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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똠,작은똠,아래똠,"
내고향 마을은 작은 산자락에 자리 잡았는데, (여느 마을도) {어언! 40 여년의 세월이 훌쩍"흘러 갔네요?}
"산골의 크기", 주택의 수에 따라,
"큰똠" = (35_40호) "작은똠"= (20_25호) "아랫똠" = (10_12호) "샛터" = (10_15호) "방축" = (10_12호) "초벙굴" = (2_3호)등으로 많을땐, 100 여호에 달하였고요, 셋방살이, 행랑채살이등의 [가구수]는 더 불어 났었지요?"
이중' 1)초벙굴(초벙골) = 잡초가 무성히 자라서 거칠고 웅덩이가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것' 같기도 하고,
2)초병골 =(초병=哨兵),= 마을을 지키키위해, 세워 둔, (자위수단,자체방어 기능) 보초가 망을 보던 곳이 아니었나?
3)산간(山間) = 작은나라, 반도에 사는 덕에? 무단히"도 빈번히"도 "외세의 침략"을 받았던지라, 고려 중기 _말기= 몽고의 침입과 학살,초토화" ['왜구의] 약탈, 방화, 납치"등으로, 난(亂)을 피하고자, 산속으로 숨어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요즘도 [깊은산골]에 들어 가보면, 이런데도 사람이 살까? 싶은데도, 살고 있습지요?. 저" 화순군 춘양면엔 "산간리"가 있어요?. 무슨, 유명한 "하키 선수"가 나왔었지요?
4)"구암바꾸" = "구암바꾸"란=구암바퀴의 방언으로, 강하게 표현 한건데요? 큰똠(동곽)앞 사거리에서 - 아랫 정자까지 = 100 여미터, 작은똠앞 사거리에서 - 아랫 정자까지 = 100 여 미터, 큰똠 사거리 - 작음똠 사거리 = 약 50 미터 를, 빙' 한바퀴" 돌아 뛰는 것을, [구암바꾸]라 했지요?> (이건,순전히=필자가붙힌(지어낸)이름입죠,)
즉=큰똠, 작은똠 사이의 마을 중간에, 작은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앞의 논에 흙을 돋구어서,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댁의 택호(宅號)가 "구암댁"이거든요?.(문영,만영,) 그집 주위를 (약 200미터 쯤) 한바퀴' 도는 것을 "구암바꾸"라 햇죠?
긴'긴" 여름해가 기울라치면, 어느덧" 산그늘이 지고요" 학교를 마치고 온' 학생들은 너'나' 할 것없이, "장끼등"으로 모여들고,
[새끼줄]과 {지푸라기/마른풀}을 넣어서 만든 "축구공" 을 차며, 뛰놀았엇지요? 온 동네가 떠나갈듯이, 마음 껏"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던' 옛날이 그리워 집니다.
[어둑' 어둑"] 해 져서, 동무들이 잘 안보이도록 뛰어 놀다가, 캄'캄" 해서야 집으로 찾아 가곤 했지요!"
[다시"] 쌀을 조금 얹은 "보리밥"이나, 기냥" [꽁보리밥] 또는, [감자] 몇개로도 배고픔을 채우고, 끼니를 대충" 때우고요"
아이들은 또다시, 마을앞' 회관 앞으로 모여 듭니다."
맑은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맑은 시냇물 같은, 북에서 남으로 "비스듬히" 흐르던 [은하수] 그강에는 셀수 없이, 많고 많은 "작은별"이 떠서, 저마다의 사연과 노래속에. 흘러가고 있었지요?" 내고향의 [밤하늘]에요!"
옛날에는 가로등/전등도 없고, "후래쉬"라는 손전등도 별로' 없었지요?' 그 깜"깜"한 산골의 마을길을 찾아서, 아이들은 "동곽"앞으로 모여들었지요?"
그리곤, 마을 어른/선배/형들의 시킴에 따라, 각기 편"을 가르고, 이른바" [구암바꾸]를 돌며, 한여름밤을 달렸지요?" 일등도, 이등도, 꼴찌도, 상(賞)도 없는데,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뛰며, 어린시절의 [고향의 삶]을 살아왔엇지요?"
시간이 지나면, 동곽마루에 걸터 앉아, 노래를 부릅니다. 누가" 시키기도 하고, 또" 자청하여 부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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