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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교회절기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이해에 따른 신앙적 자세
성탄절의 유래
매년 12월 25일은 국가가 정한 빨간 색의 날 공휴일인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날이라고 부르는 것에서입니다. 이 성탄절을 영어로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합니다. 일반인은 이 크리스마스인 성탄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오심)’에는 관심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날을 가지고서 단지 성탄절인 공휴일로서 석가탄신일이나 발레타인데이나 기타 등등 여느 날과 같이 즐거운 한 때를 가질 수 있는 것에 기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즐거움이 되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 - 도성인신 - 사건으로, 하나님께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큰 기쁨의 복음을 전해주시는 것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키게 된 것에 대해서 김충환1)은 ‘교회력에 관한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 가지 그의 생애와 업적, 특히 그의 부활이 그의 자세한 초년에 대한 것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아무도 주님의 탄생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해서 사람은 상징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주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날이 1월 6일이었다. 4세기까지 동방과 스페인과 고올 지방에서는 1월 6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현하신 날로 지키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4세기 초에 로마에 의해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이 날은 당시의 동지였다. 이날은 연중 해가 제일 짧은 날이었고, 이후부터 해가 날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이 날이 태양과 관련되어 선택되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태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탄생은 태양이 떠오름을 의미하였고, 그의 부활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해돋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위해 해돋이였다. 이 날이 택하여진 이유를 당시에 이미 행하여지고 있었던 '태양신의 탄생(dies natalis Solis Invicit)'에 근거하고 있음을 학자들은 언급하고 있다. 사람들이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12월 25일로 지켰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4년의 연대기에서 발견된다.
이렇게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키게 된 것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크게 두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인데, 로마의 축제 절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역사적 상황의 배경에 따른 견해인데, 교회 교부의 기록을 비롯한 교황 및 감독들의 축일 제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째는,로마의 축제 절기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2) 로마제국에서의 그리스도의 교회 - 로마교회 - 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날을 로마가 매년 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점차 길어짐으로 태양의 힘이 강해지는 것에서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절기로 갖는 ‘동지절’ 즈음에 가진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농업의 신이며 주피터의 아버지인 사투른(Saturn/Saturnus)을 기념하는 농신제의 의한 축제 -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축제 - 가 태양신 ‘솔 인빅투스’(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신/무적의 태양신)3)의 생일로 기념하는 축제일인 12월 25일에 절정을 이룹니다. 그러한 것을 로마의 황제로 그리스도교도가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A.D. 272-337)가 A.D. 336년에 로마인에게 익숙한 기념일인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삼자고 선포하였으니, 그리스도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삼아 그리스도인의 축제일로 가질 수 있게 함으로써 로마 시민들이 널리 기념하던 연말 행사를 그리스도교 행사로 흡수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의 새로운 태양의 신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둘째는, 교회의 역사적 상황의 배경에 따른 견해인데, 교회 교부들의 기록을 비롯한 교황 및 감독들의 축일 제정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삼아 그리스도인의 축제일로 가져나가게 한 그 후 350년에 교황 율리우스(Julius) 1세가 12월 25일을 예수의 생일로 공식 선언하였으며, 그에 따라서 A.D. 354년 로마교회의 감독 리베리우스(Liverius)는 12월 25일을 공식적인 교회절기로 교회력에 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A.D. 379년에 이르러서는 콘스탄티노플시를 비롯한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을 지켰으며, 또한 동방의 애굽과 팔레스틴으로 확대되어 동, 서 로마 교회의 축제일로 확정되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존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일부 동방 교회들은 그레고리력에 의한 12월 25일이 아닌 1월 6일로 지키고 있습니다.4)
그렇기는 하지만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것이 지역 분포와 인구수에 의하면 더 큽니다. 그런데 이처럼 12월 25일을 교회 절기인 성탄절로 정하여 지키기 전에 먼저 이 날이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임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카타르고의 터툴리안(Tertullian, A.D. 155–220)인데, 그는 직접적으로 12월 25일이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라고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간접적으로 그 근거를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있은 날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수난일이 같은 유대 종교력으로 니산월 14일인 3월 25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에 의하면 이 날은 12월 25일부터 9개월 전이 됩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로마교회의 교부이며 역사가인 히폴리투스(Hippolytus, A.D. 170?-235)였습니다. 3세기 초까지는 3월, 5월, 11월 등 서로 시기에 예수의 탄생일이 있었을 것을 말하는 여러 설이 있어왔는데, 히폴리투스에 의해 12월 25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자가 최초로 언급된 것입니다. 그는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아 수태한 날이 3월 25일이라며 이 날로부터 아홉 달을 계산하여 예수님의 탄생일이 12월25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있었던 날은 3월 25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에 의하면 히폴리투스는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있은 날을 3월 25일로 보았습니다.5) 예수님은 30살이 되던 즈음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눅 3:21-23). 요한복음 1:29-2:12에 따르면 그 직후 약 2주 동안 사역하셨고, 그 후 40일 동안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막 1:12, 13). 이어서 예수님은 대략 2달 동안 1차 갈릴리 선교 여행을 하셨습니다(막 1:14-45). 그 다음 예수님은 유윌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요 2:13-25). 이 기간인 12월 25일과 유윌절 사이에 약 3, 4개월의 시간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12월 25일이나 혹은 그 즈음에 탄생하셨음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히폴리투스는 유월절로부터의 역추적에 의한 계산에 의해서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 25일로 보았습니다. 더욱이 그는 3월 25일을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있은 날이면서 또한 예수님의 수난일로 보는 것에서 그로부터 정확히 9개월이 되는 12월 25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였다고 보았습니다.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으니,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3월 25일이며, 그에 따른 예수님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날자가 성경의 근거가 없는 것인데다가 초대교회가 가진 관점이 아닌 히폴리투스가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보는 것이 히폴리투스의 생각대로 맞거나 그렇지 않음을 떠나서 이를 초대교회가 가져온 성탄절의 공적 근거로 보면 안 됩니다. 히폴리투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성탄일)을 12월 25일로 본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12월 25일을 교회 절기인 성탄절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에서 그 당시에도 그리고 그 당시 후 어느 때까지에도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삼아야 할 것을 주장하며 그 시도에 있은 교회는 없었습니다. 다만 히폴리투스의 경우에서처럼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일 것이라는 견해에 있는 쪽과 1월 6일이 예수님의 탄생일이라는 견해에 있는 쪽, 또는 달리 다른 날의 주장이 나뉘어있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히폴리투스의 말을 들어 이를 초대교회가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구전으로서는 그 이전부터 내려왔을 가망성이 높기 때문에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이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성탄)한 날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과 예수님의 탄생일을 교회 절기인 성탄절로 갖고자 하는 것에 따른 문제점의 구별에 있지 않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위 두 견해에 의한 주장에서, 로마의 축제일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이 유래되었다며 이를 용인하며 기독교적으로 잘 가져나가면 된다고 보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이 이교도의 축제일과 관련이 되었다고 보는 것은 가당치 않은 어불성설이라고 여겨 아예 성탄절을 이교도의 축제일과 선을 긋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한 쪽에서는 성탄절의 유래를 교회사적인 문헌의 자료의 배경에서 찾아 말해나가려고 합니다.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은 철저하게 초대교회 때부터 가져온 것이라는 견해에 있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12월 25일에 탄생하셨다는 기록이 있지 않으므로 성경적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닌 성경에서의 예수님의 행적에 의해 추측하고 추정한 것이므로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두 견해 모두 사람들의 이해 차이에 의해 용인하기도 하고 또한 부정되어 거부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설사 성탄절이 교회 역사 속에서 용인되어온 흔적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부인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이 성탄절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갈등과 대립 속에 있으면서 때로는 유지되어 오다가 금지되어 오기도 하고 다시 행해져 오다가 또 다시 금지에 있어오는 일이 반복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서 성탄절에 대한 재고에 있어야 합니다. 설사 성탄절을 교회가 교회절기로 지켜오는 일을 놓지 못하고 행하여 왔을지라도 무엇 때문에 그처럼 반대와 그에 따른 금지에 있어오는 일을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성탄절을 시행해오는 것이 성경적 근거인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절기는 이스라엘에서 구약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한정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에 의한 종결로 폐지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한 ‘주의 날’, 곧 ‘주일’이 그리스도인 모두에게서 유일한 축제의 날이 되는데, 성탄절을 비롯한 각종 축일을 만들어서 교회가 가져나가는 것이 성경적인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문제 제기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설사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선한 의도와 목적에서 가져나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정작 교회는 그 절기인 성탄절을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적 사고와 방법에 의하여 가져온 것이 성탄절 시행의 역사인 것에서 그러한 성탄절을 계속하여 가져나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 가져나가고 좋게 가져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그 사람은 정작은 주님과 주님의 이름, 주님의 구속사적 행적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기쁨을 위한 자기들의 날로 삼아가는 악한 습성의 이끌림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주일’ 외에 진정한 ‘축일-축제의 날’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일 외에 더 큰, 주일 외에 더 좋은, 주일 외에 또 다른 축일이 없습니다. 주일에 성탄절에서 증거되어야 할 주님의 오심이, 주일에 부활절에서 증거되어야 할 주님의 죽으심으로부터의 다시 살아나심이, 주일에 성령강림절에서 증거되어야 할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보내신 성령의 사역이, 그렇게 주일에 증거되어야 할 주님의 복음 모든 것이 온 성도에게 들려지고 온 성도들이 그로 인해 믿음에 하나되고 굳건히 주께 붙어 있어 나가는데, 주일을 그렇게 가져나가면서 성탄절을 비롯한 교회 절기를 가져나가려고 하다니요!. 과연 그러한 것이 바른 신앙에 있어나가는 것인지를 다음의 설명을 함께 참고하여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크리스마스란 용어의 사용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조차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란 영어로 Christmas로, ‘그리스도’(christ)란 말에 ‘매스’(mass)라는 말이 더해져 합성된 말입니다. 여기서 ‘매스’(mass)란 라틴어는 ‘보내다’, ‘떠나보내다’, ‘파견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동사 '미테레'(Mittere)가 명사화되어 만들어진 '파견'을 뜻하는 '미사'(Missa)에서 따 온 것에서 가톨릭의 핵심 전례인 ‘미사’ (Missa)를 뜻합니다. 따라서 ‘미사’(Missa)는 '파견'이라는 의미인데 ‘제사’의 개념에서 쓰여 '미사성제(Missa聖祭/성체성사/성찬례)'로 행해져 '파견의 거룩한 제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32항은 "구원의 신비를 이루는 이 전례는 일상생활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에" '미사'라 불린다고 언급한다며, '미사'라는 이름은 성찬례가 가진 다양한 성격 중 '파견'에 초점을 찍은 이름으로, "세상의 소금"(마태 5,13)인 교회의 파견 사명과 사도직, 선교, 적극적 신앙을 드러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미사는 가톨릭의 전례에서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로마교회는 예배를 ‘미사’라는 말로 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속죄주가 되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한 성찬을 갖는 것에서 행하고 있는 것으로, 이를 제사의 개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서, 성찬에서의 떡과 잔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제공되는 재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서 ‘화체설’을 주장합니다.
그러하기에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미사/그리스도께 드리는 미사'에 있다는 의미이며, 흔히 하는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는 '즐거운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기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함은 로마가톨릭교회가 행하는 그리스도의 미사를 즐겁게 갖자는, 그리스도의 미사에 즐거이 참여하자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지극히 로마가톨릭교회적인 사고(思考)에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영국에서는 한때 1644년부터 1660년 사이에 성탄절이 금지되었으며, 스코틀랜드는 성탄절을 지키는 것이 로마가톨릭제도의 흔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메사추세츠에서도 1659년부터 1681년까지 성탄절이 금지되었고, 1789년부터 1856년까지 의회가 매년 12월 25일에 소집되는 등 성탄절이 금지된 시절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3. 변형되어온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이러한 것인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성탄절로 지켜온 크리스마스는 변형이 되어왔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캐럴(Carol), 산타 클로스(Santa claus)의 이름으로 선물하는 풍습이 크리스마스에 유입되어 들어옴으로 크리스마스는 교회 절기의 개념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축제의 날로서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에 대한 글들을 발췌하여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3-1.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의 유입
성탄절을 기념해서 상록 침엽수(전나무, 소나 무, 구상나무 등) 혹은 인조나무에 를 별을 달고 인형, 종, 깜빡이는 전구, 선물 따위의 여러 가지로 아름답게 장식하여 꾸미는 크리스마스 트리(성탄목)를 만드는 풍속이 생겨났습니다. 이처럼 각종 장식물을 트리에 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해집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원래 상록 식물을 집으로 가져오는 전통을 통해 악령을 멀리하고 건강의 표시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른 가족에게 보여주기 위해 마을 주변을 행진했습니다. 16세기 전반에 걸쳐 인기를 얻었고 천천히 유행하면서부터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히는 것은 어둠에서 빛나는 하늘의 별과 행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예수님을 빛으로 나타내는 등불을 상징하는 것에서이며, 크리스마스 트리에 반짝이 틴셀 빼빼 모루를 넣는 이유는 17세기에 촛불이 깜빡거리고 반짝이는 것을 반사하기 위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추가되었는데 마치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게 된 기원에 대한 설은 다양합니다. 8세기경 독일에 파견된 선교사 오딘이 신성하다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 풍습을 중지시키기 위해 옆의 전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뭇가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141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성령원에 장식을 했다는 기록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첫 기록으로 있으며 1600년대에는 독일 전역에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기원설도 있습니다. 1521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마틴 루터가 숲길을 걷다가 눈 쌓인 전나무가 달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보고, 사람도 예수님의 은혜를 입으면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을 깨달아 전나무를 집으로 가져와 장식한 것이 유래되었다는 설입니다. 한편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트리의 기원이 1441년 탈린시의 트리라고 하는가 하면, 1510년 리가의 검은머리 길드라고 하며 서로 논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설은 성 보니파시오가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시 성 보니파시오가 게르만족의 땅으로 넘어간 뒤 게르만족의 인신공양 풍습을 대체하고 부족들 사이에서 중요시 여겼던 도나르의 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기독교 상징물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이전부터 상록수가 고대 종교에서 생명력의 상징이었고 기독교가 동지와 함께 이 상징을 물려받은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에 대한 다양한 설이 있으며, 독일에서 유행하던 풍습이었으나 하노버 왕조의 영향으로 영국에도 전해졌으며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의 영향으로 대중화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미국을 거쳐 서양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성탄절의 상징이 되었고 기독교가 퍼져있는 곳에선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며 성탄절을 즐김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트리가 성탄절을 기념하는 종교적인 상징물이 되고 있는 까닭에 이것의 설치에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해서, 2006년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되자 유대교에서 공공장소에서 특정 종교인 기독교의 종교 상징물이 설치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거친 항의를 함으로 철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작금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내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의 설치에 찬성과 반대가 있습니다.
3-2. 크리스마스 캐럴(Christmas Carol)의 유입
크리스마스 캐럴은 2세기 로마의 크리스마스 찬송(Christmas hymn)에서 기원합니다. 이 시기부터 5세기까지 로마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의례 캐럴을 불렀다고 합니다. 캐럴(Carol)이란 단어는 10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프랑스어로 돌 주변에서 춤을 춘다는 말에서 기원했습니다. 이때까지 캐럴이란 말은 크리스마스 캐럴과는 다르게, 신나는 음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캐럴은 세계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426년 존 어들레이(John Awdlay) 목사에 의해 최초로 영어로 된 캐럴이 만들어졌습니다. 여전히 이때까진 아직 캐럴이 크리스마스를 포함하여 수확을 축하하거나 축제 기간에 불리던 노래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18세기 중반부터 종교적 의미를 담은 현재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며 현대의 캐럴 이미지를 형성했습니다. 캐럴이라는 단어는 10세기 유럽에서 유래됐지만, 종교적 의미의 노래와 축제의 노래가 결합되어 현재의 형태가 나타난 것을 18세기 중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 캐럴이라고 칭하는 것은 영어권의 경우이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독일에서는 바이나흐츠리트(Weihnachtslied, 크리스마스의 리트), 스페인에서는 빌란시코(villancico)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19세기 중반오스트레일리아 주변에서는 폴카 리듬의 신나는 캐럴이 유행했고, 미국에서는 현재 가장 유명한 캐럴인 ‘징글벨'(Jingle bells)이 작곡되고 불려졌습니다. 이후 캐럴은 크리스마스의 상업화와 함께 성장하며 1900년대 초중반 ‘White christmas’, ‘Let it snow’,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 등과 같은 히트송을 양산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의 캐럴 이미지를 확립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의 변화와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의 가사 표현 방식 또한 많이 달라지며 오늘날에 이릅니다.
3-3. 산타 클로스(Santa Claus)의 유입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뚱뚱하며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채 기분 좋게 웃는 할아버지 모습의 산타 클로스는 착한 일을 많이 한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이야기는 4세기 초 소아시아 미라 지방의 대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St. Nicholas)를 기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라틴어로 상투스 니콜라우스이며, 젊은 나이에 주교가 되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대하여 많은 선행과 자선을 베풀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성 니콜라스는 가난해서 결혼 못하는 세 자매를 알게 되어 한 밤중에 그 집 굴뚝에 올라가 금덩어리를 떨어뜨렸는데 우연하게도 벽난로 옆 양말 안에 들어갔고,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벽난로 옆에 양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 16세기 네덜란드로 이어졌습니다. ‘산타 클로스’란 단어가 탄생된 과정은 이 성 니콜라스(St. Nicholas)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주교의 이름인 니콜라스는 네덜란드어로 신트 니콜라스(Sint Nikolaas)였고, 이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신터 클라스(Sinter Klaas)로 바뀌었고, 이것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 산타 클로스(Santa Claus)였습니다. 산타가 굴뚝을 타고 와 선물을 준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전해지기 시작합니다. 1822년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Clement Clark Moore, 1779-1863)는 ‘성 니콜라스의 방문’을 제목으로 한 시를 발표했습니다. 그 시에서 무어는 산타 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탄 모습으로 표현하였고, 실제로 성 니콜라스는 날렵하고 키가 컸지만 그를 조그맣고 명랑하고 배가 불룩 나온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이 시를 통해서 지금의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는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 의하여 그림책으로 제작되어 왔는데, 그림책 ‘크리스마스 전날 밤'(The Night Before Christmas)6)는 일러스트레이터 잰 브랫(Jan Brett)에 의하여 그려진 그림책입니다. 이 후 1862년 뉴욕 주간지 하퍼스 시사만화가 토마스 나스트(Thomas Nast, 1840-1902)는 여기에 착안해 세계 최초로 산타클로스를 그렸습니다.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가 상품화되면서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고, 1840년 이후로 수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게 되고, 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 의하여 조금씩 외모가 변화되면서 산타클로스는 시대별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산타 클로스는 그의 선행인 자선(선물)을 베품이 성경에서의 아기 예수의 탄생 시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드린 3가지의 예물을 드림과 연관을 갖고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전통이 되었습니다. 선물 교환의 전통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르는 이야기인,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가 착한 어린이들이 사는 집에는 굴뚝을 통해 들어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있는 어린이들이 달아놓은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이야기와 상업적인 요소가 만나 이러한 선물을 주는 전통으로 확고히 자리 잡아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선한 이미지로 교회 속에 들어와 성탄절에 자리함으로써 선물을 주는, 또는 선물 교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날로 자리하였습니다.
3-4. 기타의 유입
위의 널리 알려진 몇 가지 외에 교회는 성탄절 시기가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하여 화려한 장식을 하고, '성탄절'을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며 소위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갖고서 성극을 비롯한, 크리스마스 성가 등의 발표를 하며 기독교적 행사를 벌여가며 축제를 즐기는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예전의 경우를 들 때 밤새 행사는 이어져서 '새벽송'을 돌기도 하고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며 즐기는 시간을 갖기도 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마 또 다른 변형의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시간을 가져나가지 않겠나 싶습니다.
맺는 말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교회에서 성탄절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잔재 속에서 또는 그것이 아닌 순전히 교회가 시작해 온 자발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경우에서의 것이든 지극히 이교적으로 그리고 인간 중심적인 축제로 가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영국의 청교도들은 "신 앞에서 냄새를 피우는 짓"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거룩한 성탄절을 인간 발광의 날로 만들었다"며 성탄절을 지키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미 3세기의 신학자인 오리겐은 성탄절을 정하는 것이 이교적이라고 비난하였으며, 종교개혁자들은 성탄절에 축제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를 않았습니다. 교회가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가져나간다면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있는 복음을 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이 굳건히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며 그 믿음에 있는 일을 매주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짐으로 매주일 가져나가고 있어 주일에 의해서 예배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데, 성탄절이 주일보다 큰 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즉, 주일이상 큰 날이 없습니다. 더욱이 12월 25일을 교회 절기인 성탄절로 갖는 것은 정작 이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로 갖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이 아니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는 무관한 날입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일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날짜를 계산하여 맞춘다고 할지라도 추정하는 날에 불과할 뿐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데다가 후대 제자들이나 초대 교부들을 통해 확실하게 전승된 바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에 관해서 신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로마가톨릭교회에서도,7)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양쪽 모두다 성탄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러한데 주일 외에 또한 성탄절이란 교회 절기가 필요하며 있어야만 하는지요. 그럼에도 부득불 성탄절을 지킬 교회 절기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그래서 성탄절을 교회 절기로 가져나간다면, 참으로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심으로 세상에 오신 이유와 목적에 의한 의미를 잘 전하고 온 성도가 주께 가진 믿음으로 하나 됨에 있어 나가는 연합의 모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경건이며, 경건에 있는 믿음입니다. 다음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2-14)
그런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에서 보는 절기와 그와 관련한 가르침은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이미 벌써 오래 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알고 있는 것으로 이제는 남을 가르칠 만도 한데도 아직도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도 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에 있어 여전히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크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젖만 먹는 갓난아이에 머물러 있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함에 있으면 되겠는지요.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에 장성하여 있어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음으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바르게 믿음에 잘 서나감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을 비롯한 교회가 지키고 있는 각종의 교회 절기는 그 하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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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2) 12월에 들어서면 로마에서는 세 가지 축제가 벌어졌다. (1)새터날리아(Saturnalia): 새터날리아(Saturnalia)는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지켜진 축제로 농경신인 ‘새턴’을 기리는 축제다. 이때가 되면 노예나 귀족의 신분 차별 없이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먹고 마시며 환락에 취했다. (2)브루말리아(Brumalia): 12월 25일에 지켜졌던 날이 브루말리아(Brumalia)인데, 로마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지제(冬至祭)일이었다. 일 년 가운데 해가 가장 짧은 날인 동지에 태양신이 탄생해 그날을 기점으로 힘이 점점 강해진다고 믿었다. 태양신 탄생일인 로마의 동지제는 로마 교회 입장에서도 기독교 교리와 연관시키기가 용이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빛’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태양신과 예수님을 동일시하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3)시길라리아(Sigillalia): 12월 하순에 있던 시길라리아(Sigillalia)는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게 하는 날이었다.
3) 동방원정에 나섰던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들에 의해 고대 페르시아 땅의 빛의 신, 곧 태양신인 ‘미트라’(Mitra)가 유럽에 소개되었고, 그 여파로B..C. 67년 로마에서 태양신 숭배가 시작되었는데, 로마에서 태양신은 여러 다신 중의 하나로 취급되었을 뿐이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말년인 A.D. 274년 12월 25일이 되어서야 ‘솔 인빅투스(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신/무적의 태양신)’를 위해 신전을 짓고 봉헌하여 탄생일로 숭배하게 되었다.
4) 서방의 가톨릭교회는 그레고리력에 의해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나, 동방의 정교회 경우는 신자가 절대 다수인 지역과 나라에서는 1월 6일이 성탄절로 축일 지정이 되어 있다. 공식 교회력인 율리우스력을 따르기 때문에 율리우스력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이다. 율리우스력의 날짜는 그레고리력보다 대략 2주 정도 늦다.
5)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그 출발점이 유월절 기간에 있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있은 시기인 3월 25일이다. 이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아프리카의 교부 터툴리안/터툴리아누스(150?-207?)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널리 알려진 사실, 곧 그리스도께서 3월 2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았다. 갈리아에서는 6세기까지 이날이 부활대축일로 지켜졌다. 아프리카 역시 243년에 작성된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 관한 다른 문헌에서 3월 25일을 천지 창조의 날로 해석해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볼 수 있다. 창세기에 의하면 태양이 만들어진 것은 창조 나흘째 되는 날인데, 이 날은 곧 3월 28일이라고 보면서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본다. 역사의 진정한 태양이 떠오른 날이라는 의미로서 이다. 이러한 견해가 3세기에도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변화되는 가운데 마침내 그리스도의 수난일과 수태일을 같은 날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3월 25일에 천사가 주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주님이 성령에 의해 동정 마리아의 태내에 잉태된 것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3월 25일에서 9개월 뒤인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정하는 것이 서방 교회에서는 3세기에 진행되며 자리를 잡았다. 반면 동방 교회에서는 1월 6일을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렸다. 이는 동서 두 교회에서 사용하던 달력이 동방교회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한 반면에 서방 교회는 그레고리력을 사용하여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6) 'The Night Before Christmas'는 '크리스마스의 전날 밤' 외에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하였다.
7)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새로 펴낸 책 ‘나사렛 예수의 유년기’에서 “12월 25일 예수의 탄생일은 잘못된 것으로, 기독교 달력시 사실상 6세기 경 수도승에 기반한 것으로 이 수도승이 예수의 탄생일을 계산할 때 수 년을 제했다”고 하였으며, 알렉산드로 스페시알레 바티칸 특파원은 CNN과 인터뷰에서 “교황은 전통적으로 인정해 온 예수 탄생일이 잘못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15NRiDDcsw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집사님은 5G
우리교회는 성탄절 폐지로..
바른교회입니다.
보충된 내용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