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그런지 나이 들어서도 그러한 환경이 자주 생각난다. 그렇다고 남들보다는 돈이나 물질에 탐을 더 내는 편은 아닐 것이다.
부산의 동구 산복도로변, 오래전에 그곳을 다녔었고, 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발길이 간다.
6.25를 거치며 부산은 피난민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그래서 가파른 산비탈마다 판자촌이 들어섰었다.
이후 사람들은 자기 고향과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갔지만 그들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었다.
경제가 발전하자 판자집은 사라지고, 콘크리트집들이 들어섰으나 산비탈에 위치한 모습은 비슷해 보인다.
서구청 앞에서 버스를 내려 자갈치를 거쳐 광복동으로 들어섰다. 사람 북적이는 그곳에도 군데군데 빈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경기가 좋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용두산공원은 외지 사람들인 듯 관광을 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민주공원과 중앙공원을 거쳐 영주동 산복도로에서 동구 초량, 수정, 좌천, 범일 산복도로를 향해걸었다.
40여년전 그때 있었던 아파트들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때도 세월의 때가 묻은 것들이었으니 50년은 됨직하다.
몇시간을 걸으니 다리가 아파왔다. 추억나는 곳 중 다른 곳들은 예전에 다녀왔었고, 그래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동네 끝자락에 있었던 작은 사찰이다.
그때가 사월초파일이던가, 사람들이 한차례 다녀가고 한가한 스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교회 이야기를 하였다.
결국은 종교도 사람 사는게 거기서 거기란걸 느꼈다. 절간에 불공을 드리려온 사람들의 뒷태도 그랬다. 그저 뭇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물어 몇군데의 사찰을 둘러보니 규모가 작은 한곳이 그곳일 것이란 단정을 지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경내를 들어서니 스님들도 내가 약간은 이상해 보이나 보다.
산복도로는 예전에 걷지 않았던 범천과 가야까지 걸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게 인연의 연속이다. 핏줄도 결국엔 헤어져 살기 마련이다.
어디에 살든, 어떤 주거의 형태로 살든 마음을 온전히 두면 그깟게 대수랴? 기계로 얼굴 들여다보는 세상이니 마음이 중요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문제는 갈수록 살기가 팍팍하다. 힘을 합치고 가진 것을 나누면 좋으련만 어느 세상이든 악령이 선을 이기려든다.
어째든 이 험난을 세상을 견디고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
첫댓글 사진이 참 정감있습니다.
글을 볼때의 느낌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