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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3)
에베소서 4:22-23에서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진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물에는 짐승도 있습니다. 짐승 중에는 사람이 먹을 만한 짐승이 있는데,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에서 이러한 짐승을 먹을 수 있는 정결한 것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이나 굽이 갈라져 있지만 새김질은 하지 않는 짐승은 새김질을 하며 굽이 갈라진 것과는 다른 구별을 띠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짐승은 먹지 못할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셨습니다.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에게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셨으며, 사반[오소리]도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역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셨습니다. 토끼도 그렇습니다. 그런가 하면 돼지의 경우는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진 쪽발이기는 하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돼지를 이스라엘에게는 부정한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는 이런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고, 그것들의 사체도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만일 그 고기를 먹거나 사체를 만질 경우 그들도 부정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사는 생물인 짐승만 가지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물에서 사는 고기, 즉 물고기를 가지고도 정결한, 그리고 부정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가운데서 지느러미가 있고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바다에서 사는 것이든지 강에서 사는 것이든지 먹을 수 있게 하셨으나 지느러미가 없고 비늘이 없는 것은 모두 먹어서는 안 되며 그것들의 사체도 가증히 여겨 피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공중에 나는 새들을 가지고도 정결한, 그리고 부정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새 가운데서 먹지 않고 가증히 여겨 피해야 할 것은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말똥가리[검은 소리개]와 말똥가리[붉은 소리개] 종류와 까마귀 종류와 타조와 타흐마스[쏙독새]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올빼미와 가마우지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사다새[펠리컨]와 너새[흰물오리]와 황새와 백로 종류와 오디새와 박쥐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벌레[곤충]를 가지고도 정결한, 그리고 부정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네 발로 걷는 날개 달린 곤충 가운데서 메뚜기와 베짱이와 귀뚜라미와 팥중이[여치] 같은 발과 다리가 있어서 땅 위에서 뛸 수 있는 것은 모두 먹을 수 있게 하셨으나 네 발로 기거나 걷는 날개 달린 벌레는 모두 혐오한 것으로 규정하시고 피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부정하게 하기 때문인데, 그 사체를 만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녁때까지 부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짐승인 두더지와 쥐와 큰 도마뱀 종류와 도마뱀붙이와 육지 악어와 도마뱀과 사막 도마뱀과 카멜레온 부정하니 그 사체를 만지는 모든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의 규례는 먹을 수 있는 음식물과 먹을 수 없는 음식물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음식물을 규정하시고는 그것을 먹거나 그 사체를 만지거나 할 경우 “너희도 부정하다.” 그러니 너희는 “그것을 먹지 말고, 그 사체를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경우 “너희도 부정하게 된다.”면서 말입니다.
이 규례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들은 그것들이 정결해서 정결한 것으로, 또는 그것들이 부정해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다 똑같은 생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것은 정결하다고 규정하고 어떤 것은 부정하다고 규정하여 서로 간에 구분과 구별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성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땅에서 나온 사람은 부정합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는 구분이요 구별입니다. 정결[거룩]과 부정[속됨]입니다. 하늘에서는 하늘에 속한 속성이 나오고, 땅에서는 땅에 속한 속성이 나옵니다. 땅에서 취해진 사람에게서는 땅에 속한 속성이 나오는데 따라서 땅에 한 한 욕망을 따라 삽니다. 이러한 사람에게서 ‘거룩’을 기대할 수가 있겠는지요.
하나님은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의 규례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그런 것으로 자신을 더럽혀 부정을 타서는 안 될 것이며, 그것들이 자신들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규례를 주심으로써 이스라엘에게 가지신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 것은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몸을 구별하여 바쳐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땅에 기어 다니는 어떤 길짐승 때문에 너희가 자신을 부정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主)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레 11:44-45)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스라엘]에게서 거룩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는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자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는 그들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그들을 두시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그들이 있게 하셔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또한 그들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말이죠. 부정한 것을 먹는 자는 또한 부정한 자가 될 것이고 부정한 것의 사체를 만지 자 또한 부정할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거룩에 있는 자는 또한 거룩한 자가 될 것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부정한 사람이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정한 사람의 주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들의 거룩하심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부정한 것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완전함에 있는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죄로부터의 구원의 성격입니다. 거룩은 이 죄로부터의 구원을 말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을 거룩한 자로 만들어 가려는 운동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납니다. 교회에서는 이것을 ‘성화’라는 말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성화란 말이 의미하고 있는 본 뜻을 성경에서는 ‘거룩’이라는 말로 하고 있습니다. 거룩은 ‘세속적’ 혹은 ‘통속적’이라는 말의 반의어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분간)하는 것에서 거룩이 말해지는데, 거룩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존재, 혹은 하나님의 활동 영역에 사용되어서 통속적이거나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다음의 구절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호 11:9).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레 11:44)라고 자신을 두고 거룩을 말하여 거룩의 개념을 세우셨습니다. 출애굽의 이적을 홍해에서 경험한 이스라엘은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만이 거룩하심을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출 15:11).
하나님 외에 ‘거룩하다’ 라고 불려질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지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은 하나님은 신(神)이신 까닭입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물이든 그 모두는 다 속되다 - 부정하다 - 라고 규정됩니다. 이 모두가 다 속된 것은, 그래서 거룩하지 않은 것은 이 모두는 다 신(神)이 아닌 까닭입니다. 신이 아닌 것에서는 거룩하다는 것이 말해지지 않습니다. 신이 아닌 사람, 짐승, 사물, 그 모두는 땅에서 나왔습니다. 이것들은 하늘의 하나님과는 다른 구별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에 반하여 “속되다”, 즉 “부정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에게 속한 모든 것도 또한 거룩할 것을 규정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4-45).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 안에 그의 택하신 자를 두고 거룩을 규정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6), 하나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는 처음부터 성화의 개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서는 거룩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속해 있는 모든 것도 또한 거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 안에 자기의 택한 백성을 두시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들을 또한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거룩에 그들이 속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는 거룩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거룩이 아닌 속된 것입니다. 거룩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이 속된 사람을 덮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자는 거룩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거룩하다고 하시는 것은 이들이 거룩한 자로 성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거룩함은 ‘거룩한 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은 그들에게 거룩해져 갈 것을 원하며 이를 요구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그래서 성화되어 갈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거룩한 자’가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심으로 자신과의 특별한 관계인 거룩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들은 죄에 의하여서 부정하게 될 수 없는 자라고 하는 것에서, 그래서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이름(거룩)을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만일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면, 그래서 부정한 자가 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악한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효를 바라보며 의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악한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 속에 두고서 그 관계를 날마다 지속적으로 가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자신 스스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어 나가지 못함으로 인해서 도무지 하나님의 거룩을 충족시켜 나갈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날마다 충족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날마다 입고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자기의 보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을 통해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날마다 입히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도 함께 거룩으로 다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이 다 거룩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화에 대한 바른 이해에 의해서 올바른 성화론을 정립해야 합니다. 성화란 용어의 말이 교회의 역사와 더불어서 오랜 세월을 같이 해온 것이기 때문에 이 말 자체를 터부 하며 배제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하는 것은 고려해야만 할 일입니다. 잘못된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성화란 용어를 할 수 있는 한에는 사용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화란 용어를 어느 사람의 몇 몇에 의해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자들에게서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사람들의 뇌에 깊이 각인이 되어 있으며, 습관처럼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한 것을 사용 여부 문제로는 해결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칭의와 함께 말해지는 성화에서 보게 되는 구원은 교회론적입니다. 칭의와 성화에 의하여 말해지는 구원은 교회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속성들은 무형교회에 속합니다. 이 무형교회만이 진정한 보편적교회(the real catholic Church)입니다. 교회는 모든 신자를 회원으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적 지체인 한 몸의 통일체이므로 영적 성격을 가집니다. 교회의 모든 신자는 객관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보고, 또 주관적으로는 원리에서 거룩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속성을 ‘교회의 통일성’과 그리고 ‘교회의 보편성’과 함께 ‘교회의 거룩성’으로 말합니다. 이렇게 교회의 거룩성을 교회론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거룩성을 다른 말로는 ‘성화’란 말로 표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의 속성으로 교회의 거룩성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거룩됨의 개념이 성화란 용어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교회의 거룩됨이 성화라고 설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신자들은 하늘에 있는 자이든 땅에 있는 자이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자이신 것처럼 그들 또한 거룩한 자입니다. 비록 땅에 있는 자들일지라도 이들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과 한 몸을 이룬 지체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날마다 죄의 용서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그들의 육의 본성에서 나오는 악한 죄의 부패성으로 옛사람의 특성이 늘 발휘되고 있으나, 그들이 믿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거룩성으로 언제나 새사람을 입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자 간에 거룩된 자의 관계성이 맺어지고 있는 것이 신자입니다.
따라서 교회론에서 교회의 속성으로 교회의 거룩성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이 교회의 거룩성은 구원론에서의 구원의 서정에서 성화란 용어가 지니고 있는 '거룩됨'의 개념과 같은 것이므로 성화는 구원론에서만 아니라 교회론의 교회의 속성에서도 말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에베소서 4:22-23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구절은 성화 교리를 말하는데 빈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생활을 말하는 성화를 언급하여 주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고 있는 바울의 권면은 지금 교회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인데, 이 하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가 되게 하시는 능력(은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여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엡 3:20-21). 그리스도와 하나된 몸인 교회란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불러 모은 '몸의 지체들'입니다.
이 교회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음에 있습니다.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는 것은 에베소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존재들인가 하는 정체성의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란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라고 말하였습니다(골 3:2-3).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밖의 세계에서 사는 자들이 사는 방식대로 사는 삶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세계에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닫혀 있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을 악한 죄에 내맡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악한 생각과 무분별한 욕망에 이끌려 사는 생활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그러한 삶은 옛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옛사람이 어떻게 부정되어 벗어버려지고 있는지가 새사람을 입음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죄의 몸인 우리가 완전한 구속, 곧 부활에 이를 때까지 이 멸해질 몸에서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서 산 자인 새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우리, 곧 그리스도와 한몸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2-23은 성화를 말해주는 구절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한몸인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말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듣고 다시 읽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