논장에는 이런 내용의 말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유식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답변을 생략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논장에 이런 말이 없다고 해서 논장이 불완전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후대의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 대승경전과 중관, 유식입니다.
하지만 논장에서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는 하나입니다. 마음의 분류가 89가지 내지는 121가지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마음은 상황에 따른 다양한 마음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순간에 오직 대상을 아는 마음 하나만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기능과 쓰임에 따라 세 가지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첫째, 마음을 찌따(citta)라고 할 때는 한문으로 심(心)을 말합니다. 이때의 쓰임은 마음[心]과 마음의 작용[心所]를 구별할 때 사용합니다.
둘째, 마음을 마노(mano)라고 할 때는 한문으로 의(意)를 말합니다. 이때의 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 있는 의(意)입니다.
셋째, 마음을 윈냐나(vinnana)라고 할 때는 한문으로 식(識)을 말합니다. 이때의 식은 오온의 식(識)으로 대상을 아는 마음입니다.
이곳에서 유식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유식을 배척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명상원은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상좌불교의 가르침에 근거한 삼장과 수행지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붓다의 말씀이 후대에 다양하게 변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저희 명상원에서 다루지 않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불교의 교학은 수행을 위한 것이지 교학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학에 한정되면 저장된 업의 과보는 바꿀 수 없어 슬프다는 견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견해를 뛰어넘으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축적된 성향은 바꿀 수 없지만 노력하면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이러한 개선은 수행을 해서 생기는 통찰지혜로써만이 가능합니다.
끝으로 저는 비구가 아니고 재가자입니다.
묘원 올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01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