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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Ⅻ. 송년홍 신부 순례이야기
준비를 매우 탄탄하게 잘하는 양운기수사의 중국순례는 그 의미가 크다. 장현근선생의 중국순례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여행의 패키지와는 완전히 차별화돼 있고, 테마적인 순례의 차원으로도 격조높다. 그래서일까. 모집하는 평화순례는 순식간에 마감된다. 몇 년 전 문정현신부/문규현신부 등과 함께 만주순례를 했다. 양운기수사의 기획으로. 매우 알차게 구성된 만주순례에서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이제는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문정현신부가 진지하게 찾을 방법을 모색하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해서 해마다 한 번씩은 만주순례를 기획하고, 해설사도 좀 더 특화된 이를 겨우 찾았다. 더디 가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해마다의 순례는 묘하게 이런 순례와 저런 순례가 연결이 돼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다음 해는 이병호주교와 그룹이, 다음 해는 안철문신부와 그룹이, 이를 잇고 있어 명맥을 유지한다. 하지만 해마다 고민이던 차, 한 본당에서 만주순례를 계획했다가 일본순례로 돌리면서 '올해는 또 버겁게 기획해야 되는가' 싶을 무렵, 송년홍신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주로 가기로 했다'고. 청소년들과 함께 하니 의미도 크다. 양운기수사도 장현근선생도 기획과 교육에 도움을 줄 듯하고, 윤영석선생도 안내와 해설을 할 듯하다. 무산될 뻔한 것이 명품순례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간도에서 있었던 경신참변을 계속해서 추적했던 나의 연구도 곁들여지고, 몇 년 동안 다가갔던 안중근의사와 김대건신부의 발자취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니 의미가 크다. 백두산도 아이들을 반길 것이고. 소설 "청초당"도 살을 더한 얘기꽃을 피울 것이다. 해마다 청소년들에게는 아낌없이 투자하며 의식을 가다듬는 송년홍신부로서도 오랜 경험이 축적된 프로들과의 만남 안에서 속속들이 살펴볼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부러우면 진다.' 우리는 주변에 비해 조그마한 한반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모든 면에서 그리고 특별히 문화 면에서 빼어나고 수려해서 결코 무언가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급성장한 중국에 살짝 부러운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민다. 침화일군난징대도살우난동포기념관[侵华日军南京大屠杀遇难同胞纪念馆]은 침략의 일본도 명시하면서 난을 맞닥뜨린 동포들의 도살[학살/살육]을 곱씹으며 기억하는 장임을 분명히 한다. 어리고 젊었던 아이리스장이 집요하게 추적해서 얻은 결과이기도 하다. 삼십만명의 학살[MasSacre]은 그녀의 삶마저도 젊은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그녀 덕분에 조명된 회상[AnaMNesis]은 넋과 얼과 영과 혼과 백을 위로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 아이리스[붓꽃]처럼 보라 물결은 그윽하게 그녀를 또한 떠올린다. 사진, 자료, 조각 등은 퍼즐처럼 조합되고, 수십 곳의 학살장소에서 가져온 소나무, 돌멩이 등도 침묵으로 소리친다. 바람이 일면 그 소리 또한 커진다. 일본제국주의의 발상은 만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주사변 그리고 앞선 경신참변. 안중근의사의 효시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로 이어지고, 독립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만주 북간도에 살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삼천여명에 달하는데, 그 중 절반 가량이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말한다. 노루바위[獐巖洞]와 기댈숲속[依林溝]에 살던 이들이 그러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박해를 피해 전라도 심산궁곡에 숨어살던 천주교인들이 종교자유와 함께 초남이와 나바위로 나왔으나, 이어지는 일제 농장지주들의 간척과 소작은 빚더미에 안게 했다. 더러는 꾀임으로 일본에 징용을 더러는 스스로가 만주로 피신을 가 신앙을 이어갔다. 그리고 벌어진 학살. 역사는 덮었다. 하지만 그 먼 후손들이 간다. 일부는 고사리손으로. 그들은 아이리스장보다 더 멋지게 밝힐 것이다. 그러니 이제 무엇이 부럽겠는가.
서울 여의도에 가면 청초당[靑草塘]이라는 정장가게가 있다. 그리고 바늘 하나가 로고라면 로고다. 아마 주인은 안중근의사와 관계가 있던지, 안중근의사를 흠모를 하던지 한 모양이다. 하얼빈의 항일영웅 이조린을 기리는 자오린공원[兆麟公園]에 있는 '청초당[靑草塘]' 비석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여동생인 안성녀[루시아]가 제부[弟夫]와 함께 이미 하얼빈에서 양장점을 차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혹여 그 양장점 이름이 청초당[靑草塘]은 아닌지 역시도 추측케 한다. 안중근의사는 왜 죽음을 며칠 앞둔 상황에서 청초당[靑草塘]이라는 유묵을 쓴 것일까. 누구에게 건네기 위함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유묵이 신앙의 발로라는 것이다. '푸른 풀밭이 있는 연못' 누군가는 당[溏]이 연못이 아니냐고 하지만 수렁, 진창, 벌밭 정도이고, 안중근의사가 쓴 당[塘]이 연못인데, 흙[土]을 변으로 쓰는 것은 아마도 연못이 보이는 둔덕 정도라서 그랬을 것이다. '푸른 풀밭의 연못이 보이는 둔덕' 그러면 떠오르는 것은 천국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안중근의사는 그런 천국을 떠올리며 죽음을 며칠 앞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새겼을 것이다. 그 천국에 떠오르는 한 마리 동물이 있다면 사슴이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사슴은 독립의 갈증이 가득해 시냇가를 찾았다. 누군가가 말하듯 새끼를 밴 암사슴은 악어와 같은 위험이 도사리는 못이라도 뱃속 새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물을 마시러 간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장면 중 새끼사슴이 강을 건너는데 악어가 달려오자 어미사슴이 자신을 먹잇감으로 내놓는 모습이 있었다. 안중근의사의 천국은 그랬을 것이다. 거사 하루 전 거닐었을 하얼빈공원. 그리고 해방 전에는 거기 묻었다가 해방 후에는 함께 만세를 부르도록 고국으로 그리운 고국으로 보내달라던 안중근의사. 해방이 된 지 한참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헤맨다.
전국 곳곳의 수많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에 하트가 그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연료[松炭油]를 위해 긁어낸 자리에 생긴 상처다. 나무는 말을 안해서 그렇지 수백년 아니 수천년 세월동안 보고 들은 바를 기억한다. 뮌헨의 다하우수용소에 가면 막사가 있다. 그것도 없애려던 것을 마을이장과 주민들모두 '우리 독일국민의 수치를 덮지 마라.'고 해서 지우지 않은 것이다. 파편처럼 남은 막사. 그리고 '노동이 해방케 하리라.[Arbeit Machat Frei]'는 철문 위의 녹슨 문구가 살벌하게 맞이한다. 그리고 가스실 바로 옆에 새롭게 세워진 수도원에서는 연일 쉴새없이 봉쇄수도원 수도자들의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흔적과 더불어 그날들을 보고 들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서 있다. 그들은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떤 나무들에는 당시 깊이 새겨넣은 징용자들의 배고픔과 그리움도 새겨져 있다. 그런 까닭일까. 난징대학살기억관에도 수십 곳 학살현장의 소나무들을 옮겨심은 것은 '그대들은 적어도 봤을 것 아니냐.'며 목격자이자 증언자로서 내세운 것은 아닌지. 해미의 호야나무[회화나무]. 전주의 회화나무. 그리고 독일의 수없는 이교인들의 교수형이 있던 굴참나무 등도 모두 그렇다. 소설과 영화인 "마루타"는 일제강점기에 인간을 상대로 한 온갖 공포스러운 실험이 자행된 부대 731을 고발하고 있다. 너무 강하게 박힌 인상 중 하나는 하얼빈 그 차디친 곳에서 어느 정도에 손이 완전히 얼고 그것을 내려쳤을 때 두 동강이 나는가였다. 이미 괴사된 손의 감각이 없는 장본인을 웃게 하고는. 청소년들을 굳이 그런 끔찍한 곳에 데려갈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소 누그러뜨린 공원처럼 된 곳의 파편처럼 남은 버즘나무와 버드나무와 회화나무와 은행나무가 들려주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 정도는 되지 않을까. 소나무가 상처를 어떻게 하트로 만드는지를 보게 하듯이.
'역사를 잃으면 나라를 또다시 잃는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해도 안중근이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는 명심보감의 말을 유묵으로 남긴 이를 물었을 때 '글쎄요.' '안창호인가.' 했었다. '미래는 없다.' '미래는 없어.' 이랬는데 이삼십년 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고속도로변 벽에 크게 초상화를 올리고, 부모는 자녀들의 답사에 주저하지 않는다. 연극과 영화가 만들어지고, 심지어 건달과 양아치 사깃꾼 등도 존경해마지 않는다. 그 메인장소인 하얼빈역에 가면 중국의 영웅인 주은래조차 '안중근은 혁명의 효시이다.'고 말했던 것을 반영하듯, 한 켠에 안중근박물관이 있다. 일본이 이또히로부미[伊藤博文[いとう ひろぶみ]]를 지폐에 새겨넣고 영웅처럼 도쿄 한복판 센소지[浅草寺[せんそうじ]]에 이또정원[伊藤園]의 간판을 걸어놓는 것을 보면서 '또 망하겠군.' 하며 자괴감을 곱씹었는데, 이삼십년이 지난 후 젊은 미래세대들은 놀랍게 더 놀랍게 멋지게 더 멋지게 앞선 이들을 뛰어넘었다. 인구 이만오천에 불과한 무주의 청소년들과 도쿄의 한 학교를 교류 차원에서 방문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찢었다. 무주가. 도쿄를.' 그들의 넘치는 끼는 도쿄를 누르고도 남았다. 그런 그들은 안중근의사는 물론 외우기 싫어하는 연도도 흐름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재잘재잘 꽁다꽁닥 장난기만 가득하다가도 한일역사자료관에 들어서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더 설움을 받았던 재일교포들의 사연 앞에서는 진지하고 숙연하다. 이만오천의 무주가 일천만명의 도쿄를 찢는다면, '재들은 도대체 어떤 민족일까.' 할 법도 하다. 적어도 몇 점의 안중근의사의 유묵에 담긴 철학적 영성적 깊이를 알고서 가는 진안의 청소년들의 만주순례의 저력[樗櫟/底力]이 기대되는 것도 바로 이 점.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눈물마저 날뻔 한 이 물음에 '그렇다.'고 하자 이내 나온 말이 '그렇다면 내 양들을 잘 돌봐라.'였다. 어떻게. '죽기까지.'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말이 있다. '이익이 보이면 의로움을 저버린다.'는 이 말은 개인주의를 철저히 반영한다. 참된 지도자냐 거짓 지도자냐 등의 판가름도 여기에서 난다. 거짓 목자는 자신의 흠결을 감추기 위해 양들을 늑대에게 팔며 타협한다. 하지만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善牧爲羊捨命] 양과 염소 등은 두 발굽으로 바위와 절벽을 잘 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막다른 벼랑 끝에 서기도 하는데, 그러면 하는 행동이 소리다. '음메에에.' '아이구야.' '죽겠어요.' 착한 목자는 철부지 어린양의 목소리를 잘 알기에 벼랑으로 쫓아가 처음에는 목자의 지팡이로 나중에는 손아귀로 구해낸다. '벼랑에서.'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 안중근의사의 유묵 가운데 와닿는 이 글귀는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의[義]는 양[羊]과 나[我]를 동일시하는 희생[犧]의 각오가 담긴 의로움[羲]이다. 그리 본다면 스스로 바치고[捨] 스스로 내놓는[授] 것에 본분이 있다는 것을 안중근의사는 말하는 것이다. 강한 보다 강한 필치로. 베르모렐선교사가 수류성당의 전신인 배재공소에 들러서 남긴 기록에는 이렇게 써있다. '이[공소신자]들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하다. 하지만 쌀 한 톨도 콩 한 알도 생기면 나눈다.' 그런 정신의 교육장에서 배운 안중근의사는 몸에 밴 것을 그리 실천했다. '사랑하기 때문.' 해방을 위한 안중근의사의 타는 목마름은 '사랑 때문이다.' 하고 통일을 향한 조성만열사의 타는 목마름의 전형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예수의 원형이 있다. '목마르다.'는 예수의 십자가상 표현이 다시금 '사랑하냐.'로 들리고, 그러면 '내[네]양떼는.'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
장예모감독의 "붉은수수밭" "귀주이야기" "진링십삼채" "트라이아드" "오일의마중" 등을 보면 공통분모가 '여인'이다. 격변기 중국에서의 가장 약자인 여인의 모습이 여러 빛깔로 담겨있다. 하지만 태양의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대형 버라이어티쇼를 보고 있으면 이 감독이 그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의 큰 스케일에 압도된다. 사실 섬세함과 광활함은 미시와 거시의 정반대인 것이지만,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기에는 둘 다 충분한 기운이 가득하다. 부여, 옥저, 발해, 말갈, 거란, 여진, 만주, 심지어는 흉노, 돌궐, 선비, 훈족, 몽골 등 유목민들은 미시와 거시의 경계 안에서 우리와 그 역사적 깊이를 함께하고 있다. 어떠한 이름으로건 피가 흐르게 하고 기가 드세게 하며 혼이 스미게 한다. 부모의 나라, 형제의 나라, 친척의 나라 등이 됐다가 몇 세대가 지나면 침략자, 약탈자, 학살자 등으로 돌변하기도 한 것이 역사의 흐름이지만, 파편적으로 남아있는 문화의 씨앗이 '하나'임을 느끼게 해준다. 하얼빈에서 연길까지의 고속열차. 독일, 일본, 한국 등보다 더 빠르게 진화한 중국 고속열차에 몸을 맡기면 처음에는 속도에, 다음에는 평야에, 그리고는 지붕에 놀란다. 그렇게 빠른데 끝없는 평야에 옥수수 물결과 섬같은 팔작집. 곧 햇빛을 머금어 황금들녘으로 변할 초록바다의 옥수수밭은 '광활한 만주벌판'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게 하고, 거기에 어김없이 '나는 고려인[조선인]이오.' 하듯 외로운 섬처럼 있는 팔작지붕의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던 독립운동가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염없는 아낙의 시선이 갇혀있다. 그 거시와 그 미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감정선을 건드리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가면 갈수록 하나둘 짙게 나타나는 팔작지붕의 물결은 이제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서로 소통할 지경에까지 다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