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시집 하나를 남기면 그걸로 족하다고 해오던 내가
나이 칠순을 곱씹으며 첫 시집을 낸다.
20대의 나와 오늘의 내가
함께 널려있는 원고를 보며
문득 "시의 생명력"이 주는 의미가 켕겨오고,
동인활동을 하며 한때 우리들에게 주어지던
"시와 독자"라는 화두가
나를 새삼 부끄럽게 한다.
-시인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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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포구에 내리는 노을은/ 김일우
어둠이 울을 쌓아 씻어보는 그리움
울음 하나쯤은 남겨도 좋을 몸짓
그 울음 환히 묻어나는 우리 엄마 자장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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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끝난 들판에/ 김일우
논두렁 모닥불에 세월 호호 불어보고
서툰 노랫가락 주섬주섬 주워보고
허공을 휘저어 보았자
세상은 가만 있고
하늘을 두드리는 우리 아기 고사리 손
아기 손 가만 잡고
세상 잡은 제 어미 손
할아비 손아귀에 남은 달빛 같은 세월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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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에 가면/ 김일우
하늘 닮은 바다에
바다 닮은 사람 냄새
어물(魚物) 가득 소쿠리에
넘실대는 푸른 물결
넘쳐라
넘쳐흘러라 그냥
서 푼어치 우리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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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김일우
네 온기 머문 자리
바람도 꽃이 되고
어둠을 보듬으며
내리는 가을 별빛
풀잎 위 이슬 하나에도
입 맞추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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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는 풍경 3/ 김일우
눈 내린 다음 날의 햇볕이 싫습니다
환히 드러나 버린 내 섟이 싫습니다
빈 가슴 가려움증에 당달(靑盲)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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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우시인: 1966년부터 <백지> 동인 활동. {시조월드} 신인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