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회천서교20회
 
 
 
카페 게시글
사는 이야기 스크랩 마을의 반가운 손님....집배원 아저씨
부산 영희 추천 0 조회 62 09.12.24 10:1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마을의 반가운 손님, 집배원 아저씨

 

군대 간 아들 소식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집배원 발걸음이 늦다고 역정을 냈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아저씨를 위해 감자와 옥수수를 삶았다. 동네 강아지들은 컹컹거리며 동구 밖까지 달려가 집배원을 앞서거니 뒤세우니 호위하듯 마을로 들어서곤 했다.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은 그가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기다리던 편지를 다투듯 빼앗아갔다.


도시라고 반가움이 다를 바 없다. 이제나 저제나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기다리던 연인들은 아파트 우편함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우체부' '우편배달부'(역시 옛 명칭)를 기다렸다. 입사시험 합격통지를 고대하던 달동네 청년은 집배원이 힘들게 비탈길을 올라오는 걸 기다릴 수 없어 비탈 아래 구멍가게에 진치고 앉아 연신 고개를 빼들어 큰길 쪽을 내다봤다.


 

70, 80년대 까지만 해도 연필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쓴 편지의 정감이 살아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글 못 읽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집배원의 다정과 여유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산동네 처녀와 강마을 총각을 맺어주고 도시에서나 쓰는 '구리무'(얼굴크림)나 사탕과자를 들고 와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문패를 만들어 달아주는가 하면 시골 어린이 숙제를 해주거나 과외선생 노릇도 마다하지 않았다.

 

 

 

20kg 무게 행랑지고 40km씩 발품 팔아

 

 


그런데 요즘은? 연말연시, 1년 만에 보내는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도 인사말은 물론 이름조차 직접 쓰지 않고 ‘대량 인쇄, 살포’한다. 우편물에 정감이 사라졌다. 사람냄새가 없다. 한 명에 한 대 꼴로 휴대전화가 있고 인터넷이 분초를 다퉈 소식을 전해주니 직접 쓰는 편지, 카드는 골동품처럼 귀해졌다.

당연히 집배원도 현대화 됐다. 가죽 행랑, 먼지가 가득한 워커를 신고 걷는 대신 오토바이 뒤 바구니에 플라스틱 택배 상자를 싣고 다닌다.


물론 그렇다고 집배원에 대한 감사의 정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정취는 반감됐다. 그래서 옛날 신문, 특히 집배원의 애환을 다룬 기사를 읽으면 문득 아련한 그리움이 가슴속으로 밀려들곤 한다. 한 신문은 "저물어가는 한해의 아쉬움을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불룩해진 행랑을 짊어지고 가는 집배원의 뒷모습에서 발견한다."고 특집기사 첫 머리를 쓰기도 했다.

 

70, 80년대 집배원들은 대부분 걸어 다녔다. 빨간 자전거, 오토바이도 있었지만 대개 '속달 용'이었다. 행랑의 무게는 대략 20kg. 하루 배달 량은 도시의 경우 편지 소포 850통, 농촌은 350통이었다. 배달 거리는 도시 20km, 농촌이 40km. 집이 드문드문 선 농촌이 훨씬 더 발품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집배원들은 시골에 가야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고 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인고의 메신저'

 

1977년 12월2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15년 집배원 경력 김종설씨는 "서울에선 집배원과 수취인 사이에 오가는 흐뭇한 정이 없다"며 "너는 전하는 사람, 나는 받는 사람일 뿐이라는 모래알 같이 삭막한 이기주의적 생각이 도시인들 머리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것 같다”며 서글퍼 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처음 집배원을 시작한 그는 "서울 간 손자 편지가 반가워 막걸리를 대접하는 할머니도 있었고 군대 간 애인 편지에 눈물 흘리는 강원도 산골 아가씨의 순정에 가슴 뭉클한 적도 있었다."며 "서울선 편지를 전하러 가면 철문이 굳게 잠겨 있어 대화, 정이란 없고 맹견이 튀어나와 물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 기사 제목은 '고달픈 전령'이다. '사람과 사람, 정(情)과 정을 이어주는 가교'라는 작은 제목도 붙였지만 기본적으로 박봉에 시달리며 마냥 걸어야 하는 고달픈 직업인임을 부각시켰다.


 

80년대 초에 들어서며 언론은 다시 집배원을 '인고(忍苦)의 메신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통을 참고 견디며 행복 메시지를 전한다는 의미. 물론 거기엔 편지 한 통에 목숨을 건, 한 집배원의 우직하고 투철한 사명감을 기리는 뜻도 담겼다.

 

 

 

목숨과 바꾼 '마지막 편지 한통'

 


1980년 12월12일 저녁 7시. 충남 안면 우체국 집배원 오기수씨는 마을에서 10km나 떨어진 산간 외딴집에 마지막 우편물을 전달하고 돌아오다 벼랑에서 실족해 순직했다. 그날은 영하 15도 추위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져 있었고 길은 폭설로 덮여 앞뒤 분간조차 안 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가 전달한 마지막 우편물은 5원짜리 우표가 붙은 농민신문 1부였다.


신문을 받은 수취인은 날도 어두워지고 눈보라도 심하니 자고 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오 씨는 우체국에 연말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는데다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는 자기를 걱정할 게 더 염려됐다. 그 밤에 어떻게든 우체국에 돌아가야 다음날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외딴집을 떠난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 그의 시신은 다음날 그를 찾아 나선 동료들이 발견했다.

 

이듬해 만국우편연합은 기관지를 통해 '편지 1통에 목숨을 버린 집배원'기사를 상세히 실었다. 체신부는 그가 숨진 안면도 유망맞이 해변벼랑에 '1980년 12월12일 악천후 속에 마지막 우편물을 전하고 집배원 이곳에 지다’란 푯말을 세웠다. 동료들은 우체국에 ‘한통의 편지 위한 님의 정성, 우리 온 가슴에 길이 남으리.'라고 새긴 추모비를 세웠다.

 

오 씨의 사명감에 젖은 희생은 지금도 집배원들의 귀감으로 남았다. 사실 모든 집배원이 한 장의 편지, 한 통의 소포를 빨리 그리고 안전하게 전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한다. 근대 우정(郵政)초기 역시 편지배달 중 순직한 이시중 씨의 경우도 오 씨 사건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1927년 7월 22일 전주우체국 집배원이었던 이 씨는 우림면과 나전면 두 마을에 우편배달을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마을로 가는 개울을 건널 수가 없었다. 편지는 전해야 하는데 길은 막혔고… 고민하던 그는 묘책을 생각해냈다. 개울 건너 마을 주민을 소리쳐 부른 뒤 그 마을로 갈 편지를 돌에 묶어 던지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막 돌을 던지자 편지가 풀려 개울에 떨어졌다. 오로지 편지를 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개울에 뛰어들었고 급류에 휩쓸려 숨지고 말았다. 한국인 집배원 순직 1호로 기록된 그의 추모비는 당시 일본인 우체국장이 세워주었다.


 

집배원 안전사고는 오토바이, 자동차를 주로 이용하는 요즘도 자주 일어난다. 과거에는 우편물 배달에 나선 집배원을 보면 사람들이 먼저 길을 양보하곤 했으나 요즘은 그런 미덕도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80년대 초반 1만 명 선이던 집배원 숫자는 1만5천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비록 인쇄물이긴 주로 많지만 우편물량 또한 늘었다. 한통의 편지도 빠트리지 않고 목숨 걸고 전한다는 사명감 역시 다름없다는데 정감은 전만 못하다. 옛날 신문을 다시 꺼내 읽는 이유다.

민병욱 /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다음검색
댓글
  • 09.12.24 12:48

    첫댓글 어릴적 편지와 신문을 배달해준 우체부 아저씨 행여 내 편지있나하고 기다린적이 생각나네

  • 09.12.24 14:28

    정말 가슴아픈 사연이구만^^옛날에는 배달원 아저씨만 보면 반가웠고 맘 설레곤 했는데 요즘에는 씨잘데 없는 정보물로 쓰레기 처분하기가 바쁘?

  • 09.12.24 15:24

    아자씨 사랑도 배달해 주나요^^

  • 작성자 09.12.24 15:39

    부민학생! 어떤 사랑이 모자라나요?~~~

  • 09.12.24 19:04

    빨간 우체통과 빨간색 자전거로 상징되었던 우체부 아저씨........우리 어린 시절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경찰관 아저씨였고 가장 가슴 따뜻한 사람은 우체부 아저씨라고 생각했었네.....전국방방곡곡에서 수고하시는 우체국 집배원님들! 수고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무사고를 기원합니다.

  • 09.12.24 21:34

    향수에 젖게하는 사연들이네.그시절의 조건에 비하면 지금의 집배원 아저씨들은 좋은 조건속에서 일한다는 생각이...모든사람들에게 고마운 분들이제.!

최신목록