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주일)/06년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빵집에 가서 기내에서 먹을 빵을 사고 집에 와서 잔디와 화분에 물을 고루 주고 음식 쓰레기들을 밭에 파묻고 저녁을 해먹고 치우고 짐을 싸고 너무나 바쁘다. 남편은 발 맛사지를 하고 너무 한가한 것이 화가 나다.
멸치 볶음, 오징어채 볶음, 깻잎 장아치, 김 등을 싸고 김평임 권사님 딸이 8시에 와서 공항으로 오니 사람이 많지 않아 금방 9시에 들어와 노트북을 열고 시나리오를 쓰려는데 시간이 금방 가고 밤 10시 30분 비행기를 타다.
비행기 속에서 김평임 권사님의 아프고도 괴로웠던 인생이야기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기가 막힌 간증을 듣다. 참으로 불쌍한 고생을 많이 한 인생이시다.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돌보느라고 고생하시는데 딸이 효도하느라고 좋은 시계도 사 주어 차시다.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고혈압에 신경통에 많이 아프신데 내색을 안 하신다고 하신다. 삼일 전부터 골치가 많이 아프다고 하시고 어린이 아스피린 두 알을 드렸는데 별 효과가 없어서 스튜어디스에게 어른 용 아스피린을 달라고 해서 잡수시고 간증을 하시면서는 다 나았다고 하신다.
9월 4일(월/노동절)/06년
디트로이트 공항에 새벽 5시 30분(동부 변한시간)에 도착하여 후로리다 올랜도 행 비행기는 9시 30분이어서 4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 종선이가 아버지에게 보내준 어메리칸 익스프레이스 카드로 월드 클럽(공항 휴게소)을 찾아서 들어 왔는데 굉장히 웅장하고 시설이 고급이고 빵, 과일, 커피, 온갖 음료수 등이 풍성하고 안락한 의자와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김 권사님이 2불씩 하는 비싼 물 두 병을 샀는데 그냥 가지고 가기로 하고 나도 빵을 공연히 사 왔다. 어느 공항에서나 쓸 수 있는 카드로 다음부터는 음식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샤워장도 있고 회의실도 있고 너무나 안락하고 좋다.
베가 빵과 토마토 쥬스, 커피 등을 마시고 김 권사님은 긴 의자에 주무시고 목사님은 성경 읽고 나는 컴퓨터를 한다. 아들 덕분에 공항에서 이렇게 좋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니 너무나 아들이 고맙고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9시 30분 올랜도 행 비행기를 타고 후로리다 올랜도에 12시 30분에 도착하다. 짐을 찾고 한선희 집사님 막내딸과 그녀의 딸(3세)이 마중 나와 집으로 와서 둘째 딸 집의 이층 한선희 집사님 방에 우리의 짐을 풀다.
집에서 타코마에서 사온 빵을 먹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선희 집사님이 일 갔다가 와서 이혼한 전 남편 집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하다. 장애아들(죠수아-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고 함)과 남편과 새 아내(한국 여인)가 있는데 다른 곳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는데 한선희 집사님보고 형님이라고 부르고 서로 형님, 아우님 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것이 참 신기하다.
옛날 집으로 큰 나무들이 울창하고 운치가 있는데 이 집은 한선희 집사님 집인데 전 남편에게 세를 주었다고 한다. 전 남편은 망해서 후로리다로 들어왔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남편의 새 여인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좋은 마음을 주셨다고 한다. 그 여인은 아기를 못 낳아 죠수아에게 잘해준다고 한다.
한선희 집사님은 딸이 셋인데 딸들이 모두 잘해 주고 딸들 집에 엄마의 방이 있다고 한다. 딸과 엄마와 여자들이 똘똘 뭉쳐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 손녀 하나밖에 없어서 그 손녀가 귀하게 자라고 있고 38살 큰 딸이 아직 아기가 없어서 러시아에서 양자를 데리고 올 계획이다.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다.
9월 5일(화)/06년
한선희 집사님은 일하러 가고 아침에 가지고 온 빵을 먹고 김평임 권사님이 된장찌개를 끓여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한 집사님이 와서 자기가 일하는 곳 호텔로 가서 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관광지라 아름답게 잘 꾸며 놓았다.
사진을 찍고 다운타운 디즈니랜드에 가서 구경을 하는데 이곳은 가게와 식당이 많은 곳이다. 내일 큰 딸이 식당에 예약을 해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차라리 오늘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해서 일식집에 가서 스시와 데리야끼, 돼지고기 등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큰 딸 집에 가서 디저트로 케익과 차를 마시다.
큰 딸은 체구가 자그마한 한국 여인으로 미국 남편이 무척 잘해주고 똑똑하고 회사를 잘 운영한다고 한다. 큰 딸이 마이에미는 너무 멀고 복잡하고 게이들이 많고 더럽다고 가지 말라고 하다. 자기들이 방금 갔다 왔다고 … 좋은 큰 딸 차로 바꿔 가지고 오며 김 권사님이 50불 넘게 쇼핑을 하시다.
집에 와서 내일 김밥을 싼다고 모든 준비를 해 놓고 자다.
9월 6일(수)/06년
아침에 내가 일찍 일어나서 혼자서 김밥을 다 싸다. 처음에는 굉장히 맛이 있었는데 너무 싱거운 것 같다. 나중에 한 집사님이 일어나서 늦었다고 해서 서둘러 9시에 에캅 파킹넛에 가서 같이 일하는 간호원을 기다렸다가 안 와서 한 사람 표를 20% 디스카운트를 받아 사야(직원이라) 했다.
한 달에 한 번 세 사람을 공짜로 들어가게 할 수가 있다고 한다. 표가 많았었는데 선교사님 가족을 드려서 표가 없다고 한다. 기차를 타고 매직 킹덤에 가서 많은 것들을 타고 구경을 하는데 김권사님이 아프다고 집에서 숼 것을 그랬다고 하신다.
싸온 김밥을 먹는데 샌드위치 백에 아무렇게나 싸온 김밥이 일그러지고 맛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김밥으로 식사를 하고 쥬스와 물로 무더위의 갈증을 이기며 구경을 하는데 무서운 속도로 폭포를 떨어지는 보트를 한 집사님과 목사님만 타고 우리 세 사람은 무서워서 못 타다.
"환상의 나라"에서 각국나라 인형들이 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것과 동화 속 피터 팬 등을 재미있게 구경하다. 반도 못 보고 4시 넘어 터키다리(5불씩이라고 함)를 사서 뜯으며 기차를 타고 에캅에 오다. 에캅에 와서 웅장하고 멋있는 우주와 인간의 미래 등을 보고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남편만 혼자 타고 날이 어두워졌다.
아름다운 에캅을 반도 구경을 못하고 9시에 호수에서 하는 화려한 장관인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차 속에서 호수에서 팝콘을 튀기고 그것을 오리가 주워 먹는다고 한 집사가 말한 것을 그대로 믿었다고 김권사님이 한 집사와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9월 7일(목)/06년
어제 저녁을 안 먹었는데도 아침밥이 맛이 없다. 김치찌개를 돼지 족발로 했는데 껍질이 너무 징그러워서 안 먹다. 음식을 싸가지고 아침 9시에 바닷가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2시간 30분쯤 바다를 향해 달려갔지만 바다를 찾지 못하고 번개와 비를 만나다.
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앞이 안보이고 번개와 우래가 무섭다. 휴게소에서 3시경에 싸가지고 간 밥을 맛있게 먹다. 배가 고파선지 맛이 있었다. 비가 그쳤다가 또 무섭게 퍼붓고 6시 경에 집으로 그냥 돌아왔는데 날이 환하고 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9월 8일 (금)/6년
아침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아래에 내려가서 어제 저녁에 김 권사님이 준비한 맛있는 해물 된장 두부찌개로 밥을 먹고 짐을 가지고 나오는데 한 집사님이 부로치와 자기의 번쩍거리는 청 잠바를 주시다. 나에게 너무 컸는데 사양을 해도 자꾸 주어 가방에 넣고 원피스도 하나 주시다.
김 권사님도 멋있는 겉옷을 하나 얻어 입고 새벽 5시 경에 남편에게 운전하라고 해서 운전하고 가는데 한 집사가 길을 잘 못 가르쳐 주어 엉뚱한 후리웨이에서 헤매게 되어 불안했다. 잠자는 둘째 딸에게 전화를 해서 그 집으로 가서 둘째 딸이 운전을 하고 공항에 무사히 오다. 한 집사가 2년 후에 꼭 다시 오라고 하니 너무나 감사하다.
아침 7시 비행기로 미니아폴리스에 9시10분에 도착해서 4시간 쯤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게 되어 노스웨스트 월드 크럽을 찾아가서 빵, 커피, 사과, 등을 잔뜩 먹고 성경 읽고 글을 쓴다. 미네아폴리스 공항에서 4시간이나 보내야 하므로 월드 클럽을 찾아가서 빵과 모카커피와 음료수를 들고 컴퓨터를 하다. 은성이와 종선이와 통화하고 권사님 딸과도 통화를 하다.
비행기 안에서 먹을 호기 샌드위치 빵을 저녁으로 사다. 비행기 안에서 음료수는 공짜로 얼마든지 주지만 스낵은 돈을 주고 사야한다. 우리가 사간 샌드위치로 맛있게 식사를 하다. 권사님 사위가 마중 나와 6시 경에 집에 오다.
신문 보고 야채에 물을 주고 9시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다. 교회에 와서 뜨겁게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니 마음이 안정되고 평강이 왔다. 내집, 내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정되고 큰 행복인가를 다시금 느끼고 감사의 기도를 소리쳐 올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