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자리

[무이 잠파노]

- 그때 그자리 -

거의 십수?년 전...

수리산 자락 아래쯤 반월저수지 근방인데 안산시인지 군포시에 속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선후배들과 어울려 고기도 구워먹고 주변에 밤나무도 많아 알밤을 주우러 간간 갔었다.

그 당시 언제인가 여름쯤 저녁에 들렀을 때였다. 한 3~400평에 가득히 핀 꽃을 볼 때의 감동이라니!...처음엔 메밀꽃이나 안개꽃인 줄 착각했는데 가까이 가보고야 개망초인 줄 알아봤다. 개망초가 메밀꽃보다 더욱 운치있고 멋진 꽃이었음을 그제야 알아본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나는 꽃이기를 바랐다

그대가 조용히 걸어와

그대 손으로 나를 붙잡아

그대의 것으로 만들기를 

     - 헬만헷세 연가戀歌 -

옛날 시골에선 개망초란 가장 퇴치가 힘든 지긋지긋한 잡초였다. 번식도 못말리고 뽑아도 뽑아도 계속 돋아나오는 불사조..아닌 불사초였다. 워낙 씨앗이 많아 두루 번식하는 모양인데 그들로서는 신이 준 지상의무인 번식을 위한 당연한 권리행사일게다.

본래 토종이 아니라 미국원산으로 일제 때 철로 침목에 붙어 들어와 순식간에 퍼진 외래종이란다.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났다고 망국초란 별명으로 불리다가 망초가 되었다던가...

애초...농경지가 아니라 임야속에 막 개간해놓은 공간이었다. 흙의 작용이 묘하여 땅속에서 수십년도 휴면하는 씨앗이 많다고 들었다. 흙속에 개망초 씨앗이 섞여있다가 개간으로 조건이 알맞아지자 발아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바람에 씨앗이 날려왔을 수도 있겠다.

그때부터 개망초를 유의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개망초도 가득 무리지어 피어있을 때나 볼만하지 소수일 때나 다른 풀이 뒤섞여있음 별볼일 없어지는 것이 또 희한했었다.

어언~ 그때 당시의 선배 두분과 어여쁜 후배님들도 다시는 못올 나라로 떠나버렸다. 인근의 저수지나 수리사를 간간 오가면서도 조금 외진 곳인 그쪽을 굳이 가보고픈 생각은 없었다. 보나마나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벽해가 되어있을 게 뻔하여...
그런데 근래 혹시 하고 가봤더니...

럴수 럴수 이럴쑤가!

십여년전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산골짜기의...나무그늘이 져서 농사가 여의찮았는지는 몰라도 옛날 그 장소가 그 자리에 고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밭형태가 그대로인 걸로 봐서는 간간 경작도 한 것은 확실한데 나중엔 포기해버렸는지 몰라도 개망초가 주축이었다. 
물론 독야청청 만당한 개망초는 아니었고 잡초도 많이 섞인 개망초군락이었다. 십년전 당시의 새땅에서 처녀 출연의 상큼한 개망초보다는 많이 상했달지... 더욱이 한창 전성기를 지나 쇠락하는 풍경이었으니...사진을 몇장 찍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야말로 저 개망초보다도 못한 위인일지도....
개망초는 이억만리 밖까지 이민와서 그야말로 번식을 위해 초능력으로 보이는 지극을 다하는데...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인가...무엇일까? 미국 고향에서는 분명 망초라 불리지도 않을 것인데....어떻게 불렸든지간에....

흔히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들 욕을 한다. 헌데 짐승이야말로 사람보다는 나은 생명체일지 모른다. 나아가 동물아닌 식물이야말로 더 고급한 생명체일지도...몇년전인가 이외수가 그런 공상으로 소설도 썼었는데 끝까지 읽지는 않았다. 

무슨 소리. 식물보다 온갖 동물보다도 뛰어난 만물의 영장아닌가...
주의와 이념이 뭐라고 그깢 사소한 이해관계가 뭐라고...미담덕담만 나누기도 짧은 인생이라는 공염불도 듣지만...
어떤 운동회에서는...일본놈, 중국놈, 미국놈...선거판은 대가리깨져당, 등처먹는당, 공산공갈당...ㅠ

분명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존재하려니...나는 어떤 꽃을 만나서...그 꽃을 닮을까나...  

                                              2019,9

헌데 바로 이틀 전에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가봤더니 초입에 출입금지 밧줄이 걸려있어...그랬어도 굳이 들어가봤는데, 지난 2년간 경작을 안했음이 분명한듯 이름모를 잡초로 뒤덮여 다시 산이 되어가고 있지 뭔가...ㅜ
토종의 등살에 개망초도 견뎌내지 못한듯 단 한송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밤 한줌만 주워왔는데... 통 옛날 맛은 안났다...ㅠㅜ

                                             2021,9,27

[무이 잠파노]

[소 담]

요즘은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산비탈 묵밭들이 많이 있답니다
멀리서 보면 안개꽃
가까이 가서 보면 계란꽃 (하얀 꽃잎 가운데 노란자위 )ㅎ
어릴때는 망촛대 나물 로
꽃이 피면 개망초 ~~
추억의 그 길을 따라서 이렇게 저도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

[무이 잠파노]

요즘 꽃들도 많이 이민?오는지^^ 어릴때 보던 꽃들이 드물어진듯 합니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