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발해渤海가 동로마에 있다는 주장은 오역誤譯이다!
1)서역조선설의 발해에 대한 주장
아래 글은 최두환 선생님의 아시아=조선 카페 “교지(交趾)는 동-로마의 동남쪽으로 통해 ” 에 있던 글이며,
최근의 “발해는 동-로마에 있었다 !” 있다는 글도 참조하여 보시면 좋겠습니다.
(1) 大秦國, 一名黎軒, 都安都城, 從條支西渡海曲一萬里, 去代三萬九千四百里. 其海滂出, 猶渤海也, 而東西與
渤海相望, 蓋自然之理. ... 東南通交趾. 又水道通益州永昌郡.[北史권97 列傳85]
[동-로마는 리헌이라고도 부르며, 도읍은 안도성이다. 시리아 서쪽에서 해곡(만)을 건너는데 1만리나 되며,
그 거리는 대주에서 3만9400리이다. 그곳의 바다는물이 세차게 흘러ㄴ내리는데, 곧 발해이며, 동쪽과 서쪽에서 발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이는데, 자연히 그렇게 생겨먹었다. ... 동남쪽으로 교지와 왕래한다. 또 물길로는 익주 영창군으로 왕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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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북사北史 열전列傳85에서 필자의 대진국大秦國 번역
옛 사람의 지리적인 개념은 현대의 GPS가 있지 않기 때문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동이라고 하여서 정동이어야 하거나 서라고 하여서 정서이어야 하며 동남이라고 하여 하여서 정확히 동쪽에서 45° 방향을
요구하여서는 안 된다.
北史 列傳85는 魏書 西域傳에 있는 내용을 베낀 것이다.
두 사서를 비교하여 보니, 그래서 글자가 바뀐 글자도 더러 있으며, 누락된 글자도 있으며, 덧붙인 글자도 보인다.
이에 대하여, 편찬자의 오기이거나 당시 인쇄 환경의 문제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것을 역사왜곡이라고 한다면 왜곡인 것이요, 음모론으로 본다면 특정 세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결과물로 해석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참고하며 필자의 번역을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大秦國,一名黎軒,都安都城,從條支西渡海曲一萬里,去代三萬九千四百里。
대진국大秦國, 일명 려헌黎軒이라 하며,
도읍은 안도성安都城,이며, 조지條支 서쪽으로 바다를 굽이굽이 돌아서 건너면, 대代에서 3만9천리를 가야한다.
其海滂出,猶渤海也,而東西與渤海相望,蓋自然之理。
그 바다는 겉(옆)으로 뻗어서 마치 발해와 같아서, 동쪽과 서쪽으로 발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여 보고 있는데,
대략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滂出:방출滂出은 魏書에서 傍出으로되어 있어 방傍出으로 해석하였다. 물론 滂出로 해석하여도 글은 된다.
猶:유猶는 최두환 선생님은 則으로 보아 “곧”으로 번역하였는데 명백한 오역誤譯이다.
유猶에 대하여 아래 글에서 다시 논한다.
渤海:발해渤海는 魏書에서 勃海라고 되어 있다.
地方六千里,居兩海之間。
땅은 방方 6000리이고, 두 바다 사이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其地平正,人居星布。
그 땅은 평평하고 반듯하여, 사람들은 별처럼 널려있듯이 살고 있다.
其王都城分爲五城,各方五里,周六十里。
그 왕의 도성은 오성五城으로 나뉘어져 각기 방方 5리이며, 둘레는 6리이다.
王居中城,城置八臣,以主四方。
왕은 성城 가운데 살며, 성城에는 여덟 신하를 두어, 사방四方을 주장하도록 한다.
而王城亦置八臣,分主四城。
왕성王城에도 또한 여덟 신하를 두어 4개의 성으로 나누어 주장 도록한다.
若謀國事及四方有不決者,則四城之臣,集議王所,王自聽之,然後施行。
만약 국사를 논의하거나 사방에 결정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곧 4城개의 성 신하가, 왕의 거소에서 모여 의논하며,
연후에 시행한다.
王三年一出觀風化。
왕은 3년에 한번 나가 풍습의 교화를 살핀다.
人有冤枉詣王訴訟者,當方之臣,小則讓責,大則黜退,令其舉賢人以代之。
(만약) 왕에게 굽혀 원통함을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으면, 담담 신하를 찾아, 작은 것은 꾸짖으며, 큰 것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며, 령令을 내려서 그 현인賢人을 들여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한다.
其人端正長大,衣服、車旗,擬儀中國,故外域謂之大秦。
그 사람들은 단정하고 장대하며 의복과 수레와 깃발은 중국의 법식과 비슷하여, 그럼으로 외부 지역에서는 대진大秦이라 이른다.
其土宜五穀、桑、麻,人務蠶、田。
그 토양은 오곡과 뽕나무와 마와 사람들은 누에치기에 힘써하며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다.
多璆琳、琅玕、神龜、白馬硃鬣、明珠、夜光璧。
구림 랑간 신구 백마주렵 명주 야광벽이 많다.
東南通交趾,又水道通益州 永昌郡。
동남방향으로 교지 길과 통하며, 또한 물길은 또한 익주益州 영창군永昌郡과 통한다.
多出異物。
(대진에는) 기이한 물건이 많이 난다.
大秦西海水之西有河,河西南流。
대진 서쪽으로서 해수의 서쪽에는 하(河=강江)가 있는데 강은 서남쪽으로 흐른다.
河西有南北山,山西有赤水,西有白玉山,玉山西有西王母山,玉爲堂室云。
강의 서쪽에는 남.북산이 있으며, 산의 서쪽에는 적수赤水가 있고, (그) 서쪽에는 백옥산白玉山이 있으며,
(백)옥산玉山 서쪽에는 서왕모西王母산이 있으며, 옥玉으로 집을 지었다고 말한다.
從安息西界循海曲,亦至大秦,回萬餘里。
안식 서쪽 지경에서 바다 모퉁이를 따라 빙빙 돌아서 가면, 또한 대진大秦에 이르게 되는데, 그 돌아서 가는 길이 10000여리 길이다.
於彼國觀日月星辰,無異中國,而前史云 條支西行百里,日入處,失之遠矣。
그들 나라에서도 해와 달과 별자리를 관찰하는데, 중국과 다르지 않으며, 이전 역사에서 말하기를
“조지 서쪽으로 100리를 가면, 해가 들어가는 곳”이라 하는데, 이는 사실과 먼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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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서역(양)조선설의 “유발해야猶渤海也”에 대한 오역誤譯
漢字는 한문 문맥에 따라 우리말로 해석하면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이 많은데,
문법적으로 동사 전치사 부사 명사 등으로 자유자재 오가는 글자들을 實辭의 반대 개념인 허사虛辭라고 한다.
그러한 글자들에는 之라 든지 於(于), 也, 而 乎 惟 猶 將 등이 많은데, 이러한 허사虛辭자 들은 한문 고수들도 얘를 먹곤 한다.
최두환 선생님은 猶를 則으로 보아 “곧”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여기서는 결코 그렇게 해석될 수 없으며 “...와 같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최두환 선생님은 북사 대진에서 유자를 써서 비유하여 설명한 글 인줄 모르고 오역誤譯하여지중해가 발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則(卽)과 유猶의 차이점은 則은 “A는 B이다.”라는 뜻이고 猶는 “A는 B와 비슷하다”라는 뜻이다.
“猶渤海也”라는 뜻은 “곧 발해이며”라는 뜻이 아니라 ”발해와 비슷하며“라는 뜻이다.
동방의 발해를 서쪽 지중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문장인 것을 최두환 선생님은 문맥을 파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으로 이것은 국어國語 이해력理解力에 대한 문제이기도 한다.
그 용레를 보면,
(1)夫天下猶人之體,腹心充實,四支雖病,終無大患.[삼국지 위서 두서전]
무룻 천하는 인간의 몸과 같은데, (인간은) 내장內臟이 충실해지면, 사지에 비록 병들어 있더라도,
끝내는 큰 재앙은 사라지게 됩니다.
여기서 엄밀히 말하면 “천하天下 = 인간의 몸”이 아니다. 빗대어서 “천하는 인간의 몸”이라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虎豹之鞹犬羊之鞹 [논어 안연]
호랑이와 표범의 날가죽은 개와 양의 날가죽과 같다.
여기서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호랑이 표범 날 가죽 = 개와 양의 날가죽.”이 될 수 없다.
어찌 호랑이가 개가 되거나, 호랑이 가죽이 개 가죽이 되겠는가?
단지 비유를 들어 그렇게 말한 것임을 알아 들어야 한다.
(3)先主解之曰 孤之有孔明,猶魚之有水也。[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선주(유비劉備)께서 설명하여 말하기를 “나(孤:임금이 자기를 낮추어 쓰는 말)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있는(물을 만난)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나(유비)= 물고기”이거나 “나(유비)= 물고기”의 물이 될 수 없다.
단지 비유로서 그렇게 설명한 것뿐이다.
(4)기타 참고로 猶는 현대 중국어에서는 간자체簡體字로 犹yóu로 쓰는데, [고려대학민족문학연구원 중한사전]을 보면,
동사로 "마치.....와[과] 같다”라는 뜻이라고 라고 쓰여 있다.
<24사전서 북사>에서,
첫댓글 옛사람의 지리적인 개념은 현대의 GPS에 있지 않기 때문에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동이라고 하여서 정동이어야 하거나, 서라고 하여서 정서이어야 하며, 동남이라고 하여 정확히 동쪽으로 45° 방향을 요구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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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정확한 견해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동쪽으로 45° 방향이 아니라 "동쪽에서 45° 방향으로"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글을 올리고 나면 안보이든 오자誤字가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말도 어렵습니다.ㅜㅜ;; 김홍필 선생님이 댓글을 너무 빨리 다셨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즉則(卽)과 유猶의 차이점은, 則은 “A는 B이다”라는 뜻이고, 猶는 “A는 B와 비슷하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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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네요... 고전(古典)의 한문(漢文) 번역은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일이군요...
"猶"라는 것은, "~~와 같다"가 아니라, "마치~~와 같다"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
"猶父猶子"(유부유자)
아버지 같고 자식(子息) 같다는 뜻으로, 삼촌(三寸)과 조카 사이를 일컫는 말
"마치 아버지 같고, 마치 자식 같다"
김홍필 선생님 위글의 주제와 다르지만 최두환 선생님께서, 봉두(蓬頭:쑥대머리)를 흑인이라고 유추 해석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안숙선 = 쑥대머리(춘향가 중)"에서,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의 찬 자리에생각난 것이 임 뿐이라" http://blog.naver.com/reeperman?Redirect=Log&logNo=114772071 최두환 선생님의 견해로 보면, 춘향이도 흑인출신이 될 수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그분이 봉두(蓬頭)를 "흑인(黑人)의 머리"라고 유추 해석하셨군요...
그런데, 봉두(蓬頭)라는 낱말이 어떤 상황의 기록에 나온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점점... 국어(國語)가 어렵게 느껴집니다.
봉두머리 그 글은 저도 봤는데 '남자는 쑥대머리에 검은 몸을 가졌다" 이게 원문인데요. 검은피부를 가진 사람은 곱슬머리를 한 아프리카 흑인도 있고 이집트인도 있고 인도인도 있지않습니까?
박자우님이 '동방의 발해를 서쪽 지중해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라고 하시면서
본문 해석 중 '그 바다는 겉(옆)으로 뻗어서 마치 발해와 같아서, '동쪽과 서쪽으로 발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여 보고 있는데..' 라고 해석하셨는데 박자우님이 말하신 동방의 발해를 동쪽과 서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여 보고 있다는 그 바다는 어디입니까?
이호근 선생님, 대진大秦이 지금의 지중해 지역에 있는지는 대륙에서도 여러가지 이설이 있습니다. 단지 다수설은 지중해지역에 있는 로마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최두환 선생님께서 먼저 지중해 지역의 동로마로 주장하였기에 글의 오역을 지적하고자 그리한 것입니다. 저역시 <북사> [대진]에 대하여 번역소개하면서 대진의 "토산물"이라든지 "車旗가 중국과 비슷하다" "서왕모"에 대한 기록 등을 볼때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자유게시판에 김홍필 선생님이 소개한 책을 사서 검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북사>에서 "발해"라는 지명은 수십 군데가 나옵니다. 이를 다 검토하야 보아야 할것입니다. 최두환 선생님의 주장처럼 지중해 연안에 동로마에 발해가 있었다면, <북사>에서 나오는 모든 "발해"관련 글들이 "지중해'지역으로 설명될는지는 저로서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기존 최두환 선생님의 논리대로 " 그러한 기록들은 거의 조작된 글이고, <북사 열전85>만 일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반론을 힘들것입니다.. 여기 "우리뿌리 강좌"는 최찬동 선생님의 책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제가 그 분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기록은 기록으로 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추측은 "소설"이 될 뿐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역사는 되도록이면 고대의 기록을 정확히 해석해야 겠지만 그 고대의 기록이 최두환 선생님 말씀처럼 조작되었다면 잘못된 기록을 해석해봐야 올바른 해석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대륙조선사 가입후부터 지속적으로 한자에 다의적 요소가 있어 의미 전달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한자를 해석하다보면 내용파악이 잘 안된다는 논조의 주장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한자는 뜻글자라기 보다는 표음문자에 가깝다 라는 글도 옮긴적 있습니다. 오히려 고대 영문지도나 지중해 관련 자료들이 의미전달이 더 명확한것 같습니다
구당서 백제열전에 묘사된 백제의 위치가 세 바다를 언급하면서 백제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전세계 지도를 아무리 봐도 지중해,흑해지역외에는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대조연에서 한때 중국대륙의 조선사를 설명하는 입장에서는 海를 '바다'가 아니라 다른 뜻으로 해석하였는데(김종윤 선생님도) 중앙아시아에 눈을 뜨니 다시 원래 뜻인 '바다'로 회귀했더군요. 이것만 봐도 한자 사료에 의한 조선사 연구또한 한계가 보인다는겁니다. 그리고 만약 그 사료들이 조작되었다면 더욱더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니 어찌 한자기록에만 의존하겠습니까?
제가 또 옮겨온 글 중에 coo2.net 솔본님의 구지가 해석을 보셨는지요? 기존의 한자를 뜻 그대로 번역한 기존의 구지가 내용과 수메르어로 새롭게 번역한 내용에 상당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즉 한자를 소리로 사용한 결과라고 할까요? 저는 그래서 한자기록들은 다시 재검토 해봐야 한다고 한겁니다
지명은 이동되는 것입니다. 발해라는 지명도 이동되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최두환 선생님께서 지중해가 발해다."라는 주장에 반론을 펼친바 있는데, "우리뿌리 강좌"에서 찾아보시면 있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최찬동 선생님의 명작 "대동방 씨족원류사" 2권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저역시 "대동방시족원류사"의 학설을 따른 것임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문헌"에 관하여, 한마디 코멘트합니다.
초창기에 <대륙 조선사>를 주장하였던 연구자들이 그 근거로 삼았던 문헌들... 그것은 "미공개 문헌"이 아니었고, 그들만이 보유한 "비장의 문헌"도 아니었으며, 세상에 공개되어 있는 문헌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서역 조선사>의 근거들도 이미 세상에 공개되어 있는 문헌들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공개되어 있는, 똑같은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도... 연구자에 따라... <한반도 조선사>, <지나대륙 조선사>, <서역 조선사>라는 형태로 학설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 모두 똑같은 문헌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서로 다릅니다.
기록의 날조에 관해서...
<24사(25사, 26사)> 등의 중국 기록들, <조선왕조실록> 등의 조선 기록들, <일본서기> 등의 일본 기록들이 거의 다 왜곡/날조되었다고 믿으면서도, 그 문헌들을 근거로 삼아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합니다.
옛 문헌들에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더 이상 그러한 문헌들을 신뢰하면서 연구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한 자료들을 다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조작 세력들이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그들이 어딘가에 숨겨놓은 오리지널, 원본에 해당하는 문헌들을 찾아나서야 되겠지요...
"이서증서"(以書證書) 곧 "문헌"으로 "문헌"을 증명하는 일에는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헌" 이외의 것들도 충분히 반영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물증서"(以物證書) 곧 "물증"으로 "문헌"을 증명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물증"은 "문헌" 이외의 모든 것이고요.....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라는 책을 쓴 중국인 학자 주학연(朱學淵) 씨가 이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주학연(朱學淵) 씨는 그러한 "물증" 가운데 하나를 "언어"(言語)로 보았습니다.
<반도사관>을 탈피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종래의 역사 기록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연구 결과들이 연구자들 사이에서 모순되고 양립이 불가능하여, 서로 충돌되고 있으므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널리 세상에서 객관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고, 최소한 "논리적 결함"(논리의 비약, 모순, 함정 등)이 없는 주장을 기대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