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함양(咸陽)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때는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성(含城)이라 하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천령군(天嶺郡)이라 개칭하였고, 이안현(利安縣: 安陰)·운봉현(雲峰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허주(許州)로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에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練使)로 승격하였으나 1010년(현종 1) 함양군으로 개칭하였고, 1172년(명종 2)에 함양현으로 강등되었다. 1395년(태조 4) 함양군으로 승격하였으며, 1629년(인조 7)에 현으로 바뀌었고 1729년(영조 5) 함양부(咸陽府)로 승격하였다가 1788년(정조 12) 다시 함양군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함양군, 1986년 경상남도 함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안의군(安義郡)에 있던 현내(縣內)·황곡(黃谷)·초점(草岾)·대대(大垈)·지대(知代)·서상(西上)·서하(西下) 등 7개 면을 통합해서 함양군으로 합병하였다. 1933년 위성면이 함양면으로 개칭되고, 1957년에는 석복면(席卜面)을 함양면에 통합하여 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함양오씨(咸陽吳氏)
본관 연혁
함양(咸陽)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때는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성(含城)이라 하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천령군(天嶺郡)이라 개칭하였고, 이안현(利安縣: 安陰)·운봉현(雲峰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허주(許州)로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에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練使)로 승격하였으나 1010년(현종 1) 함양군으로 개칭하였고, 1172년(명종 2)에 함양현으로 강등되었다. 1395년(태조 4) 함양군으로 승격하였으며, 1629년(인조 7)에 현으로 바뀌었고 1729년(영조 5) 함양부(咸陽府)로 승격하였다가 1788년(정조 12) 다시 함양군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함양군, 1986년 경상남도 함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안의군(安義郡)에 있던 현내(縣內)·황곡(黃谷)·초점(草岾)·대대(大垈)·지대(知代)·서상(西上)·서하(西下) 등 7개 면을 통합해서 함양군으로 합병하였다. 1933년 위성면이 함양면으로 개칭되고, 1957년에는 석복면(席卜面)을 함양면에 통합하여 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함양오씨(咸陽吳氏) 시조 오광휘(吳光輝)는 도시조 오첨(吳瞻)의 24세손 오현필(吳賢弼: 보성오씨의 시조)의 셋째 아들로 고려시대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흥위위상장군(興威衛上將軍)으로서 거란군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란광국일등공신(推忠靖亂匡國一等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보성오씨에서 분적하여 함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분적종 및 분파
함양오씨는 보성오씨(寶城吳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면 대천동 경상남도 진양군 미천면 상미리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다천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함양오씨는 8,270가구 총 26,339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시조 오광휘(吳光輝)는 도시조 오첨(吳瞻)의 24세손 오현필(吳賢弼: 보성오씨의 시조)의 셋째 아들로 고려시대 좌복야(左僕射)를 지내고, 흥위위상장군(興威衛上將軍)으로서 거란군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란광국일등공신(推忠靖亂匡國一等功臣)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함양부원군(咸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보성오씨에서 분적하여 함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분적종 및 분파
함양오씨는 보성오씨(寶城吳氏)에서 분적한 성씨이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면 대천동 경상남도 진양군 미천면 상미리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다천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함양오씨는 8,270가구 총 26,339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