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남한산성’이라고 하는 곳은 청량산이다.
청량산 중 가장 높은 곳이 수어장대(497m)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벌봉(512.7m)이 더 높다.
남한산성을 찾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이다.
승용차, 또는 버스로 편히 와서 산책하는 데이트족,
성남 쪽 을지대학교와 인접한 산성유원지에서 올라 다시 되내려가는 등산객,
서울 마천동에서 옹주봉 능선 서문, 혹은 북문으로 이동하는 등산객들이 그들이다.
그러다 보니 남문, 서문, 북문, 그리고 중심지인 종로만 붐빌 뿐 의외로 한적한 곳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벌봉 가는 길인데,
개축하지 않고 스러져 가는 옛 성곽을 그대로 두고 시원스레 펼쳐지는 전경도 좋아 운치가 있다.
나는 예전부터 호젓한 이 코스를 즐겼지만, 이른바 ‘코로나 19’ 발생 이후 이즈음 더욱 자주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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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덕풍동에서 시작하여 덕풍공원을 따라
말바위와 사라고개 사이 중부고속도로 위를 관통하여 설치한 하남 위례교를 통과하면 이성산성으로 이어진다.
이성산성(二聖山城)은 6세기 중반 신라 때
해발 210m의 이성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감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이성산성은 북쪽으로는 한강 유역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흙으로 만든 벼루 40여 점, ‘무진년(戊辰年)’, ‘남한성(南漢城)’,
‘수성(須城)’, ‘도사(道使)’, ‘촌주(村主)’ 등의 글자가 새겨진 목간이 다수 출토되었다.
성벽과 건물터 뿐 아니라 저수지도 복원하여 제법 운치가 있어 잠시 쉬어 가도 좋더라.
한때는 이성산성을 한강 이남에 위치하고 있고, 춘궁리(春宮里)이라는 지명과도 연관되어
오랫동안 다산 정약용, 두계 이병도 등에 의해 하남 위례성터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1988년 올림픽 개최 이전 방이동 올림픽 공원 발굴 등을 통해 예전 학설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1999년 경당 연립의 재건축 과정에서 대량의 백제 왕궁 유물이 발굴됨에 따라
이제는 풍납동 지역이 백제 첫 도읍지인 위례성의 왕궁 터임을 학계에서 확정하였다.
하남시에서는 예전 ‘하남 위례성’ 학설을 토대로 둘레길을 ‘위례길’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이는 혼란을 유도할 뿐이기에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 (Ⅰ) 덕풍동 – 덕풍공원 – 하남 위례교 - 이성산성 - 광암교 (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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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 유수지에서 춘궁동(고골저수지, 광주향교 등)으로 이어지는 고갯마루를 가로지르는 광암교를 건너면
금암산, 연주봉 옹성으로 이어진다.
남한산성 우익문으로 들어가 북문을 거쳐 동장대 터에 올라서고, 제3암문을 거쳐 벌봉에 다다른다.
바위 색깔이 비단색이이서 이름지어졌다는 금암산(錦巖山, 322m)에 오르니
가까이는 123층 롯데 월드, 멀리는 북한산 능선이 훤히 보인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흔들바위, 범바위, 이름도 예쁜 어미새와 아기새 바위 형상을 보면서
발바닥이 편한 흙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연주봉 옹성에 이른다.
본래의 성곽이 있고 곳곳에 삐쭉 튀어나온 옹성은 일종의 전초기지라고 보면 된다.
남한산성은 주봉(497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2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 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 우익문에서 성곽을 따라 북문을 거쳐 동장대 터까지 걸으면서
완만한 곡선을 이룬 성곽과 소나무 군락과 조화를 이루면서 바라보는 전경은 가히 일품이다.
* (Ⅱ-1) 광암 유수지 (30-5 장미상가 건너편에서 승차) – 금암산 - 연주봉 옹성 (5km) / (Ⅱ-2) 남한산성 우익문 – 북문 - 동장대 터 – 제3암문 - 벌봉(3.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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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종로 주변에는 옛 행궁을 재현하였고, 해공 신익희가 졸업했다는 남한산 초등학교, 천주교 성지 등이 있다. 물론 음식점과 카페가 모여 있고, 유료 주차장(3,000원)도 마련되어 있다.
남한산성 안에는 국청사,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영원사, 현절사 등 제법 많은 사찰이 있는데,
이는 승려들이 남한산성에 머무르며 군사적인 역할과 함께 성곽 보수와 유지, 각종 노역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흔히들 승려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일어나 구국의 선봉에 섰다고 운운하지만,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의 승려는 천민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사찰이 장경사이다.
동문에서 시작하여 장경사를 거쳐 성곽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오르면 동장대 터에 다다른다.
또한 보건소를 끼고 현절사로 오르거나, 북문에서 포대를 거쳐도 동장대 터에서 만나고,
다시 암문을 거쳐 벌봉으로 갈 수 있다.
암문을 통해 벌봉 가는 길은 나무들도 제멋대로 자라고 성곽을 허물어진 형태를
그대로 남겨 놓아 애잔한 정서를 느낄 수 있어 더없이 편안하다.
* 남한산성 내에 주차시켜 놓고 가볍게 다녀 올수 있는 코스 (9번 버스 종점 / 왕복 4km 내외) / (Ⅲ-1) 동문 – 장경사 - 동장대 터 – 제3암문 – 벌봉 / (Ⅲ-2) 남한산성 내 보건소 – 현절사 - 동장대 터 – 제3암문 – 벌봉 / (Ⅲ-3) 남한산성 종로 – 북문 – 포대 터 - 동장대 터 – 제3암문 - 벌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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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검단산, 용마산에서 이어지는) 43번 국도 은고개 입구에서 시작하여
엄미리 계곡을 타고 한봉에 오르고 다시 벌봉에 이른다.
물론 섬말 입구 교차로(산곡휴게소)에서 오르는 능선길을 걸으면 내내 확 트인 시계를 즐기며 걸을 수도 있다.
남한산성 관통 도로 동문 밖 300m 지점에서 시작하여 돌문화 공원을 거쳐 한봉으로 오를 수 있고 벌봉에 이른다.
돌문화 공원에는 에로틱한 조각들이 여럿 있는데, 그저 흉내 내어 갈고 다듬었을 뿐 수준은 그저 그렇다.
암문(暗門)은 성곽에 문루를 일부러 세우지 않고 뚫은 문을 말한다.
주로 일반인이나 적들이 알지 못하게 후미진 곳이나 깊숙한 곳에 만들어진다.
주로 전시에 적이 모르도록 몰래 물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즉 유사시에 드나드는 비밀통로인 셈이다.
이곳에는 암문들이 여럿 있고, 성곽을 복원을 하지 않은 옛 상태로 남아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따라서 중간에 길을 잃어 가끔 헤매게 되는 미로(迷路)이다.
하지만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새롭게 경험하는 재미 또한 적지는 않다.
* (Ⅳ-1) 산곡휴게소 - 법은사 – 능선길 – 벌봉 (3.5km) / (Ⅳ-2) 은고개 - 엄미리 계곡 – (남한산 표지석) - 한봉 – 벌봉 (4km) / (Ⅳ-3) 동문 밖에서 시작 – 돌문화 공원 – (남한산 표지석) - 한봉 – 벌봉 (2km)
첫댓글 많이 다녀서 아는 곳이라 읽는 동안 그 길이 그려지고 역사가 나름대로 나열되니
재미있네요. 가까운 곳에 많은 것이 담긴 여러가지를 느낄 수 있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새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예전부터 많이 다니신 길이었군요.
박 회장님께서 '마당발'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깨갱 ^^
이나저마 다시 어울려 지방산행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리겠지요?
오늘 가본 장경사에
연등이랑 흰 진달래가 폈어요 .
망월사앞에
아기동자 귀엽네요
유키 님이 누구신가 궁금해서, 사진을 키워 보려해도 여의치가 않네요..
하여튼 글을 읽고 관심 가져 주셔서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