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는 하루에도 수 많은 리서치가 범람한다. 기업과 시장을 분석하는 수많은 리서치는 그러나 머리와 꼬리는 잘리고 몸통만 유령처럼 떠돌다가 대부분 비난속에 아주 드물게는 찬사속에 무상한 시세와 함께 명멸한다. 과정은 무시하고 오직 가격과 지수라는 결과에만 관심을 쏟는 탓이다. 리서치 이면에 묻혀있는 의미와 암시를 통찰해본다.
[머니투데이]
【정병선의 리서치@리서치】폭락하는 주식시장이 심상찮다. 지금까지 익숙한 논리와 분석방법으로는 해석조차 쉽지가 않다. 시장에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지만 쉽게 감지할 수 없다. LG투자증권 박윤수상무가 "2003년 증시전망 및 투자전략 "에서 제시하는 변화의 코드를 읽어보자. 그의 블루 코드는 비관적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저 평가 논쟁과 기업이익의 질
지난 2년 동안 주가 저평가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최근 5배 이하로 하락했는데 이는 지난 90년 이후의 평균인 14.4배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증시는 과거 평균수준의 PER를 회복하지 못하고 '저평가' 상태를 2년 반 이상이나 지속하고 있다. 그 이유를 그는 기업 이익의 질(Earnings Quality)에서 찾고 있다. 지난 해 국내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이면에는 부채 축소와 저금리에 따른 금융비용 감소, 원화 절상에 따른 외환평가익 확대 등이 있었다. 반면 기업이익의 원천인 매출액 증가는 미미하다는 주장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이익의 성장이 지속적으로 기대될 때만 주식에 높은 프리미엄을 지불해 왔고, 이는 이익을 계산하는 출발점인 매출이 추세적으로 늘어날 때에만 가능한데 최근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거 '90년대 우리 시장이 12~18배 사이의 PER에서 거래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기업의 매출액이 연평균 15%씩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내기업들의 매출 증가세는 지난 2001년부터 크게 둔화되고 있고 올해도 6.1%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우선 과도한 부채와 부동산 가격 하락에 직면한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면서 부채 감축에 나설 것이고 달러 약세 기조로 수출도 작년만큼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상반기 중 국내기업들의 매출은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로 인해 지난 해보다도 낮은 성장률에 머물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올 상반기 주식시장은 지난 해 하반기에 이어 약세권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 자본(주식)시장의 근본적인 변화
80년대와 90년대의 고성장 시기에는 주식시장이 기업들의 자본조달 창구로서의 역할을 했다. 당시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고성장기에는 기업들이 앞 다투어 설비투자에 나섰고 이를 위해 유상증자와 무상증자 등이 러쉬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증시 정책도 자연스레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지원할 수 있는 방향, 즉 주가 부양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기업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설비는 남아돌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욕구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잉여자본이 축적되어 이제 주식시장은 자본의 소각 장소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고성장기와 달리 주가는 꼭 올라야 할 이유가 없어졌으며, 정부가 주가 부양에 나설 명분도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투자가들도 주식을 단순히 매입하여 주가상승을 기대하기보다는 시장의 변동성을 이용하여 투자 수익을 올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이상과열된 선물시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
◎ 환율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가 어려워지면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늘리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이 경우 가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달러에 연동된 위안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가격 경쟁력이 크게 향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경쟁국들이 위안화의 미 달러 연동제 폐지를 강하게 요청하고 있지만 중국은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해 11월 6일 정책금리를 1.75%에서 1.25%로 인하하여 0.25%p 인하를 예상했던 시장의 컨센서스보다 더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금리인하 폭이 예상의 두 배에 달했다는 점은 미국이 먼저 달러화를 절하 기조로 가져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적정 엔/달러 환율이 150~160엔이라는 시오카와 일본 재무상의 발언이 미국의 의도를 반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선진국간의 환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원화는 절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수출에 큰 위험요소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 분배
"분배"가 이슈로 떠오른다는 것은 향후 성장이 크게 저조할 것이라는 심리상태가 반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작년 기업수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여 대기업 등이 투자를 꺼리고 있지만 근로자들은 불어난 개인(가계) 부채로 인해 현금 흐름이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때마침 출범한 "분배"를 강조하는 신정부와 더불어 금년도 spring round(춘투)는 그 어느 해보다 거세질 것으로 보여, 이는 직간접적으로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 주식시장의 소음(noise)
많은 사람들이 주가 폭락의 원인을 북한 핵문제, 이라크 전쟁과 같은 외생변수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주식시장에 항상 존재하는 일종의 소음(noise)같은 것들이고 경기상황에 따라 그 발생빈도가 달라진다. 주가를 전망할 때 고려사항은 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여기에 매달린 해석은 곤란하다. 주가는 펀더멘털 그중에서도 기업이익의 전망치에 기초해야하기 때문이다.
◎ PC 교체수요와 IT 경기부활
하반기 IT경기의 부할을 담보하고 있는 PC교체수요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PC를 굳이 교체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고 실제 교체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가차별화는 필연적
비용절감(Cost-cutting)에 의한 이익의 창출과 증가는 주가프레미엄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한다. 매출증가로 현금창출능력이 우수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시장규모가 정체된 상황에서는 경쟁기업이 도태되면 생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커지고 매출은 늘어난다. 즉 생존기업은 가격 수용자(price-taker)에서 가격결정자(price maker)로 바뀌면서 많은 프레미엄을 향유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섹터에서 1등기업에 집중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 올 상반기 투자전략이다.
합리적 이유에 근거한 비관적 전망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해 맞닥뜨리게 될 비극을 예방하며 때로 낙관으로의 변화를 앞서 발견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올 상반기에 520-770포인트로 설정된 박윤수 라인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