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007과 대적 하던 적들은 대량 학살 무기를 이용한 위협이나 체제의 전복을 노리던 거대 악이었다. 포스트 냉전 시대라는 흐름과 맞물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암약하는 기관이나 요원이 있을 것 같은 기대는 영화의 조미료가 되었었다. 시간은 흘러 이념의 대립은 옅어진 대신 9.11을 위시한 새로운 위협의 등장은 미국의 제이슨 본이나 에단 헌트같은 새로운 유형의 신선한 캐릭터의 등장은 제임스 본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살인 면허에 잉크가 말라 지워져 갈 무렵 등장한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였다. 숱한 반대 여론이 있었지만 그는 007의 정체성인 섹스와 폭력 같은 구시대적 산물은 뒤로 던져 두고 맨몸으로 악조건을 돌파하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는 ‘카지노 로얄’로 부 터 시작된 다니엘 크레이그 사가의 결말이다. 그가 지나온 시간의 함축인 동시에 그의 유산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다.
노 타임 투 다이
이번 007은 프레임에 갇힌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 대신 그로 인해 파생된 것들을 직접 마주하는 방식의 서사를 택하고 있다.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여인과 운명적으로 이어진 숙적들, 자신의 정체성의 한 측면과 같은 동료들과 기관을 통해 돌아본 것은 자신이었다.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말하는 스펙터와 사핀은 본드의 어두운 면이 투영된 그림자였다. 다시 말해 그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과 상황들은 007과 함께 호흡하며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된 샘이다. 은퇴후 자메이카에서 유유자적한 본드의 생활을 보여주는 시퀀스 역시 인상적이다. 원작자 이언 플레밍의 007을 구성하고 처음 쓴 골든 아이를 그곳에서 구상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끝을 맺음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의미 역시 내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인사
노 타임 투 다이는 다니엘 크레이그 007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세대의 종식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정리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다소 긴 러닝 타임 동안 욱여 넣은 말들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면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과도기적 정서로 인해 기존에 007이 가졌던 특유의 매력 역시 후반으로 갈수록 퇴색된다. 명분을 대신하던 빌런의 광기와 그에 맞서던 히어로의 고뇌는 가족애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제와 만난다. 어설픈 주제 의식과 빈약해 보이는 전개 방식에도 불구하고 이번 007이 어딘가 뭉클한 지점이 있다. 한 사람의 연대기는 폭력과 복수의 서사로 점철된 인간사의 메타포였다. 이야기의 종지부가 일본과 러시아의 분쟁 지역이라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 되었던 통제와 살인이 낳은 흔적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본드의 자세는 시대의 한 부분을 만든 자의 책임을 진다는 지점이다.
카지노 로얄과 스카이 폴이 그러했듯 시리즈를 거치며 단순한 첩보물을 넘어 영국이라는 나라의 은유로 보인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패기 넘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노쇠해 과거의 영광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오래된 동료들을 하나 둘 보내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본드 역시 마음을 기댈 곳이 생기게 되었다. 폭력과 증오 복수로 가득했던 그의 인생은 자신이 남긴 미래로 부터 구원을 받았다. 모든 시작은 결국 끝을 향해 가나 그 또한 시작을 위한 끝일 것이다. 수고한 다니엘 크레이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새롭게 등장할 007을 기대한다.
제 머릿속에 드갔다 오신겐지.. ㅋ 어질러 놓은 생각들을 한방에 정리를 해 주셨네요~~^^
냉전시대의 산물로 주어진 폭력의 정당성과 특유의 유머들보단, 됐고! 단무지 정신으로 몸을 던져 나아가지만 항상 고뇌하는 다니엘의 본드가 제 취저였던지라.. ㅎㅎ 그의 퇴장에 뭉클한 감사를 보내지만 일본색이 입혀진 장면들이나 빌런과의 대결등에서 보이는 헛점들이 지루하고 못내 아쉬웠네요.
스카이폴을 거치면서 007에 대해서 다들 너무 스파이의 고뇌가 있는 고급스러운 스파이물이라는 인식들이 많이 생긴것 같아요. 저에겐 숀 코너리 시절의 기발하고 신나지만 그렇게 무겁지 않은 스파이물이었거든요. 이번 영화는 딱 그런 007영화였습니다. 그래서 007이니까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건 철저한 상업영화였으니까요.
첫댓글 멋진 리뷰 감사해요.
제임스 본드와 가족애는 어울리지 않긴 하네요.
만능 치트키 "가족애"~~~
아듀 다니엘 크레이그 !
가족애라...007에도 그게 들어가버리는군요...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역시 거시적 안목으로 보시는군요~ 키페에서 007의여러 리뷰를 보며..많이 배우네요^^
멋진글..감사합니다.
우하하하하~~~~~
제 머릿속에 드갔다 오신겐지.. ㅋ
어질러 놓은 생각들을 한방에 정리를 해 주셨네요~~^^
냉전시대의 산물로 주어진 폭력의 정당성과 특유의 유머들보단,
됐고! 단무지 정신으로 몸을 던져 나아가지만 항상 고뇌하는 다니엘의 본드가 제 취저였던지라.. ㅎㅎ
그의 퇴장에 뭉클한 감사를 보내지만
일본색이 입혀진 장면들이나 빌런과의 대결등에서 보이는 헛점들이 지루하고 못내 아쉬웠네요.
이 집 역시 소문난 리뷰 맛집 맞네요~^^ 감사히 잘 읽었어요~
리뷰 잘 봤습니다.
영화의 장면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잘 보고 갑니다...
영화가 너무 길어서 힘들었고 아버지 된..ㅋㅋ 본드가 쪼매 어정쩡했지만 시간은 잘 가서 다행이었어요..방광 파괴영화...노노.ㅋ그래도 시간 잘 가는걸 봐서는 3.0 .ㅋ
스카이폴을 거치면서 007에 대해서 다들 너무 스파이의 고뇌가 있는 고급스러운 스파이물이라는 인식들이 많이 생긴것 같아요.
저에겐 숀 코너리 시절의 기발하고 신나지만 그렇게 무겁지 않은 스파이물이었거든요.
이번 영화는 딱 그런 007영화였습니다. 그래서 007이니까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건 철저한 상업영화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