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냐 돈이냐
H의 아기가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2.3Kg의 미숙아를 인큐베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에어컨 바람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한 간호사가 산소 펌퍼를 손으로 눌러대고 있다. 아이의 맥박은 분당 160을 오르내린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지 사흘 밖에 안 된 아이가 배꼽을 드러낸 채 껍질 벗겨진 토끼처럼 길게 늘어져 눕혀져있다. 기가 막힌다. 간호사에게 왜 인큐베이터를 사용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하루에 1,400페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귀를 위심했다. 아니 이 아이를 살려내는 것하고 돈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한다. 살려달라고... 그리고 이 무슬림 사람들의 무지를 긍휼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빈다. 아이의 아버지의 눈을 의식하고 살며시 손을 내밀어 아이를 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그 아이를 향하도록 밀어낸다. 그 가족들에게 인큐베이터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과 몰래 기도해 주는 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그 이튿날 다시 방문한 내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미스터 김이 기도를 해 줬기 때문에 아이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을 한다. 무슬림교도가 하는 말이다. 그는 내가 그런 모습으로 한참 아이 옆에 서 있는 행동이 기도인 줄을 알아보았던가 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가 피가 모자란단다. A플러스 타입의 피를 구한단다. 그렇다면 내 피가 A형인데 한 번 체크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미 내 나이 50이 훨씬 넘은 중늙은이가 갓 태어난 아이에게 피를 줄만큼 건강할까 염려가 되어 주저했다. 그러나 꼭 나의 피를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먼저 다른 한 사람이 피를 검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만약 그 분의 피가 합격이 안 되면 내 피를 주겠다고 말을 하고 돌아왔다. 결국 그 사람의 피는 마지막 단계에서 결함이 있어 수혈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이다. 하루 종일 병원과 적십자센터를 오간 뒤 7:30 분에 완전무흠하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병원을 달려간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병원에 한 번도 안 가고 그토록 험한 산을 넘고 강과 바다를 건너다니며 온 나라의 음식을 마구 먹는 제 피를 아버지는 고이 보호해 주셨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피를 줄 만큼 깨끗하게 보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록 무슬림이지만 나와 특별한 관계인 이 집안의 아이에게 내 피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더 기쁘다. 피 검사는 까다롭지만 수혈작업은 간단하다. 나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내 피는 3개의 주사기를 통해 그 아이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금방 효력이 나타나는 굉장히 힘이 있는 피라는 의사의 소리를 귓전으로 듣고 문을 나선다. ‘주여 이 생명을 살려 주심을 감사하고 제 피를 저 아이에 나눌 수 있음을 다시 감사합니다’ 주께 감사한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아이를 바로 인큐베이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돈 때문이었다. 이 아이의 보호자들이 그만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한 시간이 그들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어린 생명은 죽음 직전까지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명의 귀중함이 돈 앞에 무참하게 무너지는 현장이다. 가족들이 모든 걸 다 감당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매일 아침 제반비용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조건으로 이 아이에게 그 병원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시작이 되었다. 한국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나라에는 일어나고 있다. 씁쓸한 입맛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을 꼬물대는 그 아기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버지 오늘 또 한 건을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외친다.
카페 이름 : 쓰리엘월드미션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3lmission
첫댓글 귀한글 감사해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