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극장가를 주름잡은 건 단 세 편의 영화였다.
‘7번방의 선물‘,‘베를린‘, 그리고‘신세계‘. 웃음과 눈물을 버무린 휴먼코미디‘7번방의 선물‘이 1200만 돌파를 눈앞에 뒀고,
첩보 액션 스릴러‘베를린‘은 이미 700만을 넘어섰으며,
마지막 주자인 묵직한 갱스터물‘신세계‘는 300만을 곧 넘어선다.
그러나 치열한 3파전 사이에는 그냥 두고 넘어가기엔 아쉬운 영화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만든 이들의 향취가 고스란히 담긴 이들 작품들은 장르도, 재미도, 느낌도 각양각색.
히트작 틈바구니에서 어렵사리 개봉관을 유지하고 있지만, 공들여 찾아 볼 가치가 있다.
이들과 함께한다면 2013년 봄의 시작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지난달 14일 개봉한‘남자사용설명서‘가 첫 손에 꼽힌다.
복싱 여걸 이시영과 충무로 감초 오정세가 무매력 아가씨와 어림없는 한류스타로 만난 이 로맨틱코미디는
키치적 감성으로 무장한 소품이다. 비디오테이프와 복고풍 소품,
알록달록한 색감과 4차원 캐릭터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림없는 한류스타 오정세와 톡톡 튀는 이시영의 궁합도 찰떡같다. 웃긴다. 사랑스럽다.
지난달 28일 개봉한‘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여전한 홍상수 감독의 매력과 계속되고 있는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엉뚱하고 대책 없는 처녀와 안달하는 유부남, 불륜커플을 등장시켜 공감 그득한 낄낄거림을 끌어낸다.
동시에 드디어 온전히 영화를 이끌어가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 홀로서기에 나선다.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타이틀은 고이 접어두고서도 즐길 만하다. 1만명 관객을 넘어 선전중이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스토커‘역시 같은 날 개봉했다.
18살 생일 아버지를 잃고 생면부지의 삼촌을 만난 아가씨 인디아의 이야기다.
촘촘한 이야기와 배우의 열연이 어우러진 가운데 박찬욱 감독 특유의 정교한 연출과 은유가 가득하다.
폭력성과 관능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외신으로부터 먼저 전해진‘황홀한 스릴러‘라는 찬사는 오버가 아니다.
제목이‘스토커‘라고 사람 뒤를 끈덕지게 쫓아다니는 이상한 놈을 떠올리면 아니아니 아니되신다.
제주에서 먼저 개봉한‘지슬‘은 1948년 제주 4.3사건 당시 동굴로 피신했던 주민들의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도의 고운 색깔을 벗겨낸 흑백 영상 속에 그 섬의 슬픔과 상처가 담겼다.
대사는 제주 방언으로 처리하고 자막을 입혔다.
제목‘지슬‘은 감자를 칭하는 제주도의 방언이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의 발견으로 주목받은 데 이어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는 일을 냈다.
그 화제의 작품을 드디어 극장에서 확인할 때다.
아카데미가 주목한 3인방 역시 차례로 관객을 만난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명성 자자한 감독들이 내놓은 회심의 카드다.
가장 먼저 오는 7일 개봉하는‘제로다크서티‘는‘허트 로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신작이다.
여전히 전쟁의 기운이 서린 중동을 배경으로 중앙정보국(CIA) 여성 요원 마야의 끈질긴 빈 라덴 추격전을 숨막히게 담아냈다.
영화‘링컨‘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로부터 15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1865년 남북전쟁의 막바지,
전쟁과 노예제 폐지 사이에서 링컨을 담는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대통령 링컨을 영웅으로 미화하지도 현실주의로 폄하하지 않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메소드 연기가 역시 압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메릴 스트립이 봉투를 펴 보지도 않은 채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호명했을 정도다.
그는 사상 최초로 3개의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가져간 배우가 됐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장고:분노의 추적자‘를 빼놓을 수 없다.
노예로 팔려간 아내를 구하려는 현상금 사냥꾼 장고와 악덕 농장주의 대결을 담은 웨스턴 무비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답게 잔혹한 핏빛 묘사가 여전하지만, 잊을 수 없는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액션 또한 그답게 시원시원하다.
제이미 폭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 역시 명불허전.
여기에 따뜻한 봄날씨와 함께 찾아온 두 편의 사랑이야기를 추가한다.
이민기 김민희의‘연애의 온도‘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남녀를 통해 연애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쿨하지 못해 미안한 현실 연애를 경험한 남녀라면 공감 백배일 터
‘웜 바디스‘는 사랑을 시작하며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 좀비와 그를 지키려는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좀비물.
관객이 극장을 더나는 미국 슈퍼볼 시즌 주말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히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