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1절 ~ 2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산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으되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 죽은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살았다는 말과 죽었다는 말의 의미를 보게 되면 산 사람은 옛 사람이라는 뜻이고, 죽어서 제물이 되어야 되는 사람은 바로 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로마서 12장 2절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세대를 본받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세대를 본받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옛 사람을 죽인 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리려면 첫 번째, 지금 우리에게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는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가는 과정을 누구나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가는 과정에 자기 자신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전에는 충돌이 없었습니다.‘옛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충돌이 없었는데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얘기는‘그 옛 사람과 내가 부딪쳐서 괴롭다’는 얘기는 이것은‘하나님이 사랑 하신다’라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충돌을, 옛 사람에게 끌려가면서도 괴롭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괴롭지 않은 사람보다 괴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 마음에 그마만큼 하나님의 것이 있기 때문에‘내가 하나님 쪽으로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내 마음 속에 항상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사람은 평안할 때의 신앙이라는 것은 누구도 측량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평안할 때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느 것이 정말로 더 질기고 더 높고 더 깊은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어떠한 일이 있어봐야 그 믿음의 깊이와 넓이와 그가 살기 위해 사는 높이의 믿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어떤 사람에게 흉년이 닥쳤습니다. 이 말은 다시 바꿔 얘기한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날 내게 흉년이 닥쳐지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닥쳐지는 인물 속에서 오늘 하나님은 이 일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가 여기에 들어가서 내가 된다면 지금 어떠한 입장에 서야 되는가, 어떤 사람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는가를 이 룻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룻기 1장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 니
엘리멜렉이라는 사람과 두 아들과 나오미라는 네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 나입니다. 여기는 내 삶에 나에게 붙어있는, 항상 어떤 결정을 육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내 육체의 것들입니다. 나에게 붙어있는 육입니다. 어떠한 흉년을 바라보고, 어떠한 안되는 일을 바라보고, 어떤 근심의 염려를 바라보고 사람이 딱 생각하는 것이 뭐냐면 '흉년을 피하자!'.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있는 도성입니다. 하나님을 피해서 일단 흉년을 피해 가보자라는 말입니다. 그 결정은 육의 결정이었습니다.
이 룻이라는 여인이 시어미 나오미의 말을 철저히 듣습니다. 나오미의 말을 밭을 나가는 일부터 집에 있는 일부터 모든 말을 할 때 그 말씀대로 준행을 합니다. 명령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데 이 말씀대로 사니까 룻이 만나는 자가 보아스 였습니다.
내가 룻이라면 보아스는 내 신랑입니다. 지금 이 신랑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룻이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어머니 말을 안 들었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땅으로 돌아왔더니, 룻이 어머니 말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더니 부유한 신랑을 만나더라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아무 소망이 없고 아무 희망이 없는 우리의 삶의 이 세대를 살고 있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그 말씀에 기록된 대로 순종하고 살면 우리의 신랑을 회복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그 마음이 변화를 받는 것은 옛 사람을 자꾸만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법대로 살게 되니까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으로 나가기 시작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흉년 때문에 하나님을 피하지만 어리석게 하나님을 피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 더 들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렵고 힘이 들면 하나님 안에 더 들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말씀대로 새로워지는 것,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한다는 겁니다.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봤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 겁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눕혀 놓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들을 죽이는 장면이지만 아버지가 죽는 장면입니다. 만약 아비 아브라함이 이삭을 대신해서 백번이라도 죽으라고 했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죽는 겁니다. 자기가 지금 산 제물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제야 니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라는 겁니다. 이게 산제사입니다. 룻이 그 산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르바가 갈 때에 따라 갈 수도 있었습니다.
신명기 6장 2,3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말씀대로 살면 복을 얻을 것이고 그래서 보아스 집안에 복이 넘쳤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나안 땅에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려고 했더니 아무것도 내 눈에 보이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말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세대를 오르바와 같이 좇아가지 아니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모았더니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 삶의 모든 것들이 부유함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이 우리들에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룻이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드려지는 산제사가 있었다는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산제사! 이것이 없이 입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믿음의 조상이라는 축복을 받았어도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 라는 그 산 제사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원하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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