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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ler... one of the most significant figures who ever lived" | |
"Hitler will emerge from the hatred that surrounds him now 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figures who ever lived... - John F. Kennedy, |
"히틀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 중 하나이다."
"히틀러는 그동안 그를 향했던 비난과 증오를 떠나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오를것이다..
그의 삶의 방식과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그는 전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 John F. Kennedy, 미국의 대통령 -
- David Lloyd Geor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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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가장 훌륭한 인물 중 하나이다.
나이든 자들은 그를 신뢰하고 젊은이들은 그를 숭배하지.
나라를 위해 일한 영웅을 받드는 것이었어"
"나는 막 독일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와 같이 짧은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을 모든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동안 먼거리에서 언론의 망원경을 통해서, 그리고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얘기를 접하여 만들어진 인상보다는 좀더 정확한 것일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 유명한 독일의 지도자를 만났으며 또한 그가 이끌어낸 대변화를 목격했다.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 물론 그의 방법은 당연히 의회민주주의 국가의 그것은 아니다 - 독일국민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서로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 그리고 그들 모두의 사회적, 경제적 전망에 있어 그는 실로 경이로운 변화를 이룩해냈다는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4년만에 그들의 운동이 새로운 독일을 만들어냈다는 그의 주장은 허언(虛言)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돌아온 독일은 망가지고 실의에 빠진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감에 잠겨있었던 세계대전 후 10년 동안의 독일이 아니었다. 오늘의 독일은 희망과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으며, 국경밖에 있는 그 어떤 세력의 간섭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결의로 충만해 있다. 오늘 독일에는 전쟁이 끝난 이후 처음으로 국민들 사이에 안정감이 찾아들었다. 사람들은 전보다 쾌활해졌고 독일 전역을 통해 이러한 명랑한 기운은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오늘의 독일은 이전보다 행복해진 독일이다. 나는 모든 곳에서 이러한 모습을 목격했으며 방문 중에 만났던 독일을 잘 아는 영국인들 또한 이러한 변화에 대해 감탄을 표시했다."
- David Lloyd Gerge, 영국 수상 -
"In fifteen years that have followed this resolve, he (Hitler) has succeeded in restoring Germany to the most powerful position in Europe, and not only has he restored the position of his country, but he has even, to a very great extent, reversed the results of the Great War ... whatever else may be thought about these exploits they are certainly among the most remarkable in the whole history of the world." - Winston Churchi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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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히틀러는 독일을 유럽의 강국으로 자라게 했지.
단지 나라의 위상을 높인것 뿐만 아니라 그는 심지어 세계대전의 결과를 뒤엎었지.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이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어."
"...그리고 자기만족에 취해있고 무기력하며 둔감한 승자 쪽으로 형세를 역전시킨 그 업적은 지구의 역사상 하나의 놀라운 일이면서, 또 단 한사람의 인생을 건 개인적인 노력과 분리할 수 없는 그러한 놀라운 일로 여겨질 만 하다."
"... 공공장소나 업무, 또는 친목관계 속에서 히틀러와 대면해 본 사람들은, 그는 아주 유능하며 침착하고 박식하며, 그리고 상냥한 매너와 분별력 있는 미소를 지니고 있는 공무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어떤 신비한 인간적 매력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것에 대한 감상은 마음을 뺏길 만큼 매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운이 다했을 때에도 그는 동지들과의 투쟁의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 히틀러의 체제는 싫어 할지라도 그의 애국적인 공로에는 감탄한다. 나는 희망한다. 우리가 패배했을 지라도 우리의 용기를 다시 북돋아 주고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치를 다시 찾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영웅을 찾을 수 있기를 말이다."
"..... 그에 관하여 모든것이 폐허가 되었고 독일이 영원히 혼란의 나락으로 떨어졌을때, 그들은 승리적인 국가의 광대한 대열쪽으로 나아가는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들쪽으로 대화의 테이블을 아주 결정적으로 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 -
"히틀러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독일을 이끌 최고의 적임자이다. 히틀러는 독일의 질서를 바로 잡았으며, 국민들의 지지도도 높았다. 또한 히틀러의 뮌헨 협약은 독일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히틀러였다면 나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 Franklin Delano Roosevelt, 미국의 대통령 -
"Hitler was a reformer of the highest rank, and his historical fate was to be in a time of unexampled brutality, of which he was finally a victim" - Knut Hams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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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가장 뛰어난 개혁가였고 그의 역사적 운명은 그가 가장 혹독한 시대에 태어나 결국 그가 그 피해자가 되게 했지."
"나는 그의 이름을 크게 말하기에도 모자란 사람이며, 그의 생애와 행적은 어떤 감상적인 논의로 다룰 수 있는 차원의 것도 아니다. 그는 인류를 위해 싸운 투사였고 만국에 복음을 가져다준 예언자였다. 그는 가장 고귀한 순도의 정화력을 가진 인격체였고 그의 운명은 사상 초유의 야만이 세계를 휩쓸고 있었던 무렵에 솟아 올랐으며, 또 그 야만에 의해 스러져갔다. 우리 유럽인들에게 아돌프 히틀러는 그런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가장 가까운 추종자들인 우리는 지금 그의 죽음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 Knut Hanmsun, 노르웨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
(그의 히틀러에 대한 평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나치당원이었을 것이다", "나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라는 논쟁이 분분했는데 그 결과, 크누트 함순은 나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로 밝혀졌다. 그는 나치와는 전혀 무관할뿐더러 열렬한 나치주의자나 파시스트자도 아니었다. 또한 국수주의자도 아니었다. 또한 전쟁 중에 나치에 협력하거나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는 온 일생을 문학작품에 힘써서 약 1000여 개의 책을 썼다. 그리하여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그저 히틀러를 올바른 인물로 보고 추종할 뿐이었다. 이는 즉, 히틀러에 대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1952년에 죽었다.)
"Hitler ought to have the peace prize!" The renowned Jewish author and Nobel Prize winner, Gertrude Stein, led the campaign that got Adolf Hitler nominated for the Nobel Peace Prize in 1938.
This was disclosed by Gustav Hendrikksen, a former member of the Nobel committee, in Nativ, a political magazine published in Israel. (Reports about this appeared in the New York Jewish community weekly Forward, Feb. 2, June 14, and Oct. 25, 1996.) In 1939 Adolf Hitler was once again nominated for the Nobel peace prize by E.G.C. Brandt, Member of the Swedish parliament. He was subsequently pressurized to withdraw this nomination. |
Gertrude Stein, renowned Jewish author and Nobel Laureate |
"아돌프 히틀러는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만 한다."
그녀는 유명한 유대인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 Gertrude Stein, 유명한 유대인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 -
http://nobelprize.org/nomination/peace/nomination.php?action=show&showid=2609
- 노벨 평화상 사이트
"나는 독일을 시궁창에서 구해내 다시 한번 유럽의 정상에 우뚝 세운 그의 정치적 명민함과 과단성에 경의를 표한다."
- George Bernard Shaw, 아일랜드 노벨 문학상 수상자 -
"Step by step I have arrived at the conviction that the aims of Communism in Europe are sinister and fatal. At the Nuremberg Trials, I, together with my Russian colleague, condemned Nazi aggression and terror. - British Attorney General, Sir Hartley Shawcross, |
Lord Hartley Shawcross "I believe now that Hitler and the German people did not want war" |
“한걸음, 한걸음씩, 나는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목표가 대단히 음험하고 치명적인 것이란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는 소련군의 검사들과 함께 나치의 침략행위와 만행을 처벌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히틀러와 독일국민이 전쟁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던 것은 우리 영국이었습니다. 소위 ‘힘의 균형’이라는 우리의 외교원칙과, 특히 루즈벨트를 감싸고 있었던 "미국인들"의 영향력 하에서 독일을 파괴할 목적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히틀러의 탄원도 무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히틀러가 옳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우정과 협력을 제시했던 히틀러를 무너뜨린 1945년 이후로 우리는 소련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고 있습니다. 호전적인 공산세력의 침략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나는 히틀러를 침략자로 규탄했던 내 자신에 대해 수치심과 모욕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 Speech at Stourbridge; Associated Press, March 16, 1984
"나는 히틀러와 독일이 전쟁을 원치 않았다는 것을 지금도 믿고 있다."
- Sir Hartley Shawcross, 영국 법무장관 (前 뉘른베르크 재판 연합국 검사) -
"Hitler's political aim and policy is directed toward attaining his goal without loss of blood. He succeeded in ascending to the highest power position in Germany with very little spilling of blood or loss of human life in a land of 68 million inhabitants. Austria was annexed without one shot being fired. The unrest in Palestine cost more lives during the past five years than that in Germany and Austria since its inception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Hitler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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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정치적 목적과 정책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그의 목적을 향해가는 것이었다. 그는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680만 명의 시민들에게 주거생활을 주어 독일에서 최고의 권력을 향해 오르는데 성공했다. 오스트리아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합병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불안은 히틀러 체제가 구축되고 시작된 이래 과거 5년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생명의 희생이었다."
- Daily Mail, May 20, 1938 -
"I said that frankly, as I had listened to him inveigh so violently against the threat of Soviet domination and the spread of Communism in Europe, and disclose such a lack of confidence in the professions of good faith in Soviet leadership. I had wondered whether he (Churchill), the Prime Minister, was now willing to declare to the world that he and Britain had made a mistake in not supporting Hitler, for as I understood him, he was now expressing the doctrine which Hitler and Goebbels had been proclaiming and reitering for the past for years ... Exactly the same conditions which he described and the same deductions wer drawn from them as he now appeared to ass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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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이 1945년 이후 히틀러의 원칙을 활성화(진행) 시키다.
"그가 그처럼 격렬하게 소련의 통치와 유럽에 공산주의가 만연하는 것을 통렬하게 비난하고, 소련의 지도체제의 성실성에 대해 그토록 불신을 표출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수상인 그(처칠)가 그때, 그와 영국이 히틀러를 지원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전 세계에 선언하지 않을 까 우려했었다. 내가 그를 알고있는 바로는, 그는 그 당시 히틀러와 괴벨스가 선언하고 반복하고 있었던 정책을 표현하는 중이었다. 그가 묘사한 것과 정확하게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결과가, 당시 그가 역설하는 것처럼 보였던 바와 같이 발생했다."
- (미국의 외교관계 - 베를린 회의 - 포츠담 회의 - Vol. I, p. 73) -
: "The spectacle of Germany today is a tremendous experience. Fifteen years after the war in which the allied powers thought they had destroyed her, Germany is on her feet again. As compared with 1922 and 1931, when I last saw Germany, the change is miraculous. The people are confident, enthusiastic and courageous. They have recovered their morale. In 1931 the Gennan people were going to pieces. But now they are themselves again, no doubt about that! The masses of the people are increasingly with Hitler. I have been fooling myself all along that this was not so, but now I know it is so." John H. Holmes, Pastor. Community Church. N. Y Times, July, 12th,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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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독일의 광경은 엄청난 경험이다. 동맹국들이 독일을 파괴한 전쟁으로부터 불과 15년이 지난 현재 독일은 또다시 일어서고 있다. 1922년과 1931년을 비교하자면 그 변화는 기적적이다. 사람들은 신임을 가지고 있으며 열렬하고 용기있다. 그들이 의욕을 되찾은 것이다. 1931년에 독일인들은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원래의 그들로 돌아갔고,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중은 더욱더 히틀러와 함께하고 있다. 나는 현재까지 그럴리 없다고 스스로를 속여왔고 부정했다. 그러나 현재 나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 Commucity Church N. Y Times, 12th, 1935
- John H. Holmes, 목사 -
"I think that it must be admitted that National Socialism has done a great deal for Germany. It has undoubtedly cleaned up Germany in the ordinary moral sense of the word. The defeatism, the corruption so manifest a characteristic in the days after the war has disappeared, at any rate from public view. It has given discipline and order and a sense of purpose to the great majority of young people who in earlier days did not know where to go or what they were living for." His Lordship, the Marquess of Lothian, British Ambassador to Washington, June, 29th, 1937 |
"나는 나치즘이 독일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는 데에 공인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독일의 세계적 도덕관념을 깨끗이 씻어냈다. 적어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전쟁 후의 명백한 타락, 패배주의 말이다. 그것은 단련과 규칙과 목적, 과거엔 목표도 삶의 이유도 모르던 다수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 June, 29th, 1937
- Lothian, 영국 주 후작 (영국 대사) -
"I believe in the Holy German people inside and outside the German frontiers. I believe in Adolf Hitler, who by the grace of God, was sent to give the German people faith in themselves once more." - Rudolf Hess |
"나는 독일 국경의 안과 밖의 독일인들을 믿는다. 나는 신의 기품을 지닌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인들이 다시 한번 믿음을 간직할수 있게 우리에게 보내졌다고 믿는다."
- Rudolf Hess, NSDAP 리더 대표자 -
1937년, 독일을 방문하여 히틀러와 만남을 가진 에드워드 8세와 그의 아내인 심프슨 부인
"세계 역사상 히틀러만큼 위대한 사람은 없다. 이렇게 훌륭한 지도자를 갖고 있는 독일은 축복 받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히틀러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위대하기 때문에 영국이 히틀러와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될 것이다."
- Edward VIII, 영국의 황태자 -
(그는 사랑을 위해 왕위의 자리를 포기한 인물이다.)
"히틀러도 자기 민족을 잘살게하기 위해 투쟁한 사람인데, 왜 그를 욕하는가?"
- 박정희 소령,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
"160cm인 내 키에 비해 히틀러의 손은 크고 억셌으며 체구는 우람했다. 그리고 독일을 이끌어가는 통치자 답게 강인한 체취를 풍겼다"
- 손기정, 한국인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우승자 -
"내가 VIP석 아래를 지날 때 나를 본 히틀러 총통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 역시 손을 흔들어 그에게 화답했다. 그는 내가 흑인이라고 냉대하거나 무시한 적은 한번도 없다."
- Jesse Owens,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3관왕 -
"히틀러의 벙커 생활은 상당히 평온했고 히틀러도 침착했다. 역사가나 영화감독, 기자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극적이거나 불안해 하지는 않았다. 죽음의 벙커처럼 느껴졌던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고, 역사는 다 그런 것이다. 아무도 거기(그 역사)에 대해 죽은 자가 말을 못한다고 해서 조작을 하거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 Locus Mishu, 히틀러의 경호원으로 히틀러의 최후를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목격한 사람 -
1. '내가 곁에서 겪은 히틀러를 얘기할 때 흔히 알려진 것처럼 화를 많이 내며 광분하는 그의 모습을 들려줄 수가 없다.'
2. '당번병이 우리에게 말했다. "인사를 먼저 건네는 쪽은 히틀러이니...." 설명해주었다.'
3. '안경을 쓴 히틀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니켈 테로 만든구식의 싸구려 안경이었다. 아니 어쩌면 플라스틱 테였는지도 모르겠
다. 어쨌든 볼품없는 안경임에 틀림없다.'
4. '히틀러는 블론디를 내가 지금까지 구경해 보지 못한 아주 영리하고 재주많은 개로 훈련시켰다. 블론디가 몇 센티미터라도 더
더 높게 뛰어오르거나 좁은 나무를 위에서 몇 분이라도 더 오래 균형을 잡고 버티는 모습에 히틀러는 매우 기뻐했다. 그는 애
견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편한 휴식이라고 들려주었다.'
5. '요리사는 "인가는 고기를 안 먹고는 살 수 없다."며 수프나 기타 반찬에 적어도 육수를 한 국자 넣거나 돼지기름을 조금 섞곤
했다. 그런 경우 히틀러는 그 속임수를 알아채고 화를 내었다.'
6. '은단추가 달린 외투에는 계급을 표시하는 끈 장식이나 모양을 내기위한 그 어떤 장식품도 달려 있지 않았다. 단지 왼쪽 가슴
에 금으로 된 당 배지와 철십자 훈장(1차대전), 그리고 검은 상이군인 기장만이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7. '그의 책상은 오늘날의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평범한 책상이었다.'
8. '그리고 늘 누군가에게 시간을 물어보았다. 심지어 바지주머니에 뚜껑 달린 금시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
을 통해 시간을 묻곤 했다.'
9. '히틀러의 직무실의 온도계를 보니 11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히틀러의 직무실이 왜 그렇게 춥냐고 당번병에게 물었
다..... 히틀러는 그 온도를 가장 편안해하며 더 이상 온도를 높이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10. '총통이 있는 자리에서 담배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식사 후 담배를 피기 위해 재빨리 자리를 떴다.'
11. '조금 전 그 거실은 히틀러가 예전에 쓰던 거실이라고 했다. 중산계층 수준으로 잘 꾸며진 일반 시민의 거실과 별로 다를게 없
었다.'
12. '베르그호프에서 보자면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작은 찻지이 있는데, 히틀러는 매일 이 작은 찻집에 들렀다.'
13. '그는 별장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정말 유쾌하고 성실한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14. '에바 브라운이 히틀러에게 홀에서의 영화 상영 제안을 부탁했다. 그러자 히틀러는 "수많은 국민이 희생을 감당하고 있소. 나
또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전쟁 기간 동안에 영화를 볼 수는 없소."라고 말했다.'
15. '히틀러가 에바에게 "나의 경우 어떤 옷이 특별히 맘에 들면, 늘 그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좋은데 말이야."라고 말했다.'
16. '히틀러는 포이에르 바흐의 그림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죽고 나면 이 그림들은 린쯔를 아주 멋진 도시로 만들 참인데, 그 곳
에 화랑을 하나 만들어 관광명소가 되도록 해줄 거요. 난 이 집에 걸린 그림들을 그저 내 생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임대한
그림쯤으로 여긴다오. 내가 죽고 나면 이 그림들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오."라고 말이다.'
17. '히틀러는 "내가 이기면 이긴 자로서 관대해야 하니까 내기에서 이긴 걸 포기해야 하고, 에바가 이기면 내기에서 졌으니 내가
내야 합니다."라고 히틀러가 설명했다.'
18. '히틀러가 예술을 좋아한다고 하자, 하인쯔 로렌쯔가 히틀러에게 말했다. "총통 각하, 홀에서 음악회를 열어보십시오. 기제킹
이나 켐프, 푸르트벵글러 등 독일 최고 음악가들을 초청할 수 있지 않습니까. 총통 각하께서는 오페라에도 안 가고 연극 무대
도 찾지 않으시지만 음악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자 히틀러가 말했다. "아니요. 나 혼자를 위해 예술가들을 애쓰게
만들고 싶지는 않소."'
19. '히틀러는 생일이 되면 기업, 학회, 당 부서, 조직, 유치원, 학교, 단체, 개인들로부터 수 많은 선물을 받았는데, 그는 그 선물
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대부분의 선물들을 병원이나 고아원, 양로원, 복지시설 등 필요한 곳,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
어 주었다.'
20. '히틀러는 그 날 늦게 플라터호프에 있는 야영병원을 찾았다. 그는 자기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자주 방문하곤 했다.'
21. '히틀러는 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원고 없는 공개연설을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원고 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전쟁 동안은 말 한 마디마다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전세계가 귀를 세운 채 말을 듣고 있으니 말이오.
일시적인 기분에 따라 말을 하다가 혹시 한 마디라도 잘못 튀어나오면 일이 어렵고 복잡해질 수 있소."라고 내게 말했다.'
22. '나는 히트러의 사택을 가보았는데, 그 곳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히틀러가 한 개 층만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택 1층에는 수위실과 경찰, 경비병 들의 근무실이 자리했고, 2층에는 히틀러가 손님 접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이 몇개
있었다. 히틀러가 머무는 곳은 3층이었다. 그것도 빈터라는 성을 가진 관리인 부부와 함께 묵었다. 다른 층들은 모두 개인 주
택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히틀러의 사택은 괜찮게 사는 견실한 소시민의 집과 다를 바 없었다.'
23. '히틀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예전부터 애용해 온 '오스테리아 바발아'라는 작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손님이 많을 시간은 지나
서인지 몇몇 탁자에만 손님이 한둘 앉아 있었다. 나는 혹시 그들이 경찰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손님들이라는
사람이 너무나 평범하게 행동했고 높은 사람의 방문을 신기하다는 듯 구경할 뿐이었다. 히틀러가 그 곳에 늘 앉는 자리는 뒤
편 구석의 가장 불편한 탁자였다.'
24. '히틀러에게 내가 "각하, 왜 결혼을 안하셨죠?"라고 물어보자 그는 "나는 좋은 가장이 될 수 없을 것이오. 아내에게 충분히 마
음을 주지 못할 것을 알면서 가정을 꾸리려 한다면 그것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일 게요."라고 대답했다.'
25. '히틀러의 사령부에서의 생활은 한결같았다. 히틀러는 변함없이 친절하고 확신에 차 있었으며 여전히 밝고 매력적인 모습이
었다.'
26. '히틀러의 벙커 안 침실은 작았고 가구도 변변치 못했다. 병영 안에 있는 일반 병사들의 잠자리와 다를 바 없었다. 더군다나
방 안에는 블론디와 강아지들이 들어가도록 커다란 나무 상자를 놓아두어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27. '에바가 히틀러에게 외무부 마당에 있는 조각상이 예쁘다며 사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히틀러가 에바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
다. "그 조각상 주인이 누군지 나는 모르오. 아마도 국가 재산이 아닐까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살 수가 없지. 국가 재산을 개
인 것으로 할 수는 없지 않소."라고 말이다.'
28. '그는 개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그 손으로 절대 남과 악수하지 않았다.'
29. '그는 자살하기 직전(방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나는 당신의 적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당신이 사악한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간디 -
(영국 언론재벌, 로더미어 卿과 히틀러)
“나는 영국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독일의 나치정권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주의깊게 연구할 것을 권한다. 이에 있어 나치독일을 증오하는 자들의 거짓말과 흑색선전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될 것이다. 독일의 나치정권을 가장 격렬하게 공격하는 일부 언론은 실제로 러시아의 소비에트정권에 대해서는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아끼지 않는 집단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떠들썩하게 시작한 “나치스의 만행” 선전캠페인을 통해 알려진 사례들이 허무맹랑한 날조극이라는 것은 독일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배가 더 되는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유태인에 대한 그러한 폭력사건은 몇차례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동가들은 고립된 몇몇 사건을 일반적인 것으로 침소봉대하여 마치 나치정권이 피비린내나는 폭정을 자행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퍼뜨리려 한다. 나치스가 집권하기 전까지 독일민족은 빠른 속도로 그들 국가내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요소에게 종속되어 가고 있었다. 바이마르 정권 말기 독일의 관료층에는 1차대전 전보다 20배나 많은 유태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독일에 대한 애국심과 책임감보다는 국제적으로 다른 국가의 유태인들과 더욱 공고하게 연대되어 있었던 이들 유태인은 독일정부의 모든 요직에 파고들었다. 장관은 독일인이었는지 모르나 그들 뒤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에게 뉴스를 전달했던 사람들은 모두 유태인이었다.” - The Daily Mail, London, July 10, 1933
"그는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외에 그를 그렇게 구별할 수 있는 단 두명의 사람을 알고 있다. Northcliffe 경과 Lloyd George이다. 누군가 히틀러에 관해 의문을 품으면 그는 곧바로 놀랍고 확실한 대답을 내놓는다. 내가 이보다 중요한 일에 관한 약속을 믿을 인간은 이 세계에 없을것이다. 그는 독일이 독일인들이 유럽을 혁명적으로 공격하는 공산주의로부터 구하기 위한 신이 내린 곳이라 믿는다. 그는 공산주의의 가장 큰 적인 가족생활을 중요시한다. 그는 독일의 도덕과 윤리의 삶을 매우 깨끗하게 했다"
"독일에서 쫓겨난 국적 없는 유대인들이 이 나라의 모든 항구로 쏟아져 들어오며 난장판을 이루고 있다."
- Lord Rothemere, 영국의 <Daily Mail> 신문 소유주 -
(Rothermere경은 아돌프 히틀러를 최초로 "위대한 아돌프"라 부른 사람이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일은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여인숙에서 나온 아돌프와 나는 수영을 하러 갔다. 우리는 수영에 능숙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우리가 걱정되는지 호숫가의 바위에 앉아 수영하는 우리를 지켜보셨다. 그런데 잠시 아돌프가 물 밖에 나가있는 동안 불쌍한 나의 어머니가 바위의 이끼에 미끄러져 물에 빠지셨다. 나는 너무 멀리 있었기에 어찌할 줄 몰랐는데 그 모습을 본 아돌프가 물에 뛰어들어 어머니를 물 밖으로 구해낸 것이었다. 그는 항상 나의 부모님과 가까웠다. 1944년 어머니의 80회 생일 때는 음식이 가득담긴 소포를 보내왔는데 나는 그가 어떻게 어머니의 생신일을 알았는지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 - The Young Hitler I Knew, 1974
- Augustus Kubicek - 히틀러의 고향친구 'Gustl' -
한 남자가 이 기적을 일으켰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흡인력,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초지일관하는 자세, 강철같은 의지, 그리고 담대한 마음을 지닌 그는 타고난 국민의 지도자이다. 그는 단지 직함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국민의 지도자이다. 그는 독일을 둘러싸고 있는 잠재적인 적들로부터 국가의 안보를 확립했다. 그는 또한 항상 독일국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굶주림의 공포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켰다. 실로 굶주림은 지난 전쟁의 마지막 해와 평화의 첫 번째 해 독일국민의 심신에 각인된 고통이었다. 그 어두웠던 시절 70만명 이상의 독일인들이 굶어죽었다. 이러한 비극이 남긴 영향은 당시에 태어났던 사람들의 체형에서도 알아 볼 수 있다. 히틀러는 그와 같은 절망과 빈곤, 그리고 오욕으로부터 그의 조국을 구해냈고 오늘날의 독일국민은 그에게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권한을 부여했다. 독일국민들 사이에서, 특히 독일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가 누리는 인기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나이든 세대는 그를 신뢰하고 젊은 세대는 그를 숭배한다. 이는 단지 인기있는 정치인에 대한 호감의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굴욕과 절망으로부터 조국을 구해낸 민족적인 영웅에 대한 숭배이다. 어떤 형태로든 히틀러 총통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 있을 때 나는 나치당의 고위인사들에 대해 자유로운 비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히틀러 그 자신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은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군주국가의 국왕처럼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사실 그는 국왕 이상이다. 그는 모든 억압자들로부터 조국을 구해낸 독일의 조지 워싱턴이다. 히틀러가 독일인의 가슴과 영혼 속에 어떻게 군림하는지를 실제로 보고 느끼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나의 기술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모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 뛰어난 민족은 단지 히틀러가 요구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하고 더욱 많이 희생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더욱 굳은 결의로 싸울 것이다. 이러한 핵심적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독일이 지닌 현재의 잠재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것이다...”
- The Daily Express, November 17, 1936 -
"우리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는 그가 우리의 지도자이거나 영웅이어서가 아니었다. 그의 기상은 하늘에 닿았고 그의 말 한마디는 우리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의 성소를 움직였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나 나와 같은 한 인간으로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그를 사랑했던 진정한 이유였다."
- Baldur von Schira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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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냥 올리는거.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생중계(only 오디오)
“한국인 손기정선수 1위로 골인”…우승때 “한국 학생” 지칭
마지막 고 손기정 선수가 우승할 당시 오디오 연설
Hier ist das Ziel vom Hauptkampffeld,
schon ist der japanische Sieger in das Marathontor eingegangen,
und wir erwarten ihn,
Hundertzwanzigtausend sind still, 120tausend sind von ihren Platzen aufgestanden,
und warten, sehen auf das dunkle Tor, den Eingang zum Hauptkampffeld,
wo der japanische Sieger Son kommen muss, der koreanische Student,
er hat die Streitmacht der Welt zertrummert,
mit asiatischer Fahigkeit und Energie ist der Koreaner
durch den Marathonlauf geschritten,
durch Sonne, und durch strassenharte Steine, in einem rasenden Endspurt
jagt er heran, der kleine Mann, die rote Sonne,
im weissen Feld leuchtet,
jetzt stampft er einen Spurt daher,
die letzte Gerade herunter als ware er frisch, wie er herausgelaufen ist,
ein Naturphanomen, ein Naturlaufer mit letzter Kraft,
eben geht Son, der Marathonsieger 1936 durch das Ziel,
여기는 올림픽 주 경기장의 결승선 지점입니다.
우리는 마라톤 우승자 일본선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만 명의 관중들도 일어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승자인 일본선수 손이 들어서게 될
주경기장의 정문인 검은 문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들어오고, 우승이 확정된 듯 보이자)
그 한국 대학생은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은 마라톤 구간 내내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이제 그가 엄청난 막판 스퍼트로 질주하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대단한 선수입니다. 최고의 힘을 지닌 천부적인 마라토너입니다.
1936년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http://etv.donga.com/newsclip/videoreport.php?clip_index=200603060000967
- 라디오 출처
논문을 안써보셨나 보군요...물론 논문을 쓸 때 연역과 귀납을 둘 다 쓰기도 합니다...의견의 논리를 갖추는 대표적인 두 개의 방법이지요...뭐...가설을 먼저 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그러나 가설을 세워도 그 가설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모으고 이러이러해서 이 가설은 참이다/거짓이다로 증명하지...일단 결론을 먼저 내놓고 그 결론에 맞춘 근거들만 모으지는 않습니다...그건 편향되고 왜곡된 논문이지요...
저는 이들이 히틀러에 대해 주장하는것이 높은 객관성을 함유하고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역사평론가, 인물평론가, 또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저는 단지 학생이고 감히 그런분야에 대해 자신있게 주장할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건 '그들(위에 언급한 사람들의 종류)에 의해 이루어지는 히틀러에 대한 평론이 시대에 따른 문제 때문에 대체적으로 부정적인면만을 얘기하고있다. 따라서 우리는 좀더 객관적으로 그에 대해 논의할필요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재평가, 이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시대에 따른 문제는 재평가에게도 영향을 끼치고있고 재평가라 해도 강하게 주장하는것은 찾기가 어렵고, 그나마 있는 이런 재평가들도 많지 않죠. 그 이유는 히틀러에 대한 부분적인 평가(대표적인 예로 과학발전)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했다가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히틀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론을 내세운뒤 끝에선 '아무리 이런 종류의 업적에 기여를 했다고 해도 그가 희대의 살인마임에는 변함이 없을것입니다'라는 문장을 끝에 붙이는거죠.
그리고 제가 언제 '그건 아직 해봐야한다'라고 했나요? 전 cciba님이 요구하신 히틀러에 대한 저의 재평가를 체계적인 내용을 가진 글로 쓰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한것이죠. 그리고 제가 몇번을 말했습니까.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객관성이 가장 중요한데 히틀러에 대한 재평가는 많은 수의 자료, 또는 도움이 전쟁,또는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경험자로부터 나오기에 객관성이 높아지기 힘들다는겁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90% 이상의 재평가가 위에 말했듯이 마지막에는 '히틀러는 살인마'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고있기에 여전히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히틀러에 대한 딴건 다 필요없고 그는 살인마다'라는 생각을 하고있는겁니다.
그러니까...그 '현대사회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시겠다는 겁니까-_- 그냥 오토님의 추측과 생각일 뿐아닌가요...
그런것까지 저보고 증명하시란 겁니까? 이것이 단순히 제가 추측하는거라고 생각되시거든 제가 방법을 알려드리죠. cciba님께서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주위의 다른 분들께 '히틀러는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cciba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같은 답이 나올것이라고 확신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가 전쟁범죄자다'라는 같은 답이 나온다면 그게 잘못된건가요? 그 답은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과 그런 같은 답이 나온다고 그게 주관적 판단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그냥 오토님의 추측이지요...그런 것까지 저보고 증명해야 하냐구요? 오토님이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니까 오토님은 오토님의 주장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_-
말이 좀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제 주장은 '히틀러는 제 평가 되어야한다'이고, 이에 대한 근거중 하나로써 '대부분의 히틀러에 대한 평가는 객관성이 결여되어있다'라는 것입니다. 근거에 대한 설명으론 '평가의 대부분이 히틀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 or 전쟁 경험자이기 때문이다'정도가 되겠군요. 이것은 제 의견, 그리고 주장입니다. 전 이것이 사실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묻죠...피해를 받은 피해자나 전쟁 경험자의 평가는 무조건 객관성이 떨어지나요? 객관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사실로 확정된 사항이 아닙니다...그러니까 오토님이 주장하시는 '객관성이 떨어져 있다'는 것의 근거가 '당사자가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라는 것 뿐이라면...세계적인 사서로 인정 받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 진수의 삼국지 등 많은 동시대에 쓰인 역사서들은 객관성이 없는 자료가 되겠군요...동시대에 산사람이 평가한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제말은...'히틀러에 대한 평가가 객관성이 떨어져 있다'라는 문장을 납득할 만한 근거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죠...그리고 그 근거가 '당사자들의 기록이라서 객관성이 떨어진다'라는 것이라도 신뢰있는 근거인지 증명해야겠죠...'히틀러의 평가는 객관적이지 못하다...그 이유는 동시대 인물들에 의해서 주관적으로 쓰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 하나의 명제가 될 수 없습니다...역으로 말하면 '객관성의 결여'와 '동시대의 주관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평가는 다 동시대 인의 평가니까 객관성이 떨어질거야'라는 추측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저는 '무조건'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성이 높지 않다라고 했죠. 그러면 cciba님은 어떻게 피해자, 전쟁 경험자에 의한 주장이 객관성이 높다고 자신있게 말하실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은 특별한 케이스들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책의 집필에 있어서 사관이라는 관직의 독립성과 기술에 대한 비밀성을 아주 강하게 보장해줬죠. 조선왕조실록의 열람은 조선의 어떤 왕도 할수없었습니다. 왕권 위의 법칙. 이것이 조선왕조실록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가질수있었던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진수의 삼국지는 강한 객관성을 갖고있다고 말하기가 좀 그렇죠. 우선 그의 아버지 진식이 제갈량에게 요형(허리가 잘리는형)을
받았기에 그 영향이 없을수가 없었죠(사실 이것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죠. 머리카락만 잘렸다느니, 나관중이 쌩구라를 치는거라느니). 물론 이 이유로는 진수의 삼국지가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걸 증명하기 힘들죠. cciba님도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는 진나라의 관리로서 진의 녹봉을 먹는 사람이었죠. 그랬기에 위에서 나온 진을 부정하는 촉한정통론을 주장할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반역죄로 몰릴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객관성이 완전히 없다고 할순 없지만 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하면 객관성 결여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객관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그냥 심정적인 추론아닌가요? 그러니까 히틀러에 대한 평가들은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오토님이 계속 강조하시는 '객관적으로' 증명해달라는 것입니다...동시대 인물들이 한 히틀러의 평가가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오토님의 주관적인 판단아닌가요...다수가 인정할 수 있게 심적 추론이 아닌 객관적인 예를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cciba님께선 제가 위의 내용을 사실이라며 주장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이건 제 주장일 뿐입니다. 제가 만약 사실이라고 우기며 얘길했다면 '틀린'것일수도 있지만 이것은 '의견'이기에 부정을 하려거든 '틀린'이 아닌, '다른'의 입장에서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
개인 의견이면...그럼 언론의 '..일거야...아님 말고'라는 추측성 기사라거나 원균 명장론 등도 그냥 '의견'일 뿐이니까 '틀린'이 아닌 '다른'의견으로 봐야 할까요...그럼 다 다른 의견으로 보지 반론은 왜 해야 할까요...다 다른 의견일 뿐인데...알겠습니다...그냥 오토님이 '히틀러를 재평가 해야한다'라고 '주장' 한 것이 아닌 '히틀러도 재평가 해야하지 않을까?'라고 그냥 한 번 사람들에게 '의견'을 내본 것이라면 전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전 오토님이 '주장'하시는 줄 알았거든요...그럼 더이상 답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나보군요. 아니면 cciba님이 잘못 이해하셨거나. 제가 말한건 제가 만약 '내 주장이 사실이다'라며 우기면서 주장했다면 제 주장에 문제가 있는것이지만 전 제 주장이 '사실'이라는 말을 한적이 없죠. 그리고 어떻게 제가 지금까지 주장한게 주장, 또는 의견을 말한게 아닌 단순히 '의견을 내본것'이라니...의견과 주장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슷합니다. 어떤 한 주제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주제에 관해 나름대로의 '주장',또는 '의견'을 내죠. 여기서는 뜻이 비슷하니다. 하지만 cciba님처럼 '의견'이란 단어를 '주장'과 뜻을 완전 다르게 해석하신다면 논쟁 자체가 어려워 지는겁니다.
말장난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_-그럼 사실이 아닌 것을 오토님은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겁니까? 아니면 '사실일지도 모르는' 의견을 냈다는 것인가요...누구나 나름대로 주장과 의견을 낼 수는 있죠..그게 뜻이 다르던 같던간에..그런데 의견과 주장이라고 모두 다 용납되는 것은 아니죠..요컨데 주장의 근거와 논리가 갖춰져야 주장과 의견이 되는 것이지..아무 말이나 주장이나 의견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자꾸 '난 의견을 냈을 뿐이다'라고 하시는데 그게 어떤 의미입니까? 자기가 한말은 의견일 뿐이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건가요? 의견은 반론이 불가능하고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요? 그럼 제 '의견'도 그냥 받아들이세요
뭐랄까...참 지치네요^^ 제가 뭐하고 있나...싶기도 하고...자신이 말한 것에 좀 더 책임감을 가져달라고 하고 싶군요...주장하는 사람조차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주장에 왜 그리 열심히 달려들었는지...허탈하군요...그냥 그만두겠습니다...더 이상은 뭐라고 하시던 답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정도 정말 지치는군요. 처음엔 역사에 대해 꽤 아는 사람과 논쟁을 할수 있다는것에 정말 운이 좋구나 하면서 글을 봤는데 이젠 그런 마음조차 없어지는군요. 제가 수차례 말하고있는 주장을 완전 부정만 하시는데... 그리고 의견에 반론이 불가능하다고 누가 그럽니까? 전 그런말 한적도 없습니다. 괜히 cciba님의 잣대로 모든것을 판단하지 마십쇼.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론 네오나치같은 발언들이네요 -_- 게임에선 좋지만 현실에선 최악의 사람
이딴 소리가 많이 나니까 도죠 히데키 손녀 같은 늙고 미친 암코양이가 거리를 자신있게 활보하는거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격론의 결론이 좀 허무한디?;; 다 읽은 나도 별로 좋은 기분이 들진 않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히틀러는 아무리 재평가 재평가해도.. 오토님의 생각을 참조해도 히틀러는 좋게 보이지는 않네요.. 오토님의 말씀은 히틀러의 다른 모습을 오직 유태인 학살만 알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 이런 내용도 있다~~ 고 알려주시려고 하신 것 같은데....^^;; 아닌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