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배봉선수 필리핀원정 참관 후기
지난 10월3일 필리핀 파세이시에서 장재봉선수(극동서부)의 페더급 세계랭킹전 원정 경기가 있었다. 원정팀과 동행하여 4박5일간의 짧은 필리핀 원정경기를 참관하고 와서 개인적으로 느낀점이 많아 오랜만에 이렇게 장문의 글을 남기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글을 남기기로한 원인은 경기결과(9RTKO패)에 상관없이 장재봉 선수가 너무나 훌륭하고 인상적인 경기를 치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장에 찾아왔던 필리핀의 한 교포가 남긴말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래 6년동안 한국선수가 필리핀에 원정온 수많은 경기중에 오늘경기가 최고였다. 비록 져서 너무 아쉽지만 승패에 관계없이 한국선수가 자랑스럽다” 개인적으로는 필리핀에 처음으로 갔었고 언젠가부터 외국의 복싱경기장에 가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경기외의 복싱에 관계되는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된 필자는 역시 이번에도 필리핀의 복싱환경과 운영 시스템에 관심이 있었다. 개인적인 소감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격” 이었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복싱에 관한한 필리핀은 우리보다는 한참 선진국(?) 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주제넘게 장재봉 선수의 경기 참관기와 복싱과 관련된 그 외의 것들에 대하여 주관적인 의견을 남기게 됐다. 이글을 보는분들중에 혹여 필자가 너무 잘난체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싶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필자 역시 한국복싱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진정 한국복싱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애정이 담긴 치기로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란다.
*필리핀의 복싱열기* 매니.파키아오 때문에 당연히 예상을 하긴는 했었다. 그런데 정말 상상이상 이었다.그야말로 복싱의 천국이라고나 할까? 어느 필리핀 복싱 관계자의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압축하여 대변해 주었다 “ 요즘 필리핀에서는 개나소나(누구나) 복싱을 한다” 시합은 수시로 열리고 있으며 스폰서나 TV중계가 없는 시합도 부지기수로 열린다. 프로모터가 선수를 키우기위해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규모가 작은 시합들을 계속해서 개최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투자를 해서 어느정도 선수를 키우고 지명도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먼저 시합 스폰서 제의가 들어오는 흥행 환경 이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사업적인 차원에서도 정말이지 복싱에, 선수양성에 투자해볼만도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필리핀 복싱의 환경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얘기를 들을수있었던 것은 필자와 친분이 있는 전챔피언 제리.페날로사 덕분이었다. 그는 항상 친절하고 잰틀하다. 이젠 제법 얼굴에도 나이가 들어보이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포스가 느껴진다. 필리핀은 국내 챔피언만 해도 웬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을 알고 있다. 페날로사 역시 필리핀 복싱영웅의 한축을 이루고 있었다. 필리핀 4R선수 대전료는 2,000페소 (6만원) 정도이다. 그러나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현재 한국선수가 받는 40만원정도의 수준이란다. 필리핀 챔피언은 약 35,000페소 (100만원) 정도인데 이는 현지에서 중간정도의 고소득에 속한다고 한다.(필리핀의 생활수준을 고려할 때) 또한 선수들에 대한 대전료는 모두 정확하게 분배되고 있단다. 이번 장재봉 선수가 참가한 대회의 메인시합은 WBA 인터내셔널 수퍼플라이급 타이틀 매치였다. 사실상 지명도가 낮은 지역타이틀매치 였지만 대회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경기를 개최한 프로모터의 흥행 사업성(배팅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전체 대회규모를 보자면 오픈게임이 5~6게임, 세계랭킹전 3게임, 그리고 메인게임이었다. 해당 프로모터는 필리핀 선수가 상대할 세계랭킹전의 상대를 결코 만만한 상대를 선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우리 장재봉선수가 제일 언더독으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시합내용은 전혀 반대였지만...) 제1 세미파이널 L.플라이급 필리핀 밀란.밀린도(18전승5KO)의 상대 선수는 멕시코의 마르티네스 (7전7KO1패1무) 제2세미파이널 밴텀급 필리핀 마이클.도밍고(38승16KO14패2무) 의 상대선수는 멕시코챔피언 나바로(26승12KO4패) 제3세미파이널 라이트급 필리핀 알.사바우판(8승6KO1무)의 상대선수는 미국 올림픽대표선수 출신인 페레스(12승7KO2패) 제4세미파이널 페더급 마이클.페레나스(25승22KO2패3무)의 상대선수는 한국의 장재봉(9승4KO2패) 메인게임 수퍼플라이급 필리핀 드리안.프란시스코(17승13KO1무)의 상대선수는 파나마의 로베르토. 바스케스(27승20KO3패) 방송중계는 영어권중계와 스페인어권 중계 2개팀이 필리핀 현지 생중계 방송 이었다. 영어권중계팀은 하와이 스포츠채널에서 왔고 스페인어권 중계팀은 멕시코에서 왔단다. 영어권 중계팀의 해설자와 경기전 식당에서 장재봉 선수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재봉이의 프로필과 이것저것 인터뷰를 했다. 필자의 너무나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무사히 전달은 했다. 방송중계가 필리핀은 물론이고 PPV를 통해서 미국일부와 하와이, 홍콩, 유럽일부, 아프리카까지 된다고 했다. 한편으로 어이가 없기도 했다. 시합규모를 볼 때 메이저타이틀매치도 아니거니와 필리핀에서 열리는 중소규모의 시합이 PPV를 통해서 세계적으로 중계가 된다니 이걸 믿어야 될지.... 해설자가 그렇다는데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근데 멕시코에서까지 온 스페인어권 중계팀은 또 뭐란 말인가? 암튼 필리핀 프로모터의 수완에 또한번 경의를 표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서 2개 중계팀의 해설자들은 공통적으로 막강한 실력인 마이클.페레나스의 상대인 무명의 장재봉 선수에 대하여 알고싶어 했다. 자세히도 물어보더라... 운동경력,아마튜어는 했나,왜 복싱을했나?,직업,프로필, 등등등 결론은 이번 대회에서 제일 언더독으로 평가받는데 경기에 임하는 소감은? 당연 “무조건 KO승으로 이길겁니다” 씩씩한 재봉이...
경기 하루전 열린 계체량 행사는 커미션 사무실이아니고 대형 실내 행사장에서 열렸는데 HBO복싱에서나 볼수있었던 미국식의 계체량 행사 및 기자회견을 현장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이것도 파키아오의 영향 때문에 바뀐것인가? 필리핀이 영어권나라여서 그런지 사회자의 멋진 본토발음과 함께 어울어진 행사는 필자가 마치 라스베가스에 온 기분이었다. 특히 계체량후의 양선수 눈싸움... 취재열기는 엄청났으며 암튼 프로모터는 계체량 행사를 이번대회의 흥미와 관심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는 기회로 만들고 있었다. 필리핀 커미션 관계자의 역활은 오로지 계체량 체크뿐이었며 이날 행사의 주연은 프로모터였고 조연은 커미션이었다.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내돈 들여서 내가 시합을 주최하는데 당연히 프로모터가 주인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암튼 계체량 행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부러운 생각은 지울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계체량 현장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되면서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미국식이 무조건 좋은 것은 당연 결코 아니다. 그러나 복싱은 세계적인 스포츠이고 흥행의 본고장은 미국인 것을 부정할수 있을까? 전통, 문화적 정서, 경륜 등등 다 좋지만 선진화된 시스템을 하루빨리 배우고 실행해야 한다. 지금 한국복싱은 살기 위해서 뭐든지 해봐야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프로복싱은 결국 돈을 벌기위한(프로모터든,선수든,매니저든) 흥행이고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이나 변할수 있을까? ............................
*장재봉 선수의 시합* 시합전 예상은 당연 완전히 언더독으로 평가 받았다. 현장의 모든 관계자들이... 솔직히 복싱을 쬐끔 아는 필자또한 재봉이한테는 미인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왠지 모르게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에 재봉이를 처음 만나봤는데 너무 밝고 낙관적인 녀석이었다. 겉으로는 너무 태연하고 자신감도 넘쳐 흘렀고 상대 레벨에 대한 부담감도 느끼지 않았다. 선수로써 훌륭한 자세인 것은 칭찬하고 싶었다. 필자는 그동안 경기전에 상대선수의 레벨에 미리 쫄아버려서 정작 링 위에 올라가서는 주눅이 들어 주먹도 제대로 못내고 허무하게 지는 경기를 심심찮게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암튼 시합전날 계체량도 just로 통과하고 페레나스와 눈싸움도 멋지게하고 여기저기 후레쉬 세레도 많이 받고 밥도 든든하게 먹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다음날 경기장으로 갔다. 필자는 재봉이의 최근경기를(vs 손창현전) 봤는데 그 시합에서의 레프트훅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불어 강력한 터보엔진(스테미너)을 바탕으로한 재봉이의 투지 넘치는 파이팅력이 마음 한편에 은근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지난 30년 경력의 백전노장 김춘석 관장님의 섬세한 시합전 준비를 마치고 몇 명밖에 되지않는 현지 교포들의 목청 터지는 응원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재봉이는 늠름한 모습으로 링 위에 올라갔다. 곧이어 노련하고 침착한 모습의 페레나스가 올라오고 이어서 멋진 필리핀 링 아나운서의 선수소개가 이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기전 소름끼치는 긴장감 이었다. 더구나 원정경기여서 그런가.... 외국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분명 그순간 맞는말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땡 ! 1R 시작 이었다. 노련한 움직임의 페레나스, 그러나 다소 뻣뻣하고 어께에 힘이 들어가 있는 재봉이... 그렇게 1분여를 양선수 조심스럽게 탐색전을 펼쳤다. 어느정도 탐색전을 마친 페레나스가 펀치에 시동을 걸었다. 릴렉스한 움직임에 어께의 힘을 빼고 부드럽고구사하는 페레나스의 펀치는 확실히 수준이 있었다. 사우스포인 페레나스는 움직임, 펀치구사의 각도,궤도,스타일이 전성기 시절의 제리.페날로사를 닮아 있었다. 페날로사가 공을 들여서 세계챔피언을 만들려고하는 선수라는 얘기가 맞는 것 같았다. 이에 비해 재봉이는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약간 당황한 기색이다. 1분여가 지나면서 페레나스의 레프트 기습 스트레이트를 몇 번 허용했다. 충격을 주는 펀치는아니었지만 점수가 불리하다.
천추의 한 2라운드, 그러나 최고의 2라운드 1회전을 통해서 상대를 파악한 페레나스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확실히 1회전에 비해서 적극적이었고 펀치도 박력이 있었다. 재봉이는 관장님의 호된 질책에 따라 상체 움직임이 조금은 유연해졌다. 제법 더킹, 위빙을 한다. 그렇게 2분여가 될쯤 갑자기 재봉이가 욕심을 내고 큰동작으로 원투를 쳤다. 그순간 페레나스는 본능적으로 반스텝 빠지면서 라이트숏트훅을 카운터로 받아쳤다. 0.5초만에 본능적으로 이루어진 전광석화 같은 카운터였다. 카운터를 정면으로 허용한 재봉이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미 경기장은 꽉찬 관중들의 함성으로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일어난 재봉이의 스텝이 2번씩이나 꼬인다. 그순간 필자는 그대로 경기가 끝날것으로 생각했다. 상당한 충격의 재봉이가 이어지는 페레나스의 연타를 견딜 것 같지가 않았다. 90% 경기를 포기한 필자가 온몸에 힘이빠져 의자에 다시 앉자 심판의 복스!!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복스된 양선수... 이미 재봉이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김춘석 관장님은 수건을 던질려고 손에 들고 아무말도 못하고 보고만 있었고 필자는 그순간 페레나스만 보고 있었다. 당연히 페레나스는 결정을 지으려고 재봉이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그순간 재봉이가 가드를 올렸다. 그리고 이어서 무릎을 약간 굽히면서 페레나스의 펀치를 피하고 이어서 올라오면서 레프트를 힘껏 돌려제꼈다. 페레나스가 통렬하게 나가 떨어졌다. 훨씬 더 강력한 레프트 훅 카운터였다. 못일어날줄 알았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일어나는 페레나스 그러나 눈은 이미 풀렸고 다리는 술에 취했다. 정신력과 자존심으로 버티고 있다. 재봉이가 쨉만 정확하게 맞춰도 경기는 끝이다. 그순간 필자도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 페레나스측 세컨들과 관중들의 고함소리로 경기장은 온통 광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쓸데없는 동작과 액션으로 시간을 벌어주는 레퍼리.... 씨ㅂ, ㄱ 자슥 무려 1분여가 남았다.
김춘석 관장님도 미친 듯이 소리쳤다. “재봉아 정확하게 보고 한 대만 때려!!!” 그러나 경기장의 함성에 그냥 묻힐뿐이었다. 페레나스는 끈질기게 이를 악물고 재봉이를 붙잡고 있다. 곧바로 말리지 않는 레퍼리... 미치겠다. 그와중에 한 대를 못때리는 재봉이... 답답하다. 아! 시간이 다 돼간다. 얼마 안남았는데 제발 재봉아 한 대만 때리면 끝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1분여를 소리치다가 마의 2회전이 허무하게 끝이났다. 정말 다 잡은 고기를 바로 눈앞에서 놓쳤다. 필자는 지난 7월 일본에서 벌어진 조희재 선수의 동양타이틀매치도 현장에서 관전을 했었는데 당시에도 7R든가 8R라운드에 이번과 같은 상황이 있었다. 조희재 선수가 챔피언인 나가지마 선수를 라이트카운터로 통렬한 다운을 빼앗고 역시 1분이 넘는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끝내지 못했고 판정으로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것이었다. 솔직히 레퍼리가 그대로 시합을 끊었어도 할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레퍼리의 방해가 있었다하더라도 재봉이 스스로가 충분히 시합을 끝낼수 있었다. 한마디로 경험이 부족했고 침착하지 못했다. 물론 선제다운을 빼앗겨 재봉이도 제정신은 아니었음을 감안 하더라도 시합중에 한두번 찾아오는 천금같은 찬스를 살리지 못하는 실수가 일류선수들과 구분되는 레벨의 차이임에는 어쩔수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한국의 그나마 톱클래스라고 하는 선수들의 경기에서 항상느꼈던 것이 이번에도 역시 재현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어린선수가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를 맞아 상당한 충격의 선제 다운을 빼앗긴 상황속에서도 채 5초도 안지나그렇게 멋진 카운터를 구사한것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평소 훈련에 의해서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본능적으로 구사된 최고의 레프트훅 이었다. 나중에 시합후 재봉이의 소감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상대가 다운된지도 몰랐어요. 주먹을 칠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심이 말리는거예요. 그때 보니까 상대가 떨어져 있더라구요. 관장님하고 레프트 훅 연습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게 제대로 먹힌 것 같아요. 근데 거기서 못 끝낸 것이 정말 죽고 싶네요”
3R ~ 8R 2회전에서 호된맛을 본 페레나스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철저하게 밖으로 돈다. 상대편 코너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경기를 관전하던 페날로사도 어느새 일어나 코너에 붙어 소리를 지른다. 씩씩하게 돌진하는 재봉이.... 시종일관 밀어부친다. 그러나 5R가 지나면서 서서히 페이스를 찾기 시작하는 페레나스.. 그러나 함부로 들어오지는 못한다. 중반을 지나면서 재봉이의 펀치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러자 완전히 페이스가 돌아온 페레나스의 펀치가 눈부시게 계속 들어왔다. 못치는 주먹이 없다. 보디도 상당히 맞기 시작했다. 7R 코너에 들어온 재봉이에게 김춘석 관장님이 물어본다. “ 재봉아 힘들면 그만하자” “ 아뇨 관장님 끝까지 할수 있습니다 절대로 수건 던지지 마세요”
그러나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확실하게 기량차이는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재봉이는 시종일관 씩씩하게 돌진했다. 이미 페레나스는 노련하게 KO승부를 포기하고 판정을 생각하며 경기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레벨의 차이였다. 상황에 맞게 본인의 페이스를 적절하게 조정하면서 경기를 조율해나가는 경기운영을 할수있어야 한단계 레벨업이 되는 선수가 될수 있는 것이다. 8R 잠깐 찬스를 잡은 재봉이가 강력하게 밀어 부쳤다. 그러나 노련하게 견디는 페레나스... 결국 재봉이는 힘만 쏟았다. 코너에 들어온 재봉이의 눈두덩이가 제법 부어있다.
*마지막 9R* 판정까지는 갈수 있을 것 같았다. 기량에서는 밀리고 있었지만 투지,힘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특히 링 주도권에서는 시종일관 재봉이가 잡고 있었다. 페레나스는 2R 이후 치고 돌면서 기습공격 위주로 경기를 풀어 나갔다. 그러나 페레나스도 중간 중간 간혹 재봉이의 큰 펀치를 허용했기 때문에 그대로 판정까지 갈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8R에 잠깐 잡았던 찬스에서 재봉이가 너무 힘을 쏟았던 것이 큰 화근이 된 것 같다. 9R가 시작되고 대략 1분여가 지났을까? 많이 지친 재봉이의 가드가 잠시 떨어지는 순간 페레나스가 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기습적인 레프트 스트레이트 단발을 날렸고 이를 허용한 재봉이가 그대로 뒤로 물러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그순간 찬스를 놓치지 않고 여지없이 낚아채는 페레나스 였다. 이어지는 원-투, 레프트 스트레이트, 또다시 원-투, 그리고 마지막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허용한 재봉이가 로프까지 몰리면서 맞고 앞으로 주저앉자 레퍼리가 그대로 경기를 끊었다. 사실 적절한 스톱이었던건 부정할수 없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그 와중에도 레퍼리에게 카운트!! 카운트!! 라고 소리치며 항의하는 재봉이.... 김춘석 관장님이 올라가서 코너로 데리고 왔다. 보기에 가녀린 녀석이 어디서 저런 깡다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필자는 온몸에서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말할 힘도 없었다. 정말 너무나 오랜만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본것같다. 경기에는 졌지만 솔직히 실망스럽지 않았다. 페레나스와 재봉이의 시합은 그날 개최된 모든 시합중에 단연 압권이었다. 그날 대회에 출전한 10R 이상 선수들의 면면을 보자면 하나같이 복싱의 본고장에서온 전적이 화려한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시합전 당연 재봉이가 제일 언더독으로 평가 받았었지만 시합후에는 제일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시합후 관계자들의 평가를 정말 가감없이 그대로 전하고 싶다. 경기후 링위를 내려오는데 관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가 있었고 서로 재봉이와 하이 파이브를 할려고 몰려들었다. 영어권중계팀의 해설자는 “ 우와 원더풀!! 시합을보는 내내 행복했고 즐거웠다. 당신같이 터프한 복서는 처음봤다. 당신은 이직 어리니까 충분하다.” 경기후 드레싱 룸을 찾아온 페날로사는 약간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재봉이를 그냥 자기선수의 몸만 푸는 상대로 생각하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면서 재봉이에게 이번보다 좋은 조건의 시합을 주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번 시합이 끝나고 당사자인 재봉이와 김춘석 관장님의 아쉬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필자역시 너무나 오랫동안 아쉬움이 남는 경기로 기억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하여 세계적으로는 프로복싱이 아직도 펄펄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피부로 느낄수 있었고 더불어 선수들이 지금의 수준에서 한단계만 레벨업이 된다면 충분히 세계시장에도 통할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됐다. 그날의 모든 시합을 전부 지켜 보았지만 선수들의 실력이 우리보다 몇단계 위에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다만 복싱시장의 규모, 흥행여건, 홍보시스템, 커미션의 운영시스템 분야, 선수들의 양성시스템 등등 은 우리가 평소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던 필리핀이 정말이지 한참 앞서가고 있었다. 선입관에 의하여 평소 필리핀을 애써 무시했었던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역시 부끄러웠다. 우리가 변화하지 못한다면 당분간은 도저히 복싱으로 필리핀을 이길수 없다고 판단이 된다. 필자는 그동안 해외에서 직접 복싱을 본 나라가 중국,일본,필리핀 밖에 없다. 그래서 당연 식견이 좁고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에 대하여 너무 질책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프로복싱 제2의 전성기 시절을 누리고 있는 일본에는 몇 번 가보았지만 사실상 모든 시스템에서 우리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필자가 말하는 모든 시스템이라는 것은 경기현장을 비롯하여, 커미션운영, 경기규칙, 심판운영, 흥행방식, 계체량,조인식,체육관운영 등등의복싱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현재 한국 프로복싱 대부분의 복싱에 관한 시스템이 일본 시스템을 들여 왔기 때문이다. 가장대표적인 것이 복싱커미션 자체가 체육관 등록제에 의하여 구성이 되고 운영되는 점이다. 전 세게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일본 뿐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고 고정관념이 자리잡아 있었고 길들여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필리핀 원정경기 참관은 너무나 신선한 충격 이었다. 물론 한국 복싱계에는 필자보다 훨씬 더 다양한 해외복싱 경험을 하신 많은 선배님들이 계시다. 그러나 필자는 앞서 언급했듯이 경기자체도 관심이 있지만 오히려 그 외의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관찰하고 확인하고 때론 인터뷰도 하여 나름 연구를 해보았다. 이것이 다 복싱에 미쳐서 하는짓 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암튼 모든 면에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한국 복싱계의 현실이 오버랩 되면서 아쉬움만 남았다. 암튼 현재 우리 복싱계의 현실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은 “얼마나 쉽게 시합이 자주 개최 될수 있도록 할까?” 인 것 같다. 마치 닭과 달걀과 같은 것이다. <시합이 있어야 좋은 선수가 나오지, 와 선수가 있어야 시합을 하지>처럼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KBC에서는 제도적인 개선이 우선 돼야하고 권투인들이나 프로모터는 흥행의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것으로 판단된다. 세부적인 개선론에 대해서는 KBC와 권투인들이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난상토론을 거쳐서 정말 혁신적인 시스템의 대변화를 이루야 된다. 필자의 짧은 식견에 의하여 굳이 일본식과 미국식으로 구분한다면 KBC와 관련된 커미션 운영분야는 현시스템에 미국식의 장점을 도입하여 개선하고 흥행적인 분야에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충분히 우리도 당장 시행할수 있다고 확신한다.
프로복싱이 타 프로스포츠와 흥행방식이 확연히 다른점은 단 한가지이다. 야구,축구,농구,배구,골프와 같은 메이저 프로스포츠는 각 기구가 대회를 직접 주관하여 모든 수입을 챙겨서 참가팀(개인)에게 분배하는 방식이다. 월드컵, 메이저리그, 전세계 각구의 프로축구,야구, 농구리그,골프대회 등등 모두 같은 방식이지만 유일하게 프로복싱은 국가 커미션이든 세게 복싱기구 이든간에 흥행에는 직접 관여 하지 않는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프로복싱은 사실상 어느 나라이건간에 프로모터가 주도하고 이끌어간다. 당연 흥행을 하는자가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식의(세계적인) 프로복싱 흥행은 프로모터의 사업장에서 커미션과 복싱기구의 역할은 흥행이 잘 될수 있도록 지원하는 분야일 뿐이다 (경기규칙 적용, 선수 건강체크, 경기인정, 심판배정 등) 예를들어 미국에서 호야가 주최하는 WBC 타이틀매치에 술래이만이 주인행세를 할수있나? 링위에서 소개하는 것 봤나? 복싱기구는 프로모터가 이해관계. 흥행관계에 따라 이용하는것에 불과하다. 필자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얘기를 굳이 잘난체하면서 하는 이유는 여기서 우리가 미국식의 장점을 도입하여 변화를 이끌어 내야한다.
한국과 일본의 커미션은 유독 규제와 자격규정이 많다. 풀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오히려 스스로 가두어 둔다. 겉으로는 시합이 많아져야 된다고 외치면서도 온갖 규정을 적용하여 규제를 한다. 흥행에는 관여하지 않고 돈한푼 주지않으면서 시합개최에 대한 규정또한 만만치 않다. 복싱의 생명인 시합을 내돈 들여 주최하는 흥행업자인 프로모터와 매니저, 선수들이 필요에 의해서 이용할수 있는 기구에 관한 것 조차 규정으로 묶어 통제한다. 프로는 직업이고 직업이면 돈을 벌어야 한다. 프로페셔널 스포츠에서 시합을 개최하는데 필요한 흥행적인 요소를 규제하는 것은 모순이다. 다만 커미션 고유의 임무인 선수건강보호, 경기규칙의 엄격한 적용 이 두가지는 오히려 철저하게 더욱 강화해야한다. 나머지는 전부 풀자!! 그래야 산다!! 한국에서도 누구나 쉽게, 자주, TV가 없어도, 선수에게 투자해서 세계시장에 진출시켜 돈을 벌수 있도록 복싱시합을 개최할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무한하게 있다. 고정관념에 묻혀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한국 프로복싱이 지금보다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있나? 사실 주제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혹여 이글을 보는 권투인이나 관계자 분들께서 필자에 대한 다른 오해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원래는 장재봉선수의 시합이 너무 강렬하여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하고자하는 의도였는데 말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다만 한국 복싱이 발전할수 있다면 혹시라도 이글로 인하여 필자가 욕먹고 비난 받는 것은 충분히 감수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너무나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준 장재봉 선수와 김춘석 관장님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장재봉 선수가 복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이번의 시합경험이 차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자양분이 될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 프로복싱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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