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 20:8-11 / 십계명 - 제4계명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2024-7-30(화)
(출애굽기 20장)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묵상/ 출 20:8-11)
◆ 안식일의 유래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고대인들이 한 달을 30일, 일 년을 360일로 정한 것은 이해가 된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약 29.5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주일이 칠 일이 된 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왜 칠 일로 잡았을까? 손가락이 열 개이므로 십진법이 자연스럽게 정착한 인류에게는 일주일을 열흘로 잡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한 주간이 칠 일이 되었을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스터리다. 일부 학자들은 천체의 원리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지만, 고대인들이 천체를 잘 알리도 없으니, 억지 논리다.
소련이 무신론을 기반한 공산국가가 되면서, 기독교를 부정하기 위해서 한때 주간을 5일로 설정했지만, 결국 폐지했다. 고대에 일부 국가에서 나름대로의 이론을 바탕으로 주 8일(로마), 주 10일(이집트) 등 여러 가지로 설정해 보았지만, 결국 주 7일로 통일되었다.
왜 한 주간은 칠 일일까?
성경을 아는 자들은 한 주간이 칠 일이 된 유래를 명확하게 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칠 일에 쉬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 주기는 인류 전체의 정신에 뿌리를 내렸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년도를 기점으로 연도를 결정하고, 한 주간이 제칠 일로 한 것이 모두 기독교 사상에서 나온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이것 하나만 보아도 성경의 말씀들이 인간들이 고안해 낸 창작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안식일 계명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출 31:14).
오락을 금하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사 58:13).
불도 피우지 말아야 한다(출 35:3).
여행을 금해야 한다(출 16:29).
안식일을 지키라는 이 명령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의 신앙으로 묶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신 원인 중의 하나가 안식일 계명을 소홀히 대한 것이다(렘 17:27, 겔 20:16).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아주 중요한 언약의 표징이었다(겔 20:20). 주님이 재림하신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안식일 준수는 계속될 것이다(겔 46:4). 그러나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 주일은 안식일인가?
주일은 안식일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주일을 ‘안식일 다음 날’(행 20:7)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안식일 다음 날이 안식일이라는 말은 모순이다. 만일 주일이 안식일이었다면,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연속으로 이틀이나 지켰다는 주장이 된다. 즉 토요일은 유대인으로서 안식일을 지키고, 일요일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안식일을 지켰다는 소리가 된다. 과연 그럴까? 외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다음날을 모임 날짜로 잡은 것은 그 날이 안식일이 아니라,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주님의 날’(계1:10)을 의미하는 ‘주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명확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믿는다면, 정말 성경에서 명령한 안식일 규례대로 제대로 지켜야 할 것이다. 주일날에도 사고팔고, 각종 일을 하며, 차 타고 다니면서도 주일은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죄를 짓고 있는 셈이다.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주장할바에는 차라리 안식교인처럼 제칠일 안식일을 주장하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아 철저히 지키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주일이 안식일이라는 주장을 반대했고, 심지어 어떤 날을 지정하여 거룩한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 자를 거짓 예언자라고까지 정죄했다(기독교강요 상권 562-565쪽. 생명말씀사).
칼빈이 이러하건만, 칼빈의 후예라고 자랑스럽게 떠드는 장로교회들이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장로교회가 신앙고백의 기본으로 삼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인 듯 하다(웨스트민스터 21장7절) .
◆ 그리스도인의 안식일
그리스도인은 안식일을 명백하게 ‘그림자’와 ‘예표’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 17 )
위의 말씀대로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고,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토요일이 일요일로 바꾸었다고 그림자가 실체로 둔갑할 순 없다. 어떻게 요일 하나 바꾸었다고 그림자가 실체로 바뀌겠는가? 성경은 안식일의 요일을 바꾸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단지 요일 문제라면, 우리는 안식교를 이단으로 정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안식일 준수가 요일만 바뀐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참된 의미를 붙잡아야 하는 것이라면, 안식교는 율법주의를 신봉하는 이단이다.
안식일의 실체는 무엇일까?
주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안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면, 날짜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주님께서는 ‘성전보다 더 큰 이’이시다(마 12:5).
제자들이 배고파서 밀밭 사이로 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었다. 그런데 그날이 하필이면 안식일이었다. 이것을 안식을 범한 행위라고 트집 잡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옹호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일하면 안 되는 안식일에도 성전에서 근무하는 제사장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했다. 그들은 안식일에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소를 잡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꺼내서 씻고, 각을 뜨는 일은 보통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안식일 임에도 성전 안에서는 그런 고된 노동이 허용되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수고는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크신 이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문자 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의미 없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이 비록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한 행위는 아니었지만, 주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 안식일의 문자적 준수가 아닌 영적 의미의 준수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요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의 여부에 집착해야 한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인가?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물론 거듭난 자는 예외 없이 신분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의미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며 방향을 세상으로 바꾸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탈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
◆ 주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주일이 안식일이 아니라면, 구태여 주일을 특별하게 대할 필요가 있을까?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같은 책 562쪽). 사도 바울도 명확하게 명령한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롬 14:5)
그러나 이 말씀이 일요일에 친구들과 등산을 즐겨도 된다는 말씀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가 모이기로 한 날을 존중해야 한다(히 10:25)
공동체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그날에 친구 결혼식 때문에 빠지고, 장사하느라고 빠지고, 놀러 가느라 쉽게 빠지게 되면, 그는 결국 신앙이 약화할 것이다. 유대인의 안식일처럼 엄격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우선순위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주일에 모이는 것은 ‘안식일 계명’ 때문이 아니라, 성도의 거룩한 가치관 때문이다. 결국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우리가 모이는 이유가 될 것이다.
육신적인 사람에게는 이런 진리조차 자신의 육신적인 욕심을 변명하는 수단으로 삼아서 결과적으로 독이 되겠지만, 영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자들은 이런 진리가 더욱 참된 의미를 붙잡게 하여 주님께 더 집중하게 할 것이다.
우리가 참된 것을 붙잡아야 영적으로 자란다(골 2:19). 그렇지 않고 그림자를 붙잡고 있으면, 결국 종교적인 위선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주님,
제 눈을 뜨게 하셔서 참된 것을 보게 하시고,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는 그 복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오로지 머리되신 예수님만을 붙잡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출 20:8-11 / 십계명 - 제4계명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작성자 야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